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SHOUT-27]어제 향촌

인천시 남동구청에선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으니 '나가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으나

촐거대책위 건물에 모여사는 향촌 사람들은

순번대로 규찰을 서고 밥을 해먹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다

대추리 마을이 언뜻 스쳐지나간다

대추리도 향촌도 국가권력에 대해 불복종투쟁 중

 

철대위 위원장은 쉰 목소리가 조금 풀렸고

이날따라 마음이 좀 안정되셨는지 조단조단 말씀도 많이 하시고

애 키우는 언니들은 바느질하랴 청소하랴 식사준비하랴 분주하고

와중에 재원이가 들이대는 카메라를 이제는 밥솥 보듯이 하고

애들은 재원이나 나나 향미에게 다 '선생님!' 했다가 '이모!' 했다가

무릎에 올라앉거나 손을 비비거나 눈을 들여다보거나 하고

"향미 선생님이랑 새로 온 이모(나루)랑 친구예요? 친언니예요?"

"누가 동생이고 누가 언니예요?"

그런 걸 궁금해하고

아이들에게 '난타'를 가르치는 향미는

가르친다기 보다 아이들과 같이 즐겁게 노는 방법을 이미 삼만갑자 터득한 것 같고

먼저 노래를 불러주고

한 소절씩 따라하게 하고

따라할 때 아이들이 하나씩 돌아가며 직접 기타를 쳐보게 하고

코드를 잡아주면서 아이들이 기타치는 손가락을 들여다보는 향미 눈...

노래 테잎을 개미갬이 틀면

노래에 맞춰서 향미가 먼저 통을 두드려 보고

노래에 맞는 박자를 먼저 보여주고

아이들이 한 소절씩 박자에 맞춰 통을 두드리고

북채를 들고 통을 두드리다가 싫증이 난 아이들은

"선생님, 이제 '만들기 수업'해요!"라고 하고

그러자 개구리송에 맞춰 진도를 나가던 향미는

색종이를 꺼내는 아이들에게

"그래라, 이쁘게 만들어서 창문에 붙이자"

그러고 말고

"나도 가끔 헷갈린다니까, 노래도 배우고 난타도 배우고

 기타도 배우고 그러다가 색종이 접기도 하고..."

나는 옆에서 낄낄 웃다가

"종합 엔터테인먼트구만, 멀티미디어 선물세트네"

그러면서 철푸덕 앉아서 색종이를 같이 만지고

은주 엄마가 창 밖에서 수업을 지켜보다가

저녁 먹으러 가자고 부르시고

나는 밥 얻어먹기가 어쩐지 죄송해서 좀 빼다가

결국 젤로 많이 챙겨먹어주시고

원주형은 저녁 먹으러 와서 '히야, 개밥 같지?' 이러면서 막 비벼서 우걱우걱 먹고

된장찌개와 상추와 어묵조림과 김치와 파절임과 미역줄기볶음에 나물까지...

눈물나게 맛있었다

 

어제 배운 노래 가사, 내 주제가 같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치인은 믿을 수 없는 것인가

1, 인천지역 사회단체 면담자선정에 대한것을 거부한다

2, 신현기 장례절차는 구청에서 시신처리를 하여 공동 장례를 거부, 지원도 못함.

3, 고소,고발에 대한 취소는 불가(주공)

4, 철대위 건물(철거민이 거주하는건물)을 철거는 불가피함(주공)

5, 철거과정의 피해보상 불가(주공)

6, 영구(국민)임대아파트 건립과 가수용단지 건립제공은 불가.

 

=이상 만수향촌 세입자의 요구사항이  구청과 주공이 거부한다는 공문(답신)이 송달되었습니다.

지난 4월 14일 남동구청이 구두로 약속한 내용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만수향촌 철거민은 이에 굴복하지않고 분노의 안고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고 더욱더 치열한 투쟁을 할것을 결의 하였습니다.

동지여러분 !

우리의 투쟁을 지켜봐 주십시요, 죽을순 있어도 물러설수 없다는 일념으로 투쟁을 하여 민중의 주거권을 꼭 쟁취 할것입니다.
  http://cafe.daum.net/hyangcheon (만수향촌 세입자 철거대책위원회 카페에서 퍼옴)

 

 

 

선거철!!!

그리고 며칠전 만수향촌 세입자 철거대책위원회로 편지가 한통 배달되었다. 위의 내용은 구청측의 답변이다. 상황이 더욱 어려워져 가고 있다. 그동안 구청과 주공측에서 이들에게 비공개 협상으로 마치 요구를 들어줄 것처럼 말 한 것은 다 무효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치인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인가

 

- 재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공부방 수업은 계속됩니다

철대위 사무실에서 박향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얼마 없으니 오늘은 그냥 쉬는게 좋지 않겠냐는... 순간 박향의 표정이 잠시 생각할 때의 그 깊은 골똘함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래도 갈 거라고 단호히 말한다. 철대위 사무실에서 난타 수업을 듣는 아이는 미래 하나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고 어린 미래는 감기기운으로 몸이 안 좋아 어른들을 따라 나설 수도 없었다. 사무실에 가니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이 몇 명이 보인다. 카메라로 찍으니 아이들이 난 찍으면 안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저 아이들이 같이 합류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난타수업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더 열중해 있다. 그 아이들은 난타 수업을 거부했다. 왜일까? 다른 선생님들의 학교 과목 공부방 수업에는 들어간다고 하는데 왜 난타수업은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해 보면 정말 재밌는데... 지식에 대한 추구 때문에? 몇 몇 어른들도 학교 수업 가르치는 공부방만 선호하신다던데 아직도 이 시대에 예술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길게 보면 학문의 추구가 예술과 거리가 멀지 않은데...


미래 혼자 난타수업을 할 뻔 했는데 금방 초등학생 다은이가 왔고 엄마 따라온 준하도 함께 난타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데로 숫자리듬을 배우고 올챙이송을 숫자리듬에 맞춰 따라했다. 다은이는 뭐든지 빨리 배우고 흡수한다. 뭐든 한 번 가르쳐 주면 척척 잘 한다. 다은이를 보면 얘는 커서 뭐든 저 하고 싶은 일은 다 잘 해낼 것 같아 흐뭇하다. 미래는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고 잘 따라하는 다은이언니 옆에서 약간 기가 죽었는지 열심히 따라하지만 곧잘 생각이 다른 곳으로 살짝 빠지는 것 같다. 어린 준하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조금 지나니 제 멋대로 춤을 추듯이 두들기고 다닌다. 그래도 선생님의 리듬에 맞춰 따라한 올챙이송은 훌륭하게 마무리 되었다.


난타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종이를 오려 공부방을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만드는 것을 참 좋아한다. 방금 전에 약간 기가 죽어 보이던 미래도 만들기에 푹 빠져서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준하는 언니들 따라 다니며 창문에 예쁜 꽃을 붙인다. 박향미 선생님도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동생들과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몇가지 추억을 들려 주신다. 그러다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나는 “네” 라는 답만 하고 머뭇거렸다. 선생님은 이내 창문에 붙여놓은 푸른 산 사이에 집을 붙이면서 “나는 동생들이랑 준하랑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한다. 준하 이모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맑은 공기다. “사실 산에서 살면 쌀만 있으면 먹는 건 대강 해결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WTO 쌀 개방이 생각났다. 그래. 그 나라에서 난 신토불이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 밖에서 농약 팍팍 쳐서 들여온 음식보다 좋은 건 비교할 것도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인데 우리에게 농약 팍팍 쳐서 들여온 외국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많은 사회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이 공해로 인해 선천적으로 면역력이 약해져서 태어나고 많은 아이들이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데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것들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 외국의 주류 음식 산업들의 공략은 간단하다. 처음엔 원조형식으로 나중엔 저가의 음식으로 밀가루며 햄버거 콜라 피자 같은 음식을 맛 보인 후 아이들 입맛이 거기에 맞춰지면 그 후엔 고가의 식품회사들이 공략할 수 있는 터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박향미 선생님의 공부방 수업이 끝난 후 최금례 선생님이 와서 만들기 수업을 했다. 그 사이 잠깐 철대위 어르신들이 준비해 주신 저녁식사를 하면서 노래패 왕언니의 아버님을 뵈었다. 많은 분들이 그 부녀가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하신다고들 하기에 은근슬쩍 말을 붙여본다. 사실 질문은 박향이 하고 나는 찍기만 했다. 노래패에 합류하시지 않으시겠냐는 박향의 제안에 왕언니 아버님은 선뜻 찬성표를 던지신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노래 하나는 자신있네” 하시면서... 정말 기대가 되는 노래패다.


최금례 선생님은 양말로 귀여운 뱀을 만들고 다은이는 귀여운 생쥐를 만든다. 미래는 철대위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긴 머릿결을 지닌 여자인형을 만든다. 최금례 선생님이 툭툭 던지는 말이 정말 재미있다. 나 같으면 애들이 뭘 해도 무조건 잘한다고 할 것 같은데 선생님의 조언은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말씀들이다. 만들기 수업이 끝나갈 무렵 철대위 어른 몇 분이 내려와서 선생님한테 ‘쇠’ 치는 법을 배운다.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땅도 내 땅이다.’ 풍물을 칠 때 박자 맞추는 말이다. 쇠를 치면서 어른들이 진지해 진다. 만들기를 마친 다은이가 어느새 어른들 사이에 끼어들어 쇠를 만진다. 그리고 어른들께 핀잔을 듣는다. 어른들 하는데 아이가 버릇없이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다은이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주저함이 별로 없다. 그래서 별로 공손해 보이지 않는가 보다. 내 스타일이긴 하지만... 좀금 뾰로통해진 다은이가 난타수업 때 사용한 스틱을 가지고 혼자 난타 북을 두들긴다. 정말 놀라운 것이 아까 박향미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런 다은이를 보며 또 다시 놀라워하고 오늘 수업 끝.

 

- 재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상영회

제가 그동안 너무 오래 한 눈을 팔았지요?

16명의 영상활동가, 독립영화감독들과 함께 했던 6개월간의 시간이

한 편의 영화로 태어나서 여러분 앞에 선을 보입니다

일단 이 영화를 W멤버들하고도 같이 보고 싶어요, 그런 다음에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작업을 힘차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오세요, 인천에서건 서울에서건 그 어디서건

과연 필름이 불타오를 만큼 열심히 만들었는지 확인해보시고

이야기도 많이 많이 나눠봅시다

 

- 나루('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전체 구성 및

           줄기세포 사건 관련 단편 '난자, 그를 말하다' 제작)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상영일정>

 

 

지역     일시              장소                          추진단위            비고
 
서울   5월 15일           미디액트                    불타는필름의연대기제작팀      
부산   5월 17일(5시)    부산대학교                 부산독립영화협회                 감독초청
원주   5월 18일           단체사무실                 좋은 다큐보기모임 나무         감독초청
인천   5월 19일           미정                          인천노동자영상패 씨             미정
진주   5월 23일           미정                          독립영상미디어센터 진주       감독 초청
부산   5월 24일(7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감독 초청
청주   5월 25일-26일    청주교대                    다큐펙토리                          감독초청
인천   5월 26일           미정                          인천노동자영상패 씨              미정
성남   5월 28일(3시)    성남시민회관(예정)      성남영상미디어공동체 늘봄    감독초청
서울   5월 31일           카페 빵                      한국독립영화협회                  감독초청

강릉   6월 10일 (예정)  자비원소극장              강릉씨네마떼끄                     미정
원주   6월 10일(예정)   미정                          원주민예총                           미정
창원   6월 10일 (예정)  미정                          시청자영상제작단                  미정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일정
 
서울  5월 26일  8시                             서울아트시네마   서울독립영화제    
대구  5월 14일, 5월 15일, 5월 18일 2시   동성아트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전  5월 18일 8시                                                      대전독립영화협회
청주  6월 1일 3시 30분, 6월 2일  8시 30분, 6월 3일  6시 30분    씨네오딧세이
대전  6월 3일 8시 30분, 6월 6일  6시 30분, 6월 7일  8시 30분     대전아트시네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동영상]그래도 그 사람들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성수 1지역 세입자 대책위원회에서...


푸른 오월.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지고를 반복해 지금은 그 두 번째 꽃이 만발했다가 하나둘 떨어졌을 것이다.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과 너른 바다를 바라보며 지는 석양을 아이들 손을 이끌고 나와 함께 느껴봤으면 좋으련만 지금 이 순간 서울 성수 1지역은 철거로 인해 세입자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매일 매일 여기저기서 쿵쿵 포크레인이 집을 뜯어내고 무너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지역 세입자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굉장히 싼 값으로 전세며 월세를 살고 있었다. 걔중에는 전세 이 삼천에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보증금 이 삼백에 매달 15만원씩 월세를 내며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독거노인들 외국인 노동자 가난한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길 곳 없어 전전하는 그런 곳이다. 이 지역은 현재 민간 기업에 의한 철거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보상 받을 길이 더 막막하다. 법으로야 저들이 하는 일은 저촉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이 곳의 주택들은 눈을 씻고 바라봐도 여느 시골 판잣집처럼 다 쓰러져 가는 집이 없다. 보기에도 튼튼한 벽돌집들이고 여기 저기 방범장치를 한 집들도 몇 채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종일 집에서 쿵쾅거리고 뛰어 다녀도 안심할 수 있어 보이는 집들이다. 이곳 주민들께 물어보니 지은 지 5년 10년 된 건물도 있다고 한다.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집들을 부수고 이 곳에는 고층 호화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아마도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몇 억은 있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끝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정부가 마땅히 보살펴 주어야 하는 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것도 해 주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가난한 사람들은 법조항에 약하다. 저들이 법을 들먹이면서 내쫓으면 쫓김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수중에 있는 이 삼백만원의 돈을 들고 가족을 이끌고 다른 달동네에 가서 살면 그 곳에서는 또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IT다 글로벌이다 텔레비전에서 기업경영 어쩌구 하는 것들은 이 사람들에겐 이미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많은 국민들이 이미 그런 경쟁사회에서 멀어져 하루하루 살기가 힘든 상황이다. 독거노인이 어디 가서 돈을 벌기도 힘들고 멀쩡한 젊은이도 요즘같은 때 어디 취직하기 쉽더냐. 아이를 많이 낳으라 하지만 아이 낳아 키우는 부부가 어디 취직하기가 또 쉬운가.


그래서 이 사람들은 여기서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이 사람들의 인권이고 이 사람들이 살수 있는 공간 주거권을 갖는 투쟁을 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주거권을 갖기 위해 힘 써주어야 하는 것은 마땅히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세입자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사람들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리고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다들 열심히다.


참 마음이 쓰린 것은 앞서 나가는 몇 몇 인물을 누군가 모함하고 매도하는 것이다. 항상 이런 일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이기에 그런 근거없는 말들을 그럴싸하게 꾸며서들 말을 하는 것일까. 누구 누구는 돈을 받아서 어디 유용한 것처럼 말하고 조금 앞서 나가는 어떤 엄마에게는 이름 뒤에 누구 년이라는 말을 붙여가면서 정숙치 못한 헤푼 여자처럼 매도하고 다닌다. 그 엄마가 쓰린 마음을 다스리며 지인에게 말한다. “이런 일 하면 남의 말로 만들어지는 애가 둘 셋은 된다는 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너무 심해요. 내가 세 살배기 아이를 떼어놓고 그래도 이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이렇게 나섰는데 내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내 앞에서 나를 불러다가 누구엄마야. 그러면 사람들이 이러저러하게 오해하지 않겠니. 조심해라. 라고 말해 주는 게 옳지 않을까요?” 잠시 후 “괜찮아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나마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내게 되어 여기서 살아온 것이 여한은 없다고들 하시고요. 제게 힘 되는 말씀들을 해 주세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고 살잖아요. 많은 분들이 이제는 쓰러져가는 집들 사이에서 만나면 서로 아는 체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정을 통할 수 있어서 행복하데요. 이 분들이 계셔서 저는 행복해요.” 라고 한다.



 

- 재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26]요며칠

4월 30일, 공연 마지막날

공연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할 때 간신히 도착

마지막 공연, 꼭 보고 싶었는데

7시인줄 알고 있다가 4시라는 걸 뒤늦게 알고(바보잖아!)

헐레벌떡 뛰어갔으나 상황 종료...할말없음...

뒤풀이 자리에서 주인공들의 지인을 많이 만났고

공연 내용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이어졌다

카메라 내려놓고 그냥

관객으로, 친구로 술 한잔 해야한다는 마음과

이런 이야기를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 직업병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던 밤

기획자 영택씨 집에서 새벽까지 떠들다가

5월 1일, 낮에 간신히 귀가

지하철 창 밖으로 봄이 익을대로 익어서

여름으로 달려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본다

 

5월 2일,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 제출할 단편을 완성 (동영상-난자, 그를 말하다)

5월 3일, 대추리에서 충격적인 문자가 왔고 (관련기사 클릭-참세상1)

            국방부 앞에서 군부대 투입을 저지하려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관련-참세상2)

5월 4일, 평택에 기어이 군부대가 투입되었고  (관련글 - 참세상3 )

5월 5일, 연대하러온 시민, 학생들이 토끼몰이를 당했다 (관련글-참세상4)

5월 6일, 군인 경찰의 피해사실만 부각한 언론들 (관련글-일단 두 놈)

 

그리고

5월 7일...W 촬영테잎을 보고 싶다, 편집하고 싶다

평택에 가고 집회에 참여하고 관련 동영상을 만들거나 글쓰는 일을 해야하고 할 수 있는데

프로젝트 후반작업과 맞물려서 W에 대한 작업이 계속 미뤄지는 상황

그래서 또 갈등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대추리, 군부대 투입 임박

*관련글들 제목 클릭!

 

긴급호소, 새벽의 침탈이 예상됩니다

 

긴급 촛불집회

 

 

*사이버 시위를 위한 게시판들

 

국방부 게시판

청와대 자유게시판

국무총리실 자유게시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죽은 자 무슨 심정으로 세상을 버린 것이냐

 

인천 만수동 향촌마을이 환경개선지구로 명명되어지고 그곳에 기거하던 세입자들은 갈 곳이 없어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투쟁할 것을 결의했고 그 사람들 중엔 연세 일흔이 넘고 여든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아직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 죽은 자 신현기씨도 있었다.


신현기씨의 나이 쉰.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버린 신현기씨에게 가족이 생긴 때는 그 사람 열한살 무렵이었다. 부모님이 생기고 형이 생겨서 한 때 마음 의지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 사람에게 자립의지를 심어주겠다고 호적을 따로 떼어 주셨다. 그래서 신현기씨에겐 법에서 정한 문서에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평소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돈벌이를 한 신현기씨는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었다. 수더분하고 내성적이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빈민이었다.


지난 3월 13일 향촌에서 철거가 시작되고 다음날 14일 신현기씨는 자신의 키보다 낮은 천장 높이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한다. 사인은 자살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법률상 무연고자인 그 사람의 시신은 그 사람을 알던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한 채 장례절차도 밟지 못하고 땅속에 매장된다. 그 사람이 세상 버린지 며칠 후 향촌에 갔을 때 사람들은 나도 죽을란다는 말들을 했다. 그 사람의 죽음을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지난 4월 29일 故 신현기 열사 49제 영가 천도제를 정암스님을 모시고 봉행했다. 불가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49일 동안 그 영혼이 이승을 떠돌며 자기가 지냈던 곳을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49제를 통해 그 영혼을 영혼들의 세계로 인도해 주게 된다. 


천도제를 지내던 그곳 향촌에서는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 계속 들려졌다. 채워진 방문안에서 화재로 죽어간 어린이들의 노래같은 그런 핏빛 고통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사람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아니었을까.

- 재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월 29일 토요일 당신을 초대합니다

인천 만수동 향촌마을에서...

오후 1시에..

철거촌 투쟁중 돌아가신 신현기씨의 49제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고인은 현재 인천의 어느 공동묘지에 안치되어 계십니다. 고인이 돌아가셨을 때 많은 의혹을 안고 가셨지만 국과수에서는 고인이 자살한 것으로 판명하였습니다. 고인이 돌아가신 것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것이 중요하겠습니까? 이 사회가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남아있는 철거촌 동지들은 아직도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고인을 기억할 것입니다. 긴 인생중 짧게나마 함께 한솥밥을 먹었고 국가에서 내몰아간 자신의 보금자리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순간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남아있는 철거촌 동지들은 1퍼센트의 희망을 가지고 아직 이 질긴 목숨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가시는 길이나마 평안하소서.

 

 

향촌마을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송내역 하차 만수시장가는 버스 타시고 만수시장역에 내려

시장안으로 쭉 들어가시면 철거촌이 보입니다.

철거촌 입구에 바리케이트로 꽁꽁 싸맨 건물 한 채가 보입니다.

이곳이 철거촌 동지들의 공간입니다.

 

- 재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희망의 노래- 꽃다지>에 대해

 http://www.hopesong.com/ 에서 발췌

 


박향미가 활동했던 노래패 <희망의 노래, 꽃다지>



1. 꽃다지가 태어나기까지 (88년부터 92년까지)

 

  87년 7,8,9월 전국을 뒤흔든 역사적인 노동자들의 함성으로 운동의 중심축이 학생과 지식인에서 노동자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부를 자신들의 노래를 원했다. 이 때 노동자노래단(이하 노노단)과 삶의 노래 예울림(이하 예울림)이라는 두 단체가 노동자들의 시각에서 노래를 창작하고 보급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2. 꽃다지 창립! (꽃다지 원년 1992년)

 

  노노단과 예울림 두 단체는 <희망의 노래 꽃다지>라는 이름으로 통합, 창립 후  92년 8월초 <민들레처럼><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고귀한 생명의 손기로><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 등이 수록된 1집 음반(비합법)을 제작하고, 9월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좌표 1992"라는 제목으로 올리게 되었다.



 

3. 시련의 고개를 넘어 (92년 대선부터 93년까지)

 

  92년 겨울, 대선 후의 패배감과 조직의 분열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동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에 대한 반성,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심정을 노래로 만들어 비합법 2집을 준비했다. <전화카드 한 장><바위처럼><창살 아래 사랑아><통일이 그리워><꽃다지3> 등이 수록. 93년 9월에 음반발매기념공연 "동지"를 올렸다. 이때까지도 공연의 형식은 대형무대에서의 집체극 형식.


4. 노동가요의 지평을 넓히며 (93년 가을부터 94년 봄까지)

 

  노동가요로는 최초의 합법음반 제작을 시도했다. 설문을 통해 15곡 가량을 심의에 넣었는데, 공윤은 <고귀한 생명의 손길로>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가사 내용을 문제삼아 반려처리를 해버렸다.이런 과정 중에 사단법인화된 민예총의 세종문화회관 입성투쟁의 성공과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 등이 같이 이루어지면서 공윤은 끝내 모든 노래를 한 글자의 수정도 없이 모두 통과시켰고, 94년 5월 31일 시청앞 마당세실극장에서 합법음반 발매기념콘서트 "민들레처럼'을 올리면서 문화관련 제도개선투쟁은 1단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5. 창작의 어려움에 봉착하다.(94년 가을에서 95년까지)

 

  94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판굿 꽃다지 공연과 95년 3월 연대노천극장의 노래판굿 꽃다지 재공연, 그리고 95년 4월 말 노동가요 공식음반 발매와 민주노총 출범을 기념하는 꽃다지 콘서트 "한 걸음씩"을 하면서 박향미, 윤미진, 김미정 등이 결합하게 되었다. 꽃다지는 창작의 문제가 엄청난 질곡이었다. 그간의 꽃다지 음악을 정리하고 또 재평가하고 새로운 음악장르에 대한 연구도 하면서 공동작업을 1년간 진행, 그 성과로 95년 12월 신촌 창무포스트 극장에서 17일간의 장기공연을 올렸다.

 

6. 누가 뭐래도 (96년)

 

96년부터 솔로가수도 배출하고 총괄 관리하는 구조로써의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 그러나  96년 사업의 세부계획이 수립되기도 전에 대표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민중가요 노래책에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를 수록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사장과 꽃다지 대표를 구속한 것. 탑골 공원 앞에서 50일간 "국가보안법 철폐! 구속문화예술인 석방! 완전한 예술창작표현의 자유 쟁취!" 라는 구호를 내걸고 선전공연을 했고, 밤에는 민예총 사무실에서 농성을 했다. 그 결과 대표는 50일만에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7.우리는 지금보다 강하게 (97년부터 지금까지)

 

97년의 노동법 개정을 위한 총파업을 발로 뛰어다니며 시작. 3년만에 2집 음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발매하고, 음반발매기념 콘서트를 하였습니다. 노동가요계 최초의 싱글음반 "세상을 바꾸자"룰 제작하고 또 대선투쟁에 결합했다. 98년 11월에 새로운 체계로 정리. 가창팀, 연주팀, 기획실로 구성되었던 팀체계와 대표제와 직급제를 폐지하고 업무담당체계로 바꾸고 9명이 남았다. 99년 가을, 합법3집음반 "진주"를 발매. 이후 꽃다지 역사상 가장 단촐한 식구들이 남았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지속적인 음악작업을 한 결과, 2000년 가을에 두번째 싱글인 통일테마음반 "오라"를, 2001년 봄에는 세번째 싱글음반 "반격"을 발표했다. 지금 이들은 세 명의 기획자와 네 명의 가수가 새로운 꽃다지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