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리영희

2010/06/07 02:57

 

 

 

 

 

1. 방자전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영화를 보러 신림역에 나갔다.

 

 그냥 가볍게 보기에는 방자전이라는 영화가 좋다는 추천이 있어서 그걸봤다.

 

 ('유령작가'에도 약간 마음이 끌렸지만)

 

 

 이 영화보면서 여배우들은 참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염한 베드신을 연출하기 위해서 꼭 저렇게 적나라하게 신체를 노출해야 하나 싶었다.

 

 베드신도 베드신 나름이라는 생각이들었다.

 

 배우간의 호흡이나 감정전달보다는 배우의 신체만 주욱 흝어내리는 그거 좀 불편하다.

 

 그냥 한번보기에 부담없는 영화였다.

 

 자기희생적인 순수한 순정남들이보면 큰 공감을 할 영화였다.

 

 

 2. 고집센 리영희

 

 나는 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사실 리영희선생이 큰 영향을 끼치던 훨씬 이후에

 

 20대를 보냈다.

 

 리영희 선생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지해서, 그냥 옛날에 시국선언하고 운동좀 하시던

 

 나이든  언론인 출신 교수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김산의 '아리랑'  의 서문에 리영희 선생이 '7년간의 소모적인 군대 복역을

 

 강요당하고 나와서 방황할때 아리랑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라는 소개글을

 

 써놓으신것을 보고서 어떤 일생을 살아온 사람인지 그 인물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었다.

 

 

 그날이오면 에서 잠안올때 보기위해 리영희 의 '대화' 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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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전, 한국전쟁전에 이미 젊음을 겪으신 분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당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90%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독립운동가는 안창호, 안중근, 김구 요 세사람만이 대표격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다.

 

 우파적 지식인의 대다수는 일정말기에 변절을 했고 사실상 좌파들만 실제적인

 

 독립운동가로 남았다.  그리고 그들은 월북해서 출세한 사람들도 있지만 북한에서도

 

 많은 이들이 정쟁에 휘말려 김일성에게 축출되었고 남한에 남은 사람들은 변절하지

 

 않은이상 굉장히 힘들게 옥살이를하거나 하며 살다가 비참하게 돌아가신분들이 대부분

 

 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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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후부터 한국전쟁전까지, 정말 우리나라는 개판중에서도 상개판의 상황이었다고

 

 리 선생은 말한다.  이승만은 자주적인 국가관은 눈꼽만큼도 없었고 기회주의자에

 

 일제출신 부정부패 관리들 대다수가 남한사회를 장악하고 있고 민중들은 밥한술

 

 구하기 힘들어하며 들끓는 이와 벼룩속에서 살았다.

 

 

 아는 얘기인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직접 말해주니 더 실감이 나는 부분이다.

 

 그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조금 써보자면

 

 1) 리 선생의 가족이야기

 

  리 선생은 고향이 평양이다. 그러나 중학교부터 경성에서 다니고 해서 평양에서

 

  보낸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평범한 관리였고 어머니는 대지주집안 딸이었는데, 돈과

 

  신분이라는 것을 맞바꾸는식으로 정략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선생이 생각하기에도 별로 존경할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묘사한다.

 

 (할아버지가 자기부모를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 신선했다.)

 

  리 선생의 대지주였던 외가 집안은 선생이 태어날때쯤 몰랐했는데 그 이유는

 

 '충직한 머슴'  이 독립운동군이 되어서 운동자금을 내놓으라고 선생의 외할아버지

 

 와 다투다가 할아버지를 총으로 쏘아죽인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생의 외삼촌은 한술 더떠서 동경유학후 빨간물 들은 지식인이 되어 돌아와서

 

 사회주의의 무상분배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고 집안의 재산을 주변의 소작인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 선생님은 결과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면서 열심히 공부만하는

 

 '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학생이어서 열심히 공부만 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때에는  중학생이면 ' 굉장한 지식인' 으로 대접받아서

 

 (워낙 학생이 소수다보니) 정세에도 민감하고 모여서 집회나 토론을 하는것도 빈번

 

 했는데 리선생은 그런것에도 별로 적극적인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경성에 유학하며 주린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방이 너무 춥고 비위생적

 

 이어서 이와 빈대를 때려잡느라고 잠을 도저히 잘수 없었다고 한다.  학생이면 대단히

 

 존중받는 계층이었지만, 그래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살았다는 거다.

 

 

 재밌는 부분은,  평양에는 이미 상업이 발달하여 있었기 때문에 남한같은 반상의 뿌리

 

 깊은 유교적인 계급문화가 별로 드세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남녀 평등하여 남자들이

 

 부엌일을 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일이 아니었고 (그래봤자 얼마나 했겠냐만) 육체노동

 

 을 하는이들을 당연히 천시하는 풍조도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해방후 인민위원회들이 행정적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을수

 

 있었던 하나의 요소가 아닌가 하고 얘기하고 있따.

 

 

 전쟁에서 강제로 7년이나 통역장교로 복무한후,  지식인으로서 활동가로서 크게 눈떠

 

 가던 시절 합동통신사에 근무하게 됬는데,  이때 결혼을 했다 , 그런데 리 선생은 별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 내가 운동가이니까 가족을 꾸릴처지가 안되서'

 

 라기보다는 ' 두 사람이 만나서 마음으로 합일을 이루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자신에게

 

 는 불가능할것 같아서'  였다고 한다.  그 세대이면 좌우파 막론하고 그냥 결혼해서자식

 

 낳는것을 당연하게 여겼을텐데 나름대로 그런 회의가 있었나보다. 그러나 어쨌든 결혼

 

 을했고, 평생동안 부인이 리선생때문에 고생하며 세 자녀를 키운것은 다른 활동가들과

 

 별로 다를바는 없다.  근데 늙어서는 생각보다 부인과 자식들에게 큰 미안함을 가지고

 

 계신지 자식들과 부인에게 ' 죄송하다' 는 표현이 책에 많이 보였다. 뭐 말이야 누군들

 

 못하겠냐만, 그 나이세대는 운동가들이 가족이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평생 당연히

 

 여기지 않았을까 싶은 점에서 조금 신선했다.  박정희 정권때 투옥되어, 군대간 장남에게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써달라'  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  솔직히 엄격하고

 

 밖의 일만 하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다' 라는 아들의 답장을 받고 많이 울었다고

 

 써있다.  (부인은 천상 꼿꼿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인거 같은데, 나이들어서 리 선생이

 

 가정적이 되어서평생 가정을 돌보지 못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손가락만큼은

 

풀렸다고 한다.)

 

 

 자녀중에 딸한명만이 아버지의 길을 따라 격한 노동운동가로 12년정도를 살았다는데

 

 지금은 거의 중년일텐데 뭘하고 살고 계신지 모르겠다.  조금 궁금했다. 

 

 

2) 운동하는 학자로서 리 선생

 

  형식적인 의미로 논문을 한편도 쓴적이 없다고 한다.  대학졸업장외에는 학위도 없다고

 

  한다.  물론 그 세대에 그런 교수가 없는건 아니지만, 형식적인 논문쓰는데 시간 허비하고

 

 싶지 않고 그 시간에 현실적으로 정세를 분석해서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

 

 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연구를 할때 각주를 많이 다는 형식의 논문을 쓰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는

 

 데, 자신이 쓴글의 대부분이 인용인 글보다 자신은 철저하게 본인이 직접 1차적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자기것으로 소화하여 자기 사상으로 소화하는 글을 쓰고자했기 때문에

 

 자신의 글에는 각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건 공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말도안된

 

 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인용의 출처를 밝히는 유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발표

 

 된 학자들의 문헌과 연구에만 의존하여 그것을 변형하고 분석하는 형태의 논문만을 쓰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인것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다른사람의 프리즘을 한번 거쳐 나온것

 

으로만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는 학자들의 속성을 비판한것 같다.

 

이건 내가 공부해보지 않은 입장이라 옳은 의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의도로

 

저런 지적을 한것인지 봐야할 것 같다.

 

 

 

60-70 년대에 사회주의와 대미관계, 북한, 중국들에 대해서 대단히 왜곡된 시선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대중이었고 실제로 학자들도 별로 그것에 관해서 많이 연구하는 바가 없었는데

 

 자신이 세계적으로 비밀정보 자료들을 발로 뛰어다니며 수집하여 그것을 기초하여 글들을

 

 썼는데, 그것들은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음을 토로한다.  학자의 의견을 거치기보다는 현실

 

 자료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객관적 분석의 틀을 만들려고 무던히 애를 쓴결과 나온책들중

 

 대표작이 ' 전환시대의 논리'  ' 8억인과의 대화' 인데  전환시대의 논리야  이미 유명한저서

 

 이고, 8억인과의 대화도 중공을 분석한 글인데 지금봐도 흥미로울것 같았다. 

 

 

 3) 엄격한 생활자세, 따지는 피곤한 습관의 리영희

 

 

   리 선생은 술은 사실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는데, 담배는 흡연욕구에 얽매이는 것이

 

 스스로를 옥죄고 한심하게 만들것 같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피우

 

  게 됬다는;) 포커나 오락등 잡기는 하나도 할줄 모르는데 그 이유는 그런것에 시간

 

 낭비하는 것이 아깝기에 중요한 일에 시간을 집중하고 싶고,  다만 악기하나 다룰줄

 

 아는 것이 꿈인데 배울시간이 없어서 늙어버린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도

 

 별로 좋지 않아서 게임을 하면 자꾸 질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등소평이

 

 브릿지 게임의 명수였다고 하는데,  그것도 리선생이 등소평을 좋지 않게 본 이유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남들은 혁명하느라 고생하는데 외국에 유학가서 그런거나 배워왔다고.

 

 그리고 등소평이 정쟁에서 항상 가라앉았다가도 부활하여 자신의 권력을 장악하는

 

능력이 너무뛰어난 처신도 처세술이 별로 없이 고집만 센 자신과는 너무 판이하여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리 선생은 한가지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 끝까지

 

 파고들어 따지고 들어서 주위사람을 약간 피곤하게 하는 성격이라고 대담자인 임헌영

 

 이 얘기하는데, 리 선생은 그런 평가에 민망해 하면서도 자신은 그럴수밖에 없는

 

성격이라고 답한다.   나처럼  정말 재미없고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 이런 사람도 존재의의가 있어, 하면서 공감했다.

 

 

 그밖에 리영희라는 분에 대하여 재밌는 부분도 많고, 인물적인 요소말고도 이승만시대

 

 박정희시대에 대한 분석과 진술 평가가 새로운 부분도 있고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지만

 

 지금은 바빠서 그냥 생략한다.

 

 

 **************************************************************************************

 

 인물 평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숭배하는 경향을 앞세우기 쉽기 때문에

 

 나는 인물 평전에 너무 큰 관심을 갖는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냥 요즘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복잡한 글은 읽기 쉽지 않고, 나름대로 일생을 열심히 의미있게

 

 살아온 사람에 관해서 읽으면 나 스스로도 힘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인물

 

 평전을 가끔 읽는다. 

 

 

 한때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평전이 유행해서 마오쩌둥, 체게바라, 김산, 로자 룩셈

 

 부르크 평전등이 화제가 되고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읽는 자신에

 

 대해서도 비판과 점검의 날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런 행위들은 그냥 ' 유명하고

 

 뛰어난 지도자들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한 숭배차원'  에서 끝날것이다. 막말로

 

 체게바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디 체게바라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는사람들이 다수인가.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큰 관심도 없으면서.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소위 혁명가들의 평전을 읽는 나를 경계한다.

 

 유명한 ' 누구누구' 말씀은 이런데.... 하는 인용의 말을 자주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중적인 인기있는 지식인만

 

 살아있고 그들에 의해서 원동력을 얻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아니면

 

 얘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도 문제가 있다.

 

 

 리영희라는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들여다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지만,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누구 에 관한 상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활동

 

 을했다가는 지금 이런 현실에서 좌절하고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서 쉽게 포기해버리기

 

 쉽상일 테니까.  난 이렇게 지질라게 평범한데.

 

 하지만 ' 대화' 라는 책을 읽는 것은 참 즐거웠고, 요 몇달간 내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큰 위안과 자극을 받았다. 외롭지 않을수도 있다는 안도감과 든든

 

 함이랄까.

 

 

 리 선생이 지금은 많이 노령이어서 가끔 발언을 하시는 것외에 글도 쓰지 않고 개인적

 

 삶을 살고 계신것으로 아는데,  황석영, 김지하처럼 격동의 80년대가

 

 지난후에 뻘소리를 하는 그런 발언을 안하시는 것도  끝까지 정세에 대해서 객관적

 

 위치를 유지하려는 사고의 습관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든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시대보다 좋아지고, 자신이 염원하던 부분이 이루어진다면 냉철함을 잃기

 

쉬운것이아닌가. 

 

 사실 리 선생이 자신이 사상적으로 지도자격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인정하고 있고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에 도취되지 않고 그냥 할일을

 

 하면서 자신을 우상화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점때문에, [위에 열거한

 

 내가 재밌다고 한 부분들이 재밌게 느껴질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의 업적에 도취되어 '투옥한 경험, 가난하고 힘든

 

 운동가의 삶, 지도자격 입장에서 후진들에 둘러싸여 그 인맥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자신의 영향력과 인맥을 확인하는 형식' 으로 '대화' 라는 책이 쓰여져있었다면

 

 뭐랄까 참 식상하고 흥미가 안갔을것이다.

 

 그런점에서 리선생님이 동구권 사회주의에 대한 분석이

 

 나 그 분이 그리는 사회적 이상향이 내가 생각

 

 하는 것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지만, 그것과는 크게 상관없이 말년에 크게 이상해

 

 지지 않았다는 점만해도 그 분을 좋게 평가한다.  살아온 삶에서 배울것이 많은 분이라는

 

 점에서 아주 즐거운 자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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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스밀라 2010/06/08 09:48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대화 읽어보고 싶어요. 지금 저도 집중이 많이 필요한 책을 읽을 처지가 아니라서...

    perm. |  mod/del. |  reply.
    • 오징어땅콩 2010/06/11 00:00

      예. 사실은 아주 술술 읽히는 책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약간 과거의 비화를 보는 흥미가 느껴져서 즐거워요.

  2. 이니스 2010/06/08 13:11

    이름만 들어봤지 흥미는 없었는데... 저도 [대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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