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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적 협동과 조화로운 유연성 속에 희망이 있다

지식, 경험은 나누는 것이다

예로부터 그래왔다 가진 자가 그러지 못한 자 아니 전체를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서양에서 흔히들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거 별거있나? 이게 바로 그거지!! 나누는 대신 존경과 권위라는 명예를 갖게 되는 것 그러나 요즘 자본주의체제를 도입한 지금의 현대 사회는 어떤가? 배타적으로 독점하고서 그것을 자신의 출세수단이자 부를 거머지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나? 그래놓고 그들끼리 조직화 해서 법이라는 이름을 빌려 철저하게 기득권을 확대재생산시키려고만 드니........과연 이런 사회에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살맛을 느낄까??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밟히지 않기 위해 죽자살자 그들의 블럭 안에 편입되기 위해 오늘날 망국적인 사교육열풍이 불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뒤틀어지니....이러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설령 느끼더라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회. 그 사회는 죽은 사회가 아니라고 누가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누구나 똑같이 사회적 가치 있는 노동을 하며 교양과 지식을 쌓아 사회 전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는 삶, 그런 사회? 과연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걸까????

 

 

자본이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그렇게 좋던 사람 사이가 돈 때문에 많이 깨지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가고, 돈이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없어지는 형국이 되고 있다. 강제로 퍼다 주거나 빼앗지는 않지만 현실 사회가 꼭 그렇게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자본이 인류에게 그 모든 것이요, 만사가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물론이고 어린 초등학생들도 이미 물들어 있다. 많은 대학이 철학을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꾼 지는 이미 오래다. 대학생들에게 쓸데 있는 것은 정신이나 도덕이 아니라 오직 경쟁력 있는 경제력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이 사람을 주물러대고, 돈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회에 희망이 있겠는가? 오순도순 오붓하게 살아가는 열 사람 보다 혼자서 한 사람만 앞서 나가는 그 사회에 진정 희망이 있겠는가? 보통 사람 열 사람이 아닌 똑똑한 지도자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사회에 진정 희망이 있겠는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일등이 되기 위해 미쳐 있는 사회에 진정 희망이 있겠는가? 경제적 가치만을 우선시할 뿐 생명이나 환경 따위는 뒷전인 사회에 진정 희망이 있겠는가?

희망, 그 자체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어떤 희망을 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희망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면 그야말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인간의 삶을 황폐케 하는 것이면 그것이야말로 없애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가 그렇다면 어떤 희망을 품고 나아가야 할지,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우리 시대 여덟 명의 영적 스승들이 들려주는 <희망의 숲>(김성수 외· 예담)은 그래서 소중한 책이다.

"세상은 힘센 사람들이 앞에서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힘없고 가녀린 사람들이 손을 맞잡아 옳은 길로 밀고 가는 힘이 더욱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스승들이 민초들과 직접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일은 시민교육의 첫걸음일 수밖에 없다." (머리말에서)

그렇다. 이 책은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 했던 강의들을 한데 묶어 종이에 옮긴 것이다. 시민교육의 장을 지면에 옮긴 것에 불과하지만, 책에 쓰인 내용들은 결코 그 테두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학습장을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이 시대 모든 시민들을 위한 지침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 시민들이 어떤 사회를 그리며 나아가야 할지,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주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토록 해 주는 책이다.

그 속에서도 가장 중심을 잡고 있는 초점은 바로 '더불어 숲'을 이루며 사는 일에 맞춰 있다. 이를 위해 각 연사들이 나서 하나하나 연설을 해 나가고 있는데, 모든 나무들이 곧게만 자라지 않고 옆의 나무와 서로 기대며 자라듯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시민시회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옆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시민, 이른바 열린 마음을 갖고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것은 곧 많이 가진 자이든 적게 가진 자이든, 한국 노동자이든 외국인 노동자이든, 모든 사람이 하늘 아래 평등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사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온 몸에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지만 신념과 신앙으로 절망을 이겨낸, 두밀리 자연학교 교장인 채규철 씨는 인간에게는 적어도 네 가지 평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 하나는 시간이고, 둘은 죽음이고, 셋은 책이고, 그리고 넷은 친구라는 것이다. 시간 앞에 평등하고, 죽음 앞에 모두 평등하며, 책 앞에 노숙자나 대통령도 다름없이 평등하며, 그리고 어떤 친구를 사귈지도 평등한 권리라는 것이다.

물론 그 평등의 요소들을 어떻게 키우고 가꿀지, 그것은 철저히 자기 몫일 수밖에 없다. 누구도 대신하여 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다 같이 남길 수 있는 것 하나가 있다고 한다. 바로 그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름답고 멋진, 보람 있는 이야기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신념으로 이겨낸, 겨울을 견디는 나무 같은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몸으로 써내려가야 할 몫이다."(53쪽)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이건용 씨도 "작곡하고 연주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으로 많은 돈을 벌거나, 그것으로 더 많은 인기를 유지하고 확보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란다. 그가 곡을 쓰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오로지 청중들, 다시 말해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민중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용 씨처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자기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며 섬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진정 알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은 내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고 우주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세상이 진정 살맛나는 세상이 되고, 그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희망의 삶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외형적 소유의 양이나 거창하고 화려한 것에서 기쁨을 찾기보다는 내면적 체험의 깊이를 추구하며 공동체적 협동과 조화로운 유연성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살맛나는 세상이고 바로 서는 세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살림과 나눔의 생활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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