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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놈이 일요일 고려대학교를 갔다왔다. 녀석은 웅장한 건물에 감탄하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에 무척 감동받은 모양이다. 아들의 기행담에 대고 기말고사 기간이니 당연히 놀던 친구들도 요즘은 공부를 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고, 웅장한 건물은 사학이 벌려낸 빚잔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핀잔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내 눈초리가 무서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침묵의 방조도 잠시, 어른들 있는 자리에서 끝내 입방정을 떨고 말았다. 대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참 다행이라는 감탄사에 대고 데모안하고 취직에 매달려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 놈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면박을 주고는 우리 때는 데모 열심히 하고 덕분에 취직도 잘되었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사실 요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대학생을 보면 우리 때(80년대)와 비교해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고시바람이 대학에 분지 오래인데, 가장 비창조적인 고시공부에 매달리면서 자기 두뇌를 낭비하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는 불행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다름 아닌, 노동비용을 줄여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극심한 횡포가 수년간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대학이 권력과 자본에 대한 저항의 중심에서 대중문화의 소비지로 급변하면서 사회전체적으로 자본우위의 역관계가 지속되었기에 예비노동자인 대학생이 고달파 진 것이다.
80년대말 노학연대라 불렸던 자본에 대항한 저항전선의 확대는 남한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일련의 사태가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소위 순순환(順循環)의 형태를 띠게 하였다. 자본은 위축되었고 노동자의 임금인상요구에 양보가 불가피했다. 임금이 오르면서 내수가 확장되고, 기술개발과 마케팅 강화 필요성도 높아지면서 고학력 인력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높아졌다. 완만한 인플레와 높은 경제성장율이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자들의 자기실현에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했던 것이다. 한 예로 그 유명한 건대사태로 수백명의 대학생이 까막생활을 하면서 정부미를 몇 개월씩 먹었지만 대부분 대기업에 취직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일자리는 풍부했다.
지금 대학이 대중문화의 중요한 소비지가 되고 대학이 이른바 한국 IT산업의 리트머스 시장이 된지 오래다. 대학축제 때 대중가수가 공연을 하고, 여성댄스그룹이 공연을 할 때 관객석의 반응은 전방위문공연과 흡사하다. 81년도에 서울대에서 어용 학도호국단(전두환이 학생회를 못 만들게 하려고 만든 단체)이 주최한 쌍쌍파티에 초대받은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던 조용필이 발칙한 대학생들의 협박에 오금이 저려 오지 못하고 나중에는 무대를 완전히 박살냈던 폭력적인 일부 대학생들은 강제징집 당했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T.V로 생중계되던 고연전 농구경기에서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놈들 물러가라”는 플랭카드를 펼친 용공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들이 육박전을 버려, 경기중이던 운동선수들이 졸지에 관객이 되었던 이야기(무엇보다도 싸움구경이 최고인지라!)는 신화 수준이다.
21세기 대학생들은 예비노예로 전락하였다.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노예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요즘 대학생은 머리가 텅 비었다. 대학교 앞에 있던 사회과학 서점은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80년대에 박불똥이라는 민중화가가 그린 네컷짜리 만평에 보면 공부를 조금한 학생은 돈을 전망하고, 조금 더한 학생은 고시합격을, 그리고 그것보다도 조금 더 한 학생은 교수를, 그리고 왕창 공부한 학생은 수갑을 전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삶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 가는 기회가 박탈당한 지식인들이 의존할 것은 오로지 책뿐이다. 그런데 독서량이 적으니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창출할 능력, 자신들의 담론을 만들어낼 능력, 사회적 의제를 제시할 능력을 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문화와 이것과 결합한 대중소비, 그리고 취업난에 의해 대학에서는 지금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 대학은 상속재벌과 결탁해 교육재벌로 성장하고 있는 사학에 의해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수탈하는 곳,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곳, 산업예비군을 양성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를 타개하지 않고서는 황폐한 대학이 살아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지금 대학생들이 고된 취업준비와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대중행동이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무상교육을 요구하고, 자본의 무차별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규탄하며 나아가 우리사회의 운영원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동력, 아카데미 군단이 되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87년 이후 몇 년 동안 보여주었던 선순환의 시기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다. 자본의 양보를 기대하기 어렵고,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이를 조만간 극복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선순환을 일으키는 자본주의에 대한 어설픈 기대보다도 차라리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대학은 이제 수년간, 저항의 부재로부터 초래된 고통을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전초기지, 사회주의자들을 양성하는 정치학교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대학이 지성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가 꿈틀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역사와 계급, 그리고 인간의 해방을 고민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역사적 공간으로 대학이 바로 서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학생의 멋은 청춘의 빛나는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지성에 있다. 그리고 그 지성이 세상의 칭송을 받는 방법은 행동에 있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 세상을 구하는 일은 대학생들의 책꽂이에서 맑스와 엥겔스, 레닌과 트로츠키 눈빛과 마주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질 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동감. 그런데 그게 어디 대학만의 문제일까요 하긴 때가 덜 낀 젊은 대학생들마저? 그런거라면...뭐 그런거라면 고딩에게나 기대 걸어보죠? 요즘 두발자유화 등 의식있는학생들 많던데 하긴 10대들....소비의 주체이긴 하다.. 텅 빈 호구들....쩝...암튼 자본주의 이거 한번은 죽어야할텐데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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