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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 문제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보다 크게 볼 순 없을까요?
얼마 안되는 몇푼의 이익에 눈이 멀어 버린다면 그거 얼마나 서글픈 현실입니까??
우리는 지금 정규직 비정규직 가지고 싸울 계제가 아닙니다. 생태 환경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연일 기상이변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재산상의 손실을 보고 있을 뿐만아니라 소중한 생명마저 앗아감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푼?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 얼마나됩니까? 그만큼 제가 보전해줄까요? 제가받는 조금의 월급으로 그게 가능할지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어쨋거나 단 한푼을 벌더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할줄 아는 넓고 깊은 마음을 가졌음 합니다. 우리가 버는 한푼은 우리 기업들이 갈취한 세계 여러 나라의 자연자원을 값싸게 들여오는 대신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오갈데 없음은 물론 굶어죽기 까지하는 현지 주민들이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결코 값싸지 않은 소중한 자원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이웃과 대자연의 희생을 바탕으로 누리는 현실 세계에서의 만족(더러 불만족스럽더라도)스런 욕구를 충족 시킨다면 일말의 죄의식이나마 가져야하는거 아닌가요 그런걸 가진다면 실천 실천을 해야겠죠 함부로 낭비하지 않겠다거나 조금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살겠다 라는??
비정규직 현상 뒤에 숨은 냉혹한 얼굴(자본)은 웃고 있지만, 점차 타락하고 있다. 흡혈귀처럼 살아 있는 노동을 흡수할수록 더 활기를 띠는 게 자본의 혼이다. 어떤 집단적 조직도 없고 오직 개별 노동자로서 시장에서 거대한 자본과 대면해야 하는 비정규직은 최대치까지 착취가 가능하다. 그래서 자본은 “비정규직 확산이 관철되지 않으면 설비투자도 않고 고용도 늘리지 않겠다”며 ‘자본 파업’으로 국가를 위협하고 있다. 어느 기업이 비정규직을 더 많이 사용해 더 싼 가격으로 시장에 상품을 내놓을 경우 경쟁기업은 더 많은 비정규직을 써야 승리할 수 있다. 자본 분파들이 기술은 뒷전이고 오직 ‘인건비 따먹기’로 이윤축적 경쟁에 돌입해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 테일러는 바닥에서 나사를 집어들어 기계에 끼우는 노동자 동작을 스톱워치로 0.01초 단위까지 세밀하게 분석하고, “네가 저 무거운 철강을 들어올리면 다른 노동자보다 몇푼 더 주겠다”고 꾀어 노동자 체력의 극단까지 알아낸 뒤 이를 모든 노동자들에게 평균 과업으로 부과했다. ‘과학적 관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테일러주의는 노동 착취를 강화한 ‘유혈적’ 테일러리즘이었지만, 오늘날 자본의 비정규 노동 착취에 비하면 차라리 인간적이고 소박했다.
물론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하다. 비정규직의 세계도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 유연화니 21세기 새로운 노동 형태니 하는 여러 진단 그 너머에 있는 비정규 노동의 진실은 ‘반쪽 저임금’이란 사실이다. 특히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계가 노동자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 숙련을 파괴해 상품을 값싸게 하고 노동을 축출했는데,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비정규직은 기계보다 더 훌륭한 ‘자본의 무기’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거대한 ‘고용된 산업예비군’을 형성한다.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만드는 훌륭한 기계’ 노릇을 하지만 ‘더 많은 임금’을 찾아 떠도는 수많은 불완전 취업자들일 뿐이고, 이들은 실업인구가 그러듯 노동시장에서 끊임없이 전체 노동자 임금을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건강한 노동조합운동마저 깨뜨려 거대한 비정규직은 존재 그 자체로 집단적 노동의 힘을 약화하고 기존의 건강한 노동조합운동마저 타락시킨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착취에서 발생한 독점적 지대를 정규직과 자본이 나눠갖고, 이런 노사간 물질적 배분은 노사 담합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규모의 비정규직이 ‘풍부한 노동력 저수지’ 노릇을 하는 한 조직 노동의 공장 노동력 철수(파업)도 무력해지고 만다. 개별 노동자로서는 해고될 경우 실업의 공포도 크지만 ‘비정규직 함정’에 빠져 노동 생애 내내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더 큰 공포가 짓누른다. 일본의 자본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일단 임원들이 스스로 임금을 삭감하고, 이어 기계를 퇴출시키고 그래도 버틸 수 없으면 최후에 노동자를 해고한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견뎌내고 최근 새롭게 부활하는 일본 경제의 저력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임금을 두배로 올린 포드의 5달러 임금제는 전후 자본주의 황금 시절의 한 축이었다. 거꾸로 임금을 절반으로 억압하는 비정규 고용은 자본의 이윤 축적에 봉사할지 모르지만, 자본과 조직노동을 타락시키고 수많은 비정규직의 삶을 불안케 해 종국에는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건 아닐까?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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