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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술 쳐먹고 지껄이는 소리

2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2/04
    세계화와 싸운다 중에서(1)
    꿈꾸는나비
  2. 2007/01/20
    위대한 전환 중에서
    꿈꾸는나비
  3. 2006/12/01
    "남쪽으로 튀어" 중에서(1)
    꿈꾸는나비
  4. 2006/09/08
    모난 돌이라 생각하며(1)
    꿈꾸는나비
  5. 2006/07/16
    병원가자
    꿈꾸는나비
  6. 2006/03/28
    그런 것 같다
    꿈꾸는나비
  7. 2006/01/26
    손전화기가 금호강에 빠진 날(1)
    꿈꾸는나비
  8. 2006/01/21
    지금
    꿈꾸는나비
  9. 2005/07/26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2)
    꿈꾸는나비
  10. 2005/07/19
    분노 아니면 넋두리(1)
    꿈꾸는나비

세계화와 싸운다 중에서

세계화와 싸운다(폴 킹스노스/ 창비) 중에서
 -‘제 4장 쇼핑중단파 교회’ 사례요약 중심으로


자기문화를 ‘펩시’나 ‘코카’로 양자 택일할 수 밖에 없는 문화식민지에 살고 있다. 문화 전쟁은 진행 중이다. 무섭게. (본문 중에서)

 

1. 빌리목사
-불꽃 같은 근사한 머리모양을 하고 치아를 빛내며 개목걸이와 흰색 턱시도를 입고 설교.
-‘휴대전화 오페라’ 신도들이 가게 안을 돌며 전화기에 대고 노예노동에서 저임금까지 무엇이든 큰소리 침
-‘말다툼연극’ 화장실에서 섹스하자고 큰소리치는 대본, 출소자가 감옥에서 칠했던 종이컵을 알아본다는 대본.

 

2. 소규모 문화게릴라들
-미국: 캘포니아교도부(CDC), 광고판해방전선(BLF)→ 말보로 광고판이 말보로 담배꽁초로 바뀌고 등등
-영국: 반광고세판 세뇌행동(ABB), 신광고수준당국(NASA)
-팬클럽회원들: 나이키타운에 들어가 운동복을 엄청나게 구입후 ‘더러운 것이 묻었다’고 환불을 받았다. 더러운 것은 나이키 로그였다.
-휠마트(Whirl-Mart): 햐얀색 낙하복을 입고 월마트 통로에서 빈수레로 한시간 동안 오간다. ‘소비를 깨닫는 예배’ 중이라 답한다.
-감시카메라 배우들(SCP): 맨해튼의 3,000개 cctv 앞에서 거리무언극을 공연함으로 cctv 반감 표출.
-런던 활동가들은 가짜신문을 나눠준다.
-RT마크: 전복적인 아이디어 교환하는 온라인체
 ①‘바비해방전선’-미군병사인형을 바비인형으로 교체.
 ②2002년 가짜 죠지 부시지지 사이트 제작. 폐쇄 조치됨. 부시 왈 “자유에도 제한이 었어야 한다.
 ③수천명의 히피들과 노숙자들을 모아 같은 날 전국의 월마트 주차장에서 자게 한다.


소비자사회에 대한 저항도 상품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우리의 정신을 파괴한다. 그런데 기업이 아무리 애를 써도 문화훼방은 예상을 뒤엎으며 계속되고, 발전 부활한다. 문화훼방을 요점이다. (본문 중에서)

 

3.생체제빵부대(BBB)
-유기농 코코넛크림파이를 서류가방에 넣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 얼굴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우리에게 하늘에 떠 있는 파이를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다만 그 파이를 따다가 그에게 돌려준 것뿐입니다.” ‘파이로 파워에 맞서기’ 보도자료를 자료 작성시 제빵용어를 절묘하게 사용 말장난과 정치를 조합한다. 또 ‘체리파이 삼인조 사건’는 도시노숙자 정책에 반대 시위 일환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 가격, 결국 징역 6개월 선고, 이 사건을 두고 ‘전세계 빵봉기’라 부른다. 전세계 빵봉기는 사빠띠스타에서 영감을 얻음. 권력층에 디저트를 배달하는 제빵투사들의 지하네트워크‘라 자칭함. 파이세례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 직접행동이다. 눈에 보이는 에스페란토다.

문화훼방은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는 않지만) 미래의 투쟁은 머리와 가슴의 투쟁이라 생각한다. 무장투쟁, 대중저항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무력 투쟁은 국가의 파상공격을 초래할 뿐 아리라 사람들의 파상혐오를 초래한다. (본문 중에서)

 

○땅과자유
-반소비주의에 대한 운동 차원을 벗어나 전방위적인 전략과 전술로 활용해야한다. 예를 들어서 오아시스 프로젝트 예술인 회관 문제 해결을 위해 문광부 앞에서의 문화노동자들의 기발한 시위(라면 먹기, 서서 잠자기, 낚시하기, 체조하기 등)
-대구 중앙로 반월당 횡단보도 삭제에 대한 분노로 ‘횡단보도 프로젝트’ 실시
- 이런 행동이 좀 더 활발해져서 우리의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면서 살자. 지역에서 지하철․버스요금 인상은 원칙과 기준도 없이 인상하며 우리의 분노는 며칠 뿐이고, 표출은 없다.

 

<본문 중에서>
*경찰은 자본주의의 폭력적 얼굴이다. 다시 말해, 경찰은 부자들을 지키는 개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자들이 부자들과 한판 계급전쟁을 시작할 때, 최전선은 경찰이다.

*투쟁이란 남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폭력적인 것도 아닙니다. 투쟁이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자기 손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투쟁할 수 없습니다. 연대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을 요구하자. 있는 힘껏 외치자. 손에 넣을 때까지 멈추지 말자. 우리도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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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환 중에서

<위대한 전환> 중에서 -42. 국경을 가로지른 조직화

 

뉴그라운드를 분쇄한 협력
 -국경을 가로질러 광범위한 조직과 네트워크, 연합체형성은 지난 20년 동안 경제에 직접대응하면서부터 시작
㉠70녀대 농장노동자연합노조가 유럽의 노조지지→ 노조없는 포도농장 불매운동, 해외확산
㉡네슬레 유아식 선전을 막기위한 운동→ 50개가 넘는 나라 참여, 구제적인 합동회의 구성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국제농업위기정상회의→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걸 인식
㉣농장노동자조직위원회의(볼드머 벨라스케스)→미국과멕시코 농장노동자조직,공동행동인식

㉤투자회수운동→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 반대운동, 철회시킴
㉥국제인디언조약협의회→원주민들이 정기모임으로 콘티넨털 석유회사와 싸움, NAFTA와 GATT의 심각성을 인식, 미․캐․멕의 원주민 연합체형성, 인간게놈 다양성프로젝트에까지 이름
㉦미국자유무역협정와NAFTA에 반대운동,GATT재협상반대운동→국제적인 조직운동 절정기
㉧‘50년이면 충분하다’는 운동→세계은행과 IMF 50주년 기념일에 출범, 치밀한 조직으로 40개가 넘는 나라가 시작, 94년 마드리드에서 세계은행회의 때 절정-최근가장성공적인운동

 

자기이익과 연대
▶자기 이익에 기초한 운동
 -레이건의 GATT 농업 관련 협정 → 가족농에게는 위협적
 -지적재산권 조항→ 100만명의 농민들의 대규모항의 시위(전세계를 돌며 합동회의와 방법 강구)
▶국경을 가로지르는 조직운동
 -미국 농민이 브라질 농민을 적으로 보지 않고, GATT의 공격 앞에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뿌리 뽑기 위해 공동의 전선이 필요

 

지역과 지역의 관계
▶지역이나 주 차원의 조직들이 직접 맺은 관계가 전국적인 차원의 조직이 맺은 관계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생산적이다
 -멕시코 북부지역 농민들이 캔자스주 농민연합에 중고 농기계 구입 부탁, 캔자스 농민들이  국경까지 몰고 가 멕시코 동료 농민들에게 넘겨주었다.
“난 미국 농민과 멕시코 농민 사이에서 우리가 농사짓는 규모 말고는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문제도 비슷하다. 시장에서 경쟁을 허락하지 않는 독점적인 초국적 기업에게 착취당하고 부패한 정부 때문에 고통 받고 있기는 매일반이다.”

 

개인적인 관계
 -삶과 정치의 모든 측면에서처럼, 중요한 건 사람이다. 여기서 출발하여 다지고 또 다른 싸움의 발판과 원동력이 된다.
▶ 80년 12월 벨기에 열린 GATT행정장관회의→ 전세계적인 농민저항운동으로 신속,조직적으로 대응 -미국농민연합‘가격과 생산에 관한 일반협정’제안, 폭넓은 지지, 유럽농민연합회가 있었고 이어서 환경,소비자,노동,시민단체의 연대해 이 제안을 지지하는 행진을 함. 결국 회담은 무산, 협정타결 시한 5년후로 연기시킴
▶94년 GATT의 우루과이라운드가 투표 직전에 브뤼셀에서와 같은 대대적인 시위를 벌임

 

장기적인 전망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동을 봐야 한다
  -네슬레 불매운동은 1977년에 시작 84년 겨우 매듭, 약속 위반으로 88년부터 다시 시작     지금도 계속됨. 89년에는 마닐라에서 60개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10주년 기념식가 향후     10년 계획을 세움.
▶새로운 지도자를 발견하기는 쉽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갈수록 나이가 드는 지도자들이  물러나는 것이다.
▶국경을 가로지른 국제운동이 국내운동에도 똑같이 적용
   -관계와 낯선 동료들과의 작업, 새로운 사고방식에 주의깊은 관심을 기울 때 -지속가능     한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김남주의 시<마지막 인사> 중에서


*땅과자유 학교에서 위대한전환(동아일보사)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였다. 4부 ‘다시 지역화로 향하고 있는 새로운 발걸음들’ 집중하여 각 장 별로 맡아 발제를 하였다. 난 발제보다 요약에 치중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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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남쪽으로 튀어&quot; 중에서


 

몸과 정신이 공황상태에 빠진 날 난 이 책이 찌푸라기인 양 끈질기게 잡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끈질기게 잡고 있지 않아도 술술 읽히는 책이다.

바닥치기를 하며 하루 한끼를 겨우 라면으로 챙겨 먹으면서도 그 때의 상황이 뭔가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역시나 나에게 부족한 건 용기, 기개... 또 확인했다.

사실 '과격파 운동권 출신 아버지'가 쪼매 부럽다. 과거, 현재의 모습보다는 비위짱이 틀어지면 저돌적인 사람이 되는 그 천성이, 글구 아들과 가끔 프로 레슬링을 하는 것도.

마치 현실로 착각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당최 소설과 현실도 구분을 못하니 쯧쯧

현실 감각이라도 되찾을 요량으로 목욕재계에 준하는 세수를 하고 한 시간 반 가량을 걸어서 밥줄이 있는 일터로 갔다.

자질구레하게 메모했던 글을 옮겨 놨다.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화하지 않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나는 나의 깃발을 흔들 뿐이다.

 

*학교는 국가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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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이라 생각하며

모난 돌이라 생각하며


‘모난 돌’은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그 단어가 요즘 내 주의에서 서성이고 있다. 마치 끙끙대며 말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 집 앞에서 서성거리듯이. 몇 날 며칠에 걸쳐 쌓여 있던 것을 토해내려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스트레스가 극치를 이른 오늘 골방으로 가지고 와서 이렇게 풀어내려고 용을 쓰고 있다. 불평불만을 스스로한테 조근조근 이야기조차 못하는 것을 보며 틀림없이 모가 나도 엄청 나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 고향이라는 곳을 모자 꾹 눌러 쓰고 갔다 왔다. 밤늦게 도착해서 술친구이자 동지이자 뭐 그런 사이인 선생님을 보고 왔다. 이야기하지 못해서 병이라도 난 것처럼 밑도 끝도 없이 무게 잡으며 맥주 몇 잔에 풀어 놓았다. 여전히 나의 말을 차근히 듣고는 아기 달래듯 달래주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일 것이다. 여태껏 어리광 제대로 부리지 못한 것 같다. 코흘리개였을 때는 콩가루 집안이 그래도 살 만했는지 이래저래 투정도 부린 것으로 기억하지만, 반항으로 가득 차 있던 사춘기는 아니었다. 사춘기 때는 분명히 그랬다고 말할 수 있다. 상처 난 곳을 빨간 약 발라주며 괜찮다고 따뜻하게 대하는 엄마를 찾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골방에서 잠을 깰 때면 엄마라는 그 언저리가 희미하게 지나간다. 아침부터 우울해져 집을 나서기가 매일인 것 같다.

 

고향이라는 곳은 대낮에 고개 쳐들고 찾아 갈 수 없는 곳이라 했던가. 분명 그렇지 않는 놈들도 있을텐데. 도둑고양이처럼 찾아 갔다가 야한 비디오 틀어주는 여관에 잠시 눈을 붙이고는 허둥지둥 동네 아저씨라도 마주칠까 걱정이 앞선 채 고개 푹 숙이고 빠져나와야만 하는 그 곳. 언제쯤 그 짓을 그만 둘 수 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찾아간 날, 가방에 넣어 갔던 어쭙잖을 책을 해장을 하기 위해 선생님 기다리다 펼쳤다. 맑은 햇살 가득한 토요일, 하교 길의 여중학생을 보며 소주가 생각났다.

 

“고향은 피의 더러움과 성장기의 불우를 그때마다 확인시키던 ‘낙인’은 아니었던가.”

 

시발,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이 지긋지긋한 곳을 안 올 것이라. 맹세하고 돌아서지만, 파도에 모래성이 사라지듯 다시 몰래 찾아오고 만다. 풀고 싶다. 근데 정말 풀리지 않는다.

꼬인 실타래처럼 꼬여만 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말을 잃어간다. 오히려 맞받아서 싸우고, 주사 부리듯 말을 더 해야 할터인데. 침묵으로 일관한다. 말을 잃어가고 말을 더듬는 것이 불안하다.

 

난 결코 그럴 수 없겠지만, 취직하고 열심히 싸이질로 뻔질나게 살고 있는 연락을 끊은 친구가 괜히 부럽기도 하며 심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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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가자

술발은 물론이거니와 약발도 잘 받아 약기운이 남아있는 동안은 살만 하다. 코감기가 번져 목감기와 몸살로 이어져 왔던 저 번주의 나의 몸의 생각하면 이렇게 맥주 한잔 걸치며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지금, 동전 양면인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한미FTA저지를 위해 서울로 향했다. 그나마 안정되었던 학원생활을 내팽게치고서 뒷수습 안 되는 특유의 무책임한 잠적으로 이어지는 생활인 줄 알면서도 가고 말았다. 어쩔수 없다고 말해야 하나, 이런 투쟁 국면을 통해 도피를 하는 건지 내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된다.

 

비를 맞으며 뜀박질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한미FTA를 저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론은 막지 못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근데 이건 분명했다. 땅과자유에서 배웠고, 며칠 전에 땅과자유 학교에서 확신했던 애먼 헤나시의 말 "아니오,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만 보고 걷고, 뛰는 대열 속에서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뛰었다. 청와대 인간 띠잇기를 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지만, 결국 미대사관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부실한 안주와 소주 몇 잔으로 한숨 돌리며 좌석에 앉았지만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불편케 만들었다.

 

결국 혼자일 수 밖에 없고, 내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말 무뇌아처럼 살 수 밖에 없다는 절망에 빠진다. 난 진정 내 속에서 나오는 나의 분노, 용기, 기풍을 제대로 느끼며 표출하는 건지 그저 그 분위기에 나를 잊고 살아가는지 묻고 싶다.

 

조만간에 평택 대추리에서는 빈집 철거에 나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고 한다. 지난 번의 싸움을 기억한다면 긴급 지침 또는 동참을 호소하는 글을 읽게 될 것이다. 지금 겁이 난다. 결국 유치장, 구치소, 감옥일 텐데. 나는 나를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 체, 뒷걸음 치는 것 같다. 그저 공권력이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박래군은 구속이 되었다. "대추리 병"이라고 명명되어지기 시작한게 박래군의 말에 의해서란다.

나도 한때 그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약기운이 다 떨어진 건지 증상이 들어나지 않는다. 구속과 폭력, 불심검문에 시달고 있는데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느껴지고 있다.

 

정말 무서운 건, 적들이 아니라 우리의 안일함이라고 했던가.

나의 병은 분명 잠복기일 것이다. 이 잠복기가 길어 진다면 결국 난 내가 그토록 증오하며 연을 끊었던 친구, 이 절망의 시대를 너무도 잘 사는 이들처럼 되어 간다는 사실. 그 초조함, 남들은 그걸 결벽증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의 증상이 어떤지 진단을 못 내리지만, 병원은 가봐야겠다는 건 분명하다. 그 병의 진원지는 평택이다. 병원간다고 병이 완치되겠냐만은, 병원 안 간지도 오래된 것 같다. 약도 다 떨어진 것 같고.

 

한미FTA체결되면 병원도 제대로 못 간다고 하니, 체결되기 전에 병을 일부러 만들어서 치료를 다 받든지, 물론 돈이 없어 그렇게 하지도 못하지만 어쨌던 지금 제대로 앓고 있지 않는 "대추리 병"에 전염이 제대로 되기 위해 한 번 가야 겠다. 격렬한 전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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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공선옥의 소설 <유랑가족>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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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기가 금호강에 빠진 날

 

 

아주 개인적인 일이지만 취기에 용기를 내어 지면을 얼룩지어 볼까 합니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지면상으로 넋두리를 풀어 놓기에 부적절하다는 의견 있다면 즉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진저리나지만 그게 나의 삶이었고, 그 기반으로 분노를 표출하려고 했으며, 그 분노를 자제할 수 없어 어떤 빌미를 빗대어 뭔가를 요구하고 싶어 던 것 같네요. 사상적으로, 논리적으로 허약하고 비논리적일지 몰라도 도저히 제가 풀 수 없는 문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견뎌왔던 것 같습니다.

 


흔히들 그렇게 말하죠. 콩가루 집안이라고요. 제 집구석이 꼭 그런 것 같습니다. 2년 가까이 몸담았던 곳을 도망치듯이 나와 한 달이 다 갔을 때 쯤, 2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 집구석에 연락을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며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근데 제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목까지 차올랐던 원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별거 생활 중인 부모에게서 나는 무엇인가. 그래서 전화를 통해서 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가. 솔직히 말해 따뜻한 말 한마디었을텐데. 결국 그 말을 듣지 못했고, 저도 얼음장 같이 냉정하게 인간이 아니길 선언하듯이 말했죠. 이때껏 살아오면서 빗진 게 없으니 여기서 연을 끊고 사는 게 맞다며 전화를 끊으며 오기인지 끝인지 모르지만, 내 삶의 끝까지 간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찼습니다. 그게 현재 제 모습입니다.

 


그렇게 분을 삭이지 못한 체 잠을 들면서 꿈을 꾸었습니다. 사춘기 때 만나는 몽정을 만났습니다. 결국 엄마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 악몽을 헤매다, 새벽에 잠을 깨고 말았죠. 63일째 촛불을 들고 선배들께서 사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는 돌아오는 길에 후배의 전화를 받고는 술을 한잔 얻어먹고는 아양교 다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꼬일 대로 꼬인 삶을 억지로 어느 누군가 푼다고 해도 풀리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결국 돈의 문제입니다. 어머니의 삶도 돈의 굴레에 못 벗어나 허덕이는 것입니다. 진득이처럼 부모의 피를 안 빨아 먹는 것 또한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소의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차하게 이야기 하는 건 어머니가 전역하면서 마련해준 저의 휴대폰을 아양교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끈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라고! 모순 속에서 제 살 갉아 먹는 논리로 이야기 하지 마라고 충고하셔도 좋습니다. 근데 어차피 제가 어머니의 돈을 받아, 아님 나의 능력으로 생활한다 해도 나의 삶과 어머니의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 너와 너의 어머니의 삶은 왜 변해야 하며, 얼마큼 변하길 원하는 데라고 묻고 싶겠죠. 단 한 가지입니다. 따뜻한 말과 소통인데, 지금은 그게 되지 않습니다.

 


피붙이와 인연은 아양교에서 던져진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 문제는 어떤 정권도, 어떤 운동도 해결해주지 못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자유롭게 살아 볼까합니다. 배가 고프면 고픈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그래서 고르게 가난한 삶이 이상이 아닌, 자위가 아닌 것으로 눈 감을 때까지 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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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자유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옮겼습니다. 오늘 새벽에 토했던 오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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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늘 시민모임의 정기총회가 있는 날이다.

2시부터 시작이니, 막 시작했을 터이다.

 

2년 가까이 활동한 곳을 떠나온 나는,

자유롭지 못한 덫에 놓여 있다.

이렇게 모든 게 서툴다. 3년전에 이러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시작은 누구나 열정적이게 또는 수많은 각오로 시작되지만,

끝은 그렇지 못하다.

두 종류다. 심플한 끝맺음이거나, 구질구질한 끝맺음도 아닌 것이 악몽같은 기억을 남기고 간 끝이다.

난 항상 후자 쪽이었다.

 

올해는 무계획으로 무식하게 백수로 개기기다.

거머리처럼 피붙이들의 피를 안 빨아 먹는다는 원칙은 세웠다.

그 원칙은 유치하지만 자존심이다.

컴플렉스가 한 껏 묻어 있는, 날 것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자존심이다.

 

시민모임에서 공로패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받을 자격이 없기에.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연신 벨을 울리고 있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총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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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맨날 술이다.

반주든 목축이는 맥주든 주말이면 작정하고 마시는 소주든

밥 먹듯이 술이다.

술이 아니라면 잠을 못 잘것 같다.

지금 내 유일한 낙은 술인 것 같다.

 

 

오늘도 몇 번 먹어본 적 없는

육회로 소주를 한잔 했다.

중복이라며 객지에서 나를 일부러 찾아서

문경식당에서 먹었다.

 

 

솔찮이 마셨는데

일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취하지 않았다.

맥주 두캔을 사와 집에서 마신다.

 

 

물론 혼자 생각이지만(항상 이 혼자의 생각에 매몰되어 이 모양 이 꼴이지)

내가 좋아라 하는 이성한테

그래 '니가 좋다'라든지 그와 비슷한 말을 들어 봤으면

지금껏 그런 일이 없었지만,

그럼, 이런 생활은 아닐것 같은 희망이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건 환상이야라고 할 수 있겠지.

맞아도 좋다.

 

 

왜 내 삶은 한 치 앞도 암흑일까

과연 매마른 나에게 뜨거운, 저돌적인 사랑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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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아니면 넋두리

우스개 소리로

난 사무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 아무 개념없이 들어 왔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출근하고 늦은 퇴근하면

오직 생각나는 건 술 아님 성에 관한 상상력뿐이다

퇴화되어 간다는 증거일게다

 

 

단지 일만 있을 뿐이지

나 또는 운동은 없다

이건 누굴 원망하거나 회피할 문제는 아니다. 내가 문제지.

 

 

오늘날을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회원, 사람들을

만날 때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차피 불화인 삶이고 현실인 것,

괜히 비굴하게 살지말자.

 

 

근데 어떻게 살아하지?

그걸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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