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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타브리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또 하나의 문화, 1999 - 201610

 

201610/쩡열

캐롤 타브리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또 하나의 문화, 1999(원저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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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말 : 보편적 인간, 남성

- 여성에 대한 가이드북들(성생활 기분, 인간 관계,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한) -> 시몬느 드 보부아르 : 여성은 제 2의 성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성이기 때문이다. 

- 남녀의 차이는 취향과 선호의 차이와 다름. 정상-비정상의 구분. 정상적인 기준은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음. ex)인권의 문제와 여성의 문제를 구분시키려고 한다. -> 여성의 문제 not ‘인’권의 문제.

- 사람들은 모든 인간을 포함하도록 분야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는 제안을 이상하고 불편하고 혹은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미니히는 부연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어떤 부류의 인간만을 우리의 대표자로 간주할 때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일까? 나날이 좁아지는 지구촌에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18p

 

- 남성중심적 관점을 여성중심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닌 정상성에 관함 생각을 넓히는 것. 보편적 남성에 관한 세 가지 가면을 벗겨야 한다.

① 남성은 정상이다. 여성은 남성과 “정반대”이며 불완전하다. 

: 전통적 관점. 남성을 문화, 지식, 힘의 보고로 여성을 자연, 직관, 약함의 보고로 간주한다

② 남성은 정상이다. 여성은 남성과 정반대이지만 남성보다 우월하다 

: 여성의 경험, 본성(월경, 출산, 공감, 영성, 협동, 평화 애호, 환경과의 조화)을 강조하고 그것이 남성의 것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찬양. but 여전히 남성이 여성의 행동을 평가하는 표준으로 작동.

③ 남성은 정상이다. 여성은 남성과 같거나 같아야만 한다. 

: 남녀간에 존재하는 차이(인생 경험, 자원, 권력, 생식 과정의 차이)를 무시하면서 남성 표준을 모든 여성에게 일반화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남성에 대한 잘못된 평가』에서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ay Gould는 지능 연구 분야에서 어떻게 과학이 이용되고 남용되어 사회적 정치적 현안에 봉사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즉 과학은 어떤 집단이 “준엄한 자연의 명령에 의해” 종속적인 역할을 할당받는다는 편견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평가 역시 지속된다. 그것은 사회의 편견을 반영하고 그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과 “자연적으로” 다르다는 관점은 노동, 심리적 자질, 가족에 대한 책임을 “남자의 것”과 “여자의 것”으로 나누는 지금의 현실을 정당화한다. 지배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유지하고, 그러한 차이를 “자연의 준엄한 명령” 탓으로 돌리고, 자신들을 이롭게 하는 불평등한 질서를 은폐하려는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 - 23p

 

 

1. 남성 기준에 도달하기 :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은 이유

- 심리학 연구에서 이야기하는 ‘여성의 문제’는 남성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같은 문제를 여성을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여성의 문제’와 무관한 ‘남성의 문제’가 된다.

ex) 여성은 남성보다 자존감이 낮다. -> 남성은 여성보다 더 잘난 체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분노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상처받았다”고 말한다. -> 남성은 불행할 때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말하고 동정을 유발하는 대신 타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1) 몸 : 미인과 가슴

- 여성들이 몸에 가지고 있는 강박은 남자들과 같아야 하는가 달라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 여성의 이상적 몸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함. (참고, https://goo.gl/K2nTfM) 브렛 실버스테인Brett Sylverstein 연구.

 

① 가슴이 큰 곡선미의 유행 ex) 1900년대 초 릴리안 러셀, 1950년대 마릴린 먼로

: 모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유행하며 모성과 집안일이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인식됨.

② 가늘고 근육이 발달한 소년 같은 몸매의 유행 ex) 1920년대 Flappers, 1960년대 트위기

: 여성들이 노동력 시장에 들어갈 때, 특히 전통적으로 남성의 직업이었던 일을 할 때 유행.

 

- 어떤 일을 하는가와 이상적 몸매의 관계가 변함.

: 사람들은 둥글고 큰 가슴의 몸매 = 여성성과 연결시키며,  여성성 = 양육, 의존성, 수동성, 가정적인 특성과 연결시키고 불행하게도 무능력과 연결시킨다. 반대로 표준적인 남자 몸매 = 지성, 힘, 능력을 보여준다고 생각. 지적이고 능력있는, 즉 “남성적”으로 생각되기 위해서는 남자같이 보여야 한다. (남성에게도 적용. 20세기 초 남자의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던 뚱뚱함은 이제 여자 같은 유약함과 남성성 결핍을 나타내는 것이 됨.)

- 여성의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늘어나는 시대의 이상적 여자 몸매 = 날씬하고 강건하고 가슴이 작고 엉덩이고 잡았다. (지적으로 차려입은 전문직 여자와 스타킹을 신고 가슴이 쓸데없이 큰 젖가슴을 가진 금발의 속기사와의 대비)

- 성취와 높은 수준의 교육, 전문 직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들은 특히 날씬함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경향, 거식증, 폭식증 등 섭생 장애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섭생 장애와 몸무게 조절에 대한 강박증은 역설적이게도 ‘여성 해방’에 대한 대가이다. 여성들이 고등교욱과 전문직에 진출할 수 있을 만큼 ― 그러나 여성성과 무능력의 연결을 깨지는 못할 정도로 ― 여성에 대한 차별이 줄어드는 때에 섭생 장애가 나타난다.”

- 현재는 집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음에도 큰 가슴의 요구가 동시에 이뤄짐. 직장 여성을 위한 옷은 대체로 “남성적인” 양복의 웃옷과 “여성스러운” 짧은 치마. 두 가지 요구. 

 

- 날씬해지려는 노력이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여성들이 많지만, 지방의 위험에 대한 경고 중 많은 것은 남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기반.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지방을 허벅지, 엉덩이, 옆구리에 저장하게 되어 있고 이 부분의 지방은 일반적으로 건강에 해롭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마른 경우에는 골다공증의 위험이 커진다.

- 오 웨인 울리, 다이어트와 체중에 대한 강박은 정치적인 문제, 여자들에게 사회적인 문제보다 외모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경쟁하게 만들고, 건강함과 신체적 에너지를 파괴한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그것이 여자의 몸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 

- 쓸데없이 큰 젖가슴이 있는 실제의 여자 몸을 부인하거나 작은 젖가슴을 가진 실제의 여자 몸을 바꾸려는 노력 역시 같은 이야기. / 남성의 몸과 비슷해지거나 반대가 되거나, 여성 자신이 가진 몸에는 절대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심리 : 여자들의 문제

-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발달, 심리 문제는 ‘남성’을 연구한 결과. 여성들에게 맞을 수가 없다.

- 여성의 문제인가 남성의 문제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다름. ex) 왜 여자들은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 왜 남자들은 재밌는 게 뭔지 모를까? (표, 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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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문제” -> “여자가 해결책” 역시 도움되지 않음. 실생활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차이와 기본적 심리적 능력의 차이를 혼동해선 안됨. 행동의 차이가 인간적 유사성이 없다는 뜻이 아님.

- “남자와 여자는 다른가, 누가 더 나은가?” -> “왜 모두 차이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는가? 차이는 왜 결함으로 여겨지는가? 차이에 대한 믿음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 어디에 집중하는가에 대한 관점이 존재할 때 “순수한” 생물학 연구는 없다.

 

3) 뇌 : 차이의 해부

- 뇌 연구의 역사는 성차와 인종 차이와 같은 민감한 문제와 관련해서 숭고하고 공평한 진리의 추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 한 세기 전 과학자들은 여자의 뇌가 남자보다 작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고, 신체 비율에 따른 크기 차이 이외의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언급하지 않음. -> 여자의 전두엽이 더 작고 두정엽이 크다고 주장. 여성의 지적인 열등성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패턴. but 두정엽이 지적 능력과 관련되었을 수 있다는 보고의 등장. -> 해부학자들이 여자의 두정엽이 작다는 것을 발견함.

 => 과학자들은 어디서든 여성이 열등하다는 증거를 쉽게 발견했다. 

 

- 현대의 젠더와 뇌 이론 -> 좌뇌, 우뇌가 다르게 발달한다는 생각에 근거. 

- 주요 이론의 주장들

: 좌뇌 = 언어 능력, 추론 능력 / 우뇌 = 공간 인지 능력, 예술적 능력과 연관이 있고, 남녀의 차이는 어떤 뇌를 더 사용하는 가에서 온다. => 자궁에서 시작되는 선천적인 차이

: 게쉬윈드, 베한, 남성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이 태아의 좌뇌를 공격. 우뇌가 더 발달되었다. -> 의학 연구에서는 남자아이의 우뇌 연결 섬유 중 일부가 파괴된다. 

- 19세기 연구자 : 뇌의 어느 엽이 남성의 우월성을 설명하는가에 대해 생각의 변화 / 20세기 연구자 : 어느 쪽 뇌가 남성의 우월성을 설명하는가에 대한 생각의 변화.

: 처음엔 좌뇌 : 지성과 이성, 우뇌 : 병들고 나쁜 미친 뇌, 열정, 본능, 범죄성, 비합리성의 뇌 -> 남성이 좌뇌의 영향 / 60, 70년대 우뇌의 부흥. -> 남성이 우뇌의 영향.

=> 양쪽 뇌가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성과 남성이 정 반대의 뇌를 사용한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양쪽 뇌의 기능은 상호보완적이다 ex) 우뇌 - 예술 창작, 좌뇌 - 예술 감상 분석

=> 뇌량의 섬유 조직의 수와 한쪽 뇌의 발달의 관련에 대한 증거 없음. 뇌량의 역할 조차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

- 루스 블레이어Ruth Bleier, 게쉬윈드와 베한의 논리 오류 발견. 그들의 참고 문헌 원본에서는 태아의 뇌 차이에 대한 연구에서 성차 발견하지 못함. 다른 연구 역시 근거와 논리 부족. but 사이언스지는 그녀의 연구를 실어주지 않는다. -> 그 후 사이언스에서 고작 14개의 뇌를 가지고 성차를 발견했다는 연구를 게재하고 전문가들의 환영을 받음.

 

- 최근의 많은 연구들에서는 사실상 성차가 발견되지 않음. 오히려 같은 성간의 차이가 더 큼

ex) 언어 능력에 대한 1,418,889명의 테스트가 포함된 165개의 연구에서 성차 없음. 

수학 능력에서 3,984,682명의 수학 성적에 대한 100개의 연구에서 성차는 아주 작으며,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 표본을 가지고 왔을 때 여자들이 더 높은 점수를 보임. 조숙한 학생들을 골라 표본을 만들 때에만 남자들이 더 높은 점수를 보이고, 남녀의 차이가 커진다는 것 발견.

- “인지 능력에서의 성차는 최근 몇 년간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인정한 후, “이러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함. -> 존재하지 않는 성차를 주장하기 위한 증거를 찾고 있다.

 - ① 여자들이 언어 능력이 더 뛰어나다면 왜 경매인과 외교관 등에 여자가 거의 없나. 판단능력이 뛰어나다면 왜 항공 교통 관제원이나 운동 경기 심판중에 없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생물학적 한계로 의사나 바텐더를 할 수 없게 했다. 외부적 장애가 사라진 후 진입한 여성들은 뇌가 변했기 때문인가? 왜 여전히 우리는 과학, 수학, 정치에서 여성의 능력이 더 부족하다고 말할까? = 인지 능력에서의 차이는 교육과 기회의 결과

② ‘언어 능력’과 ‘공간 인지’같은 용어의 의미는 변화하고 목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보수 - 여성들이 관계와 느낌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와 의욕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 but 일상 생활에서 남자들이 수다를 떠는 시간에서 여자를 앞지르고, 여자의 말을 가로막는 경우가 더 많다. 

③  차이에 집중하기 때문에 둘의 유사성에 대한 실질적 증거에서 관심이 빗나간다.

=> 생물학적 요소와 인간 행동은 상호적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은폐해서는 안된다.

 

 

2. 아름다운 영혼과 다른 목소리 :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지 않은 이유

- 여성적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

: 관계 지향성과 보살핌, 타자지향적 본성. 여성적 사고 방식, 행위, 느낌에 대한 재평가. 여성적인 것이 더 우월하고 건강한 것이다.

: 에코페미니스트는 오래된 연결(여성=자연, 남성=문화)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 남성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착취하려고 하는 것.

- 여성과 ‘연결된’ 좋은 특성과 경험을 회복하려는 노력 지지. but 대립항으로 나누는 것 자체는 결국 세상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눔. 여성의 ‘본성’에 대한 잘못된 믿음.

=> 남성성, 여성성과 연결된 대립적인 특성들이 과장된 설명이라는 것을 은폐함. 

=> 역사적으로 여성을 정해진 자리에 있게 만든 태도를 지속시킴.

=> 남성 뿐만 아닌 여성의 일상적 행동이 성별에 근본적인 무언가에 의해서가 아닌 수행하는 역할, 이데올로기, 하는 일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인간적 특성들이 남녀 모두에게서 발전될 수 있도록 역할, 이데올로기, 일을 변화시켜야 한다.

 

1) 전사와 평화주의자

- 감정에 대한 여성의 직관은 종속된 자의 직관으로 봐야 한다. 

: 남성도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상사의 기분과 의도를 읽을 필요가 있을 때에는 감정 이입의 기술을 발달시키려 한다.

: 모두 감정 이입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표현하는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여기서 여성들은 습득해야 하는 역할들(아이 돌보기, 가족 챙기기, 서비스 직종 등)을 요구받는다.

- 폭력적인 남자와 평화주의자 여자라는 분리의 오류

: 인간의 본성이 가진 두가지 가능성의 상징. ->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 남성, 실제로 전쟁을 하는 군인에 초점을 맞춤으로 후원 지지 가능케하는 여자를 지움. / 평화주의와 협상을 증진시키는 남자를 지움. 

: 여성 역시 똑같이 전쟁과 대량 학살을 지지하고 냉혹한 입장을 취해왔다.

 

2) 페미니스트 낙원 찾기

- 가부장제를 대체하기 위해 모권사회를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다. 선사시대가 모권사회였나 부권사회였나는 증명할 수 없으며, 그 때가 경쟁적이었냐 아니냐 역시 마찬가지다.

- 여성들이 사회에서 폭력적인 순간에 관찰자만이 아닌 사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것은 지배와 착취의 철학이며 어느 성이 그것을 지지했는가는 상관없다. 

 

3) 도덕적 목소리, 도덕적 선택 

- 캐롤 길리건, 여성의 사고방식 역시 도덕적이라는 주장. 

: 여성 편향으로 이어지거나 여성과 남성의 근본적 성차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용됨.

- 여성의 ‘관계 맺기’ 기술에 대한 열광과 남성의 ‘자율성’에 대한 공격의 위험성

: 여성이 자율성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 불안정, 양육 책임, 사회적 권력의 부족이라는 현재적 조건 때문이다. 이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이해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 감정, 애착, 연결, 보살핌 등 인간의 특성이 되어야 하는 것을 여성의 본성으로만 귀속시킴으로 남성의 능력을 간과하게 되고, 나타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에서 면죄해주게 된다. 남성에게 이런 ‘여성적’ 기술이 부족하다고 간단히 처리하는 대신 남자들이 관계를 깊이 맺거나 연결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것이 더 낫다. 

 

4) 대립적 사고를 추방해야 하는 이유

- 셋 이상의 자녀를 가진 부모는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설명, 두명의 경우에는 대립적으로 묘사.

- 남녀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고정된 영원한 특성인 것처럼 말하게 한다.

- 변화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 내부의 차이에 대한 간과

- 남녀를 대립적인 것으로 사고하는 것은 항상 반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대립이나 갈등을 전제하고 싸움과 갈등을 함축한다. 유사성과 상호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 여성의 결점과 연결되어 왔던 심리적 특성을 여성적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의 잠재적 특성으로 찬양함으로써 그것을 되찾을 수 있다. -> 여성적 가치의 회복에 대한 내 입장과 가까움.

 

 

3. 70kg 남자와 임산부 : 여성과 남성이 똑같지 않은 이유

- 평등Equality과 같음Sameness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

: 본성, 인성, 능력의 차이와 일상의 경험의 차이는 다르다. 사회적 조건과 환경, 위치가 다름. 이런 차이를 무시하는 것 -> 중산층 백인 남성을 인간의 기준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 기계적 평등은 여러 분야에서 부당하고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함. ex) 화장실의 같은 비율 = 복장, 신체 구조, 생리적 욕구에 따라 화장실의 할당량이 다른 것이 공평하다는 결론, 

 

1) 70kg 남자

 - 생체 실험이나 연구의 결과는 대체로 70kg 남성을 대상으로 함. 하지만 대상의 성별을 드러내지 않고 인간의 표본인 것처럼 연구를 진행.

-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하는 의학 규범 -> 여성들에게 안전한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는다. / 여성에게도 문제가 되는 상황을 무시한다 

 

2) 남성과 여성은 “다르면서 평등”할 수 있을까?

- 남성과 여성을 다른 존재로 대하는 법적 태도

: 여성에 대한 특별 보호법은 여성의 고용 기회를 제한하고, 귿르을 저임금 하위직에 위치시켰다. (…) 그래서 근대 여성 운동은 여성을 본질적으로 특수한 존재로 간주하는 법과 정책에 반대해 왔다. 그러한 법과 정책이 여성의 이익을 오히려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법적 태도는 매 웨스트Mae West의 관찰, 즉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남자들이 항상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일반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 남성과 여성을 대칭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

: 자연적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등한 대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미 남성을 대우하고 있는 방식대로 여성을 대우하는 것.

- 실제 법의 불평등 

: 이혼 및 후견법 -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을 혼자 먹고사는 남자로 취급. 여성과 남성의 고용 불평등, 임금 차별에 대해 고려하지 않음.

: 폭력 - 학대받는 여성의 남성 살해에 대해 도망가지 않았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함. 매맞는 여성과 때리는 남성은 심리적, 육체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다.

: 강간 - 침해, 공포, 굴욕이라는 여성 경험이 아닌 폭력이라는 남성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 합리적인 남자처럼 저항하지 않은 여성에 대해 이해하지 않음.

: 판결과 고정 관념 - 같은 조건에 대해서도 남성과 여성에 대해 다른 대우와 판결이 내려진다. 

: 재산 그리고 감정 - 법은 신체 보호와 재산을 감정 보호와 인간 관계보다 높게 평가한다. 이러한 위계적 가치는 중립적이지 않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다. 남성에게 재산 소유 및 관리권을 부여한 반면, 여성에게는 인간 관계를 유지하도록 감정 노동을 담당하는 부담을 지운다. 남성의 피해는 객관적인 피해로 인정되지만 여성의 피해는 감정적인 상처, 주관적 피해로 대우된다.

 

3) 임산부 : 화분으로서의 여자

- 법의 대우

: 임산부를 남자와 다르게 대우하며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에 사용 -> 임신한 10대의 퇴학과 임신시킨 10대에 대해 처벌하지 않음. 

임산부를 특별 대우 -> 출산휴가, 병과 다르게 무급휴가 및 복직을 보장. 

- 임신을 기존의 병과 같이 취급하는 것은 정상성을 남성에 두는 남성규범이다. 

- 화분으로서의 어머니 관점

: 남성 경험에 기초했을 때는 씨가 들어가면 결실이 생긴다는 두 단계의 인식. -> 임신에 대한 여성의 관점과 경험이 무시됨.

- 기술적인 발전(인공 수정, 대리모, 시험관 아기 등)으로 모-태아의 관계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해지는 이유 -> 태아에 초점을 두고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배제하기 때문.

- 임산부에게는 자기 결정권과 신체에 대한 권리가 없다. -> 임신과 낙태는 “임신하고 있는 여성으로부터 의미가 발생한다” 임신에 대한 판단 주체는 임신한 여성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 여성 중심 정책.

 

4) 여성의 권리와 평등권

- 평등하게 대우받는 것 ≠ 똑같이 대우받는 것

 : 로날드 드워킨 “같은 병으로 한 아이가 죽어 가고 있고, 다른 아이는 그보다 덜하지만 역시 곹오받고 있을 때, 남은 약을 누구에게 먹일지 결정하려고 동전을 던진다면 그것은 두 아이를 평등하게 배려했다고 볼 수 없다.”

: 남자처럼 대우하라는 요구는 근본적으로 보수적 입장. -> 일하는 어머니에 대한 지원과 배려를 요구할 수 없다. -> “일하기 위해 사는” 엘리트 남성의 경력과 집단에 접근하고 싶어하는 여성에게 적절한 전략이지만, “살기 위해 일하는” 저임금의 여성 직종에 몰려 있는 여성에게는 비현실적.

: 캐서린 맥키넌 “같음/차이의 모델은 권력의 위계가 상상 속의 차이 뿐만 아니라 실제적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놓친다.”

 

- 같음으로서의 평등이 아닌 승인으로서의 평등

: 차이를 제거해야 할 문제로 보는 대신, 그로 인해 생긴 불평등한 결과를 제거하는 것. 성차를 제거함으로써 평등에 도달할까가 아니라 성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평등에 도달할 것인가를 강조.

: 지배적인 남성 규범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여성과 소수집단의 차이를 배려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하게 될 것.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기준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전략을 제공. 

: 의도보다는 결과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 현재의 상황에서 똑같은 기회나 똑같은 대우에 대해 전제하는 것이 아닌, ‘법이 여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가’를 질문함으로써 성평등이라는 목표를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ex) 여대가 존재하는 것. -> 권력과 기회, 그에 따른 자신감에서 남녀의 차이 존재. 

=> 남녀 모두의 삶이 똑같이 의미를 갖고, 법 앞에서 평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할 것

+ 여성의 부불노동에 대한 이야기

 

 

8. 젠더에 대해 말하기 : 멀었던 한쪽 눈 회복하기

- 저자 : 지적 능력, 뇌기능, 재능, 도덕감, 감정 이입, 적개심, 욕망, 친밀성과 애착에 대한 욕구, 사랑과 슬픔 그리고 성적 쾌락에 대한 역량의 문제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는 크지 않다. but 강간 범죄율, 임신 경험, 부모가 되는 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남녀의 차이에 대한 공식적인 이론과 사적인 이야기에서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불이익을 당하는가? 그 결과는 무엇인가? 누가 일자리를 얻고 승진을 하는가? 누가 결국 가사노동을 맡아서 하는가? 만일 한 여성이 자신의 문제가 폭력적이거나 묵묵부답인 남편 때문이 아니라 월경 전 증후군이나 공의존증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한다면 그녀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 어떤 손해가 있을까? 만일 한 남성이 여성은 선천적으로 관계, 감정 그리고 돌보는 것에 더 뛰어나다고 믿고 싶어한다면, 그에겐 어떤 이득이 있을까? 어떤 손해가 있을까? 만약 사회가 여성은 호르몬과 임신 때문에 남성보다도 신임할 수 없다는 관점을 장려한다면 작업장, 법, 정치에서의 평등은 어떻게 될까?

- 어떻게 하면 우리는 경험의 다양성을 획일화하지 않고 차이를 결함으로 바꾸지 않고 젠더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까? -> ① 차이를 영속 또는 감소시키는 외부 요소들과 맥락을 새롭게 강조하면서 바깥을 향해 보는 것. ② 안을 향해 보는 것, 여성과 남성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식,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1) 맥락의 권력… 그리고 권력의 맥락

- 어린 나이에도 성차를 보이며 기본적 인성의 차이로 바라보는 관점에 대항.(아이의 사생활)

- 엘리노어 맥코비Eleanor Maccoby

: 아이들의 행동은 함께 노는 아이의 성별에 따라 다르다. 세살배기 아이들 사이에서 여자아이들은 서로에게 거의 수동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남자아이들과 짝을 지우면, 여자아이들은 한결같이 옆으로 물러서거나 사내아이들이 장난감을 독점하게 내버려 둔다.

: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말은 대체로 이기적인 기능을 하고 자기 세력권을 세우거나 보호하는 데 이용되는 반면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대화는 사회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결론 내린다.

-> 사람들의 관심은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가? 남성 지배적 성인들의 생활을 모방하는 것일수도 있고 생물학적 기질의 평균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 사회는 그 차이를 장려하고 강화하여 아동기에서 성인기에 이르는 동안 점차적으로 그 간격이 넓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 우리는 함께 일하거나 놀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의 젠더에 우리의 행동과 인식을 맞춤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젠더를 “행위한다.” 남성과 여성의 고정된 특성을 지닌 것이 아니며, 기대하는 특성과 행동은 그 사람이 속한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 남성과 여성은 모두 때때로 “여성스러운” 방식(아이를 돌볼 때, 친구를 달래줄 때)으로 행동하며, 이따금씩 “남성스러운” 방식(승진을 놓고 경쟁을 할 때)으로 행동한다.

-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맥락 속에서, 유연성이 있는 능력으로 봤을 때 “본질”에서 벗어남.

- 여성과 남성의 문화는 다르지만 동등한 것이 아니다. 문화의 차이가 아닌 권력의 차이.

 

- 로빈 라코프Robin Lakoff, 『말하기의 권력 : 언어의 정치학』

: 남성의 언어는 힘있는 자의 언어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언어는 직설적이고 정확하며 간단 명료하다… 그것은 현실에서의 괄목할만한 변화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이다. 여성의 언어는 생존의 한 방편으로  그리고 경제적, 물리적, 또는 사회적 현실을 통제할 필요 없이 그저 화려하기만 한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말하깁다는 듣는 것이, 항의하기보다는 동의하는 것이 필요하며, 섬세해야 하고 간접적이어야만 하며 위험한 발언은 그 파장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앙심을 품지 않게 만드는 범위 내에서 해야만 한다.

=> 언어의 특성은 권력의 불균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 “종속의 언어”, “지배의 언어”

- 실제 언어 사용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어떤 성별과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ex) 여성들의 의문문, 방어적 용어들은 남성들과 대화할 때 더 효과적이고, 같은 여성 사이에서는 짜증을 유발한다.

- 언어의 기준이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타자화되는 것. -> 남성과 다른 여성의 언어는 무능력하게 여겨지며, 여성이 남성의 방식으로 하려는 시도는 교만한 짓, 못된 성격의 표시로 여겨진다.

: ex) 마다가스카르의 사회에서는 정보를 모을 수 있는 능력이 권력의 표시, 남성 화자들이 여성의 화법을 쓰고, 여성들은 직설적으로 요점만 말한다. -> 여자들은 의사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짐.

 

2) 이야기의 권력 : 서사로서의 젠더

- 조지 거브너George Gerbner는 인간을 “이야기를 하는 유일한 동물, 그리고 자신이 한 이야기에 의해 사는 동물”이라고 정의하였다. -> 세상을 이야기를 통해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 남성과 여성이 자기 삶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의 차이

: 고전적 서사 속의 수동적 여성과 능동적 남성의 모습이 여성의 정체성과 꿈에 미치는 영향.

: 남성들의 이야기의 서사는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지배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모험에 대해 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일지라도 모험, 임무, 목표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남성 운동 선수가 쓴 전형적인 자서전에는 섹스 편력, 여성에 대한 무시, 허풍선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유치한 성격적 결함이 마치 명예와 비범함의 상징인 듯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것은 남성의 특성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만함과, 겸손함이나 반성이 없는 무감각의 조화는 성공한 매력적인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다.” 메릴 마코

-> 여성 명사가 그와 같은 서사 구조로 자서전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똑같이 경쟁적이고 자기 도취적으로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여성들의 이야기는 남성들이 자신의 경력을 위해 생활을 희생시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여성들은 같은 이야기를 정반대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문화적 서사와 상징

: 자신의 도전과 운명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떤 이미지가 사람들을 부추기고 어떤 것이 사람들을 가로막는가? (대표적으로 예술가의 고난과 군인의 용맹)

: 어슐러 르 귄, 남성들은 예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의 서사. -> 예술을 가사 노동이나 가족과 병행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고 지적. 그런 서사 속에는 여성의 경험이 글쓰기를 향상시킬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 전쟁은 대표적인 남성의 이야기 -> 걸프전의 남성 군인의 이미지속에서 60%의 여성 군인을 설명하기 위해 자식과 결부시킨 서사를 생성함. ‘엄마는 전쟁터로 간다’ -> 사실 부모인 남성 군인들의 비율이 더 높음.

 

- 인간 행동을 유발하는 이야기로 권력과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점점 사라지고, 생물학적인 것과 심리 변화 과정이라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이야기가 선호되어 왔다. … 다음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우울증 - 산후우울증의 조건, 성공 - 왜 여성은 성공하지 못하는가)

=>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설명과 서사에 주의를 기울어야만 한다.

 

3) 이야기 선택하기 : 피해자, 생존자 그리고 비난의 문제

- 피해자의 집단 지지가 주는 도움은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계급성을 간과하고 동일하게 묶는 순간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망의 차이가 사라진다. 또한 모임에 참여해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피해자를 위로하지만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어린이를 무시하고 어머니를 비난하고 남성에게 학대할 권리를 주는 사회 체계 전체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 바로 그것이 이 사회가 그 이야기들을 그토록 좋아하는 까닭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 현재 조건과 환경의 문제들이 아닌 심리적 문제로의 환원이 가지는 위험성.

=>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피해자들이 서로를 위로함으로 나몰라라 한다는 점?

=>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정치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든다?

 

4) 다리(왜 다리인진 모르겠지만 결론 내용인 듯)

어떤 이야기가 유지되기 위해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그 이야기는 그릇된 것이다. 장기적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또는 잘못된 것을 실천한 것에 대한 대가를 개인이 치러야 하거나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미래에 대한 전망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협소하게 만든다면, 체계적으로 많은 사람의 배제나 학대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그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다.

여성은 관계를 만들고 애착을 형성하고 사랑하는 데 선천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여성은 다른 목소리로 말하고, 다른 사고 방식 또는 다른 도덕관을 가졌다는 매력적인 이론인 문화 페미니즘이 최근 들어 유행하는 것에 대해 내가 그토록 염려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 이러한 생각은 남자들이 집안일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남자들의 애정과 애착을 무시하고, 여자는 특정 종류의 일에 적합하다는 이데올로기를 인정하는 것이다. 가장 나쁜 점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 즉 노동을 인간화하고 아동 복지를 향상시키고 환경을 살리고 집단적인 무관심과 싸우기 위한 일에서 우리의 관심이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 우리의 특성, 기술, 행동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유연성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인식도 변한다.

- 대립적으로 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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