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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비군 훈련

어제 마지막 예비군 훈련 다녀왔다.  나는 전쟁과 무기에 반대하고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지지 고무한다. 하지만 그와는 또 별개로 해 준 것 없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 입대하는 것에 대해 별로 부정적이지도 않다. 총을 드는 것을 애국이라고 포장할 생각은 없지만 못난 나라의 못남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나가야 하는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 나쁘다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고 괴롭지만 그 길이 또 나의 민중됨을 알고 살아내는 길 중의 하나라고 거창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어제 새벽 여섯시 사십분에 눈을 떳다. 순간 몸이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훈련 소집 통지서에 붉은 글씨로 나와있던 훈련불참시 고발 조치함   문구를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세수도 안하고 전투복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전투복 상의 안에 티셔츠를 받쳐 입어도 불편하지 않을 땐 음 그래도 몸관리가 꽤 됐군 하는 생각에 순간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웅큼 잡히는 옆구리 살을 보며 내년엔 한 3-4kg정도 감량해야 되겠다는 맘을 먹었다.

 

세수도 안 하고 쌀쌀한 거리로 나섰다. 등교 길을 걷던 여중고생 몇몇이 힐끗 쳐다보더니 발걸음을 바삐하더라. 그래 뭐 아침부터 야비군 보면 재수가 좋을리가 있겠나 싶어 이해하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지하철 역으로 들어서니 여기 저기 예비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괜히 반가워 진다.

그렇다. 우리는 정예 예비군 '호국이'다. 그림을 보라 포돌이 보다는 훨씬 용맹스러워 보인다. 근데 갑자기 '그래 너희에게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있지만~' 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구파발 역에 도착해서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다. 저 멀리서 콩나물 시루처럼 예비군들을 태운 버스가 오는데 정류장에선 속도를 높여 지나쳐버린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지고 다람쥐 택시 아저씨가 호객행위에 열을 올린다. 요금이 얼마인지 물어보니 일인당 오천원이란다. 버스 타면 다섯정거장이데....여덟시 삼십분 까지 못 들어가면 귀가 조치 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사천원에 쇼부 쳐서 택시 타고 들어간다.

 

이차대전 당시의 미군의 주력무기였던 칼빈 소총을 지급 받고 입소식 준비를 한다. 광주 시민군들도 주로 칼빈 소총을 들었음을 생각하며 잠깐 담배 한 대를 폈다. 입소식이 끝나고 날이 쌀쌀한데 각개 전투 해야 된다고 일정을 읊어준다.

 

나를 포함한 고참 예비군들 몇몇이 우리는 정신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정신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한 끝에 통일관이라는 이름의 강당에서 2교시 또한 정신교육을 먼저 받기로 일정 변경을 얻어냈다. 주위 사람들 내게 박수를 친다.

 


정신교육에 나선 대대장은 자기는 육사출신이라고 자랑하더니 국방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소리를 한다. 그래도 북괴의 남침 운운하는 소리는 없다. 주변 4강이 문제란다. 여기 저기 엎드려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예 불을 끄라고 지시 하더니 북한산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북한산에 대해 구수한 설명을 늘어놓는다.(이 훈련장은 북한산 자락에 있다) 대부분은 아는  이야기 였지만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던 곳이 바로 북한산이라는 사실은 이 날 처음 알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나도 엎드려 잤다.

 

자다 일어나서 모의 시가지 전투 훈련을 했다. 조교 애들은 Band of Brothers에 나오는 데로 싸우면 된단다. 근데 BoB의 주인공들은 특수부대고 우리는 향방 예비군이다. 또한 우리가 십만 숫자와 무서운 정신력및 전투력을 자랑하는 북 특작부대와 맞서 싸워야 한단다. 모의 시가지는 홍제 지하철역 입구를 본 딴 곳이다. 디지털 조선일보 초청 칼 그로브 인텔 회장 초청강연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조교놈은 미군 철수하면 자기들 복무기간이 늘어난다고 선배님들은 절대 반미운동 하시면 안된단다. 그래서 나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조교들이 정치선전 했다고 국방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고 협박했다. 니 이름도 기억해뒀다고 쐐기를 박았더니 겁먹은 눈치다.

 

시가전 나면 정말 아비규환 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모의 시가지 전투훈련은 끝났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짬밥 값이 사천원으로 올랐다!! 식당 입구에는 서대문구 방의협의회가 이 식당을 운영하는데 절대 폭리를 취하지 않고 예비군들의 편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는 거짓말이 적혀있다. 내가 먹어본 사천원짜리 밥 중에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미료 미역국, 싸구려 김 외에 기억나지 않는 반찬 세가지가 딸려 나오는 짬밥이다. 그래도 배가 고파 그런지 술술 잘 넘어간다. 밥 먹고 나니 종이컵에 커피 믹스 담아 놓은 것을 삼백원에 판다. 그것도 사먹었다.

 

양지 바른 곳에서 또 잤다. 자고 일어나니 사격이다. 아마 내 인생의 마지막 사격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격장 앞에는 총알 한 발에 원가가 백구십몇원이라고 적혀있다.  사격장에 올라가니 그래도 좀 긴장이 된다. 총이란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기 때문에...

 

격발을 하는 순간 어깨를 때리는 반동이 무겁다. 마음을 비우고 방아쇠를 차례차례 당긴다. 몇 발이나 맞았을까는 역시 궁금하다. 표적지 확인을 하는데 일곱발이다. 역시 나는 신기의 사격술을 지니고 있나 보다.

 

의 포즈를 한 번 불끈 취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옆 사람 표적지에 다섯발이 들어있다. 나한테 한 발 쏘았나 보다. 훈련이 끝났다. 총기반납하고 신분증 받으면 집에 간다. 그래서 예비군들이 이 시간 만은 조교의 통제를 잘 따른다. 말 안듣는 사람 있으면 야단 치기도 한다.

 

부대 밖으로 나오니 관광버스로 나라시 영업을 뛰는 아저씨가 있다. 북가좌동은 이천원이란다. 갈등 안 하고 탔다. 훈련 전날 야상과 전투화를 후배한테 빌렸다. 통닭 사주면 갔다주고 안 사주면 안 갔다준다 그래서 통닭 사주는데 만원 들었다. 아침에 교통비 사천원(지하철값 빼고), 짬밦 사먹는데 사천원, 돌아노는 교통비 이천원. 훈련에 내 돈이 토탈 이만원이 들었다.

 

예비군 대대장이 입에 거품을 물면서 내년 국방예산이 GDP기준3.5% 넘겨야 한다고 떠들던 생각이 난다. 잠깐 마음이 흔들리다가 나는 예비군 훈련이 끝났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다 국방예산 증액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국민과 함께 일하면서 싸우는 예비군이라는 슬로건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국민과 함께 돈쓰면서 싸우는 예비군' 으로...

 

첨언: 진보 블로그에서 예비군 이야기 쓴건 내가 처음인 것 같다. 눈살 찌푸릴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컨텐츠 다양화에 복무한다는 생각으로 그냥 냅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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