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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2
    출소인사 - 가대위
    자유인

22명 최후진술내용

한상균 지부장외 21명 최후 진술

(2010. 01.18)

 

 

 

1. 한상균 지부장

 

피고 한상균입니다.

먼저 지난 여름 쌍용자동차 투쟁으로 인하여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겪은 평택 시민, 협력사 및

소방 경찰 공무원과 그 가족, 쌍차 전 사원 및 가족 모두의 아픔들이 빠르게 치유될 수 있도록

힘든 투쟁을 이끌었던 쌍차 지부장으로서 간절히 소망하옵고 진솔한 마음을 담아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더불어 병인 새해에는 모두가 더욱 건강하고 노동자들에게도 조금씩이나마

따뜻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상차 지부에서는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백기 투항만을 요구하는 사측에 의해 쌍차 노사관계는 실종이 되었고 강성 경영진에

의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면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는 공장을 지키고

대화를 통해서 함께 살겠다는 형도 있었고 너만 죽으면 우리는 산다는 동생이 함께 싸워야 되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처남과 매제, 동서간, 삼촌과 조카,10년을 같이 지낸 친목회원들까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경찰특공대에 쫓겨서 옥상에서 떨어진 형을 후송하기 위해 동생이 공장 안에 들어오는

소설 같은 비극이 우리들 눈앞에서 펼쳐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 외쳤던 것입니다.

 

소설 같은 비극을 만든 자가 누구입니까? 조합원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현장을 반이나 해고시킨다는 것이었습니까? 작지만 강한 회사를 식물인간으로 만들고

쌍차 독자 브랜드 개발에만 올인 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도 시킨 대로 현장에서 일만하는

노동자들의 죄란 말입니까?60명이나 되는 중역들이 회사에 있습니다.

그 경영진은 과연 무엇을 했습니까? 상하이차 완장을 차고 충성 경쟁을 한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자고 나니까 이제는 법정관리 연장을 차고서 유능한 경영진 행사를 하면서 참으로

어이없는 작태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차 신엔진 개발하라. 독립기금 보장하라.' 이러한 당당한 요구와 용기와 신념이

있는 중역 하나 없었던 것이 2009년 쌍차 슬픈 현실의 복판에 있었던 것입니다.

쌍차 사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해고자 아비를 둔 아들딸들이 학교에서 빨갱이 새끼라는 놀림을 당한 비참한 현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사람 자르는 저속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사람이 희망이 되어

경쟁력 있는 고용창출이라는 쌍용차로 거듭 나는 구조조정을 하겠노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쌍차 지부에서는 쌍차에 호적 하나만 남기고 회생하기 위한 모든 것들을 사측과 논의하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강제 선만 주장했을 뿐이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특성은 공격적 투자를 하지 않으면 미래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동안 신차 한대 없이 용케도 잘 견뎌왔던 것입니다.

구조조정의 댓 가로 과연 무엇이 이루어졌습니까?

 

쌍차 회생에 대한 장미 빛 청산이 제시되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도 어디로 지표를 찍어야 할지. 구조조정의 방점이 어디인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은 무슨 역할을 했습니까? C200에 대한 개발을 우리는 산업은행의 입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사측의 대표와 경영진들은 노동자 대표들에게 '절대 역사가 없다. 상하이에게 팔지 않았다.

기술유출을 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600억의 기술 거래한 것들을 최초로 폭로했습니다.

그 이후로 전 사장(최형탁)은 노조 대표를 찾아와서 천막에 찾아와서 '지부장 미안하다.

정말 할 말이 없다. 이미 7 26일 날 그 계약은 채택되었노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런 무법천지에서 우리 노동자들이 국가를 대신해서 잘못된 상하이 자본을 고소하고 고발했던 것이

그것도 죄가 됩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이라도 쌍차에 회생 자본이 적극적으로 투입되지 않다 라면 쌍용자동차는 제2의 제3의 사태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것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쌍차 지부는 위기극복을 위해 총회로 결정된 파업권마저도 한번은 포기했었고 또 한 번은 43일간이나

인내 또 인내 또 인내하면서 대화로 쌍차를 살려보겠노라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보겠노

라고 열정을 다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쌍차 도둑질한 상하이차 죄값을 물기 위한 고소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상하이차 범죄 집단에게는 처벌은커녕 11.2%라는 대지주 자격을

지어주는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상하이차 범죄 사실을 공중파 방송으로까지 우리 전 국민은 확인하였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투쟁은 소통도 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정부의

어느 집단도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울인 적은 단 한번 있습니다.

 

'그래 너희 노동조합이 말하는 것이 다 맞다. 그렇게 회사를 살려야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어 미안하다.이말 한마디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들이 먹고 튀기 한 달 전에

아니 하루 전날이라도 범죄사실을 확인시켰더라면 그들은 죄 값을 치뤘을 것입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쌍차 5000 조합원의 생존권 보다는 거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못내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국가의 그늘이 우리 노동자들한테 필요합니다.

요즘은 전 세계는 국가 정책의 1순위를 고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용을 지키지 못한 지도자는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함께 감내하면서 고용을 같이 지켜내고

20만 일자리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싸움에는 원인과 상대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법정관리가 아니라 파산 청산을 하더라도 이 나라 헌법에는 노사관계가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측은 법정관리라는 완장을 차고 노골적으로 대화를 거부하며 조합 활동까지

탄압했습니다. 세상에는 상식이 있는 것입니다.

5 8일 노동부에 정리해고를 신고하고서도 노동조합에 공문을 보내서 5월 한 달간 야간근무를

하자고 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이야기 입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투쟁을 탓해서 노조파괴 강경투쟁을 부추기기 위함이었고 노동조합 손발을 묶기 위한 의도적인

싸움을 걸었던 것입니다.

콘베어라인의 특성상 어느 한곳만 정지가 되면 생산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현장들을

부추기는 노동조합을 짓밟는 노사관계를 방해하면서 폭력을 유발했던 것들을 우리는 잊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측의 노조 파괴 행위를 막기 위해서 현장 사무실 곳곳에서 여기 있는 피고들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충돌에서 사무실 집기도 파손되고 경미한 부상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행위까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이런 사무실에서의 충돌은 강경 파업을 유도하기 위한 사측의 의도된 계획된

비열한 작태라는 것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5 26일부터 점거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8 6일까지 계속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강제 진압만 노골적으로 요청하는 사측은 대화란 볼 수 없었습니다.

2646명 감원 계획 중 1800여명이나 희망퇴직을 했음에도 사측은 도장공장 내부에 수면가스를

살포할 계획을 수립하고 백기 투항만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비폭력 싸움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도장, 조립공장, 생산설비는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면서 협정 근로자들을 출근하게도 하였으며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했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는 대화로서 이 문제가

풀려야 된다는 것들을 주장했습니다.

 

대의원 대회에서 점거파업은 이미 결의되어 있었습니다.

공장을 지키는 일이 곧 고용을 지킨다는 것들은 우리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있었던 현실이었습니다.

공장을 지키는 일 또한 별다른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밀리면 좁히고 또 밀리면 또 좁혀서 마지막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로 파업 도구를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소사실은 대포니 화염방사니 그 위험한 도구들에 대한 것들은 사용할

가치도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것들을 분명하게 본 법정에서 밝혀두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법정에 함께 있는 피고들은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구속되었습니다.

단 한 명도 그 동안 조합 간부로서 경험도 없고 조합을 위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이 집행부와 함께 했던 정말 순수하고 헌신적인 간부들이었습니다.

파업기간 중에 수도, 전기, 가스, 부식, 의약품까지 차단된 비참한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생활을

챙기는 것 마저도 버거운 싸움이었습니다. 힘든 일정 속에서도 욕심이 많은 지부장의 명을 받고

생산 설비를 지켜내기 위해서 밤잠을 설치면서 안전을 체크해야 했으며 조립 3라인 차제2라인

도장공장 내 외부에서 화재가 발생 했을 시 생명을 무릅쓰고 온몸을 던져서

대형 참사를 막아낸 것은 물론이고 생산시설까지 지켜낸 것도 사실입니다.

 

대 타협 후 일주일 만에 정상가동 할 수 있었던 것에 사측에서도 고맙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해왔던 것입니다.

용역 깡패를 앞세워 조립 시설을 파괴하고 도장 공장 전체가 고철 덩어리로 변하던 말던

작태에도 이 자리에 있는 피고들은 비상 발전기를 가동시키면서 그 엄청난 사회적 비용들을

막아냈던 것입니다. 이런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측의 비이성적 행위를 보면서 단순한 노사관계에서

쌍차 문제는 계속되는 것이 아니 다는 것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시범 케이스였고 마루타라는 것 또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재판장님께 호소 드립니다.

파업 투쟁에 대한 전권은 대의원 대회를 통해서 지부장인 제가 위임 받았고 매일 매일 급변하는

현장 상황에 따라  현장 순회를 하면서 본 피고가 직접 지도 집행했다는 것을 거듭

밝혀두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이외의 간부들을 파업 주도세력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온당치 않다 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께서 재고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8 6일 저는 조합원의 생존권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평택 경찰서 유치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삼복더위와 함께한 육신을 처음으로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내 몸에 그렇게 많은 멍 자국이 있는 것들을 처음 보았습니다.

제가 그러했는데 우리 조합원 동지들은 온몸이 제 몸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배가 찢기고 골절이 가고 정말 허리가 끊어지고 눈에 실명이 되었던 그런 아픔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가슴에 묻었던 동지들의 이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그날 밤의 시간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지구상 곳곳의 전쟁터에서 용병들에게 쌍차 노동자의 명함을 달아주고 공장을 지키라고

요구했더라면 그들은 과연 어찌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사태에서도 최류액 으로 가미된 주먹밥을 먹으면서 허기를 때우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쌍차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려 일하고 싶었었고 처자식이 기다리는 가정을 지킬 수 있다

라는 소박한 아내의 아빠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의 한 축인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당하고 노조가 파괴되고 완전히 이반당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면 과연 노동3권과 헌법은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난 과정 경찰도 입장이 바뀌어 해고자 신분이 되었더라면 과연 '사장님 고맙습니다.

그 동안 고마웠으니 잘 떠나겠습니다.'하고 순순히 떠날 수 있었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법정에서 호소합니다.

피고 한상균은 쌍차 지부장으로서 당선될 때부터 5200 조합원을 위해서 온몸을 던질 각오와 결의가

있었습니다.

현행법에 범죄사실이 있다 라면 당당하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은 지도 집행을 직접한

지부장에 있습니다.

상집 간부들을 매도하지 말아 주십시오.

가정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대타협 정신에 입각한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한일동 사무국장 (요약)

여기 계신 재판장님을 비롯해서 앞에 계신분들한테 묻고 싶습니다.

저희들 최악의 조건에서 어렵게 공장을 사수하면서 특히 생산설비 저희 간부들 지켜냈습니다.

저희들 8 6일 날 눈물을 머금고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대타협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일방적으로 저희들 얻어맞고 있습니다. 집 나온지 일 년 넘게 된 간부들 수두룩 합니다.

정말 가정이 그립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아버님 올해 팔순을 넘기시고 어머님 또한 팔순을 넘기셨습니다. 정말 법 없이도

살 자식이 이렇게 몇 개월째

있는 것을 보고 식사도 전혀 못하시고 지병이 악화되어 하루빨리 자식이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 대학을 입학한 큰아이가 있습니다.

또 고3이 되는 둘째 아이가 있습니다. 정말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에 있습니다.

또한 사춘기 때 아빠가 함께하지 못해 애들이 심적인 고통이 상당히 심하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들 이렇게까지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사랑하는 자녀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밖의 할 이야기는 많습니다만 내일 서면으로 제출하겠습니다.

 

 

3. 김득중 조직실장(요약)

 

저는 창원공장 직장으로 있던 조합원 한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조합원은 현대자동차에 다니다가 경력사원으로 입사해서 입사 15년 동안 일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점거파업 이틀 전에 본인이 해고 대상자라는 것을 듣고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무작정

평택공장에 올라왔다 합니다.

올라와보니 그 동안 본인이 했던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서 동지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서

쓴 소주를 혼자 마시고 있었습니다.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 친구야. 너도 속상해서 사람들과 소주 마시는데 13년 동안

막일한 사람도 있다. ! 도대체 해고 기준이 뭐냐' '모른다'고 했습니다. 회사는 점거파업에

참여하면 해고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1300여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

모였습니다. 밤마다 술렁였습니다.

이렇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77일간의 공장점거 파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저와 조합원들은 회사의 위기를 조합원들에게 전가시키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비인간적 행위를

경멸했지만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고 사회단체 종교 정당까지 지지와 연대가 이루어지었기에

저희들은 공장만 사수하면 정부의 개입과 사측의 교섭력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 기대 속에서 우리 조합원들 정말 훌륭하게 스스로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조합간부들 수없이 쏟아지는 조합원들 의견 요구 해결하느라고 정신 없이 뛰어다녔습니다.

 

저는 검사 공소 자료에서 사실 그대로 진술하였습니다.

검사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폭력행위만 추구하면서 조직실장이 모른다니 말이 되냐고 했습니다.

저는 모든 집회에 사회를 봤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집회와 촛불 문화제 준비와 사회를 봤습니다.

저 역량 부족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6 26일 사측 진입 과정에서 흥분한 조합원들에게 저는 비폭력을 외쳤습니다.

그날 우리는 뺏겼어요. 그 책임과 저의 행동에 대해서 수많은 조합원들이 질타를 했습니다.

저는 그날 간부까지 사퇴까지 고민하면서 혼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검찰은 도장 공장 옥탑에 엠프를 설치하고 조합원들에게 상황을 전달시키고 지휘했다고 하지만

제 엠프 소리는 공장과 정문에서 밖에 들을 수 없습니다.

저는 7월 중순 이후에 그 옥탑에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방송으로 정문 앞 연대와 가족들에게 공장 안 조합원들의 생각을 알렸고 사측과 정부에게는

원만한 타결을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잊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동료의 아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있던 날 회사는 오필승 코리아를 계속

틀었습니다. 당신들이 10 20년 함께 생활했던 동료로 왔다 라면 제발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그러던 저희들한테 폭도로 규정했습니다.

경찰과 수사대가 침투하기 시작했고 옥상에 있는 저에게 수많은 조합원들의 급한 무전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옥상위로 날아오는 볼트 너트를 피해서 조합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헬기에서 수없이

떨어지는 최루액을 피해서 뛰어다니는 조합원도 보았습니다.

물 대포를 온몸으로 막는 조합원도 보았습니다.

밤마다 경찰들이 고성을 지르면서 잠을 못 재웠습니다.

 

며칠 밤을 못 잤는지 모릅니다.

단전 단수 가스 차단 주먹밥으로 한 달 가까이 끼니를 때웠습니다.

진물이 나고 발이 썩어 들어가는 조합원을 봐도 치료조차 못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비참한 현실에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정문 앞에 연두색 옷을 입은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당당한 아빠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저와 조합원들은 공장을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짜 두렵고 무서웠지만 물러서지 않고 버텼습니다.

 

재판장님

이 자리를 빌어서 당시 부상당한 경찰 공무원 분들께 위로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공장을 방어했던 노동자들이나 가족의 생계와 명령에 의해서 진압을

시도했던 경찰이나 저는 모두 쌍용 사태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그 원인과 책임이 하나 있다면 경영진에 있고 정부와 산업은행에 있습니다.

모든 책임을 현장 조합원들에게 전가시키면서 조합원들은 분노했고 가족의 기회와 삶과

생존권을 위해서 투쟁을 했습니다.

저는 조합원들과 함께 했던 생존권을 지키고 함께 투쟁했던77일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치겠습니다.

 

 

4. 고동민 문체부장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쌍용차 투쟁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자에게 모든 고통을 전가하려는 모든 것들에 대한 투쟁이었습니다.

또한 일자리를 지키는 것만이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소박한 가장들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였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라면 임금삭감, 복지축소, 신차개발을 위한

기술, 일자리 나누기등 노동자들이 감내하기 힘든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라고 말해왔습니다.

또한 회사 측이 주장했던 비용절감의 문제라면 무급휴직을 포함해서라도 회사 회생에

함께 가자라고 힘차게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경영자들은 10, 20년 혹은 평생을 이 땅의 발전을 위해 땀 흘려왔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몰았습니다.

 

저는 이 투쟁이 이다지도 힘겹고 길게 간 이유는 여기 앉아 있는 파업주도세력이라 불리는 지도부의

지도력이 뛰어나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있지도 않은 외부세력이 노동자들을 선동해서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고가 싫다. 생계가 막막하다.

' 앞으로 살길이 막막한 우리 노동자들의 마음을 이 나라 정부와 쌍용차 제대로 읽지 못해서였다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여름 살기 위해서 죽을 만큼 달려들고 살기 위해서 동료를 버리고 살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될 말

인간 이하의 짓거리를 하는 자들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게 적어도 어떤 것인가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기 위해서 죽을 만큼 달려들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다른 선택도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재판장님

쌍용차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 중에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유령처럼 도시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어느 누구도 그 노동자들을 책임져 주지도 않습니다.

정착 책임질 당사자들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라도 이 나라 정부와 자본들이 더 이상 노동자들을 길거리를 내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길거리에 내몰린 노동자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바란 건대 살기 위해서 목숨을 내걸었던 노동자들의 투쟁을 불법파업으로 폭력파업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바랍니다.

그 행위들은 한 면의 사실일 뿐 진실은 그 행위 이전에 존재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될 것은 당면의 사실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가장들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 부탁

드리는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5. 임창호 조직부장

 

저는 노동조합 전 간부였습니다.

비록 해고자는 아니지만 정확한 기준이 없는 정리해고에 대해서 수 천 명의 노동자가 공장 밖으로

쫓겨나는 게 싫었습니다.

저는 간부로서 그분들을 뒤로하고 공장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이 간부였더라도 그분들의 가정을 지켜드리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서 집에 계신 어머니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또한 아이 셋을 혼자 힘들게

키우고 있는 저의 아내한테도 미안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이 사태로 인해서 피해를 보신 모든 분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여기 있는 구속자 동지들을 비롯해서 모든 구속자 동지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이상입니다.

 

 

6. 서민식 조직부장

 

물론 잘못이 있으면 죄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상입니다.

 

 

7. 최영호 조직부장

 

8 6일 쌍용자동차의 대 타협 속에서 저희가 첫발을 디딘 곳은 평택 유치장이었습니다.

차디찬 바닥에서 동료들과 같이 우리가 정당한 싸움이었기에 우리 금방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구치소로 이동을 하고 그 안에서 독방에 혼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생각은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되는지. 정정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

어느 누구라도 나였다면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생각이 바뀌더군요.

나대신 내 옆에 동료가 대신 살았으니까 이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으면 안 될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걸 다 포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이것마저도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저의 큰 딸이 얼마 전에 면회를 왔습니다.

10분 동안 얼굴을 쳐다보며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눈물을 흘리는데 아버지로서 아빠로서

한집안의가장으로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잘났다고 아니면 못났다고 해서 많은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실이 있는 만큼 재판장님께서 저희 여기 구속되어있는 동지들에게

많은 선처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8. 강환주 조직부장

 

앞의 내용들과 반복되어 할 말 없습니다.

 

 

9. 정병기 조직부장

 

할 말 없습니다.

 

 

10. 서진철 노동안전보건위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번 쌍용자동차 사태로 인하여 재판장님과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부분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이번 쌍용자동차 사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기조로 인하여 국가 기반 산업인 자동차 산업인 작지만 강한 회사

쌍용자동차를 중국 상하이 먹튀 자본에 매각시킨 대한민국 정부와 투자약속 불이행한 중국 상하이

먹튀 자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상하이 먹튀 자본은 쌍용자동차 인수, 신규자본투자, 신차개발, 차량생산, 판매 영업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고 불철주야 수 십 년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일구어오고 가꾸어온 삶의

터전의 기술을 약탈해 가는데 혈안이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작지만은 강한 회사 쌍용자동차가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현시점까지 국면에

처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인은 1994년에 쌍용자동차에 입사하여 쌍용자동차를 천직으로 알고 현장에서 묵묵히

하였습니다. 78살 노모와 처와 12녀 중 가장으로서 또 10년 지기 20년 지기 직장 선배후배

동료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노모의 자식으로서 맡은바 본분과 책임과 의무를

조속한 시일 내에 할 수 있도록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 소중한 판결 부탁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11. 강동환 후생복지실장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이 파업 시작했지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친 본사 및 협력업체 직원과

6명의 목숨을 잃은 가족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리겠습니다.

 

 

12. 최기민 정책실장

 

먼저 쌍차 파업으로 인해서 시민과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쌍차 파업이 원인과 본질이 가려진 채 노동자들의 폭력성만 부각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상하이 경영 5년 동안 신차개발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중국 현지 모델 개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노동자들 2000여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정든 일터를

떠나갔습니다.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항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서 노동 강도는 더욱 더 강화되고

반복되는 휴업과 임금동결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금속 중앙의 지침도 무시하고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임금협상도 타결했습니다. 그리고 노사화합 선언도 했습니다.

 

이런 것을 뒤로 한 채 중국 상하이 자본은 기술만 빼먹은 채 중국으로 튀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또다시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것에 대해서 조합원들은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은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국 자본의 철수를 반겼고 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거듭나자 라고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사람 자르는 방식의 구조 조정만을 반대했을 뿐입니다. 노동조합은 전국에 미칠 노동계에 미칠

영향에도 불구하고 양보 안을 제출하였습니다. 당시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경제정책이었던 일자리

나누기 Job Sharing 제시를 했습니다.

 

4개월 동안 밀린 체불임금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회생의 한 주체로서 천억을 담보 하겠다

제시했습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고용을 책임지기 위해서 연간 12억을 투자하겠다.

이 모든 것들을 양보 안을 제시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 경영진은 우리 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와

채권단 경영진들이 2646명에서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노동조합에서 교섭을 담당해 왔습니다. 년 초 부터 수많은 회사 관계자들과 만남을 해왔습니다.

그 회사 관계자들 한상균 지부장 보고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낼 정도였습니다.

쌍용자동차는 그 동안 비리로 얼룩진 노사관계로 전국의 핫 이슈가 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상균지부장은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올바른 회생의 한 주체로서 회사 경영자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초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사람 자르기 방식의 정리해고만은 말아 달라'

이거였습니다. 저는 교섭 담당자로서 정부 정치권 지자제 관계자들도 수없이 만나왔습니다.

 

초기에 노동조합에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던 정부관계자 국회의원 지자제 관계자들도 이미

이미 2646명에서 2000여명이 나간 상태 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 라고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중재안마저도 거부를 했습니다. 일개 실무 교섭을 담당하는 저로서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구속되고 난 후 한국일보에 난 박영태 관리인의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지부장님과 3가지 약속을 했다라고 하더군요.

 

첫 번째 인명피해는 없도록 하자.

두 번째 생산시설의 파괴는 없도록 하자.

세 번째 노사합의로 마무리하자.

 

그렇습니다.

지부장님은 우리 간부들 매일 아침 하는 간담회에서 인명피해 없도록 주의를 시켰고 생산시설이

파괴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부 조합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이 모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손배 가압류와 구속

더 많은 고통들이 저희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8 3일 날 저희들이 2 3일에 걸친 마지막 끝장교섭이 회사 측의 일방적인 교섭결렬로

마무리된 날 아침 일찍 장모님이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밖에 경찰 관계자로부터 우리 노조 간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최기민 정책실장 장모님 돌아가셨다는데 나갈 때 조심해라.

왜 거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실무교섭을 담당했던 사람이 검거가 된다 라고 한다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그랬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산자였습니다.

하지만 년 초 부터 이끌어온 실무 교섭 버리고 나 혼자 살자고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교섭 막바지에 어떻게 해서든지 교섭으로 평화롭게 마무리 짓고 싶었습니다.

아마 여기 있는 우리 간부들 모두가 간부로서 책임감으로서 저와 똑같은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있지 않았나 합니다.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상황 속에서 우리 노동자들에게

해고라는 것은 곧 한 가정의 파탄을 의미한다는 것을 조합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마지막 몸부림을 선택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최류탄을 맞고 전기가 끊기고 식수가 끊기고 그런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심정은 아마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앞서 말씀 드린 모든 상황 참작하셔서 선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3. 김정운 교선실장(요약)

 

먼저 쌍용차 문제로 인하여 쌍용차를 사랑하고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물질적 심적 심려와 걱정을

끼쳐 드린 점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다만 쌍용차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의 근원을 덮어둔 채 일방적 정리해고를 우리 노동자들은

동의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제조업에 사람이 자산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자르는 방식으로 회사를

쉽게 떠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노동자 소식지를 편집하면서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정리해고 없이 함께 살자 했던 것입니다. 경영참여를 요구했던 것도 아니고

임금인상을 요구했던 것도 아닙니다. 복지증진을 요구했던 것도 아닙니다.

일자리를 잃어 생존권을 잃게 되는 것은 막아달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 임금을 삭감하고

모든 것 해고만 안 시키면 다하겠다는 뜻으로 우리의 의지를 회사와 정부와 국민들께 눈물로

호소했던 것입니다. 지금 많은 조합원들은 정리해고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가 다시 돌아가서 일해야 하는 쌍용자동차도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하루빨리

정상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쌍용차 안에서 다시금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이곳에 들어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에서 편지가 오고 있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인 큰애가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눈이 와도 아빠가 없어서 눈사람도 못 만들고 눈싸움도 할 수 없어서 싫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낯 설은 구치소란 곳에 처음 들어와 내 자신을 뒤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노사 대 타협이 조금 일찍 이루어졌으면 하는 솔직한 바램도 있었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는 국가권력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는 대화로서 노사 대 타협을 이루어냈습니다.

여기 있는 노동자들이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 한 가장의 가장으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이 사회의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부탁 드립니다.

 

 

14. 김재환 재정실장

 

우선 저희들 투쟁으로 인해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들 투쟁이 77일간 이루어졌습니다.놀랍고 대단한 일입니다.

저희들 또한 믿기지 않은 일입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 투쟁을 노동조합이

계획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개입해서 이렇게 커졌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노동조합이 준비하고 계획했다면 외부에서 개입되었다면 최루액이 번벅이 된 주먹밥을

먹었겠습니까? 씻지 못해 피부병이 낫겠습니까?

 

지난 쌍용차의 투쟁에서 알 수 있듯이 파업을 압도적으로 결의하고도 파업대오는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노동조합이 아무리 파업투쟁을 이끌어도 투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쌍용차였습니다.경찰과 검찰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계획된 사업 의도된 투쟁이었다면

아마 진작에 스스로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쌍용차의 파업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77일 동안 강고한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이 왜 해고되었는지에 대한 단 한마디도

설명해주지 않는 사측에 대한 분노, 배신감, 나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노동조합이 제시하는

함께 살수 있다는 방안에 대한 믿음이 77일을 흐트러짐 없이 강고하게 유지했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그 열기는 노동조합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갔습니다.

 

단전, 단수, 부식 차단, 가스 차단, 의료진 진입 차단의 사측이 자행한 불법적 폭력에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이탈자 없이 77일을 버텨낸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 영웅이 되기 위한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만 살기 위한 투쟁도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와 회사가 함께 살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함께 살자 라고 제시한 노동조합의 안에 대해 많은 질타가 있었습니다.

굴욕적인 안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해고만은 막아보자 라며 간절한 심정으로 제시한 안이었지만

사측은 인원정리만이 살길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쌍용 이라는 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를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입니다.

소비자가 죽으면 기업이 살 수 있겠습니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또 있습니다.

쌍용자동차에 중국 상하이이라는 조직이 들어와서 기술을 도둑질해간다고 몇 년간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결과는 상하이라는 도둑은 도망갔고 국가는 이를 방관했습니다.

'도둑이야'라고 외친 노동자만 탄압하고 있습니다.

또한 쌍용차를 이 지경으로 파탄 낸 책임자를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한 길거리에

내몬 책임자들은 처벌하지 않고 함께 살자고 회사와 노동자를 함께 살리고자 한 노동자만을 처벌하고

있습니다.이 또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말했던 도둑을 잡고 그 도둑과 내통한자를 조금이라도 빨리 처벌했다면 6명의

동료와 동료의 가족을 먼저 보내지 않아도 되었고 77일간 그 처절했던 투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

 

저도 정리해고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책임져야 할지 막막합니다. 저와 같은 많은

정리해고자들 또한 무급휴직 자들 그리고 징계해고자들이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가슴을

조아리며 생계를 걱정하고 있답니다. 그분들 하루빨리 직장을 구해서 그분들 가정에서 다시

돈 소리가 나오길 기원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하고 마치겠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났던 글이 생각나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사회의 민주화 수준을 알려면 그 사회가 노동조합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보라'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아서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15. 이창근 기획부장

 

그 동안 쌍용자동차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얘기를 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노동조합 차원도 그랬고 상급단체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저희들 목소리를 법정에서 화답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 싸움 하면서 여기 개인들이 간부들이 자신의 얘기를 소중한 얘기를 이렇게 하는 공간이

법정에서 유일하다고 하는 것이 참담할 뿐입니다.

피고인 신분으로서 법적 지식은 없지만 법을 공부한 분 앞에서 알량하게 말씀 드려 보자면

무죄추정의원칙에 대해서 한번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피고인들은 선고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습니까?

노동조합에 대한 보수일간지들의 보도가 어떻습니까? 판사님도 아침마다 조중동을 보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설에서 기사에서 오피니언에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조합을 폄훼하고 낙인 찍고 있습니다.

이미 여론 전에서 우리를 여론재판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 받지 못하는 뼈아픈 현실입니다.

1 9일 날 법정관리를 하면서 독일 슈피겔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5 8일 노동부 신고를 하면서 뉴욕 타임즈 기자가 질문한 바가 있습니다.

'도대체 한국의 언론은 지적만하고 왜 질문하지 않는가. 상하이 자본의 잘못된 매각을 지적만 하고

저지하지 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보수신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7월 중순 그렇게 싸움이 한창일 때도 그렇게

물었습니다.

'상하이 자본에 대한 어떤 처벌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그렇게 묻고 있습니다.

적어도 외국 언론에서는 보수건 진보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쌍차 상황을 보도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조중동을 비롯해 보수언론들 어떠했습니까?

소위 8 5, 6일 날 폭력적 장면을 AP AFP에서 보도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의 국경이 떨어지고

한국의 이미지가 실추하고 경쟁력이 하위에 있다 라는 아무런 근거 없는 그런 폄훼를 일삼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향에 있는 친구가 깜짝 놀라서 서신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노동자들 잘리는데 해고 방지하기 위해서 아이들 미래 걱정을 위해서 하는 줄 알았더니만

빨갱이였더구나' 신문보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 정확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초기에 점거농성 풀고 여론조사 어떠했습니까?

70권의 이념서적이 나오고 '주한미군 철수' 딱지가 붙어있는 이런 빨갱이 간첩들 몰아 부쳤습니다.

공소장 어디에 봐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이미 여론재판에서 죽었습니다.

 

저희들 목숨이 두 개입니다. 하나는 육체적 생명이 있는 것이고 하나는 정치적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게 저작거리 짓밟듯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파업 이끈 사람들 여론들이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균형한 재판을 저희는 받고 있습니다. 당부 드립니다.

적어도 입법부 사법부가 행정부가 분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이 아무리 공권력 투입해서 살인이나 일삼고 있더라고 제발 법원만큼 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노동자들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해 줄 것으로 마지막으로 믿고 싶습니다.

만약 그것마저 법원이 지켜주지 못한다면 몇 년 뒤 초등학교 입학할 아이에게 삼권분립이라고 어떻게

감히 아비로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그것만큼은 지켜주시기를 당부 드리겠습니다.

 

모두 진술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현행법 저촉되는 것에 대해서 피할 생각 없습니다.

다만 무리한 여론 재판에 대해서 막아주셔야 합니다. 지난번 왼쪽에 보시는 자료를 보고 검찰이

제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변호인이 특정부분만 편집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말 맞습니다.

점거 파업 이후에 우리 국민들이 봤던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이 볼트만 쏘고 노동자들이 싸움을

하는 것 그것만 보다가 실제로 노동자들이 맞는 장면을 보았을 때 얼마나 불편했을까?

측은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었습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서 이 재판이 이끌어져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제 밤잠을 못 자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이 법정에서 나에게 주어진 몇 분 동안 이렇게 말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연 이것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는 것은아닐까? 많이 두려워하고 겁냈습니다.

 

짧게 하고 앉겠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 많이 쓰지 못했습니다.

입이 보살이라고 그 말이 또 5 27일 엄인섭, 611, 7 20일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공장이

거대한 죽음의 무덤으로 바뀔 까봐 함부로 쓰지 못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죽어 나자빠지는 것을 평생 살면서 그렇게 단 기간 내에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손배 가압류로 몇 백억씩 청구하고 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2010년 만큼은, 2011년 만큼은 더 이상 쌍용자동차 해고로 인한 운명을 달리하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희망 가집니다. 그나마 희망 가집니다. 법원을 그래도 믿기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재판 정치몰이로 정치적 판단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앞으로 수많은 사업장에서 앞으로

수 많은 갈등하는 정리해고 사업장에서 또다시 콘테이너 박스를 태운 경찰 특공대 진압을 명령하는

그것을 인정하는 그것을 사인하는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고 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문제 총체적 입체적으로 봐주셔야 합니다.

저희들 눈물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이 시대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를 향한 힘겨운 한발 한발입니다.

마지막까지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법원만큼은 믿어야겠습니다.

노동자들 믿을 곳 아무 곳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내복을 입고 있습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겨울이면 내복을 입고 그 다음 5월 달 까지 내복을 벗지 못한 함께 살던 그 형이 작년 5월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알량하게 추위 안타려고 내복을 입고 이 법정에 서 있습니다.

재판부의 이성적 판단을 기대합니다.

이상입니다.

 

 

16. 조만희 대의원

 

저는 쌍용자동차에 입사한지가 16년이 된 것 같습니다. 회사 측에서 관리자 역할도 해봤습니다.

관리자 역할을 하면서 회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서 직장이라는

명패를 떼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대의원에 당선되어 쌍용자동차의 노동조합에 함께 했습니다.

살자고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보고 나가라고 합니다. 저는 나갈 수 없었습니다.

이유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라서 같이 함께 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동지들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한 집의 가장으로서 한집의 딸아이 자식을 둔 부모로서 그리고 지금껏 저 뒤에 와계신 저희 부모님

매번 재판 때마다 힘드시지만 나오셔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살아보겠다고 한 것 인데 모두가 죽었습니다. 재판부에서 엄중 한 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17. 정주용 조합원 선봉대장

 

우선 늦게나마 쌍용차 사태로 피해를 보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희망을 가지고 50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열심히 살면 가정이 행복하고 풍요로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도 20년을 근무하다 보니 몇 해 전 에는 대통령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기준도 없이 누구 하나 말해주지 않았지만 해고를 당했습니다.

팔순의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는 자식으로서, 나만 바라보는 평생을 약속한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

대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도저히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한집안의 가장이 해고되었다는 것은 단란했던 가정이 한순 간에 파괴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6.25 참변 용사로 국가유공자이신 팔순의 아버지는 위암 수술과 알콜성 침해로 인하여 치료 중에

계십니다. 간병인의 도움 없이 당신이 직접 식사를 하시다가 가스렌지에 불 끄는 것을 잊어버려

몇 번이나 아파트에 화재 사고가 날 뻔 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은 처가 간병을 하였었습니다. 제가 해고되고 구속되어 있다 보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고 월 백 만원 받는 직장을 나가느라 간병을 못하게 되어서 벌어진 일입니다.

큰애 역시 옥쇄파업 중에 제대하였으나 대학에 복학하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제대 후 아직까지 따뜻한 밥한 끼 같이 먹지 못했지만 제대 당일 날 제 머리를 깎아주면서 큰 아이가

한말이 귓전에 울립니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불행이 오냐고'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는 우리 가정이 저소득층으로 분리되어 학비와 급식비 까지 면제받게 되는 것에

충격을 받아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정리해고로 인하여 파괴 되었던 단란했던 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어찌 이게 우리 가정만의 문제이겠습니까?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쳤고 제발 함께 살자 라고 목 메이게 외쳤습니다.

가슴속 깊이 상처를 입은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희망의 끈을 놓으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난 2005년 정부 주도하에 쌍용차를 중국 상하이 차에 매각할 당시 노동조합은 기술유출과

투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반대했습니다.

또한 신규투자 약속은 접어 둔 채 기술유출에만 혈안이 된 상하이차를 고발 했을때 정부의 행동은

어떠했습니까?

정부의 잘못된 매각으로 인하여 쌍용차는 위기에 직면했고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정리해고라는 살인행위를 노동자에게 전가하였을 뿐입니다.

 

2000명의 노동자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해고를 당한 많은 노동자와 가족들이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피해를 입고 힘들어하고 있는 사이에 기술유출의 수혜자인 상하이차 관계자들이 중국으로

출국할 때까지 방치하다 시피 하여 단 한명도 처벌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습니까?

그런 정부가 살기 위해서 공장에서 절규하는 노동자들한테는 매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공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50년간 국민으로 살아온 이 국가와 20년을 직원으로 근무한 회사 그리고 가정도 못 지킨 무능력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뉴욕의 재판장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굶주린 손자를 위해 빵을 훔치다 잡혀온 노인에

게 법원은 벌금 10달러를 부과하였고 그리고는 노인이 빵을 훔쳐야 하는 도시가 되도록 내 버려둔 죄로

재판관 본인에게 10달러 법정 방청객들에게 50센트씩 벌금형을 내려 노인은 벌금 10달러를 내고

47달러 50센트를 들고 나왔다고 합니다.

저와 동지들 역시 이 재판에서 법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도부도 간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조합원들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인 인원이 바로

선봉대입니다.

적은 인원이기에 극히 미미한 일들만 하였을 뿐이지만 선봉대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너무 강한 뉘앙스가

느껴져 너무도 큰 고초를 겪었던 동지들과 지금 현재 겪고 있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관대한 선처 부탁 드리겠습니다.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18. 양형근 조합원 선봉대원

 

먼저 앞에 계신 판사님들이 쌍용자동차의 사태가 과연 왜 발생을 했고 이 노동자들이

왜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을 하시는지 아까 이 자료를 통해서도

변호사인 측에 서도 제출이 되었었지 만은 아마 법정관리 재판부에서 쌍용자동차 위기에 대해서

판단하고 있는 상황은 너무나 판이하게 틀립니다.

법정관리에서 재판부에서 판단하고 있는 쌍용자동차의 위기는 지지난해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내수판매부진에 의한 이것이 원인의 기축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제시가 되었듯이 쌍용자동차의 위기는 결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언론을

통해서도 발표가 되었듯이 불법으로 기술유출을 해간 상하이 자본과 또한 검찰의 정부의 멀쩡한

기업 파업기간임에도 불구하고 2002,2003,2004년 한해 5천억, 4천억씩 흑자를 내는 멀쩡한 기업을

전문가와 또한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각을 강행한 정부에 있습니다.

또한 채권단과 상하이차는 기술 유출에 대한 우리와 특별 약정을 맺었던 것에 대한 정부와 산업은행은 2006년에 회자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상하이는 기술을 맘대로 강탈해 갈수 있었습니다.

2006년에도 노동조합에서는 불법유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여 왔습니다.

 

검찰에 고소 고발을 하였었습니다. 하지만 기각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대한민국의 자동차, 조선, 반도체는 국가 기간산업 입니다.

국가 기간산업에 대해서 이 산업 기술 유출을 방지할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각되었습니다.

그나마 2007 4월 달에 그 법이 제정이 되어서 지난달에 불법 기술 유출에 대해서 발표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일 만해온 우리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 전가를 씌운 것에 대해서 우리 노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시킨 대로 일만 해왔습니다. 제가 이 회사 들어 온지 20년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내가 이 회사에서 왜 쫓겨나야 되는지를 이유를 몰랐습니다.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란 사망선고입니다. 과연 20년 다닌 내 직장을 나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 투쟁에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과연 사회적 정의가 살아있다 라면 이 재판부에서 사회적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는

그러한 재판이 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19. 김남수 창원지회장

 

7 5 4년 구형을 듣는 순간 저는 오늘의 이 법정이 용산참사의 법정이 아닌가 제귀를

의심하였습니다. 22명의 피고인과 방청석의 동료들은 순간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무리 정당하고 절박하고 절실하였다 하더라도 사람을 상하게 하고

법을 위배한 점 여기 22명 모두가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고 사회적 약자들을 처벌할 때는 너무나

가까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유학생들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이 나라 공권력에

도전할 때는 법은 너무나도 관대했고 중국 상하이 자본에 먹튀 행각으로 비롯된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에는 사람이 6명이나 사망해도 법은 모든 것을 불법으로 규정짓고 노동자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방패 막 아래 용역 경비와 회사 관리직들이 무차별 새총을 발사하고 정문에서는 경찰이 버젓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가족대책위, 연대단위, 노동자서민의대표, 정치인에게까지 밤낮없이 폭력행위와

위협을 서슴 치 않았습니다.

경찰은 제지는 커녕 불법 폭력을 묵인하고 방조한 것이 진정 법이 존재하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인지,

노동자들은 이 나라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도 없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 타협 이후 구속이 되어 유치장으로 경찰은 용역 경비와 회사의 불법행위 사진을 몇 백 장 가져와

보여주면서 반드시 검거해서 수사원칙에 따라 구속을 자신하였습니다.

과연 사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이라도 구속된 사실이 있는지 아니 경찰 조사에 소환된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적어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법은 보호받기에는 너무나 멀고

처벌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일방적인 희망퇴직을 발표하자마자 천명이 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정되었던 상하이 자본의

범죄적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쌍용자동차에 더 이상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맡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산자 비 해고자 입니다. 창원의 해고자 분들과 약속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해고자 신분을 벗고 가족이 기다리는 창원으로 복귀하자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지회장으로서 약속과 양심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삶은 한 순간에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손 대대로 물려주더라도 갚지 못하는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액이 청구되고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 못하고 법을 위배한 점 모두가 뉘우치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창원을 떠나 온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살고자 했던 생계 파업이었음을 감안하여 이제 모두가 사랑하는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선처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끝으로 저는 13, 10살 두 자녀가 있습니다.

제 자식은 힘없는 노동자가 아닌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회인으로 자라줬으면

고맙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20. 정병기 조직부장

 

먼저 쌍용차 파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함께 살고 싶었고 함께 회사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늘 회사 걱정 집 걱정 하며 살아온 그런 평범하고 순박한 노동자였고 월급쟁이 회사원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가족과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동료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 애정과 젊음을 바친 회사입니다. 돈을 더 받자고 한 것도 아니었고 더 잘살자고 한 것도 아닙니다.

예전처럼 그냥 회사 다니고 싶은 그 마음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보고 싶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들어가는 큰아들이 한창 아빠와 느끼며 놀아야 할 아들이 그 아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해 늘 풀이 죽어 있습니다.

막내아들 또한 TV에서 아저씨가 나오면 '아빠 어디 있냐. 아빠 보고 싶다'며 떼를 쓰며 운답니다.

심지어 어린이집에 가면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보면 아빠와 놀았다고 거짓말을 한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한 가정의 가장이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 가정은 또 다른 고통과 궁핍한 생활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재판장님의 따뜻한 선처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21. 문기주 정비지회장

 

올해로서 정상적이면 제가 쌍용자동차에 들어 온지 20년째 되는 해입니다.

아쉽고 안타깝고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20년 처음 쌍용자동차에 입사 했을 때 쌍용자동차에는 정비공장이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많은 차종이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차종이 생산이 되었고 지방에 하나 둘씩 직영 정비 사업소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 십 년 전만해도 복지적인 측면에서 많이 열악했기 때문에 회사에 쓴 소리도 못했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전혀 연고가 없는 낯선 양산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내려가서 여러 가지 설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처음으로 사람도 신토불이가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 지역사람들이 아니면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을 배제를 하고 사측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갈라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참고 지금까지 근무를 해왔습니다.

저희 A/S 요원들은 자동차 회사에서는 최전방에 서서 고객들을 직접 담당하는 프로 요원들입니다.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들이 모여서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만들다 보니 잘못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커버해주고 보완해주고 고객들을 만족시켜주는

그런 일들을 해왔습니다.

 

고객들 중에는 진짜 소위 말하는 깍뚝이 들이 저희 무쏘 코란도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차 트렁크에는 야구방망이 체인들을 싫고 다닙니다. 저희 제품이 하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비공장에 와서 체인을 꺼내 들고 칼을 꺼내 들면서 수리해주라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런 폭력들을 고스란히 당하면서 20년간 근무해왔습니다.

현장에서 일한 우리 노동자들이 그렇게 폭력배들의 위협에 공격에 시달려가면서 이 회사

만들어냈습니다. 지금까지 지켜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이끌어갈 관리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

이 쏙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자동차회사로서 규모가 그렇게 큰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전국의 직영 정비공장이 10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갑자기 한 개 두 개 불법적으로 회사 임원급 이사들이 슬그머니

퇴직해서 하나씩 챙겨갔습니다.

 

아까 아침에 영상으로도 보셨듯이 자동차 관리법에는 공장의 일부나 전체를 외주를 줄 수 없도록

못이 박혀 있습니다. 그것을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불법을 저지르고 불명예 퇴직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비사업소를 챙겨갔습니다.

우리 A/S 요원들은 최전방에 서서 어떻게 하면 이 쌍용자동차를 위해서 고객들에게 만족되는

서비스를 보여줄 것인가 노력했습니다. 지난 2004년 중국 상하이 자본한테 쌍용자동차를

팔아 넘길 때 그때 정비사업소 쌍용에 남았습니다. 그것이 지난 8 6일 때까지 입니다.

 

그러나 09년 인간적으로 회사가 정리해고를 발표하고 77일간 생존권을 위해서 전국에 있는

우리 조합원들이 평택에 모여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현장에서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씩 지방에 흩어져서 근무하는 우리 조합원들이 고객들의

폭력에 의해서 매일같이 욕을 먹고 뺨을 맞아가면서 지켜온 이 회사가 누구의 잘못에 의해서

이런 결과를 맞이했습니까? 쌍용자동차의 사태는 분명히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미리 보고 원인 분석을 해야 되는 것이 맞다 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어떤 동지가

이야기 했습니다.

중국 상하이 자동차한테 매각할 당시 저희 쌍용자동차는 국가 기간산업이었습니다.

국가에서 지정한 디젤 차량을 만드는 지정회사였습니다. 또한 그 때 당시는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있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국가가 쌍용자동차를 관리하는 것이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산업은행이

중국으로 매각을 서둘렀고 또한 안정장치로 중국과 체결한 내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온 거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있으면 분명히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인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 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법전에는 분명히 이렇게 써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지금 이 순간 진짜로 그 말이 맞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결과로만 따져서 우리 노동자들이 모든 것을 불법적으로 이 사태를 이끌어왔고 그렇게 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제가 20년 동안 근무하면서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쌍용자동차 사랑했고 또 앞으로도 사랑할 것입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잣대를 들이 대면서 그 결과를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잘못한 일이 전혀 없다 라고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서로 합의가 되면 묵인하고 넘어갔습니다.

그것이 관례였고 그렇게 해왔습니다.어렵게 어렵게 8 6일 날 노사가 합의했으면

그 내용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아직도 우리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4개 남은 직영 정비사업소 중에 또다시 3개를 불법적으로 매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 있던 조합원들을 전부다 해고 또는 부산에 있든 광주에 있든 살아남은 조합원들은

전부다 서울에서 근무하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부산에서 근무하고 광주에서 근무했던 조합원들이 서울에 와서 근무하려면

결국은 그것은 회사를 그만두라는 이야기 아니면 뭐가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노동자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고 싸울 수밖에 없다 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을 더 이상 탄압하고 죽이려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상입니다.

 

 

22. 김선영 수석부지부장.

 

존경하는 재판장님

쌍용차 77일 점거파업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 2008 12월 쌍용자동차 2기 집행부 선거가 있었습니다.

비록 9개월의 짧은 임기였지 만은 저희는 선거 공약으로 조합원의 고용을 지켜내고 온갖

이권과 비리에 얼룩져있는 노동조합의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봉사와 희생으로

과감하게 상집간부위원을 43명에서 33명으로 축소하였고 평택지역의 어려운 소년소녀 가장에게

매달 300만원씩 급여에서 각출하여 도움을 주어왔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노와 사에는 서로가 지켜야 할 단체협약이 있습니다. 회사는 2008 12월 일방적으로 복지를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1 9일 중국 상하이 자본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중국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쌍용자동차 기술유출과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은 단 한 사람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 책임은 열심히 현장에서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 조합원들이 짊어져야 했습니다.

 

저희는 쌍용차 경영의 위기는 상하이 자본과 경영진에 있지만 회사만큼은 하루 빨리 라도 우리

손으로 정상화가 되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법정관리신청 후 간부들은 전국을 돌며 때로는 전철 안에서, 때로는 서울역에서 천안역 에서

이마트에서 쌍용차 8000명에 가까운 직원들과 20만 협력업체의 고용을 위해 쌍용차가 토종기업으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도록 서명을 받아 지식경제부 산업은행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또 정부에서는 Job Sharing 일자리나누기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라고 했습니다.

2월달 에는 C200공장 라인등과 관련하여 노사협의가 있었습니다.

 

경기악화에 따른 생산물량 축소로 노동조합에서는 주야간 4시간씩 연속으로 근무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임금을 줄여서라도 함께 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사측은 정상시스템의 문제와

비용의 문제를 핑계 삼아 우리의 제안을 무시하고 노사합의 없이 휴무를 강행했습니다.

회사는 또 단협을 무시한 일방적인 밀어 붙이기식의 경영에 조합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었고

4월 긴급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즉각적인 옥쇄파업을 해야 한다는 안건이 상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한상균 지부장은 대의원들을 설득하였고 파업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해결을 해나가자 하여 즉각적인

총파업을 막았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2646명 아니 2646명 외에도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

300명중에 160명을 해고를 하였습니다.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며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무 자르듯이 정리해고의 칼날에 6명의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희들에게 쌍용자동차는 삶의 터전이었고 살아가는데 있어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 2기 집행부 강성노조도 아닙니다. 역사적인 투쟁 영웅적인 투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10, 20년 많게는 30년을 같이 했던 동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살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비록 77일 공장 점거파업에 쇠파이프를 들고

새총을 소지하기도 했습니다.

그 쇠파이프와 새총은 함께 일했던 직원들과 경찰들에게 상해를 입히기 위함이 아니었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을 해나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 킨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 2기 집행간부들 오로지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봉사와 헌신으로 해온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재판장님의 현명하신 판결과 선처로 우리 간부들 모두가 하루 빨리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다시는 먹튀 자본으로 인해 저희와 같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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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인사 - 정특위

동지들 반갑습니다.

이미 15일날 평택 공장 정문 앞에서 인사를 드렸는데, 그래도 다시한번 크게 인사드립니다.

노동전선 전 경기 집행위원장 김동수 입니다. 투쟁 !

 

지난 11일(월요일) 출소후 구속된 동지들을 면회하고, 공장에서 쫒겨난 쌍차 동지들께 안부인사를 물으며 지냈습니다.

여전 하더군요.

엊그제 버스정류장에서 손흔들며 헤어졌다 다시 만난 친구들처럼 말투도, 생김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저의 관찰력이 부족했거나, 아직 서로간에 실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속되고, 해고무급당하고, 징계에다 압류당하고------- . 서툰 말솜씨로는 닥친 생활고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제 일요일에는 친했던 연구소 동지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저녁에 술 한잔 하자는. " 나중에 하자!" 라며 거절하였습니다.

이 동지가 쏟아낼 엄청난 삶의 고뇌를 아픔을 원망을 한숨을 -, 저의 지금 몸상태로는 감당키 어려워서 였습니다.

" 그러면, 형 낼와? 월요일 재판때 보면 되네! 그때 봐요. " 그 동지는 나의 거절에 기분좋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 내게는 이 동지가 있었구나!' 새삼 반가웠습니다.

 

15일 금요일에는 평택 공장 정문 출투에 나갔습니다. 

지하철 개찰구같이 꾸며놓은 곳으로 줄지어 출근을 하더군요. 표없으면 정문을 통과 할수가 없게 만들어 놓았나 봅니다.

공장은 일년 전과 다름없이 본관이 서있고, 저멀리 도장 공장이 우뚝 서있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동지들이 정문 밖으로 내몰려져 있다는 것 외에는 모두다 그대로였습니다.

 

' 아 !

 노동자가 세워놓은 공장은 변함이 없는데

 시절이 바뀌었구나! 

 다시  동지들이 공장으로 들어서는 날은 

 그 때와는 다르리! 그 고립 이어서는 아니되리! '

 

일년 전 비정규지회 정문 출투때의 자세로 서서 본 쌍용차 평택 공장전경 !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정리해고및 징계해고자 약 200명,

무급 휴직자 약 300명,

희망퇴직자를 포함하여 노동자 7000명중 약 3000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단행되었습니다.

정리해고가 단행된지 약 6개월이 지난현재 예상 했던대로 약 1만명을 상회하는 노동자가족들의 생존권은 그 야말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서민경제'를 운운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은 포장마차 할머니를 위로하는 허위광고방송이나 내보낼 뿐,  쌍용자동차에서 발생한 이 엄청난 해고사태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쌍용차의 처리방향에 따라 제2 제3의 구조조정은 언제고 잠복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징계당한 모든 동지들의 힘을 모으고,

다시금 전국노동자들의 연대를 굳건히하여

정특위 구호대로 '공장으로 돌아가자!' 는 투쟁을 쉼없이 전개하여야 겠습니다.

특히,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를 남발하고 있는 이 나라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

또한 이나라 국가정책으로 말미암아 해고되어 생존권이 벼랑끝에 내몰리게 된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국가를 상대로 한 '해고자 (등 쌍차 구조조정 피해자) 가계 생존권 보장!'등 대정부 투쟁이 시급히 조직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지들 다시금 만나서 눈물나게 반갑습니다.

허나, 감정은 아껴 두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으로 똘똘뭉친 냉철한 이성이 필요할 때인 듯 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2010년 1월 18일

김동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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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인사 - 가대위

안녕하세요?

쌍용가족 대책위 여러분 !

 

저는 지난 8월6일 공장에서 연행당하여 구속되었던

당시 노동전선 경기 집행위원장 김동수입니다. 

저 간악한 자본가들에 의해 붉은 딱지가 붙혀졌던 소위 '외부세력' 중 한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본가와 자본가들의 주구[走狗 - 달음질하는 개라는 뜻으로, 사냥할 때 부리는 개를 이르는 말]들에 의해 덧씌워진 '외부세력'이란, 실제로 따로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공장안에 있었던 400여명과 공장밖에서 땅을 치며 통곡했던 연대단위와 가족들 모두가

'내부의 좌파세력'이요 '외부의 쌍용 조합원' 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들 주구언론들은,

정부와 상하이 자본및 경영진들의 그 비린내나고 추악한 결탁을 호도하기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파탄의 책임을 떠넘기기위해,

그리고,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지탄과 이명박 정부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대국민 여론공세를 퍼부었으며, 

이중 하나가 바로 '외부세력(론)' 이었습니다. 

특히, 주구들의 '외부세력'공세는 8월 5일 자행된 그 야만적인 살인폭력을 은폐하며 탄압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작동되기도 하였습니다. 안타갑께도 우리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은 '외부세력론 공세'를 넘지 못했습니다.  

 

저는 2010년 1월 11일 오후 4시경 수원구치소에서 출소하였습니다.

출소하는 날 저녁 한신대에서 행한 정특위 주점에 들렀습니다.

그제는 구속노동자 가족들의 모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제는 평택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는 김재환동지(총무재정실장)를 면회하고 왔습니다. 감옥에 갖힌 자기 처지도 모르고 입을 헤-벌리고 따듯하게 맞이 하더군요.   

한상균 동지는 동상이 걸렸다기에 '손발 맞사지를 자주하고, 고정적인 자세로 오래 앉아있지 말고 운동을 많이 하라 !' 는 요지의 나름대로 그 동안 감옥경험을 최대한 살린 '동상 처방전'을 써서 넣었습니다. 써놓고 뒤돌아 나오는데 뒤가 캥겼습니다. '나는 세상밖으로 나와서 마누라 껴안고 새끼 웃는 모습보니 좋더라! 너는 그 안에서 동상치료나 잘 해라!'고 놀리고 온것은 아니었는지 !!

오늘은  김정운 동지(교선실장) 면회를 할 참입니다.   

 

가족대책위 여러분 !

힘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저들 주구언론들의 논리가 국민들 다수의 여론인것 처럼 보일지 모르나,

결국 진실은 밝혀지며 진리는 승리합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이것을 확인시켜 주며 발전해 왔습니다.

 

작년한해 뜨거웠던 투쟁을 쌍용자동차 동지들과 함께해서 영광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구속당해있는 동지들을 뒤로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가르며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품는 설레이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정부와 쌍용차 자본이 해고자를 비롯한 피해 노동자에 대한 정상화를 미룬다면

그들 주구언론이 위험하게 딱지 붙힌바대로 쌍용차 '외부세력'은 줄어들지 않고 증가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동지들, 다시 만나서 눈물나게 반갑습니다.

 

2010년 1월 14일 아침에.

김동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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