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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2004년 9월 8일-수)

사랑하는 당신에게

 

하루를 나누어 보았지.라디오에서 (최하정의 아니군'이수경'의 00프로에서 '공병호'를 초대하여) 시간 사용과 관련한 언급도 있어서였지. 이 브로조아의 논객은 새벽3시에 일어나서 명상과 책을 읽는다는 군. 보통의 '아침'은 이미 한참 진행된 하루라는 거지!

 

내가 인용하고 싶은 것은 '일어날깨와 잠잘때의 암시와 훈련'이야!

잠자기 전에 암시를 넣는다는 거지. '잘 일어나라고 !' 그리고 일어날때는 '확실하게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풀라는 거야! 그러니, 이자는 남들보다 앞선 이데올르그가 된거야!~

 

일하고, 후식하고, 잠을 자라!

일은, '노동'을 뜻한다. 노동은 '육체적 ' 정신적 노동을 모두 포함하여, 인간의 목적 의식적인 창조행위를 말한다.

휴식이란, '몸을 쉬거나' '여가를 보내거나' '예술활동'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좁은 의미로 (현재 자본주의적인 현대인) 볼때, 휴식은 '여가활동'을 말한다. 주5일제를 해서 '휴일'을 확장한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놀고, 쉬며, 충전을 하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간적인 수면(절대적인)을 말한다. 도인들은 하루 4시간밖에 잠을 안잔다고 하는데(아니 에디슨도 그렇고 많은 이들도 그러함) 보통 충분히 잠을 자라고 한다. 그런데, 앞의 '노동'과 '휴식'(여가, 예술)의 시간은 향후 한가지로 표현될 것이다. '신성한 노동'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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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비판 사상의 뿌리!'를 보았지!

 

양주와 묵적(기원전 475년- 390년)이 등장하는 초입인데, 한문 투성이라 여간 사납지 않다.

던져 버릴까 하다가 뒤로 갈수록 해설식 논문이 나와서 그냥본다. 놀랍게도 이들 엮시 공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로, 주류에 반하는 논객들이 었는데, 시대가 기원전 5세기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꽃피우던 시대와 비슷하게 동양에서도, 비교적 논객들이 사상을 교류하며 토론할 수있는 자유가 보장 되었던 것이다. 

전국시대라한다.(나는 솔직히, 사상의 아주 구체적 내용보다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지는지라는 역사적 근거에 관심이 많다,) 하여간, 동서양을 망라하여, 민주주주의는 한때 흥했고, 수천년동안 민주주의는 압살 당한채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감지해 본다.

그리스나 중국 고대의 그것이 완벽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민의를 반영하는 상태(강제인지 아니면 경제적 구조와 무엇인지는 모르지) 가 상당히 존재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 남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남의 사랑을 받게되고, 남을 미워하는 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게된다. (묵자 겸애 하편)

반드시 내가 먼저 남의 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데 노력한다면, 남은 내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으로써 보답한다. (동편)

묵자는 상동의식, 겸애이론, 절검주의를 주장하였는데, 그중 겸애이론중 한가지야!

꼭 , 공자님 말씀같지?

 

' 전평'은 1945년 11월 5,6일 결성된다.

총21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데, 8월 15일 해방이후 3개월만에 전국의 노동자 (총90만-212만으로 노동자를 집계) 중 10-20%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명실공히, 조선 노동자를 대표하고있다. 해방3개월 만에 어떻게 가능했는가? 무엇보다 , 해방과 변혁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을 증명하고있다고 달리 표현할길이 없다. 그동안의 조직력과 (조선공산당) 주체세력의 포진이 분명 조건으로 받침하고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시의 상황설명이 제대로 안된다. 이는 건준, 조공,인민위등 해방과 동시적으로 분출되고 조직되었던 것과 괘를 함께하는 것으로, 일제로 부터의 해방은, 곧 모든 억압과 지배자들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했고, 그런 열망뿐이었다.

 

경기지역에서는 서울, 인천, 소사, 수원, 고양, 장단, 여주의 곳이 포함되는데, 소사는 부천을 뜻할텐데, 장단은 어디인가? 안태정씨(지은이)는 옛 선배들의 발자취를 섬세히 몸으로 관찰했음을 알수있다.

(전노신, 해방일보, 민주중보, 청년해방일보, 조선인민보등의 자료는 당시의 분위기, 열정, 의지들이 물씬 묻어있다)

 

국가보안법 폐기 관련 논쟁이 뜨겁다. 48년 제정된 이법은 실제로는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사해서부터라고 알고있다. 그럼 !

 

2004년 9월 8일 

 

 

**** 인류유산 민주주의 (출처-중앙일보 인용)

 

프닉수 언덕은 아크로 폴리스의 서북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이곳이 바로 민주주의가 태어난 곳이다.

---------------------- 그러나, 토지 재분배나 민중에게 권력을 나누어 줄의사가 조금도 없는 이런 개혁들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없었다.

----------------------- 그러나 클레이스 테네스는 민주화를 위한 혁신적 개혁안을 전격적으로 민회에 상정하여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이 법안은 아테네의 행정국역을 그때까지의 전통적 네부족 대신 지리적 단위인 열개의 데모스(demos)로 바꾸었다.

----------- 아테네에 민주정이 들어서는 것에 불안을 느낀 스파르타는 이사고라스를 앞세워 아테네를 공격했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아테네 시민병을 이길수 없었다. ---------------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작업은 페르시아 전쟁뒤 펠리클레스(기원전 495- 429) 에의해 이루어 졌다.

------------ 어떤 인간이라도 출신에 의해 다른 사람보다 고귀하다는 특권이 사라진 아테네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경제적 자유였다. 일자리를 걱정하거나 가족의 생계가 위협을 받는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나라를 위해 일을 하게된 시민들에게 일정한 보수를 주는 제도를 만들었고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아크로 폴리스를 건설하는 등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였다. 이 마지막 조치를 언론의 자유와 법 앞에서의 평등과 함께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 졌다.

자유와 평등, 상호존중이 아테네 민주주의 정신이다. -------- 이 진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 동틀무렵 프닉스 언덕에서 본 아크로 폴리스. 아테네 민회가 열렸던 프닉스 언덕에서--

 

- 아크로 폴리스와 프닉스 (그림)

프닉스 언덕에서 석양빛이 떨어지는 아크로 폴리스를 본다. 아름답다 못해 숨이 막힌다. ---- 그래서 이름도 '숨막히는'이란 뜻을 지닌 '프닉스'로 불렀던 이 언덕이 지금은 인적이 끊겨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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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문제 어떻게 볼것인가? (1)

농업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2008년11월)

농촌 풍경 하나 - 벼베기 !

- 50세-60세 중심의 청년(?)들이 있는 집 한 10가구! 나머지 40호정도는 70대 이상 !
올가을 벼베기에 필요한 콤바인 숫자는 3-4대 정도였는데, 동네2대와 외부 1-2대가 들어와서 들판을 누리니 별무리 없이 수
확을 마쳤다. 베어진 벼도 커다란 자루에 담겨져 트럭에 실려 곧장 정미소로 직행!
예전 같으면 집안의 가장 중대사인 벼베기는 이렇게 간단히, 반 나절만에 끝난다.

- 밥 내오고, 낮을 새롭게 갈고, 다시 참이 나오고------- 온가족이 하루종일 베어도 겨우 한 대여섯 마지기?
전통적으로 '벼베기 철'은 전가족에게 허리가 끊어지는(?) 노동을 강요했던 것이었는데, 오늘날 격세지감이다.

- 그렇다. 기계화와 노령화다.
논을 갈때, 모를 심을때, 약을 칠때, 벼를 벨때, 벼를 운반할때 등등 최신 기계화에 의존한다.
그리고 기계화는 대형화되고 있고, 이제는 넘친다.
기계화의 속도만큼이나 농민들의 연령은 고령화 되었다. 아마 기계화의 진척도만큼 고령화 되었을 것이다.
즉, 기계화는 고령의 농민도 충분히 혼자서(?) 농사를 지을수 있게 하였으며, 이는 새로운 젊은 농민의 유입을 차단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농민 고령화의 핵심요인은 당연히 '저농산물값' 때문이었고 !

- 최신식 콤바인!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혜택이자, 농촌기계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농업에서의 대규모화를 예고한다. 아니, 이미 대규모화는 진행되고 있다.
70대의 농민 고령화!
농업 대규모화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용어에서도 '과학 기술의 발달' 과 '노인화'는 좀 어울리지는 않는다.
서글픈 전망이지만 현실적으로 70대 이상 고령의 농민은 얼마후 생을 마감할수 밖에 없다.

- 350만 농민에서 50만호의 집중 육성!
이게 노무현 정부의 농업 구조조정 정책이었고, 현재 이명박 정부역시 신자유주의 농업 정책의 기조를 유지 강화하려 한다.
한국 농업의 기업화와 대규모화는 진행형이다. 여기에 핵심은 '신자유주의 개방화'이다. 한미 FTA, 떠블류티오 농업개방이 구조조정의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 휴경농지 지원책!
반대로, 각종 농민 지원(액)감소!
농지를 다른 산업용도로 변경하기 쉽게 규제 완화!
반대로, 농작물 판매유통 등 정부지원책의 감소와 시장의 원리 강화!

-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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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2004년 9월 7일-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은 날씨를 노래해볼까?

 

일산 어느 호수 공원에서 ' 열린 음악회' 를 하더군! 양희은씨가 한계령을 불렀지!

그 뜻은 '잊고 내려가라'는 패배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데, 또한가지는 ' 가을'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노래였다는 것이지 !  노사연 씨의 '긴머리 소녀'도 그렇고 !

 

방송에서만 호수를 보여주며 가을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 새벽의 서늘함은 한겹이불깃을 올리게 하고, 더이상 쪼끼 런닝만으로 새벽의 독서를 버티지 못하게 한다. 대낮의 햇빛은 불같은 성질을 죽인지 오래다. 따사로울뿐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찹조들은 따사로운 햇빛에 몸을 맡긴채 마지막까지 양분을 씨앗에 저장하려고 한다. 씨앗이 꽃으로 표현되는 잡초들은 볼품없지만 알갱이 만큼은 꼭꼭 차들어가고 있다. 꽃과 씨를 분리해서 보여주고있는 잡초들 --

 

 

아니, 꽃을 피움과 동시에 가을맞이 열매를 얻으려고 하는 잡초들은, 그꽂이 화려하지 만은 않다. 국화 , 코스모스 들이다. 왠지 초연하고 애뜻하고, 정숙할뿐----

봄과 여름날에 피는 화려함과 정열과는 다른 듯하다.

들과 산에는 들국화가 한창 꽃망울을 모을때다. 그러나, 여기서는 국화를 볼수는 없다. 늦가을 가을겆이 할때까지, 그러니까 초서리가 내리기 직전까지 피고지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국화꽃을 상상할뿐!

그리하여,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여름과 겨울 사이에 계절은 없는 곳이 징역이라 하지만,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비춰주고 있으니까!

 

허나, 징역이든그렇지 않든간에 일주일 걸러 올라오는 태풍으로 인해서 가을을 느껴보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열도의 아래에서 올라오는 태풍은, 좌로 틀면 대만과 광동을 올라올것이요, 북진하면 한반도를 강타하고, 북동진이면 긴 열도에 심각한 피해를 주면서 한기를 몰고오기 때문이다. 대형태풍 '송다'(? 3월3일)가 북상중이다. 어른 주먹만해지 '배'가 안전할까를 노심초사하시겠구나! 서쪽은 비켜간다니까!

 

' 인간 심술 숨긴 잔가시 가득 ' 한 풀은 '며느리 밑씻개'다.

' 며느리가 얼마나 밉고 서로 갈등이 컷기에 사랑하는 자기 자식의 아내밑을 이런풀로 닦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일본에서는 의붓자식 밑씻개라고 부른다'

며느리 밑씻개의 꽃은 7-8월에 수수알만하게 달린 다고 하지?

뜨거운 여름 잎파리 밑에 곱게 피어나지! 비슷한 종으로 며느리 배꼽은 포도송이 처럼 핀다고!

둘중 하나는 '시엉' 이라 불이어서 어릴적 뜯어 먹곤 했었다.

 

진보평론 '봄' '여름'호를 훓어보았지.

정말 훓어 보았다는 표현이 적절할거다. ' 종교'와 무엇, 여름은 ' 한국사회'를 특집화 한것인데, 당최 어렵다. 쭉, 훝어보고 접었다. 나중에 봐야지!

그러면서 , 이런 생각을 한것이다. ' 좀 쉽게 쓸수는 없나?'

물론, 인용을 하면서 제한된 지면에 가설과 추론, 논리 전개를 합축적으로 하자면 그럴수도 있겠고, 또 ' 새로운 이론' 을 만들어야 하니까 ' 새단어와 문장' 은 당연하겠다고도 이해되지만, 인정하기는 곤란하다.

쉽게 들리고 어렵게 들리고는 글의 차이때문이다. 글은 말의 기록일뿐이고, 말은 사람간의 의사소통을 원할가게 하기위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글이 어렵다는 것은, 지식인들만의 지적 향유와 글의 독점만을낳고 이론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살펴보자면, 글이 어려운 것은 그 이론이 정립되지 못하였거나, 글쓴이가 덜 완전해서 일것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나의 무지와 인내도 질책하면서 ------

 

테스와 데미안은, 그리고 니이체는 종반과 중반, 초반에서 접는다. 심리묘사와 성장기는 별로다. 종교까지----. 그 자체로 뛰어난 상황묘사와 심리묘사,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아름다운 문제로 전개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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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 2004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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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동지들께 보내는 편지모음 (임채희글)

전투중의 쌍용차 동지들에게 드리는 편지 1



이 편지들이 너무 늦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언론에서, 동지들의 홈페이지에서 동지들의 투쟁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의 할 것이 별로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며 이렇게라도

연대의 편지를 써야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늦지 않았나하고 걱정입니다.


남한 노동운동사에서 저는 이토록 처절하고 가혹한 전투를 치루어야

생존권이 보장되는 세상 앞에 서있음을 몸서리치게 느낍니다.


단지 노동자들이 저항한다는 이유로 의약품과 물까지 차단하여 수백 명의

아사투쟁을 조장하고 수십 명에 이르는 중부상자들을 방치케 하여

죽음의 위험으로 내모는 흡혈귀 같은 자본가들의 놀라운 반인간성을 봅니다.


그래도 쌍용차 동지들의 헌신적 투쟁과 고귀한 저항정신을 보며

이런 척박한 자본의 시대에도 의인들이 있구나, 전사들이 있구나,

이런 세상에도 노동자의 산 정신이 있구나, 참으로 해방의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길가의 노점상으로 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이 사회에서 가난이 무엇이며,

빈민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무권리,

비인간적 모욕과 모멸감, 비저항에의 굴복, 삶의 무의미, 생존에의 맹목적 의존,

내일에의 절망, 변하지 않는 세상, 끝없는 절망감, 깊은 패배주의 등 이었습니다.


저는 쌍용차 동지들이 이 모든 것을 온통 거부하고 인간해방과 노동해방을 외치며

자본에 항거하며 70일이 넘는 그 긴 기간을 외롭게 싸우는 전사들이자

우리 빈민의 진정한 동지라는 사실 앞에서 연대감과 진정한 노동자빈민동맹을 외칩니다.


오늘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갑자기 편지를 쓰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 전쟁 막바지 협상 중에 적들은 맹공격을 한다.

- 전투가 끝난 뒤에 적들은 전투 참가자들에 대한 몰살 정치를 획책한다.


이 두 마디를 하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만 좀 빗나갔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협상을 위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올바른 투쟁노선과

과감한 전투를 통해 얻은 유리한 지점들을 절대 지키십시오.


지금까지 함께 해온 동지들의 뜻과 의지를 제일 중시하십시오.

나머지는 병가지상사라 생각하십시오.


전쟁에서 전투는 그 마지막까지 가야 끝나는 것입니다. 최후까지 싸워

반드시 쟁취하십시오.


2009년 7월 30일


임 채희




전투 중의 쌍용차 동지들에게 드리는 편지 2



쌍용차 공장 파업 동지들은 오늘 73일째 옥쇄 파업 중입니다. 옥쇄란 부서지어 옥이 된다는 뜻으로 공을 세우고 죽거나 노동자계급에게 충성을 다하고 깨끗이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죽음으로써 공장을 사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쌍용차 동지들은 총파업의 기치를 들고 정리해고 분쇄 투쟁 중입니다. 분쇄란 정리해고 자체를 아주 잘게 부스러뜨려 없앤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의 몸이 잘게 산산이 가루가 되어서라도 죽음으로써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들은 공장을 원천 봉쇄하여 파업노동자들을 다 몰살시키겠다고 합니다. 봉쇄란 외부와의 일체 연락을 끊어, 단수조치 하고 음식물과 의약품까지 차단하고 심지어 어둠속에서 살인행각을 하려고 오늘 단전조치까지 하여 쌍용차 동지들을 모두 산채로 태워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쌍용차 공장은 사측이 파업노동자들과 형식적인 협상으로 일관하면서 시간을 벌어 국민여론을 왜곡하면서 난공불락 같은 도장 공장을 계속 침탈했지만 잘 안되자 진짜 전면전을 획책하여 용산철거민들처럼 수백 명의 파업노동자들을 신나 불로 학살하려는 일촉즉발의 한 순간 위에 서있습니다.



바로 이 한 순간에 쌍용차 공장은 완전히 불바다로 될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살아남은 우리들은 동지들에게 역사의 죄인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지금 쌍용차 공장은 말 그대로의 옥쇄파업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미 사측은 물과 전기를 완전히 차단하였고 음식물도 이미 다 바닥이 났습니다. 밖의 우리 동지들은 파업노동자들에게 갈 보급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밖의 우리 노동자 동지들이 후방에서의 투쟁을 통해, 심지어 게릴라식의 투쟁조차라도 해서 반드시 파업 동지들에게 음식물과 물과 전기를 공장안으로 들여보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거대한 연대투쟁과 전쟁의 확대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적들도 모든 군세를 쌍용차 공장에 집결시켜 자본과 정권의 명운을 걸고 우리 쌍용차 동지들을 학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만일 공장 밖에서 더 거대한 연대투쟁과 더 과감한 확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쌍용차 동지들은 싸우다가 지쳐 결국 모두 순절할 지도 모릅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여

전국의 노동형제자매들이여

전국의 혁명가들이여



모두 떨쳐 일어서자!

쌍용차 공장으로 모두 모여 노동자인민의 위대한 힘과 정신을 보여주자!!



- 죽자고 싸우는 자는 승리하고 살고자 노력하는 자는 패한다!!



2009년 8월 2일


임 채희




전투중의 쌍용차 동지들에게 드리는 편지 3



지금의 쌍용차 해고동지들의 투쟁을 보고 있노라면,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한조각의 빵을 훔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탈옥을 거듭한 끝에 19년간의 형기를 다 마치고 출옥하는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이 지금 치열한 전투중의 쌍용차공장을 상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노동자이기 때문에 공장에서 해고되는 즉시 빅톨 위고의 말씀처럼 남자는 낙오자가 되고 굶주림 때문에 여자는 타락하고 어둠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본과 정권의 무자비한 학살 정치를 통해 저들은 우리 노동자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마지막 남은 목숨까지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쌍용차 해고 동지들은 장 발장처럼 빵을 훔친 것도 아니고 평생을 받쳐 공장에서 일해 온 것인데 이 공장의 진짜 주인이었는데 이제 필요 없으니 나가달라는 자본과 정권의 살인 해고와 폭력에 맞서 저항한 것 밖에 없는데 저들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항복과 굴종을 요구하고 그것을 못 하겠다 하니 이제는 아예 내놓고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처럼 산목숨이라도 내 놓아라 협박을 해대고 살해 행각을 벌리고 있습니다.



지금 저들은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소박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요구를 헬기와 지게차와 대형 새총, 쇠파이프, 물대포, 최루액과 최루가스, 테이저건, 돌멩이, 사제총 등 거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무기들을 동원하여 수천 명의 경찰과 용역깡패들, 사측 구사대를 총동원하여 6백여 쌍용차 해고 동지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장에는 불바다가 되고 투쟁하는 해고동지들이 전투 중에 옥상에서 떨어지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빵 한 조각 훔쳐 먹었다고 19년간의 옥살이를 한 장 발장은 그것이 부당하다고 저항하며 끊임없이 탈옥을 시도했는데, 정작 공장에서 노동한 것 밖에 없는데 우리 해고 동지들에게 목숨을 달라는 자본과 정권 - 이 자본주의 학살자들이 무엇이 다른가? 저 자본은 파업 노동자들을 끝내 섬멸해야 맘 놓고 잠을 잘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저 자본가들과는 완전히 갈라서 노동자의 새 세상을 건설하지 않고서는 이런 쌍용차 파업노동자들의 투쟁 같은 것을 계속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과 죽음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76일 동안 영웅적인 전투를 통해 쌍용차 해고 동지들이 우리들에게 보여준 교훈입니다. 이제 우리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아무리 그 길이 고통스럽고 잔인하다해도 반드시 가야할 길입니다.



2009년 8월 5일 총파업 76일차


임 채희 드림



전투중의 쌍용차 동지들에게 드리는 편지 4



마지막 결투


쌍용차 동지들의 소박한 꿈 - 공장 건물에 휘갈겨 쓴 구호들 


-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싶다.

- 함께 살자 / 우리는 이긴다. (입고 있는 조끼 등에 새겨져 있음).

- 살고 싶다 / 살인진압 중단.

- 가족들 사랑 한다. ( 회사와 가족 밖에 모르던 노동자들).

- 대화를 안할려면 차라리 다! 죽여라!

- 가족을 위해 싸우다 죽자!

- 들어오면 누군가 죽는다. 그만해라!

- 그만해. 살고 싶다.

- 정리해고 철회 하라!

- 총고용 사수.

- 총파업.



쌍용차 해고동지들의 꿈은 지극히 소박합니다. 다시 공장에서 예전처럼 일하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대화를 한다면서도 뒤로는 무자비한 살인진압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사측이 비밀 대화를 요구해놓고도 경찰 특공대를 실은 콘테이너 박스와 살수차, 헬기를 동원해 살인진압을 강행해 우리 파업노동자들이 옥상에서 세분이나 떨어져 중상을 입는 등 수많은 동지들이 다쳤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신나 등 온갖 폭발물로 가득 찬 마지막 남은 거점인 도장 공장을 공격하겠다는 자본가들과 깡패정권은 쌍용차 동지들을 용산철거민들처럼 학살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투


혁명시인 김남주는 자신의 시 <학살>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외적의 앞잡이이고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양심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전선이다 무덤이다 감옥이다

도대체 형제의 살해 앞에서 저항하지 않고

누가 자유일 수 있단 말인가

동지여 자본주의를 반대하여 싸우지 않고

착취 받고 억압당한 민중들을

옹호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혁명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김남주 시인은 시 <전사 2>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한 방울 한 방울의 피는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마치 우리들이 갑오농민에 대해서 이야기하듯

마치 우리들이 한말의병에 대해서 이야기하듯



지금 전투중인 쌍용차 동지들은 결사항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평생 노동만 해왔고 싸움 한번 제대로 해오지 않았지만 이제야 전사들이 된 쌍용차 해고 동지들은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런 소박한 소망을 깨부수고 학살 진압을 강행하는 저 악랄하고 잔인한 적들 앞에,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세상의 주인인 노동자의 자존심을 걸고 전 인민의 지도자로서 나서겠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비참한 시대를 산 녹두장군 전봉준의 노래를 불러드리고자 합니다.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 - 녹두장군을 추모하면서> (김남주)


 

  한 시대의

  불행한 아들로 태어나

  고독과 공포에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람

  암울한 시대 한가운데

  말뚝처럼 횃불처럼 우뚝 서서

  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한몸으로 껴안고

  피투성이로 싸웠던 사람

  뒤따라오는 세대를 위하여

  승리 없는 투쟁

  어떤 불행 어떤 고통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고

  한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

 

  우리는 그의 이름을

  키가 작다 해서

  녹두꽃이라 부르기도 하고

  농민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고

  동학농민혁명의 수령이라 해서

  동도대장, 녹두장군

  전봉준이라 부르기도 하니

 

  보아 다오, 이 사람을

  거만하게 깎아 세운

  그의 콧날이며 상투머리는

  죽어서도 풀지 못할 원한, 원한

  압제의 하늘을 가리키고 있지 않는가

  죽어서도 감을 수 없는

  저 부라린 눈동자, 눈동자는

  90년이 지난 오늘에도

  불타는 도화선이 되어

  아직도

  어둠을 되쏘아보며

  죽음에 항거하고 있지 않는가

  탄환처럼 틀어박힌

  캄캄한 이마의 벌판, 벌판

  저 커다란 혹부리는

  한 시대의 아픔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한 시대의 상처를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한 시대의 절망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보아다오 보아다오

  이 사람을 보아다오

  이 민중의 지도자는

  학정과 가렴주구에 시달린

  만백성을 일으켜 세워

  눈을 뜨게 하고

  손과 손을 잡게 하여

  싸움의 주먹이 되게 하고

  싸움의 팔이 되게 하고

  소리와 소리를 합하게 하여 

  대지의 힘찬 목소리가 되게 하였다

  그들 만백성들은

  이 위대한 혁명가의 가르침으로

  미처 알지 못한 사람들과

  형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 세상을 겨냥한 동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직까지 한번도 맛보지 못한

  자유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과 동지를 분간하여

  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전투에 가담할 줄 알았으니


  보아다오, 그들은

  강자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자유를 위해 구걸 따위는 하지 않았다

  보아다오, 그들은

  부호의 담벼락을 서성거리며

  밥을 위해 토지를 위해

  걸식 따위는 하지 않았다

  보아다오, 그들은

  판관의 턱을 쳐다보며 정의를 위해

  기도 따위는 하지 않았다 보아다오, 그들은

  성단의 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선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돈뭉치로 선을 사지도 않았다

  

  보아다오, 그들은

  이빨 빠진 사자가 되어

  허공에 허공에 허공에 대고

  허망하게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보아다오, 그들은  

  만인을 위해 

  땅과 밥과 자유의 정복자로서

  승리를 위해 노래하고 싸웠다

  대나무로 창을 깎아

  죽창이라 불렀고 무기라 불렀고

  괭이와 죽창과 돌멩이로 단결하여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양반과 부호의 다리를 꺾어

  밥과 땅과  자유를 쟁취했다


  보아다오, 보아다오

  새로 태어난 이 민중을

  이 민중의 강인한 투지를 

  굶주림과 추위와

  투쟁 속에서 더욱 튼튼하게 단결된

  이 용감한 조직을 보아다오

  고통과 고통과의 결합

  인간의 성채

  죽음으로써만이 끝장이 나는

  이 끊임없는 싸움, 싸움을 보아다오

  밥과 땅과 자유

  정의의 신성한 깃발을 치켜들고

  유혈의 전투에 가담했던

  저 동학농민의 횃불을 보아다오

  압제와 수탈의 가면을 쓴

  양반과 부호들의 강탈에 항쟁했던

  저 1894년 갑오년

  농민혁명의 합성을 들어다오

  그리고 다시 우리 모두 이 사람을 보아다오

  오늘도 우리와 함께 살아 있고

  영구히 살아남을 이 사람을

  녹두 전봉준 장군을 보아다오.


지금 쌍용차 동지들은 저 우리 선배들이 걸었던 길을 가려합니다. 승리의 광장에서 다시 볼 수 있게 함께 힘차게 투쟁합시다.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2009년 8월 6일 총파업투쟁 77일차

임 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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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지도부당선을 축하하며

동지들 반갑습니다.

 

먼저, 생계투쟁과 모이기 어려운 개별생활, 그리고 무급자들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측의 탄압 등 내외적 악조건속에서도, 68%라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로 선거투쟁을 사수하시고 신임 지도부선출과 당대 계급적 단결의 기치인 '쌍용차 노동자는 하나 !' 라는 1사1노조를 압도적인 찬성으로 쟁취해내신 동지들께 심심한 연대의 인사드립니다. 투쟁 !

아울러, 8월 6일이후 6개월이 넘는 지도공백을 시급히 복구하고, 대 자본과 정권을 향한 '구조조정 피해 원상회복'투쟁의 막중한 임무와 과제를 부여받게되는 황인석 신임지부장 동지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동지들 !

08년 하반기 세계적 경제위기가 소강상태인 현재

언제그랬느냐는 듯이 저들 정권과 자본은 다시금 신자유주의 장미 빛 미래전망을 외쳐대고 있습니다.

한술 더떠 경쟁과 고통분담만이 살길이라며 노동자의 일방적 양보만을 위협하던 지배계급은 이제,

노골적인 밀어붙히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09년 용산학살과 쌍용차 살인해고를 유도하며 투쟁을 진압한 현재,

4대강 토목공사와 세종시에서 그 반동적인 노골적 밀어붙히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반동적'이라 함은 당연히 자연과 인류역사의 순리를 거역하며, 독점자본의 직접이해를 위해 노동자민중 죽이기를 말합니다.

 

오늘 동지들께 두가지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 파쇼적 공안통치와 노골적 친자본 행각은 달리보면,

임기의 절반을 넘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초조감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5000만 민중의 생존권을 건사하기는 커녕 갑자기 닥친 경제위기를 감당할길 없는 정권과 자본이 취할수 있는 방법이래야

멀쩡한 강바닥에 자본을 투자하여 뒤집거나, 기업특혜법과 노동운동 탄압법을 제정하는 일 이외에 없습니다.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철저히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에게는 공권력의 무력진압 방식말고는 달리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쌍용차 투쟁에서 힘차게 연대투쟁을 조직하기 보다는 노동연대 진영의 속(내장)을 다 보여주고는 '사회안전망'입네,'선제적 고통분담 전술입네' 하며 투쟁에 초를 쳤던 주장은 현실 정세에서는 실현불가능한 망상이었으며, 그럴듯하게 꾸며 유포되었지만 대중투쟁에 의해 폐기된바있는 '사기꾼적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자에대한 손배가압류의 공세는 그자체로,

한편으로는 투쟁성을 거세하기위한 교묘한 족쇄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은 탄압에 대한 훌륭한 경험을 하였지 않습니까?

비를 뿌려대듯하던 최루폭탄을 온몸으로 막아냈으며, 100명에 육박하는 구속과 200명이 넘는 불구속수사를 우리는 정면으로 돌파해내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 어두울 수록 새벽은 멀지않습니다.'

  

둘째, 앞서 말씀드린 정권과 자본에 의한 대량해고와 정부탄압의 공세는,

전 세계적 공황의 여진속에서 취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달리 말해 제2,제3의 쌍용차 구조조정이 발생할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며,

구조조정에 처한 노동자들과 다양한 민중들의 투쟁 여하에 따라서는 제2의 쌍차투쟁, 혹은 97 노동자 대투쟁등 전혀 예측 불가능한 투쟁으로 확산될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제3자 매각등 회생의 막바지 절차를 앞두고 있는 쌍용차 경영진,

매각에 입질을 하는 국내외의 재벌들,

그리고 숨죽이며 시키면 시키는대로 노예처럼 일만 열심히 하는 공장안의 노동자들!

이들이 향후 변화할 정세를 예측하든 하지 못하든지 간에 공황의 여진속에서 급변하는 쌍용차의 처리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동지들은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해고 노동자의 생존권책임에 대한 대정부 투쟁과제는 중대한 문제라고 보나, 여기에서는 생략합니다.)

 

동지들 !

새로 당선된 지부지도부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희망찬 세상을 만들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지역의 동지들과 지역의 민중들과 힘을 연대하여 나갑시다.

선과 악을 떠나서 작년여름 쌍용차 동지들의 살고자하는 생존권 투쟁모습은 지역과 전국 민중들의 눈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다시금 지역 민중들속에서 소박하게 출발하여 결국에는 전국의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우리가 주먹밥을 먹으며 목숨걸고 지키려했고 보여주려했던 77일간의 투쟁이,  

기준이 상실된 사회에 대한 고발이었고 폭로였으며, 

이 가진자들의 사회에서 해고자가 생존권을 지키기위한 몸부림이었으며,

이 거짖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집단행동 이었음을 알려냅시다.

그리하여, 승리합시다.

그 새로운 출발을 위해 시급히 지부조직의 재건을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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