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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2004년 9월 8일-수)

사랑하는 당신에게

 

하루를 나누어 보았지.라디오에서 (최하정의 아니군'이수경'의 00프로에서 '공병호'를 초대하여) 시간 사용과 관련한 언급도 있어서였지. 이 브로조아의 논객은 새벽3시에 일어나서 명상과 책을 읽는다는 군. 보통의 '아침'은 이미 한참 진행된 하루라는 거지!

 

내가 인용하고 싶은 것은 '일어날깨와 잠잘때의 암시와 훈련'이야!

잠자기 전에 암시를 넣는다는 거지. '잘 일어나라고 !' 그리고 일어날때는 '확실하게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풀라는 거야! 그러니, 이자는 남들보다 앞선 이데올르그가 된거야!~

 

일하고, 후식하고, 잠을 자라!

일은, '노동'을 뜻한다. 노동은 '육체적 ' 정신적 노동을 모두 포함하여, 인간의 목적 의식적인 창조행위를 말한다.

휴식이란, '몸을 쉬거나' '여가를 보내거나' '예술활동'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좁은 의미로 (현재 자본주의적인 현대인) 볼때, 휴식은 '여가활동'을 말한다. 주5일제를 해서 '휴일'을 확장한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놀고, 쉬며, 충전을 하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간적인 수면(절대적인)을 말한다. 도인들은 하루 4시간밖에 잠을 안잔다고 하는데(아니 에디슨도 그렇고 많은 이들도 그러함) 보통 충분히 잠을 자라고 한다. 그런데, 앞의 '노동'과 '휴식'(여가, 예술)의 시간은 향후 한가지로 표현될 것이다. '신성한 노동'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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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비판 사상의 뿌리!'를 보았지!

 

양주와 묵적(기원전 475년- 390년)이 등장하는 초입인데, 한문 투성이라 여간 사납지 않다.

던져 버릴까 하다가 뒤로 갈수록 해설식 논문이 나와서 그냥본다. 놀랍게도 이들 엮시 공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로, 주류에 반하는 논객들이 었는데, 시대가 기원전 5세기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꽃피우던 시대와 비슷하게 동양에서도, 비교적 논객들이 사상을 교류하며 토론할 수있는 자유가 보장 되었던 것이다. 

전국시대라한다.(나는 솔직히, 사상의 아주 구체적 내용보다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지는지라는 역사적 근거에 관심이 많다,) 하여간, 동서양을 망라하여, 민주주주의는 한때 흥했고, 수천년동안 민주주의는 압살 당한채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감지해 본다.

그리스나 중국 고대의 그것이 완벽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민의를 반영하는 상태(강제인지 아니면 경제적 구조와 무엇인지는 모르지) 가 상당히 존재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 남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남의 사랑을 받게되고, 남을 미워하는 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게된다. (묵자 겸애 하편)

반드시 내가 먼저 남의 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데 노력한다면, 남은 내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으로써 보답한다. (동편)

묵자는 상동의식, 겸애이론, 절검주의를 주장하였는데, 그중 겸애이론중 한가지야!

꼭 , 공자님 말씀같지?

 

' 전평'은 1945년 11월 5,6일 결성된다.

총21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데, 8월 15일 해방이후 3개월만에 전국의 노동자 (총90만-212만으로 노동자를 집계) 중 10-20%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명실공히, 조선 노동자를 대표하고있다. 해방3개월 만에 어떻게 가능했는가? 무엇보다 , 해방과 변혁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을 증명하고있다고 달리 표현할길이 없다. 그동안의 조직력과 (조선공산당) 주체세력의 포진이 분명 조건으로 받침하고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시의 상황설명이 제대로 안된다. 이는 건준, 조공,인민위등 해방과 동시적으로 분출되고 조직되었던 것과 괘를 함께하는 것으로, 일제로 부터의 해방은, 곧 모든 억압과 지배자들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했고, 그런 열망뿐이었다.

 

경기지역에서는 서울, 인천, 소사, 수원, 고양, 장단, 여주의 곳이 포함되는데, 소사는 부천을 뜻할텐데, 장단은 어디인가? 안태정씨(지은이)는 옛 선배들의 발자취를 섬세히 몸으로 관찰했음을 알수있다.

(전노신, 해방일보, 민주중보, 청년해방일보, 조선인민보등의 자료는 당시의 분위기, 열정, 의지들이 물씬 묻어있다)

 

국가보안법 폐기 관련 논쟁이 뜨겁다. 48년 제정된 이법은 실제로는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사해서부터라고 알고있다. 그럼 !

 

2004년 9월 8일 

 

 

**** 인류유산 민주주의 (출처-중앙일보 인용)

 

프닉수 언덕은 아크로 폴리스의 서북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이곳이 바로 민주주의가 태어난 곳이다.

---------------------- 그러나, 토지 재분배나 민중에게 권력을 나누어 줄의사가 조금도 없는 이런 개혁들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없었다.

----------------------- 그러나 클레이스 테네스는 민주화를 위한 혁신적 개혁안을 전격적으로 민회에 상정하여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이 법안은 아테네의 행정국역을 그때까지의 전통적 네부족 대신 지리적 단위인 열개의 데모스(demos)로 바꾸었다.

----------- 아테네에 민주정이 들어서는 것에 불안을 느낀 스파르타는 이사고라스를 앞세워 아테네를 공격했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아테네 시민병을 이길수 없었다. ---------------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작업은 페르시아 전쟁뒤 펠리클레스(기원전 495- 429) 에의해 이루어 졌다.

------------ 어떤 인간이라도 출신에 의해 다른 사람보다 고귀하다는 특권이 사라진 아테네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경제적 자유였다. 일자리를 걱정하거나 가족의 생계가 위협을 받는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나라를 위해 일을 하게된 시민들에게 일정한 보수를 주는 제도를 만들었고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아크로 폴리스를 건설하는 등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였다. 이 마지막 조치를 언론의 자유와 법 앞에서의 평등과 함께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 졌다.

자유와 평등, 상호존중이 아테네 민주주의 정신이다. -------- 이 진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 동틀무렵 프닉스 언덕에서 본 아크로 폴리스. 아테네 민회가 열렸던 프닉스 언덕에서--

 

- 아크로 폴리스와 프닉스 (그림)

프닉스 언덕에서 석양빛이 떨어지는 아크로 폴리스를 본다. 아름답다 못해 숨이 막힌다. ---- 그래서 이름도 '숨막히는'이란 뜻을 지닌 '프닉스'로 불렀던 이 언덕이 지금은 인적이 끊겨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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