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뭔가 매운걸 먹고 싶다. 옆 건물인 충킹맨션에 매운 인도식 카레집이 몇 군데 있단다. 10시가 좀 넘어 충킹맨션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치킨카레라이스를 시켰다. 홍콩에는 유독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카레라이스와 함께나온 양파 썰어 놓은 것이 특히 반가웠다. 매운게 속으로 들어가니 입안이 깔끔해지는 느낌이다. 충킹맨션을 나와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 며칠 전 봐두었던 한국 여관 간판을 찾았다. 그 간판은 못 찾고 다른 한국여관이 있어 벨을 누르고 2층 프런트로 올라가니 한 곱상한 한국아줌마가 있다. 내가 미라도아케이드에 묵고 있는데 여기 얼마냐고 물으니, 이 아줌마 그냥 싸게 묵으셨으면 거기서 계속 묵으셔라라고 말 한다. 여긴 가장 싼 방이 400홍콩달러란다. 내가 보기엔 여기도 한국 장급 여관 수준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다른 데도 시세가 비슷할 거 같아 그냥 묵던데서 하루더 묵기로 마음먹었다.

 

2.

이쪽 골목은 동침사초이로 가는 길이다. 이 쪽도 페리노선이 있다. 단 가격이 4.5달러다. 배를 타고 다시 도서관으로 갔다. 보니 3층 열람실에도 인터넷컴이 4대가 있다. 물어보니 1시간은 쓸 수 있단다. 여기서 한 시간 쓰고 6층에서 두 시간 쓰면 도합 3시간을 쓸 수 있다. 4층 영어책 열람실에서 론리플래닛 쪽과 마오 전기 코너에서 책을 좀 뒤적거렸다. 중국에 왔는데 마오전기는 좀 읽어줘야지라는 생각과 며칠 더 묵으면서 이곳 도서관에서 책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도서관도 욕망의 공간인거 같다. 착착 잘 분류해놓은 서고를 보고 있노라면 안 먹어도 괜히 배가 부른거 같다. 그냥 마오전기를 한권 사서 중국 시골로 들어가 읽는게 현실적이지. 맑스가 연구하던 대영도서관이라면 모를까?

 

3.

보고싶었던 우주의 신비 과학영화를 보러 다시 배를 타고 침사초이로 갔다. 홍콩과학관에 가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매주 화요일은 정기휴일이란다. 옆에 있는 홍콩미술관 상가에서 미술책들을 보는데 사기에는 너무 비싸 5년전부터 요리기구 외판원등 세일즈일을 그만두고 수묵화 수체화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어머니 선물을 중국가서 하기로 했다. 홍콩 둘째날 맛있게 먹었던 조단역으로 가서 백반집에 다시 가자. 백반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난 겉보기는 차분해보이지만 사실 산만한 스타일인데 방향 감각은 좀 있는거 같다. 그날 먹었던 거와는 다른 반찬인 생선 한 토막과 닭고기 조림, 그리고 야체를 가리켰다. 이 세가지 요리가 한 접시에 담겨 국물이 섞이니 별로 였다. 그제 샀던 중국 김치 병을 꺼내 먹었더니 훨씬 낮다. 중국여행 한달이 지나니 김치가 그리워진다.

 

4.

조단역 부근 거리는 묘가야시장이라고 한국의 황학동 같은 벼룩시장이다. 둘러보는데 상품이 단조롭다. 건빵바지, 가방, 렌턴등 악세사리... 그런데 좀 가다보면 같은 상품을 판다. 단조로운 느낌이다. 역시 예전의 황학동거리의 수준이 훨씬 높다. 황학동의 상인들은 뛰어난 콜랙터이기도 했다. 그 거리의 내가 아는 한사람도 강원도 쪽 옛집들을 돌면서 옛물건들을 수집했다고 했다. 그런데 청계천개발로 이 황학동이 반으로 갈라졌다. 동대문운동장으로 들어간 부분과 동묘쪽에 작게 예전같이 형성된 부분으로, 전체적으로는 축소된 느낌이다. 내가 지금 요긴하게 입고 있는 바느질이 꼼꼼히 잘되어있는 중고 오리털파카도 동묘부근에서 만원주고 산 것이다. 내 20년 문화공간,  내가 10대때 교회도 다녔을때 악마 마스코트를 앞세운 아이론 메이든의 600원짜리 빽판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던 그곳, 내가 대학때 룸팬 짜장면집이라고 불렀던 이름모를 아저씨와 마주앉아 짜장면 먹던 그 식당, 그 분위기는 지금 그곳에 없어지고 있다.

 

5.

계속 북쪽으로 걸었다. 침사초이에서 세번째 지하철역인 몽콕역이 나온다. 이곳은 젊은이들의 거리인가 보다. 나이때들이 젊다. 침사초이가 명동정도라면 여긴 대학로와 동대문운동장 앞 정도의 느낌이다. 나이키를 대표로 유명브랜드 할인매장이 이어져있다. 먼저 극장을 가보았다. 주성치 영화가 휩쓸고 있다. 오션스투웰브가 있다. 그런데 10시 15분 타임이다. 12시 반가까이나 되어서 끝난다. 그래 그동안 일찍일찍 숙소에 들어갔다. 여긴 홍콩이다. 오늘은 좀 늦게 들어가 보자. 영화표 예매를 하고 여기저기 상점에서 아이쇼핑을 했다. 소니비디오카메라 신종들, 니콘케논의 디카와 랜즈군들, 노스페이스 등 등산용품 전문점 등등 눈이 현혹된다. 이윽고 영화 볼 시간이 되었다. 100석 정도의 작은 상영관이다. 스크린을 높게 달아서 다들 머리를 의자에 기대고 누워서 본다.

 

오션스투웰브 영화티켓

 

6.

영화는 중국어 자막만 나온다. 헐리우드 영화라 줄거리는 단순하다. 엔디가르시아 역시 멋있는 갱으로 나온다. 1편을 못 보았지만 이 갱 띠어먹은 돈 며칠 안으로 내 놓아라 최후 통첩을 하고 다시 그 폼 잡는 맴버들이 모여 작당을 한다 등등. 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자막없는 프랑스영화를 보았을때 대부분 사람을 막 웃는데 난 멀뚱멀뚱. 웃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여러번 있었다. 먼가 조그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중국인들은 자막보면서 웃고 군데군데 서양인들은 들으면서 웃겠지. 여하튼 외국 영화보며 자막에 신경쓸 수 없으니 도리어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주연급들인 브레드피트, 조지 클루니, 케셔린제타존스의 스타일, 옷차림, 말투 등등이 인상적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물론 상품가치가 큰 인물들이다.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어느 정치인 못지않을 것이다. 그들을 부르주아적이다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대중들이 스타를 형성해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동성 또한 그 인물들에 스며들어 있다. 따라하고 싶다는 것, 나도 브래드 피트 처럼 스타일리쉬하게 옷을 입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똑같은 옷을 산다면 꽝이고, 싼 옷이라도 내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기꺼히 조지 클루니에게서도 한 수 배울 수 있다는 태도도 비판과 아울러 필요하다. 우린 모순된 존재들이다.

 

7.

거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다. 12시 반이다. 거리는 한적해졌다. 큰 도로인 네이먼도로로 나갔다. 공교롭게 초밥집이 바로 있다. 김밥만 좀 먹어주자. 몇 접시 맛있게 먹었는데 좀 비싸다. 처음으로 홍콩 택시를 타고 침사초이에 내려 숙소로 들어갔다.

 

 

* 041228(화) 여행33일차

(잠) 미라도아케이드5층쪽방 14000원 (100홍콩달러)

(식사) 아침 치킨카레라이스 3920원 (28홍콩달러)

          점심 홍콩식 백반 2800원 (20홍콩달러)

           밤 초밥 5600원  (40홍콩달러)

(이동) 스타페리 4.5, 1,7 1000원 (7.2홍콩달러)

         택시 2380원 (17홍콩달러)

(입장) 오션스투웰브 영화 4200원 (30홍콩달러)

(간식)      물 700미리 270원 (1.9홍콩달러)

(기타) 알람시계 1400원 (10홍콩달러)

.............................................................. 총 35,5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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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5 02:48 2005/01/0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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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makeun
    2005/01/07 03:02 Delete Reply Permalink

    영화 값은 생각보다 싸네요. 이제 다시 중국인가? 형 글을 읽다보니 첨밀밀 생각도 나고..가고 싶던 곳을 가니까 넘 재미나겠다 서울은 아직 흐림니다.

  2. 정미
    2005/01/07 11:58 Delete Reply Permalink

    새해 기분이 나요? 어쨌든 새해 복 많이 만드시고 여행 잘 하시길..

  3. 자일리톨
    2005/01/07 13:50 Delete Reply Permalink

    200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복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저는 계속해서 중국남부와 동남아시아여행기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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