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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15~17

요며칠 <1948: 천지현황>을 꼼꼼히 읽어보는 중이다. 1948~1957~1980으로 이어지는 정신사 연구의 첫 번째 저작인데, 내용을 독서노트에 정리하면서 전체적인 박사논문의 구도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그려가고 있다. 자료조사, 연구순서, 집필순서 등을 조금씩 만들면서 관계를 조정하고 있다.

 

진광흥 선생이 이 작품을 극찬을 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은데, 진 선생이 일전에 나에게 충고했던 것과 관련됨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박현채 선생의 사상적 특징을 글로 쓰면서 알면서 범했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당시에 알튀세르의 정치철학에 대한 징후적 독해의 구도에 매력을 느꼈고, 사상 연구를 함에 있어 그를 원용하고 싶었다. 지금은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몽테스키외, 루소, 마키아벨리 등에 대한 알튀세르의 독해와 서술은 매우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연극이 갖는 독특한 '역전'의 구도를 가지고 독자가 이를 '극'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참고로 당시 나는 발리바르의 세 가지 정치는 생각보다 직접적으로 알튀세르의 연구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나는 아직 그 능력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박현채에 대한 서술은 매우 자기만족적인 것에 머물게 되었는데, 내용의 올바름과 상관없이 긴장을 드러내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 긴장을 풀어내지도 못하는 서술이 된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질문'이 불명확하기 때문이고, 게다가 글쓰기가 아주 많은 준비과정을 요구함을 말해주기도 한다.

 

전리군 선생은 문학사 내부의 논쟁에 대한 서술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그 서술의 맹목지점을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발견하고 나아가 본래의 논쟁 구도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풍부한 사료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는 매우 꼼꼼한 조사를 요구한다. 흥미롭게도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다룸에 있어 그 진정한 이론적 쟁점을 국민당과 공산당의 정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라는 장에서의 정치적 모순과 긴장에서 읽을 수 있다는 하나의 입론을 추출할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문학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 '경제'를 고민하면서 박현채 선생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늘은 오전에 책장에 있는 전리군 선생의 저작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시간을 내어 목록을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더 수집하려고 한다. 현재 내가 소장하고 있는 저자 단독 단행본만 대략 25권 정도 된다. 그 가운데 <살아남은 자의 말[倖存者言]>이라는 책에서 내가 번역한 책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나와 있어 메모해 둔다. <살아남은 자의 말>은 2011년 1월에 출판되었는데, 대만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서 얼마 안되어 출판되었다. 1983년부터 2010년까지 써온 에세이(일부 기출판) 등의 글을 모아서 낸 책인데, 책의 마지막에 부록1: 나에게 주는 일곱 가지 명명命名, 부록2: 30년 걸어온 길 등을 수록하고 있고, 그보다 조금 앞에 2009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 기회[대만 교통대학 사회문화연구소에서 "나와 공화국 그리고 공화국 60년"이라는 강의를 하게됨]를 이용하여, 1984년 시작되었고 15년 준비한 모택동 연구에 대한 한번 체계적인 정리를 하였고, 책 한권의 구조를 완성하였다. 2010년 나는 다시 1년의 시간을 들여 보충수정하였고 수십만 자에 달하는 책을 완성하여, 결국 "나와 모택동의 관계"를 성찰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었다. 이는 정말로 나의 만년의 가장 중요한 저작일 것이다. 이 책이 완성됨으로써 나의 이 일생도 어떤 여한이 없다.(후략)(207쪽)

 

아울러 전리군(1939~ )/박현채(1934~1995)의 사상적 고유성은 현실 속에서 다중성 또는 모호성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20세기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사상가들의 고뇌는 식민주의적/서구중심적 인식체계로는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모호하게 또는 다양하게 수용되고 자주 오해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를 기존의 인식론적 틀 속의 긴장을 통해서 다시 읽으면 그들이 사유했던 반식민과 근대성 극복의 전망이 어떻게 단절되었고 어떻게 복원될 수 있는지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머물수는 없을 것 같다. 궁극적으로 한 사회의 변혁은 그 사회 내부의 비판 역량으로부터 나오지만, 그 재구성은 세계주의적 보편주의/특수주의에 갇히지 않으면서 국가를 넘나드는 초국적 연대 속에서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 참조적 비교가 필요한 것은 이 맥락에서 이다. 박현채와 전리군이 상호참조되어 도출되는 새로운 함의는 무엇일까?

 

한편, 자격고사(이론 과목)와 관련해서는 '비교 문화연구'의 이론과 그 곤경 나아가 혁신 지점 등을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서 하나의 대안적 방향으로 제출된 '아시아'를 논의해야할 것 같고, 아울러 탈식민주의도 함께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인터아시아'를 초보적으로 개념규정하는 시도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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