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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손가孫歌 선생의 "아시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시 읽었다. 역시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반일본적인 일본 민족주의"라 할 수도 있고, 크리스테바의 "민족주의 없는 민족"에 대한 고민과 닿아 있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아시아 자체를 존재하는 실체로 보는 방향(후꾸자와 유끼찌의 탈아론과 오까꾸라 텐신의 흥아론)과 존재하지 않는 기호 또는 이념으로 보는 방향(와쯔지 테쯔로오)으로 나뉘는 일본 내부의 사상적 분기는 전후 일본의 패권주의의 재등장의 정세 속에서 다케우치 요시미와 우메사오의 대화로 전환되었다. 아시아를 '방법'이자 '기호'로 간주했던 사상사 연구자로서의 다케우치에게 문명사적 역사관에서 아시아를 바라본 우메사오는 다케우치가 포착한 서구에 대응해 출현한 아시아주의라는 연대의 감성을 구체적이고 복잡성을 갖는 아시아와 연결짓는 계기를 제공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다케우치는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민족주의'의 역량을 서구적 좌익 보편주의 입장에서 무시하는 일본 좌익의 무책임과 위험을 경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역사적으로 다시 복원하여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를 다시 쓰고자 했던 것 같다. 특히, 대국과 소국이라는 설정은 전통적 문명과 현대적 국가라는 중국와 일본가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지역구도를 그리는데 유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도는 흥미롭게도 남북한의 분단에 오버랩되면서 북한을 중국 문명 쪽에 위치시키고, 남한을 일본의 현대화 노선에 위치시키게 된다. 이러한 구도는 기본적으로 '민족' 문제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물론 이러한 구도 자체는 '민족' 및 '민족'간의 관계의 조건을 보여주지만, 당대의 문제설정, 즉 정치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논의되지 않으면 아주 쉽게 국가주의적 서사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케우치가 손가 선생을 통해서 최근 새롭게 부각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번역된 다케우치 선집도 '방법'과 '이념'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구체적 역사 조건을 재인식하는 맥락에서 조명 받았으면 한다.

 

한편 나는 번역 문제와 관련하여 아시아 내에서 한자가 갖는 초국적성이 현대화와 국민국가화의 과정에서 탈각되어온 역사적 과정의 상호 참조의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마침 베트남 학생이 있어서 몇 가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탈한자화가 거의 완료된 것 같다. 남한은 탈한자화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지만,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어와 중국어의 번역에 일정하게 그런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흥미롭게도 일본은 탈한자화가 상대적으로 약한 느낌인데, 좀 알아봐야할 것 같다. 베트남의 경우 탈한자화가 어떻게 가능했는데, 탈한자화는 탈역사화와 관련되지 않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점은 없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탈한자화를 베트남 공산당이 프랑스 식민으로부터 이어 받았다는 점인데, 이는 공산주의와 현대화가 공모했던 지점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 진광흥 선생은 수업 중에 손가 선생을 소개하면서, 하조전賀照田, 왕중침王中沈 등과 같이 중국 동북 지역 출신의 연구자들의 공통적 특징을 동북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 짓는 듯 했다. 길림성 출신인 손가 선생이 중국에서 '주변적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이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 흥미롭게도 영문판의 제목은 "How does Asia mean?"으로 번역되었다. What으로 번역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오해의 소지 때문이란다. What do you mean?과 같은 문장이 갖는 어감을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한 것 같다.

 

- 한편, 이 글과 함께 Tejaswini의 "Alternative frames?"도 읽었는데, 수업 전 토론에서 프랑스 학생 줄리엔은 손가의 글과 비교하면서 이를 "a piece of cake"이라고 했다. 내가 읽기에도 비슷했는데, 흥미롭게도 영어 어휘는 더 어렵게 느껴졌지만, 내용이 진광흥 선생의 탈식민주의에서 읽었던 것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별 고민할 것 없이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손가 선생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던 다케우치와 마루야마가 자주 비교되는데, 마루야마가 유럽을 참조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상적으로 교토 학파와 같은 계보에 둘 수 있고, 다케우치는 아시아와 중국(특히 노신)을 참조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이를 이어간 것이 미조구치 유조이다.

 

- 주말엔 연구소에서 열리는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미래" 행사로 인해 신죽에 내려갈 것 같고, 그 전에 이번 회의에 참석하러 상해에서 온 小茗 선생에게 내일 점심을 대접해서 지난 해 상해에서 진 빚을 좀 갚으려 한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명단을 보니 유선영, 백원담, 김소영, 김성경, 임우경 선생 등 한국 손님들의 이름이 보인다. 흥미롭게다 모두다 여성이다. 한예종의 김소영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공회대에 계신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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