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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군(錢理群, 첸리췬) 선생님의 책을 번역하기로 했다. 구두 상 간접적으로 판권과 출판사 등의 문제가 어느정도 얘기가 되었다. 번역할 책은 올해 대만에서 출간 예정인 "모택동시기와 포스트-모택동시기(1949-2009): 또 하나의 역사서사"라는 책이다. 대만에서는 聯經출판사에서 출간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분량이 상당한데, 대략 계산해 보니 한글 신국판으로 약 1200페이지 정도 되고, 두 권으로 출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4월부터 7월까지 상해에 머물 예정인데, 그 시간을 이용해서 초벌번역을 마칠 예정이다. 빠르면 9월 정도에 출간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한편, 한중 번역과 관련하여 중국어 고유명사 한글표기법과 관련한 기간의 논의에 대해 개인적 입장을 가질 필요성을 느낀다. 맹주억 선생의 논의는 현행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참고가치가 충분하다. 물론 한글 속의 한자의 위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토론하지 않고 원음 표기를 지향한다는 점은 아쉽다. 결국 쟁점의 핵심은 양세욱 선생의 글에서 논의되는 한자의 위상의 문제(과거의 한글전용론과 일정한 관련을 갖는)이다. 한글전용을 전제한 상태에서는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외국어로 상대하고 그 한자를 탈각하고 외국어로서의 그 음성만을 취해 한글표기법에 포함시킨다. 문제는 한자가 단지 외국의 문자인 것만은 아니고, 한글의 유기적 구성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는 한자가 문자언어로서 갖는 일정한 초국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한글전용론과 중국어 원음표기 주장 속에서 이러한 한자의 초국가성이 민족주의/국민주의와 갈등적 관계에 있음을 본다.
여하튼, 그동안의 혼란으로 볼 때 한자음표기를 대체하고자 하는 현행 표기법체계를 순순히 따를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한자음 체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이미 원음에 익숙하도록 변화된 상황에 있어 매우 어색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한자음 체계가 갖는 체계적 일관성, 언어적 경제성 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교육과 무관하다는 점은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겠다. 모택동을 마오쩌뚱으로 표기한다고 한국인의 중국어 실력이 느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www.sinology.or.kr/srcll/html/conference/files_81/2-맹주억W.pdf
www.sinology.or.kr/srcll/html/conference/files_81/5-양세욱W.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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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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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였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에 무리가 올 정도였다고 하던데 건강관리 잘 하면서 좋은 작품 만드셨음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고 힘내시길!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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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만큼의 실력을 갖추진 못했기 때문에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오긴 어렵겠지만, 내가 직접 들었던 한 학기 강의를 토대로 나온 책이니 그나마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나 싶다. 복학 축하하고, 대학 생활 마무리 잘 하길...허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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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내겠다고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씹어먹어...어차피 박사논문의 주제하고도 맞닿아 있으니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소화하는 게 중요할 듯...여튼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고!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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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해봐야 알 것 같은데... 우선 상해에 있는 동안 절반 이상의 시간을 번역에 할애하려고 하는데, 스케줄 상 초벌 번역은 나올 것 같네요. 물론 말씀대로 논문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번역할 생각도 하구요. 형도 새해 계획한 일 잘 되시길~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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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한글전용(한자의 외국어화)과 중국어원음표기주의(중국어의 타자화/국어의 동일화)가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는 세계체계의 작동 논리로서 '국민적인 것들의 강화'라는 맥락에 놓이는 반면, 한자의 초국가성(transnational)의 승인 및 한자음표기주의는 이질적인 것들의 존재를 승인함으로서 국민적인 것들 내부에 일정한 균열을 낳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일부 복고주의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이를 국민화의 강화의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탈국민화 및 초국민화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 이전의 국제주의적 사회운동에 대한 현재적 계승이 복고주의적이지 않은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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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2]중국어의 타자화/동일화는 실제적인 문제를 낳는데,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홍콩과 대만과 같은 중국의 보통화와 일정한 차이를 갖는 지방어에서 보이는 음가의 차이를 무시하게 되는 경우이다. 홍콩의 경우 음성적 측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체계를 갖는 광동어가 지배적이면서 동시에 중국의 보통화가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대만의 경우 보통화와 유사하면서도 일정한 차이를 갖는 국어와 민남어가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내부에서의 다양한 지방어와 보통화 사이의 각축이다. 예를 들어 조선족의 이름을 중국어의 보통화 원음으로 표기해야 할지 아니면 한국어 한자발음으로 표기해야 할지의 문제 말이다. 이와 같이 중국어의 타자화/동일화는 중국어의 문자언어로서 한자를 공유하는 중국 내외부에서 서로 이질적인 음성언어가 각축적인 상황을 무시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두 가지 방향이 나올 수 있다. 중국어를 세분화하여 각각에 맞는 원음 표기법을 제정하는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실효성을 가지기 쉽지 않은 방법이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한자음 표기를 중심으로 다른 예외적 차이들을 포섭해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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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3]원음 표기는 원음에 '가까운' 표기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이 전제 자체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마오쩌뚱으로 읽으나, 모택동으로 읽으나 한국어의 발음체계와 중국어의 발음체계의 상이성을 고려하면 두 한국어 발음은 모두 중국어의 발음과 전혀 다르다. 마오쩌뚱으로 읽는다고 중국인들이 조금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종의 망상임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사실상 중국어의 발음은 한국어의 발음으로 상호전환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출발점으로, 그리고 한국어 내의 유기적 구성부분으로서의 한자어가 갖는 지위를 전제로 하고 중국어의 한글 발음 표기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한자어의 '박별'과 순우리말화가 가능하다면(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조금 달라지는데, 그 때에는 우리말 안에 한자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원음 표기라는 방식을 하나의 방식으로 채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역시 원음 표기가 원음에 가깝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 표기법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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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4]얼마전 왕휘 선생과 이러한 표기법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는데, 왕휘 선생도 원음 또는 구어/음성 중심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이 측면에서 사카이 나오키와 유사한 스탠스를 취함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상황도 한국과 비슷함을 내게 알려주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국내에서는 중국어의 우리말 표기법만이 아니라 일본어의 우리말 표기법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고, 국제적으로는 한자통용권에서 상호 번역에 있어서의 외국어 표기법의 문제로 확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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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5]문자와 구어의 관계, 개념과 실체, 이론과 실제(실천/운동)의 관계의 대비. 경험주의의 문제. 그 배후의 인식론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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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6]음성중심주의 비판에서 참고할 지점.
데리다가 기의와 기표를 구분하는 기존 언어학의 이분법을 비판하면서, 기의와 기표의 지시관계 없이 기호의 교환을 설명함. 기호의 의미는 배후의 구조와 상관없이 기호들 사이의 상호구별작용 자체로부터 오다.
음성중심주의적 중국어 표기법이 동일하게 언어학의 이분법을 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이분법은 중국어과 국어의 상호주체화라는 맥락에서 양자를 본질화하고 타자화하는 민족주의적 모티브에 따르는 것. 공통의 문자는 서로 다른 음성에 따라 서로 다른 문자로 간주되고 다시 서로 다른 음성과 지시관계를 맺게 됨. 이 효과는 모종의 민족주의 운동의 효과? 다시 '한자'의 위상의 문제. 민족주의적 언어운동이 오히려 반민중적이게 될 가능성. 사카이 나오키의 논의를 재검토할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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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6/21 오늘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중국 상하이(上海)를 여행하던 한국의 10대여성이 버스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동방조보(東方早報)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30분께 상하이 황푸(黃浦)구 마당루(馬堂路)의 관광버스 안에서 A씨가 2.5㎏의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
1992년 출생자로 학교의 단체관광에 참가했던 A씨는 마당루 인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신톈지(新天地) 등을 관람하던 중 갑자기 복부의 통증을 느낀 후 바로 출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하이', '동방조보', '황푸', '마당루', '신톈지'는 이른바 고유명사이다. 한자음표기는 '상해', '동방조보', '황포', '마당로', '신천지'로 표기하고, 이른바 원음표기는 일정한 기준은 사실상 없지만 대충 해보면 '상하이', '뚱팡자오빠오', '황푸', '마탕루', '신톈띠' 정도가 될 것이다. 원음표기의 영향으로 발생한 고유명사 역어표기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거의 '개판'에 가깝다. 실제로 이 정도면 한자병기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국어 내에서 상호변별이 거의 되지 않는 혼란에 도달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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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7]'북경'과 '北京'을 병기하면서, '북경'으로 쓰고, 이를 '北京'과 연결시키는 것이 대중들의 언어 생활의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하고 언어생활의 풍부화의 지식의 공유에 있어서 합리적이다.
만약 '뻬이징'과 '北京'을 병기하고, '뻬이징'이라고 쓰고, 이를 '北京'과 연결짓는 것은 중국어의 발음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대중적 층위에서 '뻬이징'이라는 '순우리말'만을 남기고 이를 '北京'과 연결시키지 못하도록 하게 되어있다. 결국 원음표기주의 외래어 표기법은 기본적으로 국어로부터 한자어를 배제하고자 하는 한글전용 방향에서 제정된 것이었다. 한글전용은 매우 포퓰리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갖는 것 같은데, 이 효과는 대중의 우매화일 것이다. 이는 대중들 속에서 지식의 확산과 공유를 지향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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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8]문득 떠오른 한 가지 대안적 표기법 방안
예: 북경(北京, Beijing), 모택동(毛澤東, Mao Zedong),대북(台北, Taipei 또는 Taibei), 인민일보(人民日報, Renminribao)
설명: 번역은 외국어를 외래어로 바꾸어 줌을 통해, 일정한 언어공동체의 언어생활을 풍부화해주는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외래어를 우리말의 일부로 간주하며, 그 표기법은 대중들의 언어생활의 현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중국어의 고유명사를 한글로 표기함에 있어, 우리는 대중의 언어생활과 문자생활을 고려하여 한자음 표기를 원칙으로 한다. 이는 기존에 시행된 중국어 원음 표기법이 한글 표기와 한자가 궁극적으로 분리되어 외래어의 본래적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반면, 한자음 표기는 중국어의 문자, 즉 한자와 우리 말의 한자가 일정한 호응성을 가지고 있어, 표의문자로서의 한자의 본래적 의미를 지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말의 일부로서의 외래어의 표기법은 응당히 대중의 언어생활 속에서 의미전달이 중시되어야 하는 바, 단지 음성적 유사성에 근거한 원음 표기법이 갖는 실익은 매우 작다고 보아 이를 대체하는 한자음 표기를 원칙으로 하였다.
한편, 고유명사가 처음 출현할 때, 기존의 원음표기와의 혼동을 감안하고, 알파벳의 국제적 통용를 고려하여 한어병음체계를 통한 중국어의 알파벳 표기를 병기함으로써, 중국어 고유명사와 관련하여 한자 문화권에서의 한자와 알파벳을 이용한 언어권에서의 표기의 연관을 밝혀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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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9]원음표기를 주장하는 국어학자의 발표를 들어보니 외국어와 외래어의 구분 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자의 구분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관건이 드러난다. 원음주의 표기를 주장하는 분들은 한글을 문자를 넘어서 '언어'로 간주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한글이라는 문자의 사용을 통해 우리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효율적으로 의미표현과 전달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한글전용론이다. 따라서 우리 언어 생활에서 한자는 이미 불필요한 것이고, 부재한 것이 된다. 한자어적 기원을 갖던 말던, 한글 표기 만으로 의미 변별과 전달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한자 자체는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가 된다. 이렇게 해서 기존에 우리 말의 한자와의 관련성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한글이 사용하기 쉽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문자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 언어 생활이 한글전용으로 가야하는 필요성과 갈 수 있는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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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1986년 제정된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은 우리말의 구조적 일부로 자리잡은 문자인 한자를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로 타자화하는 '한글전용'의 입장에 근거한 것이다. 역자는 한자의 표의 문자로서의 특성과 우리말 안에서의 지위를 무시하고, 한글전용의 관점에서 제정된 이른바 '원음주의' 외래어표기법이 본래의 기대와 달리 언중 사이에 여전히 상당한 혼란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울러 고유명사라고 해서 원음주의에 따라 번역한다는 원칙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고유명사라고 하더라도 우리말 안에서 그 의미를 최대한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역어를 찾아 제시하는 것이 번역의 일차적 임무이다. 그래서, 역자는 일정하게 현행 표기법에 적응해 온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줌을 감수하면서도, 절충적인 관점을 취하기 보다는 규범적이고 원칙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크다고 인식하여 본래의 한자음 표기를 원칙으로 삼아 통일성을 갖는 번역을 하였다. 예를 들어, 중국어 고유명사가 최초로 출현할 때, '북경(北京)', '모택동(毛澤東)', '대북(台北)', '인민일보(人民日報)'와 같이 우리말 한자음을 적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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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10]외국어를 외래어로 번역하지 않는 것은 번역의 의무 가운데 일부를 방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번역 자체가 불가능하여 불가피하게 음역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뜻을 살려 번역해주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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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11]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0년 3월1일 대통령 특별지시에 의해 초중고 한글전용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한글전용의 흐름이 외래어 표기법에 반영되어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이 1986 제정된 표기법이다. 대강 살펴보니 한글전용 비판에 대해 한글전용론자들의 반박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비판에 대해 이론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한글전용론의 한계적 상황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런 자들이 외래어 표기법과 관련하여 은폐된 한글전용론을 펴고 있는 것 같다. 외국어를 외래어로 번역하는데 있어, 한자가 '외국어'이기 때문에 번역어로 쓸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 배후에는 바로 한자를 우리말과 분리시켜 '타자화'하려는 전형적인 한글전용론의 논리가 숨어있다. [한편 외래어 표기법 문제를 외국어 표기법의 문제로 치환하여 번역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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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12]한자는 우리 언어 생활의 구조적 일부로서 전현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성을 가지는 우리말의 불가결한 구성요소이다. 우리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순 우리말이나 한자를 이용하여 번역어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역자의 판단에 따라 의미를 가능한 한 가깝게(?) 전달할 수 있되, 언중의 언어생활이 수용할 수 있도록 편의성과 경제성 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외국의 인명과 지명 등의 고유명사의 번역도 다르지 않다. 우리말 안에서 외국어의 고유명사를 지시하는 우리 번역어를 선택하거나 새롭게 조합하여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외국어 고유명사의 번역이다. 여기에서 한자를 공유하고 있는 언어문화권의 외국어 고유명사의 경우 우리말의 한자어가 유력한 번역어로 제기되는 것은 의미 전달과 편의성 및 경제성 등의 차원에서 볼 때 매우 당연한 일이다. 외국어 고유명사를 의미를 버리고 그 음성만 취하여 번역어로 삼는 것은 우리말에서 적절한 번역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번역행위이다. 이런 경우 번역은 새로운 어휘를 창조하고(그 방식의 하나로서 원어 발음을 옮겨적기가 있다), 각주를 달아 그 뜻을 별도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레드 삭스'를 중국어에서 하듯이 '빨간양말'로 번역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언제부터 왜 '레드삭스'로 번역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번역 방식은 80년대를 거치면서 일본어와 중국어의 번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여기에서 다시 영어 및 유럽어의 번역의 문제들을 포함하여 번역 자체의 모종의 '윤리'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일부 음성중심주의에 따른 '소리 나는 대로 표기'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엥겔스와 엥엥스의 구별은 외국어 발음을 누가 더 정확하게 하는 차원을 제외하면 의미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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