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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진보는 어떤 비판적 사상자원을 필요로할까? 사회주의적 민족혁명의 완성이라는 엔엘적 노선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개진된 피디적 입장은 사실 적어도 아시아적 맥락에서는 예외적인 것이었다. 이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가능했던 논쟁이다. 아래 서관모 교수가 평가했던 것 처럼 이론적인 뒤쳐짐으로 폄하하는 것은 매우 '이론중심','서구중심'적이다. 왜냐하면 엔엘 피디의 이론적 논쟁은 단순히 서구마르크스주의의 선진적 이론에 의해서 재단될 수 없는 한국사회의 맥락에 놓여져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디적 입장이 물질적 힘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 계급분석에 있어서 차별성도 있다고 보인다. 사실,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의 아시아 지역에서 피디적 입장은 이해될 수 없는 낯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운동의 전망은 여전히 국가/당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다. 피디의 이론이 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엔엘/피디의 쟁점들은 충분히 일반화되어 토론될 필요가 있다. 이론에 있어서의 주체성은 오히려 이러한 경험을 객관화하고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일반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지, 보다 선진적인 이론의 수입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아시아/세계에 새로운 시좌를 제공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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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말·90년대초 변혁운동의 이론 정세(서관모)
*.99년 3월 6일 오후 2시 -7시 숭실대 사회봉사관 212호실에서 개최된 '진보정론지 발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임.
80년대말·90년대초 변혁운동의 이론 정세
서 관 모
충북대 교수·사회학
한국전쟁 이후의 남한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건 속에서 사회주의의 사상, 이론이 공개적으로 존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였다. 80년대 초까지 맑스주의 이론가는 사실상 박현채 하나뿐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이라기보다는 민족해방 혁명을 지향한 좌파 이론가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공개적 활동을 할 수 없었고 80년대에 등장한 남한의 독자적인 사회주의 운동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80년대의 남한의 사회주의운동은 그 이론의 면에서 극도의 시대지체를 겪었다. 1968년 동과 서에서 사회주의의 내부적 개혁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 70년대 후반이 되면 자본주의 중심부 나라들에서는 맑스주의의 일반적인 위기가 선언되고 확인된다. 주변부의 사회주의 운동 역시 80년대에 들어서면 거의 완전히 전망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80년대 남한에서는 세계적 추세를 거슬러,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진보적 인텔리층에 맑스주의, 특히 레닌주의적 맑스주의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그렇게 된 역사적 배경은 비교적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다가 불과 10여년만에 사회주의 운동과 맑스주의는 급속히 조락한다.
80년대의 주요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80년: 5월 서울역 집결 학생들의 '회군', 광주민중항쟁.
82년: 학생운동 내에서 정치노선 논쟁 본격화(경제투쟁-정치투쟁의 관계 문제, 운동주도체 문제 등)
84년: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노동자계급 관점에 선" 변혁운동 및 조직 주창. 기관지 {깃발}.
85년: 조합주의적 노동운동의 틀을 깨고 정치투쟁 영역을 개척했다는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조직됨. "노동자가 억압받지 않는 사회" 표방. "정치적 집단"을 결성하고 이 정치적 조직이 선도적 정치투쟁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고양시켜 대중을 정치투쟁으로 이끈다는 '선도적 정치투쟁론'과 '대중정치조직(MPO)'론 제시.
84년: 연말부터 CNP논쟁. 민투위, 서노련은 민족민주혁명론(NDR론).
85년: * 박현채(국독자론)와 이대근(주변부자본주의론)의 논쟁.
*식민지반봉건사회론/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과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연방제통일론 확산. 이 NL(민족해방)노선이 곧 학생운동의 주도세력이 됨.
* 제헌의회(CA)그룹,『한국사회의 성격과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NDR론' 제시. NL/CA 대립구도 형성.
87년: * 87민중항쟁, 노동자대투쟁, 대선.
*PD(민중민주) 그룹 형성(인민노련도 처음엔 PD 주장). NL/PD 대립구도 형성.
* 페레스트로이카 파고 밀려오기 시작.
88년: * 연초 종속약화(=자립화)/개량화를 전망하면서 6.29 이후의 정세변화를 자본주의 발전의 고도화에 의해 추동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의 이행'으로 파악하는 견해 출현(인민노련) → '일반민주주의(GD)적 투쟁', '개혁대안(=민주대안)론'으로 정식화됨. 종속약화론에 '신사고'의 '상호의존성론'이 결합.
* NL/GD(?)/PD 대립구도 형성됨. 별도로 트로츠키주의적 비판 등장.
* 전민련 건설 논쟁.
89년: 베를린 장벽붕괴.
90년: 전민련 분열. 전민련내 진보정당 논쟁.
91년: 소련붕괴.
이 가운데 1988년 "본격적 이론지"를 표방하면서 무크 {현실과 과학}이 창간되었다. '현실과 과학' 그룹의 이론작업은 레닌주의적 맑스주의 운동의 정점에 있었다. 윤소영이 이끈 '현실과 과학' 그룹의 노선은 레닌주의의 현대화 및 신식민지적 상황에의 특수적 적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룹은 반스탈린주의, 반NL주의, 반개량주의의 3중전선에서 싸웠다. 즉 1975년경까지의 알튀세르/발리바르의 이론에 입각하여 스탈린주의의 이론적 핵심인 사회주의적 생산양식(SMP)론 및 선진사회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독재 종식론을 비판하였으며, 사회주의를 민족주의에 종속시켜 남한 사회혁명을 봉쇄하는 식반론/민주기지론/주체사상과 싸웠고, 국가독점자본주의 '특성론'과 종속적 축적론을 결합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종속파시즘론을 토대로 변혁운동 내의 개량주의적·청산주의적 조류와 투쟁하였다.
3년간 10집까지 간행된 {현실과 과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집(1988) 좌담: 한국사회 민주변혁의 성격―반제반봉건인가 반제반독점인가?
2집(1988) 특집: 한국사회구성체론의 규명
식반론과 신식국독자론 일반적 위기와 국독자 논쟁
식반론과 신식국독자론의 계급분석 신식파시즘의 이론구조
3집(1989) 특집: 민중민주주의론 연구
한국사회성격 논쟁에서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임박하였는가?
러시아혁명과 레닌의 PDR론 식반론과 '민족해방혁명론'
4집(1989) 특집: 현단계 변혁이론의 쟁점 NDR론과 PDR론
5집(1990) 특집: 사회주의 이행론의 제문제
pt독재론, 국가자본주의론, 신민주주의혁명의 성장전화, 짜골로프논쟁
6집(1990) 특집: 변혁운동과 페레스트로이카
기획번역: 80년대 소련 사회주의 정치경제학 동향
7집(1990) 강령문제, 조합주의적 정투관, 통일론, 민주대안론, 사회주의개혁 문제
8집(1990) 정세분석과 전술원리, 전선운동, 칠레혁명교훈, 러시아제국주의논쟁
9집(1991) 개량문제, 통일요구강령, 새로운 당이론, 한국자본주의 연구 쟁점, 맑스 정치경제학 유산의 역사성과 현재성
10집(1991) 레닌적 당조직론, 노동귀족, 80년대의 한국자본주의, 로블랭 사회화론, 조절이론 비판, 알튀세르-대담, 조사(弔辭).
'현실과 과학' 그룹이 특히 인민노련의 이론 및 정치노선에 대해 가한 비판은 당시 변혁운동의 '좌파' 내에서도 지나친 것, 분파적인 것이 아니냐는 평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에 작아 보이는 차이가 나중에 어떻게 확대될 수 있는지를 이후의 사태전개가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91년 6월 계간 창간호인 {현실과 과학} 제10집이 간행될 무렵 '서사연(서울사회과학연구소) 사건'으로 대학원생 6명이 구속되었다. 한편 '현실과 과학' 그룹 내에서 맑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되어갔다. 그리하여 {현실과 과학}은 종간되었으며, '서울사회과학연구소'는 93년 1월 재편되고 윤소영이 떠날 때까지 후기 알튀세르와 80년대 이래의 발리바르의 '맑스주의의 전화' 프로젝트의 학습 및 소개에 작업을 집중하였다(이후 '서사연'의 새로운 성원들은 푸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등의 이론을 수용하면서 좌익이론의 지평을 넓히려는 방향으로 작업해 오고 있다).
이처럼 레닌주의적 맑스주의적인 이론적 활동을 수행하고자 하였던 '현실과 과학' 그룹의 작업의 한계와 문제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맑스주의의 일반적 위기가 폭발한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이후에도 그 위기의 본질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위기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당 형태의 문제이다. 계급투쟁의 조직형태로서의 당은 필연적으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부르주아적 분할을 재생산한다. 당은 노동자계급 투쟁의 정세적 조직형태이지 '본질적' 조직형태일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대안이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계급투쟁의 조직형태는 계급투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이론이 선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이론정세는 사회주의의 재구성이 현안이 되지도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태에 있다. 맑스주의의 유효한 비판적 재구성은 상당히 긴 시간을 요한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탄생할 진보적 이론지는 다양한 좌파의 연대와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 잡지는 계급운동 외에 여성운동, 환경운동, 그리고 동성애자 운동, 장애자 운동, 노인권리운동, 반인종주의 운동 등 다양한 소수자운동이 자신을 이론적으로 표현하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잡지는 이들 운동 일반이 아니라 이들 운동의 래디칼한 좌익적 부분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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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2010년 겨울호로 발간된 inter-asia cultural studies는 백낙청을 주제로 분단체제론 관련 논의로 책 한권을 다 채우고 있다. 물론 2008년 대만사회연구계간에서 이미 한번 벌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단행본으로 책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적 입장에 있어서는 엔엘적 입장에 아주 가까운 분단체제론에 대한 다른 아시아 지역의 관심에서 역설적으로 피디의 합리적 핵심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고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한편, 여담이지만, iacs는 ssci 급의 잡지이면서 동시에 비판담론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장경국蔣經國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