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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연구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서 유용한 글을 스크랩해 둔다. 약간 시간이 지나서 업데이트되어야 할 부분도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잘 정리된 글인 것 같다. 필자인 박자영 교수는 현재는 협성대에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관련 연구가 더 진행되었는 좀 더 알아봐야겠다.

 

http://jbreview.jinbo.net/maynews/article_print.php?table=organ&item=&no=471

 

 

인문산책/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의 문화연구

진보평론  제21호
박자영ꋯ성공회대 연구교수

인문산책/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의 문화연구

박자영ꋯ성공회대 연구교수

1. 들어가며

1990년대(아래 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중국에 등장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일군의 신진연구자들을 이 영역으로 흡수하며 빠르게 중국학계에 뿌리내리고 있다. 중국에 부는 문화연구 바람은 각 대학 문화연구관련 연구소의 신설과 ꡔ시계(視界)ꡕ 등의 문화연구 잡지 창간을 통해 속속 가시화되며 새로운 연구 경향을 확산시키고 있다. 필자가 체류한 바 있는 상하이만 보더라도 최근 각 대학에서 잇달아 문화연구 관련 연구소를 신설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상해대학(上海大學)에서 왕샤오밍(王曉明, 왕효명) 교수를 영입하여 개소한 ‘중국당대문화연구센터(中國當代文化硏究中心)’을 들 수 있다. 그 외에 화동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에서 ‘중국현당대사상문화연구소(中國現當代思想文化硏究所)’를 재조직했으며 상해사범대학(上海師範大學)에서도 ‘도시문화연구센터(城市文化硏究中心)’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한편 최근 창간된 학술 잡지의 대다수는 문화연구 관련 잡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본격 문화연구잡지를 표방하여 리퉈(李陀, 이타) 등이 창간한 ꡔ시계(視界)ꡕ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그 외에 북경 수도사범대학(首都師範大學)의 타오동펑(陶東風, 도동풍) 등이 주편하는 ꡔ문화연구(文化硏究)ꡕ, 북경대학 비교문학연구소가 편집하는 ꡔ다문화연구(多邊文化硏究)ꡕ 등이 최근에 창간된 문화연구잡지들이다. 그리고 기존의 주요 문학 및 사상 잡지인 ꡔ천애(天涯)ꡕ와 ꡔ상해문학(上海文學)ꡕ은 문화연구와 관련된 항목을 신설하여 문화연구적인 색채를 보강하고 있다. 기타 레이몬드 윌리엄즈, 프레드릭 제임슨 등의 문화연구 관련 서적들이 중국사회과학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지식인도서관(知識分子圖書館)’ 학술이론서 시리즈 속에 다수 포함되어 외국의 문화연구 이론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2000년에는 이 시리즈에서 루어강(羅鋼, 나강) 등이 주편한 경전적 논문을 실은 ꡔ문화연구독본(文化硏究讀本, culture studies reader)ꡕ(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0) 출간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관련서적과 역서들의 출간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한편 상해대학에서는 2004년 현재 중국대륙 최초의 문화연구학과 설립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앞서 2000년 홍콩의 영남대학(嶺南大學)에서는 아시아 최초의 ‘문화연구학과’(department of cultural studies)를 개설하여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홍콩 영남대학의 문화연구학과는 1997년부터 학과 설립 준비에 착수하여 2000년부터 제1기 학사과정 학생을 모집했다. 현재 학사과정과 연구석사과정(MPhil) 및 박사과정(PhD) 등 대학원과정 등이 설치되어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입한 유명여성문화연구자인 미건 모리스(Meaghan Morris)를 학과장으로 Ching-kiu Stephen Chan(陳淸僑, 진청교)와 Chan Shun-hing(陳順馨, 진순형), Hui Po-keung(許寶强, 허보강) 등이 학과의 주요 교수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90년대 후반 들어 중국대륙에 확산된 문화연구붐은 중국의 사상문화계 내부의 의미심장한 전환을 나타내면서 이러한 연구영역의 전환과 확산 그 자체가 문화연구의 대상이 될만한 점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비슷한 시기에 본격적으로 개시된 타이완 문화연구 현황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이러한 문화연구 현상을 전지구화시대 범중화권에서 전개된 현상으로서 의미와 구조를 따져볼 수도 있다. 타이완의 문화연구현황과 관련하여 천광싱의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陳光興, 「文化硏究的意義在臺灣」, ꡔ視界ꡕ 第4輯, 2001年 9月. 한편 이와 관련하여 90년대에 일본과 싱가포르, 한국 등지의 동아시아 각국에서 분 문화연구 붐 및 90년대 후반에 가시화된 지역간 문화연구 교류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동아시아 문화 비평 잡지를 표방하며 창간한 초기 잡지로 미국의 듀크 대학에서 1993년부터 발간한 positions: east asia cultures critique(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3-)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잡지가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아시아 관련 학문을 연구하는 해외학자들에 의해 논문이 집필되었다는 특색을 지닌다면 동아시아에 거주하는 문화연구자 사이의 연대와 교류의 모색은 9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되어 2000년 inter-asia cultural studies 잡지의 창간으로 일 결실을 맺는다. 동아시아 현지에 거주하는 문화연구자들 사이의 연구 교류와 관련하여 다음의 창간사를 참고하시오. “editorial statement", Inter-Asia Cultural Studies, 1:1, 2000.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연구붐을 주도하는 것이 중국문학연구자들이라는 데에 있다. 일군의 문학연구자들은 문학작품/텍스트라는 성벽을 넘어 문화 텍스트의 공간으로 옮겨가 미답의 연구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한국에서 문화연구자가 주로 외국 문학 전공자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문화연구자들이 중국문학 연구자들이라는 것은 확실히 특별한 면이 있다. 여기에는 중문학이 인문학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해온 중국의 분과학문체계의 역사성이라는 문제가 반영된 측면도 존재한다. 최근 들어 중국의 한 소장연구자는 문화연구붐을 문학연구자가 주도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사회주의 문예에 적대적인 1980년대(아래 80년대)적인 미학의 틀이 90년대 현실에서도 갱신되지 않은 지적 지형에 대한 타개이자 모색으로 진단하고, 이러한 구도 속에서 90년대 지적 조류의 문제점을 조망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끈 바 있다. 賀照田, 「時勢抑或人事:簡論當下文學困境的歷史與觀念成因ᦉ 9;, ꡔ開放時代ꡕ 第165期 ,2003年 第3期. 원문은 다음의 웹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opentimes.cn/to/200303.html(�講痔� 2004년 5월 10일). 이 원문의 수정본에 대한 번역으로 다음을 참고하시오. 허쟈오티엔, 이정훈역, 「‘포스트사회주의’의 역사경험과 최근문학비평관의 변모양상」, ꡔ진보평론ꡕ, 2003년 겨울호.

그런데 이러한 문학중심적 연구 관점에서 보자면, 대륙에서 부는 문화연구의 바람은 문화연구 특유의 간분과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위험하면서도 의심스러운 시도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에는 문화연구가 문학연구영역을 훼손하거나 잠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또한 깃들어 있는 듯 보인다. 이는 앞서 말했듯 대다수 문화연구자들의 신분이 문학연구자였다는 사실과 연관된 바, 이러한 지점은 허쟈오티엔(賀照田, 하조전)의 글에서 문화연구자의 문학에의 개입을 “문화연구의 전일적 도입을 통해 문학연구의 틀을 교정하려는 시도” 허쟈오티엔, 67쪽.
로 규정하는 구절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문학연구에 있어서 문화연구적 전환이라는 문제를 다룰 때, 위에서 언급한 논문에서처럼 문학텍스트에 대한 문화연구의 비(不備)한 이해를 비판하며 문화연구가 문학연구를 대체할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허쟈오티엔, 위의 글, 67-68쪽.
이러한 시각은 문화연구와 문학연구를 대립적인 영역으로 보면서 문화연구가 문학연구의 영역을 침범하여 이를 해소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작금의 추세라고 보고, 이에 반발하는 경향을 띠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허쟈오티엔은 현재 중국 문학연구가 처한 위기는 문화연구로의 전환이 아니라, 80년대적인 문제틀에 대결했을 때만이 사회주의 시기 30년동안 행해진 정치적 금기가 남긴 과제를 올바르게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에도 지니고 있는 80년대적인 미학관을 교정함으로써, 90년대 이후 전개된 문학비평의 실어증이라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든 면이 있다. 90년대에 제기된 ‘학술규범’(學術規範) 논쟁 ‘학술규범’ 논쟁에 관한 개략적인 소개로 다음을 참고하시오. 김태만, ꡔ변화와 생존의 경계에 선 중국 지식인ꡕ(서울: 책세상, 2004), 153-155쪽. 이 논쟁의 시원은 90년대 초의 ꡔ학인(學人)ꡕ 잡지의 창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ꡔ학인ꡕ잡지에 관해서는 본논문의 3장 관련서술을 참조하시오.
의 연장선상에서 ‘문학’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을 역사적으로 구명하는 것과 관련하여 발언한 허쟈오티엔의 이러한 입장은, 문학비평의 관점 안에서 문학비평 역사 자체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것에는 유효한 방법이라 할 수 있으나 90년대의 변화된 현실에 처한 문학의 위기와 전환 국면까지 아울러 적절하게 진단하거나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곧 90년대 지적 지형이라는 시계에서 그 시침을 문학비평의 문제로 되돌리고, 이러한 문제틀에서 문학비평의 위기를 사고하는 시도는, 90년대 중국에서 문화연구적인 연구경향 등장의 문제를 논의의 바깥으로 위치시키며(어색하면 이 파란부분을 통째로 빼도 무방합니다), 90년대 학계의 변화를 초래한 중국 현실의 맥락을 단순화하거나 새로운 범주의 등장이 지니는 문제성을 사상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90년대 중후반에 가열된 ‘학술규범’ 논쟁에 비판적으로 개입한 연구자로서 허쟈오티엔의 입지를 감안한다면, 그의 지적은 문학연구계가 봉착한 위기를 내부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학비평계에 대한 내부적인 비판이 문화연구적 전환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이를 외부적인 문제의 삽입으로 치부하여, 그 결과 문학이라는 분과학문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양상을 드러낸다는 점은, 그의 발언이 ‘학술규범’ 논쟁과 관련하여 제기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역설적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과연 문화연구가 문학연구를 대체하고 해소한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다시 던져야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양자택일적인 이분법 구도가 오롯이 남아있는 질문의 출발선을 어쩌면 다시 고쳐 그려야할 지 모른다. 문학연구와 문화연구를 대립시켜 보는 관점은 일종의 잘못 배치된 봉쇄전략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문화연구는 경전적인 문학 텍스트 중심의 문학연구 영역에서 빠뜨린 텍스트들을 연구대상으로 건져 올려 의미를 환기시키고, 현실에서 지니는 의미를 재조직하기 때문이다. 이를 문학연구와 문화연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로 볼 것인지, 아니면 현재 중국 학계의 배치 속에서 이루어진 보완이나 수정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로 대두한다. 이 지점에서 허쟈오티엔처럼 문학 영역에 대한 수성적인 입장에서 외부에서 가해진 교정이라고 보는 시각과, 이러한 문학 텍스트 외부로 나아가 현실에 대한 수정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 문화연구적인 관점이 맞부딪치고 갈라진다.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연구자 중의 한사람인 다이진화(戴錦華, 대금화)는 90년대 사회문화현실이 (인)문학연구에 가한 도전이라는 시각에서 중국의 문화연구의 탈/간분과성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중국의 문화연구가 영국의 버밍엄 학파에서 미국의 간분과적이면서도 준학제적인 특징을 지닌 문화 연구로 전파되었으며 이것이 아시아지역의 문화연구실천으로 전개된, ‘이론 여행’ ‘이론여행(traveling theory)’ 개념에 대해서는 사이드의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시오. Edward Said, "Traveling Theory", The World, the Text, and the Critic(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적인 면모를 지닌다는 점을 인정하긴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문화연구가 이러한 서구, 미국 좌파문화이론의 ‘상륙’이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상반되는 의미, 곧 복잡하고도 현란한 중국문화현실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학과와 새로운 이론에 대한 관심을 뛰어넘어 표현된 것이며 이러한 관심과 문화적인 고찰 자체가 기존 이론에 대한 질의이자 더 나아가 이에 대한 전복을 구성하고 있다며 중국에서의 문화연구의 등장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90년대 중국의 문화현상에 직면하여 이에 개입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기존의 서구 문화연구이론에만 의거하는 것도 중국문화현상으로 서구문화이론을 인증하는 것도 아니며, 풍부하고 복잡한 중국 당대문화에 대한 해답을 내놓고자 하는 시도와 관련되어 제기되었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戴錦華, ꡔ隱形書寫: 九十年代中國文化硏究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1999), 7쪽. 이런 점에서 허쟈오티엔이 문화연구의 서구이론 경사를 비판하며 지적한 다음과 같은 대목은 중국에서의 문화연구의 전개를 서구이론의 기원으로 환원시켜 문화연구의 문제제기적인 상황를 단순화시킨 측면이 존재한다. “문화연구가 가진 또다른 문제는 그것이 다루는 경전적 과제들이 서구의 특정한 역사와 현실적인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중국 고유의 허다한 문제들이 문화연구의 시야 속에서 유효하게 자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 문화연구자의 문제의식이나 문제감각에 의한 이러한 상황의 재구성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욱 말하기 어렵다.” 賀照田, 「時勢抑或人事:簡論當下文學困境的歷史與觀念成因ᦉ 9;, ꡔ開放時代ꡕ 第165期 ,2003年 第3期. 각주 13번을 참고하시오. http://www.opentimes.cn/to/200303/2003-03-30 c.html (검색일 2004년 5월 10일).

이 글은 이러한 다이진화의 발언을 출발로 삼아 허쟈오티엔이 시도한 바 있는 문학 내적인 입장에서 ‘문학’이라는 학술 영역을 규범화하는 방식을 섭렵하지 않고, 문학과 문학 외적인 현실의 전개와의 관계 하에서 중국에서 문화연구가 90년대 중후반에 부상한 맥락을 중점적으로 재구성할 것이다. 2장에서는 90년대 문화연구의 전사(前史)로서 80년대 활발했던 ‘문화’ 관련 담론들의 구성양상과 성격을 논의하며 3장에서는 1992년 이후 발생한 ‘대중문화’의 발흥에 발맞추어 새롭게 등장한 문제군과 현실 및 논쟁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 글은 중국에서 ‘문화연구’가 이러한 90년대 논쟁들을 투과한 산물로서 등장했다는 점을 밝힐 예정인데 이는 4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결론에서는 중국 문화연구의 이러한 공세적 발전과 관련하여 현재형이자 미정형의 학제로서 문화연구가 앞으로 전개되는 향방을 가늠해보고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요컨대 이 글은 중국 문학연구계에서 문화연구적 전환이 이루어진 배경과 맥락을 재구성하고, 이 속에서 90년대 이후 중국의 지적 계보와 이념적 지형도를 새롭게 고쳐 쓰는 상황을 적출하여 의미를 따져보려고 한다.


2. 계몽주의 시대 ‘문화’의 함의―‘문화연구’ 전사로서 1980년대
그렇다면 90년대 이전에 중국에는 문화에 관한 담론이 존재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80년대 중국에서 문화담론은 과잉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 개념의 과잉은 비단 80년대뿐만 아니라 중국현대사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특징이라고 해야 할 터인데 다만 이전의 문화 담론은 90년대라는 시장경제 시대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다시 쓰이는 과정을 겪게 된다는 점만 여기에서 간단하게 언급하도록 하자. 중국 현대성을 가르는 중요한 시대지표인 5. 4운동도 이전의 양무운동과 무술변법의 실패를 거울삼아 사상문화에서의 현대적 갱신을 요구한 신‘문화’ 운동으로서 성공을 일궈냈고 마오쩌둥의 혁명노선 또한 문화적인 구성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는데 이는 문화 및 사상에까지 철두철미한 프롤레타리아화를 지향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서 최고조로 표현된다.
중국 사회주의 체제가 문화 개념의 재해석과 혁명화를 통해 이룩한 경험은 80년대 개혁개방의 방향을 토론하는 논쟁 속에서 재단련되는데 80년대를 풍미한 ‘문화열’(文化熱) 토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낙후된 중국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중국사회의 건설을 위해 전통과 사회주의 그리고 개혁개방의 문제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1979년 개혁개방의 전국적 확대 결정과의 관련 속에서, 문화열 토론은 1984년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제기된다. 논쟁은 문화사 중심의 순수 학술적 입장의 역사연구라는 틀에서 벗어나 현실의 방향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작업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신적 사회심리구조와 물질적 사회구조를 합한 대문화 개념으로 확대발전되었고 개혁개방의 방향설정에서 문화는 중요한 구성요소로 부각되는 양상을 띤다. 문화열에 대한 총괄적인 정리로 다음의 책을 주로 참고하였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논전사분과 엮음, ꡔ현대중국의 모색: 문화전통과 현대화 그리고 문화열ꡕ(서울: 도서출판 동녘, 1992). 주지하듯이 80년대 중국 문화열은 전통문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문화의 문제를 전통과 사회주의, 개혁개방의 문제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를 두고 입장이 나뉘어졌는데 크게 유학부흥론, 비판계승론, 서체중용론, 철저재건파 등 4가지 입장으로 대별된다.

구체적으로 80년대 중국에서 문화열 논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중국 각지역에는 ‘중국문화사 연구자 좌담회’, ‘중국 근대문화사 토론회’, ‘전국 동서양 문화비교 토론회’, ‘제1차 국제 중국문화학 토론회’ 등 각종 좌담회와 연구 토론회가 개최되는 등 문화방면의 문제에 대해 폭넓은 탐구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밖에 고등교육기관과 과학연구단위에서 일련의 문화연구기구와 단체가 속속 설립되었는데 가령 ‘중국사상문화연구센터’, ‘동서양문화비교연구센터’, ‘근대문화사 연구실’, ‘중국 사상문화사 연구실’ 등이 이 시기에 건립된다. 이런 기구들로부터 문화 관련 연구간행물이 창간되었고 신문과 잡지 등에서 ‘전통문화와 현대화’, ‘문화논단’, ‘중외문화연구’ 등의 칼럼을 게재했으며 출판사들도 문화총서와 잡지를 앞다투어 출간하였다. 예를 들면 ꡔ미래를 향하여ꡕ, ꡔ중국문화총서ꡕ, ꡔ중화근대문화사 총서ꡕ, ꡔ문화철학총서ꡕ, ꡔ현대사상문화번역총서ꡕ, ꡔ문화: 중국과 세계ꡕ 등이 이 시기에 출간된 대표적인 출판물들이다. 문화열 논쟁의 구체적인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왕준의(王俊義)․방덕린(房德隣), 「80년대 ‘문화열’에 대한 평가와 반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논전사분과 엮음, ꡔ현대중국의 모색: 문화전통과 현대화 그리고 문화열ꡕ(서울: 동녘, 1992), 319-320쪽.

이 시기에 문화열 논쟁에서 주로 논의된 내용을 왕쥔이(王俊義, 왕준의)는 1) 문화 및 문화의 정의, 대상, 구조, 범위 등 일반문화이론 문제 2) 중서문화비교 연구로 중서문화 각각의 특징과 우열 토론 3) 중국문화를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중국전통문화의 특징과 핵심 그리고 발전변화법칙을 연구 4) 각종 문화현상의 전문역사, 전문주제, 구체적인 문화현상에 대한 연구토론 5) 중국문화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둘러싼 주제로 정리하고 있는데, 왕준의 외, 위의 책, 320-321쪽.
여기에서 문화열 논쟁은 중국현대문화와 전통문화, 그리고 서양문화의 관계를 주로 토론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80년대를 풍미했던 문화열 토론에서 중점적인 주제는 일반문화이론이나 중서문화(中西文化) 비교, 중국문화의 방향, 중국문화의 특성 등의 거시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러한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문화’ 개념을 전통문화의 현대적 전환이라는 기획 하에서 재주조하려 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개념을 지향하는 80년대의 ‘문화열’ 토론의 특색은 중국 관방의 ‘4개 현대화’ 노선에 부재한 ‘문화의 현대화’라는 공백을 메우는 반(半)관방적 담론으로 기능한 점과 관련되는데 실제 중국 공산당은 비판계승론의 입장에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4개 유파를 적절히 활용하여 문화적인 변용의 향방을 모색했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성격을 간취할 수 있다. 80년대 문화열 토론 과정 중에서 중국공산당은 ‘정치사회적 요구’에 맞춰 각 유파를 활용한 것으로 드러난다. 중국공산당은 ‘나날이 증가하는 인민들의 물질문화적 요구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낙후된 생산력 사이의 모순’으로 중국사회의 주요모순을 규정하고 생산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개방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유파의 입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즉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의 책임을 철저재건론이나 서체중용론자 등 전반서화론자의 몫으로 돌리고 완충장치로서 유학부흥론이나 비판계승론 등의 입장을 이용한다. 이런 면에서 당이 개혁개방의 이데올로기로서 역설적으로 신유가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친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당의 입장이 어느 한 유파에 기울어져 입장을 표명했다고 할 수는 없다. 생산력을 강조하는 중국 공산당의 입장은 유학부흥론과도 거리를 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열에 대한 공산당의 입장에 관해서는 위의 책에 실린 「문화열이란 무엇인가」 등을 참조하시오.
이러한 지점에서 80년대 문화 담론의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로써 80년대 문화담론은 중국사회 개혁의 전반적인 방향을 모색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형 속에서 중국의 현대화는 특별한 반성 없는 지상의 과제가 되고 있으며 ‘문화’의 문제는 중국이 현대화하는데 중요한 기제로서 구성되고 재평가되고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각 유파들간 방점을 달리 할 뿐인데, 문화열 토론의 주요 논자들의 입장 차이를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분하자면, 유학부흥론과 비판계승론은 전통문화에서 현대화의 씨앗을 발견하고자 하고, 서체중용파와 철저재건파는 전통문화의 부정적인 구성요소를 거시적인 구조분석 속에서 추출하여 이를 지양하고 현대화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문화열 토론은 “중국의 문화가 현대화의 요구에 적응할 수 있느냐, 아니면 현대화에 장애로 작용하는가에 대한 논의” 汪暉, 「九十年代文化硏究與文化批評」, ꡔ死火重溫ꡕ(北京: 人民文學出版社, 2000).
였으며 이러한 ‘현대화’를 전제로, 의견들이 제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리퉈는 한걸음 더 나아가 80년대의 문화열 논쟁이 중국에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지식의 준비에 다름 아닌 것으로 ‘자본주의를 복습하는’ 과정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곧 그도 전통/현대의 이분법적 사고 아래 현대성을 전제로 삼고 서구발전방향이 보편성을 지니는 것으로 여겼다는 점이 문화열 논쟁 참여자의 기본적인 인식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李陀․楊建平, 「失控與无名的文化現實」. 이 인터뷰는 다음의 웹사이트에서 전문을 찾아볼 수 있다.
http://www.tsinghua.edu.cn/docsn/cbx/sunjian bo/works/
website/rw/sixiang/qianxian1/diceng/wh10.htm(검색일 2004년 5월 10일)

80년대의 문화열 논쟁이 현대화를 사고한 방식은 동방문화/서구문화, 혹은 전통문화/서구문화라는 이항대립 속에서 ‘중국문화’ 개념의 변용을 모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때 ‘문화’는 다름 아닌 ‘전통문화’를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80년대 문화 담론은 특정한 연구영역이 아니라 문화전반을 대상으로 진행한 중국의 현대화와 관련한 논쟁이었으며 이때 문화의 현대화 혹은 인간의 현대화라는 기획 속에서 문화는 정신이자 가치체계라는 전통적인 추상적인 차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汪暉, 「九十年代文化硏究與文化批評」, ꡔ死火重溫ꡕ(北京: 人民文學出版社, 2000).
중국문화가 전통개념에 결박되어 사고되는 한 ‘현대화’ 노선이 헤게모니를 차지한 80년대에 이 개념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하고 재규정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며 그 방점을 총체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현대적인 개념으로 변환시키는 데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80년대의 지적 지형도를 통해 ‘문화’는 계몽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기획 속에서 총체적이고 거시적인 성격을 띠었고 전통 개념과의 관련 하에서 현대화라는 명제와의 절합지점을 모색하는 가운데 기존의 중국문화라고 상상되는 전통문화를 가리키는 기표로 자리하게 된다.


3. 대중문화의 습격과 그 반응―1992년 이후

그러나 90년대 중국에서 전개된 사회문화현실은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기존의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문화 개념을 이러한 현실에 대입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중국사회가 빠른 속도로 시장경제에 진입함에 따라 기존의 사회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전개되며 이 세계는 ‘전통적이고 추상적인’ 문화 개념이 적용 가능하던 세계와는 다른 현실을 선보인다. 기존의 문화 개념은 90년대의 변화된 현실에서 무능하거나 부적응하며 이와 무관한 문화개념이 빠른 속도로 기존의 문화개념을 대체하는 양상을 보인다. 즉, 현대화를 지향하던 80년대적인 문화 개념은 현대화가 실현되었을 뿐더러 더 예각화된 표현인 시장화가 도래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해석의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역설을 드러낸다.
앞서 언급했던 문화연구 잡지인 ꡔ시계ꡕ의 편집자이자 강소인민출판사(江蘇人民出版社)가 간행하는 ‘당대대중문화비평총서’(當代大衆文化批評叢書) 편집자인 리퉈는 문화의 상품화를 이러한 사회변화의 주요원인으로 지목한다. 문화의 상품화는 당대중국 ‘사회전형’의 역사적 과정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면서 이러한 문화상품화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대중문화가 90년대 중국 사회 각 층면과 각 자락을 휩쓸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때 문화연구의 대상은 문화이지만 이는 과거에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던 각종의 ‘문화 토론’이 겨냥했던 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지닌, 현재 시장경제와 밀접한 관련 있는 상품문화, 특히 산업적인 생산방식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대중문화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李陀, 「當代大衆文化批評叢書․序」, 宋偉杰,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 金庸小說再解讀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1999), 5쪽, 7쪽.

이러한 대중문화는 90년대 특히 1992년 남순강화 이후 급속하게 확산되고 번화함으로써 새로운 사회현실을 구성하는데, 이 시기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도서시장, 영화, 광고, 통속간행물, 유행잡지, 신건축물 등 사회주의 중국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상업적인 대중문화가 새로운 풍경을 형성하면서 90년대의 소비사회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90년대 전개된 새로운 현실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통속적인 터치로 당대사회를 묘사한 왕슈어(王朔, 왕삭) 소설과 영화의 대중적 성공으로, 1993년은 ‘왕슈어현상(王朔熱)’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등 왕슈어는 이 시기 대표적인 문화적인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90년대 초 ꡔ갈망(渴望)ꡕ에서 시작하여 ꡔ편집부이야기(編輯部故事)ꡕ, ꡔ뉴욕의 북경인(北京人在紐約)ꡕ으로 이어진 기존의 당과 국가를 찬양하는 드라마와는 다른 통속극적인 성격을 지닌 드라마들이 제작방송되어 중국인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만들었으며 딱딱한 형식의 뉴스전달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주조로 한 새로운 형식의 보도프로그램을 선뵌 「동방시공(東方時空)」 등의 프로그램의 등장도 새롭게 등장한 문화현실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
이처럼 새롭게 전개된 현실은 인문학자들에게 위기의식을 던져준다. 사회주의 중국에 ‘대중문화’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현실의 급습 앞에 인문학자들은 추상적인 ‘사상문화’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현실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욕망이 미시화하기 시작하는 소비사회에서 추상적인 사유는 무력하고, 새로운 대중 주체의 등장을 앞에 두고서 지식인들은 기존의 인문학 패러다임으로는 현실에 대한 적절한 설명방식이나 대응방법을 찾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실어증에 빠진다. 다이진화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지식인들은 90년대 중국에서 ‘대중’ 문화가 일상화된 이데올로기의 구성자이자 주요한 담지자일 뿐만 아니라 주류문화 중에서 일정한 자리를 요구한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戴錦華, 위의 글, 2-3쪽.
이러한 현실에서 기존의 80년대적인 엘리트 입장을 고수하여 대중문화를 단순하게 부정하거나 혹은 단순하게 긍정하는 것은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한다. 그런데 이는 연구 및 관심 대상의 전이와 확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지식구조와 담론체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발언자의 현실적인 입장과 이론적인 입장에 대한 성찰을 낳게 하는 도전적인 성격을 지닌 새로운 현실과 맞부딪치는 것이다
이렇게 90년대 초중반, 획기적으로 달라진 현실을 앞에 두고 지식인은 새로운 담론 공간을 모색하는데 이는 국내외 발신지에서 구체적인 징후를 드러낸다. 90년대에 전개된 새로운 현실과 관련하여 지식인과 사상계의 전반적인 반응은 왕후이의 다음 글에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으니 이를 참고하시오. 왕후이, 「1989년 사회운동과 중국 ‘신자유주의’의 기원: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 재론」, 이욱연외 옮김, ꡔ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ꡕ(서울: 창비, 2003). 이와 관련하여 본 논문은 90년대 전반적인 지적 지형도를 그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90년대 중후반 ‘문화연구’의 부상과 관련된 중요한 담론과 지형에 집중하여 그 맥락과 의미를 따져보는 것을 서술의 중점으로 삼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이 무렵 베이징에서 학술전문잡지를 표방하고 천핑위앤(陳平原, 진평원)과 왕후이(汪暉, 왕휘) 등이 편집한 비관방잡지인 ꡔ학인(學人)ꡕ이 창간 ‘지식인(知識分子)’이라는 공식명칭을 거부하고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재규정한 명칭부터 선명한 반/비관방적 색채를 지닌 학술지 ꡔ학인(學人)ꡕ은, 1991년 일본의 국제학술우의기금회(國際學術友誼基金會)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강소문예출판사(江蘇文藝出版社)에서 출간한 중국 최초의 비관방적 학술잡지라 할 수 있다. 이를 필두로 90년대 초중반에 ꡔ중국사회과학계간(中國社會科學季刊)ꡕ, ꡔ원도(原道)ꡕ, ꡔ공공논총(公共論叢)ꡕ 등의 비관방적 학술잡지들이 출현한다. 이러한 민간출판물 출간 상황에 대해서는 왕후이, 「중국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 ꡔ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ꡕ(서울; 창비, 2003), 81-82쪽을 참고하시오. 한편 ꡔ학인ꡕ 창간의 전후사정에 대하여서는 왕후이의 다음의 후일담을 참고하시오. 汪暉, 「必要的沈黙: 關于學術史與學術規範的隨想」,ꡔ舊影與新知ꡕ ;(遙寧敎育出版社, 1996).
됐으며 해외의 중국학전문학술지인 Modern China지에서는 외국학자들에 의해 ‘시민사회’ 논쟁이 개시된다. 1993년 Modern China지를 통해 개시한 만청시대 시민사회 존재 여부 등을 둘러싼 ‘시민사회’ 논쟁 관련 글은 덩정라이(鄧正來, 등정래)의 다음 책에 재수록되어 있다. 鄧正來, ꡔ國家與市民社會ꡕ(北京: 中央編譯出版社, 1999).
학술규범 창출을 목적으로 한 ꡔ학인ꡕ의 창간은 이후에 천핑위앤 주도의 학술사연구와 ‘국학(國學)’ 연구 영역으로의 약진을 예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80년대의 문화토론이, 거시적 틀의 재구성에 주력하다보니 결락하기 십상인 학문의 엄밀함이나 전문성이라는 면에서 일정한 성취를 거뒀다고 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문화토론을 매개로 했던 80년대적인 현실개입 의식이 전문적인 학술 영역으로 급격하게 퇴거하는 양상을 띠며 현실적인 문제와 결별하는 결정적인 양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다른 한편 ꡔ학인ꡕ 등의 비관방 잡지의 창간과 CCTV의 외주제작프로그램인 ꡔ동방시공ꡕ의 성공은 관방이 아닌 ‘민간(民間)’ 공간의 개창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상기되며 Modern China지의 시민사회 논쟁의 현실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이러한 ‘민간’의 부상은 ‘공공영역’ 논쟁이라는 급진적이면서도 자유주의적인 논의를 낳았고, 이후 ‘학술사연구’나 ‘국학열’이라는 현실개입에 보수적인 논의를 배태하는 등 양날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할 터이다. 한편 왕후이는 90년대에 중국에 전개된 학술사 연구를 ‘보수주의’ 범주에 넣기를 거부하면서 당대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보여주는 왕후이의 모순적인 태도란 곰씹을만하다. 2001년에 발표한 글에서 왕후이는 90년대 ‘시민사회’론을 학술사연구와 분리하여 공격하는데, 그는 ‘시민사회’ 구상이 노동자계급과 농민 계층을 시민사회 바깥으로 배제했으며 빈부의 급격한 분화를 고취하는 국가정책에 전적으로 부응한 점 등을 들어 학술사연구에 유보적인 태도와는 달리 이에는 명백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왕후이, 「1989년 사회운동과 중국 ‘신자유주의’의 기원」, ꡔ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ꡕ(서울; 창비, 2003), 132쪽 각주 32와 136쪽을 참고하시오. 그러나 90년대의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을 다룬 다른 글에서 왕후이는 ‘시민사회’ 논쟁이 비관방 출판물 및 제작물의 등장과 관계 깊다는 점을 밝히면서 90년대 출현한 이른바 공공영역이 국가와 사회 사이에 놓인 조절 역량이 아니라 국가의 내부공간과 사회가 상호침투한 결과로 필연적으로 국가의 정치적 간섭에 저항할 진정한 힘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어서 앞의 글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왕후이,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 ꡔ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ꡕ(서울: 창비, 2003), 79-82쪽. 참고로 이 글은 1994년에 최초로 발표되었으며 그 후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1997년과 1998년에 재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사회’나 ‘민간’을 둘러싼 논쟁들이 90년대의 시장화된 중국사회를 기본적인 배경으로 깔고, 이러한 조건을 인정하는 한에서 성립한 논의라는 점에서는 일치하는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 초 대중문화의 급습과 지식인담론의 구도 속에는 현대화나 시장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나 회의는 아직 출현하지 않으며 80년대 문화열 논쟁의 여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90년대 이후 중국사회를 기본적으로 조건 짓는 시장경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현실인식의 전환을 알려주는 최초의 사건이 90년대 중반 상하이에서 발단한 ‘인문정신(人文情神)’ 논쟁이다. ‘인문정신’논쟁은 왕샤오밍(王曉明), 천스허(陳思和, 진사화), 주쉬에친(朱學勤, 주학근), 장루룬(張汝倫, 장여륜) 등 당시 상하이의 소장인문학자들이 연 좌담회에서 발단한다. 이는 이후에 ꡔ독서ꡕ(1994년 제5기)에 게재되면서 전국적인 논쟁으로 확전한다. 인문정신논쟁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백원담 엮고 씀, ꡔ인문정신의 위기ꡕ(서울; 푸른숲, 1999). 참고로 90년대 중반 중국사회의 시장화에 대해 동일하게 비판적이었던 이들의 입장이 90년대 중후반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 등 사상계의 분화를 거치면서 갈라지는 지점은 눈여겨볼만하다.
상업문화와 시장화 과정을 비판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운위하는 ‘인문정신논쟁’은 엘리트주의적이고 전통적인 윤리에 기대고 있긴 하지만, 전면적으로 긍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장경제라는 90년대 조건을 정면에서 비판한 최초의 목소리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90년대 초중반 현대문학계를 비롯한 인문학계를 휩쓸었던 중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시장화에 대한 긍정이라는 입장에서 인문정신논쟁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이는 중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지지한 반엘리트적이고 대중적인 것의 의미가 시장화와 직결되는 관계임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정신 논쟁 제기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간의 대립각에 대해서는 왕후이와 류캉(劉康, 유강)의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왕후이, 「1989년 사회운동과 중국 ‘신자유주의’의 기원」, 위의 책, 143-144쪽. 劉康, 「對中國當代文化思潮的幾点思考」, ꡔ全球化/民族化ꡕ(天津: 天津人民出版社, 2002).

인문정신논쟁에서 단초를 보인 중국의 시장화 과정에 대한 비판은 시장화된 중국 현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음영이 분명해질 즈음인 90년대 후반 ‘신좌파(新左派)’와 ‘자유주의(自由主義)’ 논쟁을 통해 첨예화된다. 이 시기에 신부유층(‘新富人’)과 화이트칼라(‘白領’)라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고 이에 반해 노동자 국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명색이 무색하게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가치하락이 발생한다. 특히 90년대 후반 정리해고(‘下崗’)노동자와 실업(‘失業’)노동자가 대량 발생하고 농촌출신의 도시 노동자군(‘農民工’)이 대규모로 출현하여 대도시에서 새로운 하층계급을 형성한다. 중국사회계층의 분화에 대한 자세한 분석으로 다음 책을 참고하시오 陸學藝主編, ꡔ當代中國社會階層硏究報告ꡕ(北京: 社會科學文獻出版社,2002). 이 책의 번역서로 루쉬에이, 유홍준옮김, ꡔ현대중국사회계층ꡕ(서울: 그린, 2004)이 출간되어 있다. 이 책은 중국사회과학원이 국가의 지원으로 주도한 중국사회계층보고서로 조사결과 중국은 현재 10대 사회계층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조사 결과 무직, 실업, 반실업계층 등 하층계급이 상당한 숫자로 존재하고 있고 확산되는 추세일 뿐더러 이들의 상황이 열악한 것으로 드러나서 출간 당시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개혁개방의 음영이 고스란히 찍혀있는 이러한 조사결과로 인해 이 책은 출간 직후 한때 중국정부에 의해 서적회수조처 소동을 낳기도 했다.
이는 90년대 중후반 지식계에 ‘하층(底層)’과 연관된 담론을 낳는데 이는 시장화된 90년대 중국현실이 탄생시킨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사회현실을 본격적으로 반성하는 담론지형을 형성한다. 중국에서 ‘하층(底層)’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이는 ꡔ상해문학(上海文學)ꡕ 전 편집자이자 현재 상해대학 중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차이샹(蔡翔, 채상)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ꡔ상해문학ꡕ에「하층(底層)」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90년대 시장화된 중국에서 ‘하층’의 문제성을 최초로 제기한 바 있다. 한편 ꡔ천애(天涯)ꡕ는 올해 2기와 3기에 차이샹의 ‘하층’ 글을 다시 게재하고 이 문제와 관련된 논문과 대담을 연속적으로 실어 당대 중국에서 ‘하층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ꡔ천애ꡕ에 실린 관련 글로 다음을 참고하라. 蔡翔, 「底層」; 网友, 「致寶馬事件里的農婦」(詩); 劉旭, 「底層能否被擺脫表述的命運」, ꡔ天涯ꡕ 2004年 第2期. 蔡翔․劉旭的對話, 「底層與知識分子」, ꡔ天涯ꡕ 2004年第3期.
신좌파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한 중국 사회현실 및 이론 지형도의 출현과 관계 깊은 바, 이들은 그간 10여년이 넘게 중국인민들에게 작동했던 시장만능론과 경제지상주의 신화를 비판하며 사회적인 부의 공정한 분배 등의 사회 공정(公正)을 요구하고 문혁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잠식한 사회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과정을 소상히 담은 최근의 서적으로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公羊主編, 『思潮: 中國“新左派”及其影響』(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한편 국내에 소개된 신좌파-자유주의 논쟁에 대한 글로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백승욱, 「신자유주의와 중국 지식인의 길찾기--자유주의의 초극인가 쇄신인가」, ꡔ역사비평ꡕ 2001년 여름. 이욱연, 「세기말 중국 지식계의 새로운 동향」, ꡔ실천문학ꡕ 1999년 겨울.
이에 반해 실제 대다수 중국 지식인의 경향을 대변하는 자유주의 계열의 지식인은 모택동 사회주의 재평가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며 더 많은 시장화와 자유를 요구하며 신좌파 지식인과 대치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신좌파-자유주의 논쟁에서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이 논쟁을 개괄한 논문으로 다음을 참고하시오. 임우경, 「세기말 중국 사상계의 분화: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ꡔ연세학술논집ꡕ 제31집, 2000.



4. 중국에서의 문화연구의 발흥―90년대 중후반 이후

중국에서의 문화연구는 상술한 90년대 사회문화현실에서 자신의 생장점(生長點)을 찾는다. 대중문화로 입지를 바꾼 새로운 ‘문화’의 공세와 새로운 계층의 등장이라는 현실에 대해 인문학의 위기를 읊는데 그치던 이론과 해석의 창백함을 걷고 ‘문화연구’라는 새로운 방법론적 무기로 이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점에서 90년대 부상한 ‘문화연구’란 시장경제와 대중문화가 출현하는 90년대 중국의 현실을 앞에 두고, 80년대의 사상문화 논의가 보유하던, 특유의 추상적인 문화논의와 선을 긋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화’에 대한 주목을 통해 현실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당대에 대한 문제인식이란 80년대에 대한 반성과 90년대의 논쟁을 통과하면서 획득되고 심화된 성격으로 이러한 논쟁과 직간접적인 관련 속에서 현실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이진화 등의 문화연구자들은 문화연구가 현재와 유행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근현대(近現代) 중국문화사와 사상사에 대한 재해독과 반성적 성찰 작업으로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이진화, 위의 글, 8쪽.

90년대 중국현실에 새롭게 등장한 ‘문화연구’의 초기적인 형태는 인문사회잡지인 ꡔ독서(讀書)ꡕ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94년, 잡지는 문화문제와 문화연구 토론회를 조직하여 소비주의 문화가 공중의 일상생활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으며 이와 더불어 잡지 지면에 ‘문화연구’와 ‘지역연구’와 관련한 왕후이와 리오우판(李歐梵, 이구범)의 대화를 연속적으로 게재한다. 汪暉, 李歐梵, 「文化硏究與地區硏究」, ꡔ讀書ꡕ 1994年7, 8期. 汪暉, ꡔ舊影與新知ꡕ(遙寧敎育出版社, 1996)에 재수록.
90년대 중국의 문화연구에 대한 초보적인 탐색에 그쳤던 이러한 시도는 이듬해 10월 북경대학 비교문학과 비교문화연구소의 ‘문화연구워크샵(文化硏究工作坊)’이 영화연구자였던 다이진화의 주도 아래 조직되면서 본격적으로 개시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전 ꡔ북경문학(北京文學)ꡕ 주편이었던 리퉈가 미국에서 돌아와 문화연구 관련 번역과 출판작업, 대중문화연구번역총서, 당대대중문화비평총서를 편집하며 이론적인 틀과 방법론을 제시한다.
1995년을 경과하면서 중국에서 서서히 일기 시작한 문화연구 바람은, 관련 잡지의 창간과 본격 연구소가 등장하는 등 가시적인 연구성과를 일궈내는 1999년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역량을 형성하여 중국 (인)문학계에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한다. 1999년 리퉈는 중국 사회과학연구원의 천옌구(陳燕谷, 진연곡)와 공동으로 잡지 ꡔ시계ꡕ를 창간하여 신좌파를 중심으로 결집된 문화연구의 진지를 구축하며 이듬해 창간된 인민대학 중문과의 타오동펑(陶東風), 진위앤푸(金元甫, 김원보) 등이 편집한 전문문화연구잡지인 ꡔ문화연구(文化硏究)ꡕ 등과 더불어 문화연구의 성과를 본격적으로 담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01년 11월 중국 최초의 당대문화연구 전문학술기구인 중국당대문화연구센터(中國當代文化硏究中心,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e Studies, 약칭 CCCS)가 왕샤오밍의 책임 아래 상해대학에 설립된다. 이러한 잡지의 창간과 연구소의 성립은 그간 간헐적으로 등장했던 연구성과를 ‘문화연구’ 영역으로 결집시키고 신진연구자를 흡수하는 등 중국에서 문화연구를 가시화하고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중국의 문화연구역량은 90년대의 변화한 현실을 배경으로 단기간에 급부상했음이 드러난다. 위에서 개략적으로 그린 지형도에서도 짐작되듯이 각지에서 전개된 문화연구가 동일한 문제지점을 포착하여 진행된 것이 아닌데 이 또한 90년대 후반 이후 중국 문화연구가 형성한 특수한 국면이기도 하다. 아래에서는 문화연구 주요 논자들의 관심영역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제기가 가지는 의미와 구조를 밝혀 90년대 중국문화연구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90년대 중국의 문화연구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주제는 ‘주체분석’과 관련된 연구영역의 부상이다. 90년대에 새로 등장한 계급과 계층은 중국현실의 복잡함과 모순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지표로 등장한다. 다이진화는 대중문화시대 ‘대중’의 의미를 되새기는데 이것이 ‘인민대중’이라는 계획경제체제 시절의 사회주의 문화에서 나온 역사적인 기억을 상기시키고 왕슈어 등의 90년대 중국대중문화의 창도자는 이러한 기억을 빌어 합법적인 논술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녀는 90년대 재언급된 대중문화란 문화산업과 문화시장체제의 새로운 출현과 관계하여 출현했다는 지적을 잊지 않는다. 戴錦華, 「緖論; 文化地形圖及其他」, ꡔ隱形書寫: 九十年代中國文化硏究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1999).
중국의 대중문화는 미국적인 의미에서의 중산계급 위주의 안정적인 문화를 형성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급격하게 진행되는 계급분화의 외재적인 징후를 드러낸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다. 곧 중국에서 대중문화는 중산계급의 수요를 만족시킨다기보다 미래의 중산계급 집단을 계획하고 있으며 ‘다음세기의 중국’을 위해 중산계급 공동체를 불러내고 구성하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영 대중형 기업의 구조조정과 국가기구의 개혁에 따라 여기에 소속된 기존의 소비주체들이 소비능력과 사회지위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는 가운데 대중 매체는 휴직 여성노동자들의 최근 경험을 아름다운 ‘개인주의’라는 담론으로 포장하여 상상적인 위로와 현실 합리적인 서술을 제공하는 한편, 농촌출신의 도시노동자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면서 이들을 대중문화의 포섭된 군체(群體)로 끌어들이는 서술양상을 취한다고 진단한다.
다이진화는 이러한 대중문화의 부상 속에 보이지 않는 차원의 글쓰기(隱形書寫, invisible writing)가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작업에 집중하면서 대중문화의 구성기제와 합법화방식을 폭로하며 이 속에서 실제의 중국 민중/대중이 희생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글쓰기(隱形書寫)에 대한 구체적인 논술은 다이진화의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戴錦華, 「隱形書寫」, ꡔ隱形書寫: 九十年代中國文化硏究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1999).
이에 따라서 문화 모택동으로 대표되는 문화영웅붐과 90년대에 분 노스탤지어 바람, ‘유학생문학’의 베스트셀러화, 민족주의 붐 등의 문화현상을 주제로 삼아 중국문화현실이 은폐하고 있는 기제와 작동과정 및 그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를 당대 중국사회 주체 구성의 문제의식 속에서 구체적으로 문제화하고 있다. 다이진화가 주도하는 북경대학 비교문학연구소의 문화연구워크샵의 연구성과로 출판계의 진용(金庸) 현상과 프라이버시열풍(‘隱私熱’)과 반우파 관련 서적의 출간붐 및 텔레비전 연속극, 추이잰(崔健)의 록음악 등 90년대의 ‘문화영웅’을 다룬 다음의 책이 있다. 戴錦華主編, ꡔ書寫文化英雄: 世紀之交的文化硏究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00).
이렇듯 다이진화 등의 문화연구 작업은 ‘보이지 않는 글쓰기’라고 명명된 대중문화현실, 가령 드라마와 영화 등의 미디어와 사회문화현상 등을 텍스트로 삼아 징후적으로 독해하는 가운데 현실이 억압하고 은폐하는 것을 부상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분석에의 주목은 왕샤오밍과 관련 연구기구의 문화연구작업에서도 초점이 되고 있지만 주목하는 지점과 접근경로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상해(上海)라는 메트로폴리스에 거점을 두고 지역연구적 관점에서 차이의 문화현실을 그리고, 이를 중국적 맥락에서 재위치시키는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상해에 도드라지게 분화한 계층인 ‘신부유층(新富人)’과 ‘하층(底層)’, 그리고 ‘화이트칼라(白領)노동자’ 등의 구체적인 주체에 관심을 집중하며 이들의 등장배경과 작동기제 및 문화현실 등에 대한 분석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왕샤오밍은 당대 중국 사회 내부에 차이가 발생하는 양상에 주목하는데 기존에 통용되었던 ‘중국은 어떠하다’라는 개괄적인 사유습관은 당대사회의 복잡한 상황에서는 적용 불가능하며 따라서 문화연구는 차이의 현실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야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러한 차이는 상해의 경우 신 부유층과 화이트칼라, 실업노동자, (농)민공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계층을 등장시키고 이들 계층이 병존하는 현실을 생산하는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성공인(成功人士)’ 90년대 후반 중국 대도시 광고나 대중 이미지에 미만한 ‘성공인(成功人士)’의 형상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王曉明, 「半張臉的神話」, 「半張臉的神話ꡕ(廣州: 南方日報出版社, 2000).
등과 같은 ‘새로운 이데올로기(新意識形態)’가 형성되어 이러한 차이를 지우고 은폐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점을 드러낸다. 이렇듯 90년대 중국사회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주요한 분석대상이 되는데 이는 새로운 권력 구조와 재부(財富)의 이전이 발생하는 지점이자 새로운 생활이상과 인생의 우상을 발생시키는 장소로 시장경제개혁과의 강력한 관련 속에서 현재 정치와 문화의 억압기제에 대해 복잡한 운용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기제로 자리매김된다. 王曉明, 「1990年代與“新意識形態”」, ꡔ半張臉的神話ꡕ(桂林: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이는 동명제목으로 남방일보출판사에서 출판된 2000년의 책을 대폭 수정 보완하여 재출간한 책이다.

그런데 90년대 중국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란 국가로도 회수되지 않고 자본으로도 회수되지 않는 권력-자본의 복잡한 기제 속에서 전개되는데 이는 기존의 서구이론 등으로 해석되지 않는 중국현실을 읽는 새로운 틀과 이론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왕샤오밍 등의 문화연구 작업은 단지 ‘문화’라고 표상되는 영역에 대한 징후적 분석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화형식의 창조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생태적인 변화와 관련되어 전개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각 측면의 복잡한 변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90년대의 사회, 정치, 경제적 구조와 관련된 문화상황에 대한 분석 속에서 획득하고자 한다. 전지구화가 급속도로 진전중인 지역-상해의 문화적인 환경에 대한 분석이라는 지역연구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왕샤오밍 등의 문화연구작업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기제 전반의 문제로 문화연구의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문화 연구의 지형도를 그려내고 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차이를 발생시키고 또 이를 은폐하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탐색과 분석은 차이샹 등의 ‘하층’이 형성되는 현실과 담론에 대한 분석에서 텔레비전프로그램, 광고, 잡지, 인터넷 문학 등에 대한 미디어분석을 아우르고 사회주의 중국의 최초의 신식 노동자 주거단지인 ‘차오양신촌(曺陽新村)’에서 최근에 등장한 고급소비공간인 ‘신천지(新天地)’ 등에 대한 일상적이거나 새로운 공간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90년대 상하이의 사회문화적 조건과 현실에서 출발하여 중국사회를 감지하고 분석하며 전망을 추출하고자 하는 실천적인 지평을 드러낸다. 상해대학 당대문화연구센터의 문화연구 작업과 관련된, 기출간 문화연구 성과로 다음의 서적들이 있다. 王曉明主編, ꡔ在新意識形態的籠罩之下: 90年代的文化和文化分析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00). 包亞明外, ꡔ上海酒吧: 空間、消費與想像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01).

한편 중국 문화연구에서 ‘대중문화’ 연구의 관심은 장르적인 문제로 세분화되기보다 일상성의 문제와 일상생활의 구성과 관련한 제도와 기제에 대한 분석에 좀더 기울어져 있는 것이 한국 대중문화연구와는 다른, 중국 대중문화연구의 특징적인 지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대중문화에 대한 폭넓은 정의와 접근법은 문화연구의 판도를 짜는 리퉈의 작업과 유관한데 리퉈는 대중문화로의 관심이동을 표나게 주창하지만 이때 주목되는 대중문화의 양상은 장르 분석에 국한되지 않은 차원을 지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리퉈의 대중문화연구와 관련된 기술은 아래 글을 주로 참고하였다. 李陀主編, 「當代大衆文化批評叢書․序」, 宋偉杰著,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 金庸小說再解讀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1999).
한편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진 일상성의 구축과 관련된 대중문화 개념의 현상은 사실 90년대 중반의 포스트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된 ‘대중문화’ 옹호론에 대한 체계적인 반박이라는 차원을 지닌다. 리퉈의 대중문화 기제와 구조, 의미에 대한 주목은 90년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당대중국문화 분석이 ‘서구’를 ‘현대문명’의 원류로 판단하여 당대중국문화를 이러한 서구 중심적인 틀 속에 종속시켜 옹호한 것에 대한 비판적 응답이라 하겠다. 따라서 그의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작업은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무조건적인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옹호론 및 시장화에의 지지를 서구중심주의라는 낡은 이야기의 새로운 판본으로 비판하며 이러한 신화를 드러낼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구조와 기제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李陀主編, 「當代大衆文化批評叢書․序」, 宋偉杰著,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 金庸小說再解讀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1999), 6쪽.

무엇보다도 그에게 문화의 문제는 대중문화의 문제로 부각되며 이때 대중문화는 현재의 시장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품 문화 특히 산업생산방식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대중문화라는 점이 명시된다. 그런데 그는 문화를 의식체계로 규정하면서 예술과 지식의 차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제도와 일상행위 속에서도 존재하며 이 때문에 제도와 일상행위에 대한 비판과 분석을 문화연구의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그가 주편한 ‘대중문화비평총서’ 주제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위에서 언급한 다이진화, 왕샤오밍, 송웨이지에(宋偉杰, 송위걸) 등의 문화연구서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출판된 이 총서에 속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胡大平, ꡔ崇古的曖昧: 作爲現代生活方式的休閑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02); 陳映芳, ꡔ在角色與非角色之間: 中國的靑年文化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02); 邵燕君, ꡔ傾斜的文學場: 當代文學生産機制的市場化轉型ꡕ(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03).
이는 90년대에 흥기(興起)한 대중문화의 맥락을 따져봤을 때 중요한 대목으로 부상되는데 중국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시기에 대중문화가 빠른 속도로 발전한 정황은 당대중국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관념의 ‘전환’과 대중문화의 흥기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환은 어떻게 발생했으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대중문화는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어떠한 새로운 문화기제를 구축했으며 이것의 기능은 무엇인가, 등이 대중문화라는 달라진 문화개념과 현실 속에서 새롭게 제기하는 문화연구의 폭을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5. 나가며

9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문화연구는 기존의 추상적이고 거시적이며 현대화지향이라는 전제 하에서 담지되던 전통적인 ‘문화’ 개념을 수정하면서 90년대 시장경제의 진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문화’ 현실, 곧 현대화와 시장경제가 도래한 조건과 관계 깊은 상품문화로서의 대중문화 현실을 연구의 주요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추상적인 개념에서 당대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로의 ‘문화’ 개념의 전환은, 본론에서 살펴봤듯이 80년대 지적 담론과의 연관 속에서 일정한 반성과 갱신을 담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압도하는 시장화와 전지구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90년대의 중국 현실과 지적, 담론적 지형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며 새로운 담론 지도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90년대 중국문화연구 역량의 성장은 최근 문화연구학과의 건립과 관련된 제도화 문제로 급진전되어 논의되고 있는바 이러한 문화연구의 제도화를 둘러싸고 적잖은 비판과 도전이 제기되고 있는데 한편 이러한 문제의 노출은 서구에서 시작된 ‘문화연구’에 갱신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청화대학 중문과 교수인 쾅신녠(廣新年, 광신년)은 최근 ꡔ시계(視界)ꡕ 7집에 실린 한 대학생의 문화분석 관련 글을 기화로 문화연구가 지니는 체제성과 그 상반되는 저항적 제스추어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문화연구가 보여주는 언어유희와 가짜 저항성을 문화연구의 문제로 진단하며 문화연구가 학과로 건설되는 순간 좌파의 비판 역량의 진지가 철저하게 전이되어 소거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상해사범대학 중문과 교수인 쉬에이(薛毅, 설의)는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쾅신녠의 비판을 십분 받아들여 갱신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데 그는 중국에서 문화연구가 대학체제와 시장사회의 이중 규범에 종속될 가능성과 ‘문화연구의 쁘띠부르주아화’ 경향에 주의보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쾅신녠의 비판을 계기로 중국 문화연구에서 농후한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가 지니는 탈정치화 경향을 비판하며, 문화연구가 사회정치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비판과 사회전체와 지닌 관계 속에서 정의된 맑스주의 문화연구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상기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문화연구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쾅신녠-쉬에이의 논쟁은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廣新年, 「文化硏究這個“弔帶衫”」과 薛毅, 「文化硏究的陷穽: 回應廣新年先生」. 논쟁의 빌미를 제공한 ꡔ시계ꡕ의 학생 논문은 상해 화동사범대학 중문과 교수인 니원젠(倪文尖, 예문첨)이 대학교 3학년 과목으로 개설하여 강의한 문화연구 과목의 습작 과제물 중에서 우수논문을 가려 실은 논문 중의 한편이다. 니원젠은 자신의 이러한 작업이 가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해명하고 있는바 이러한 대학생의 습작을 게재하는 것은 문화연구의 ‘함정’을 노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소비문화에 침윤되어 있는 대학생에게서 문화비판의 가능성 등의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거울상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倪文尖, 「希望和陷穽:由幾篇習作談“文化硏究”」, ꡔ視界ꡕ 第7輯을 참고하시오. 문제가 된 학생논문은 다음 글이다. 朱寒氷, 「吊帶衫」, ꡔ視界ꡕ 第7緝, 2002. 쾅신녠-쉬에이 논쟁글은 상해대학 당대문화연구중심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 사이트 주소는 다음과 같다. culture.online.sh.cn.

문화연구의 제도화 문제는 문화연구학과 건립을 준비중인 왕샤오밍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기되는바 그는 문화연구가 학과제한 혹은 전공범위 등 기존의 학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간분과성을 주장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학과를 창립하여 당대의 사회현실에 대해 유력하고도 시의적절한 대답을 내놓고 개방적인 학술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체제를 건립해야한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王曉明, 「1990年代與“新意識形態”」, ꡔ半張臉的神話ꡕ(桂林;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21-22쪽.
세간에 우려를 낳고 있는 미국식 ‘문화연구’의 제도화와 학원화가 보여준 보수성이라는 선례에 얽매이지 않는 이러한 사고는, 문화연구학회를 건립한 타이완의 천광싱(陳光興, 진광흥)에게도 드러나는데 그는 문화연구의 제도화, 학원화와 관련된 전지구적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과정에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동아시아와 타이완에서 문화연구는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사회공간과 사회운동들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학원 내에 고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하여 천광싱은 문화연구의 이러한 전지구적 지형 속에서 미국의 학원화만이 예외적으로 보수적이고 체제내화되었다는 사실을 강조 陳光興, 「文化硏究的意義在臺灣」, ꡔ視界ꡕ第4輯, 2001年, 114쪽.
하면서 문화연구의 제도화와 학원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다.
문학연구 관점에서 비롯된 문화연구적 전환에 대한 우려에서 문화연구의 제도화 등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논의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문화연구는 그 실천과 향방을 두고 비판과 근심, 도전과 갱신이라는 논의들이 다기하게 이뤄지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지점에서 문화연구가 중국학계에 제공하는 도전과 활력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도전과 실천이 끊이지 않는 논의들은 중국의 (인)문학계에서 문화연구가 끊임없이 문제제기할 것이며 부단하게 현실과 접촉면을 늘려가면서 이와 충돌할 것이라는 점을 예시하고 있어, 이와 관련하여 그 미래적인 틀을 주목케 한다. 일천한 문화연구 역사에 비춰 중국 문화연구가 가지는 만만찮은 파장은 새로운 연구 방향의 모색 등의 제방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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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5 14: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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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

상해에 도착한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상해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복단대 근처의 방을 얻어서 주로 복단대 도서관에서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다행히 알고 지내던 선배 덕분에 쉽게 방도 구했고,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제는 진광흥 선생의 상해대학 수업을 참관하였는데, 대만에서와는 다르게 이론적으로 좀 친절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 중국 대륙의 학생들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진 선생님의 고민은 인문학의 영역에서 나름 필요한 고민들인 것은 분명한데, 그 출발점에 대한 설명, 다시말해 이론/학문의 '위기'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게 이루어져야 현재 진행되는 작업의 의미를 설득력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상해의 날씨 덕분인지, 비염도 거의 없어서 몸 상태는 아주 좋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이번 중국 생활은 음식도 잘 맞는 것 같다. 물론 값 싸고 맛 좋은 백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큰 행복 중 하나이다. 이번에 맛 보게 된 北大荒,北大仓 등 동북지역의 백주가 정말 그렇다.

 

전리군 선생님의 원고 중 머리말과 후기를 먼저 번역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적당한 역어를 찾지 못하는 한계를 계속 절감하고 있긴 하다.

 

핸드폰 연락처는 13020252102 이다. 여긴 받는 전화도 돈을 내야해서 가급적 전화를 덜 사용하는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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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락

아주 오랜만에 큰 짐을 쌌다. 주로 상해에서 진행할 번역 작업에 필요한 참고서적들을 중심으로 짐을 쌌는데도 책만 20킬로를 넘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이렇게 대만 생활이 일단락 된 것이다. 아직 왕휘 선생 수업 텀페이퍼가 남아 있지만, 박사 코스웍이 끝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7월 말에 대만으로 돌아오면 이제 본격적으로 박사논문 모드로 넘어 가게 된다. 먼저 논문을 쓰기 위해 자격고사를 준비를 하게 된다. 자격고사는 박사논문과 관련한 일반이론 과목 하나, 그리고 전공 주제 하나를 더 해서 두 과목을 보게 된다. 자격고사 자체가 박사논문을 쓰기 위한 정지작업이라 할 수 있다. 상해에서 지내는 동안 논문 주제에 대한 고민도  구체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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