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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하루 종일 번역을.. 하는 것은 아니고 별 다른 일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번역도 집중력이 있어야 하나보다.

공부도 그렇고, 늘 일정한 압력과 긴장이 있어야 가능한 듯...

그래도 나라는 인간이 약속을 어기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약속을 해 놓으면 대체적으로 지켜지는 것 같긴 함.

이번 번역도 거의 그런 셈이다. 그래서 약속에 대한 소문도 좀 더 내고 그러는 것 같다.

 

번역을 하면서 간만에 민가를 좀 듣고 있는데.. 원래 듣던 노래들은 대체로 지루한데, 예전에 들어본 듯 하지만 굳이 찾아서 듣지 않았던 노래들을 들어보니 참 좋다. 예를 들어 '조국과 청춘'의 노래들이 참 좋다. 예전엔 괜히 은근히 기피하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들어 보니 좋은 노래도 많다.

 

오늘도 백주, 특히 北大仓이 조금 땡기지만, 아직 번역이 목표량에 한참 미달이라... 한 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학 후배 둘과 함께 상해에 모여서 황산여행을 가려고 준비 중이다.

지난 가을에 대만에서 아리산 여행을 같이 갔던 후배 배불뚝이 김군과 북경에서 공부 중인 또 다른 김군과의 회합이 조금 기다려진다.

 

어제는 잠시 세 달 세들어 사는 집의 주인 아이들, 약 스물 한 두살 정도 된 남아 둘..이들이 여러 친구들을 불러 밤새 떠들고 노는지라 내가 잠을 좀 설쳤는데.. 나의 20대가 생각나서 한 마디도 못했다. 그 때는 그럴 나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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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왕휘 수업의 텀페이퍼의 주제를 잠정적으로 정했는데, '박현채'이다. 일전 왕휘 선생과 사석에서 19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을 이야기하면서 권유를 받았던 것을 실천에 옮겨 보려는 것인데, 현재 조건이 전면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현재 접근 가능한 자료들 중에서 주제를 좁혀 한 두 가지 논점을 잡아 연구노트 식의 글을 써보고자 한다. 박현채 전집이 출간된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상해에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작업을 확장하면서 불가결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

 

사실 근래에 내 주변에는 백낙청 선생과 민족문학론이 진광흥 선생이 주도하는 일군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자주 회자되는데, 나는 이에 대해 다른 시좌를 제공해주고자 하는 조금 작지 않은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일전에 "대만사회연구계간"이 특집으로 관련 논의로 도배한 적이 있고, Inter-Asia Cultural Studies 지난 겨울 호 역시 동일하게 도배를 한 바 있다. 나의 작업은 백낙청 선생의 논의에 대한 직접적 비판 보다는 오히려 그와 긴장을 형성할 수 있는 박현채 선생의 논의를 불러내 그 갈등적 상황을 재현해 보려는 목적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족문학론과 민족경제론의 대비와 갈등이 어떤 의미에서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의미를 가져, 현재 우리의 논의, 정치(정치적인 것)와 역사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까지도 중요한 참조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여기에서 정치적인 것(또는 문학예술적인 것)을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전유할 것인지의 문제도 논의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정치와 역사, 변증법과 유물론 등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내가 과문하고 이해가 천박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의 80년대의 이론과 운동 안에 이미 그 후에 남한에서 유행되었던 아주 많은 서구/유럽/프랑스 사조들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살아 있는 언어로 생생한 역사 상황을 분석하고 묘사하고, 또 그 안에 참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주변화되고, 90년대의 대전환이 벌어진 것은 참 아쉽다. 정말 무능했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인터넷에서 접근 가능한 박현채 선생 관련 자료 인쇄를 마쳤다. 인쇄비가 싼 중국에서 150원RMB(약 3만원)이 나왔다. 우선은 번역에 집중하고, 종종 한 두편씩 속독을 하고 주말 시간을이용해 다시 꺼내어 전체적으로 통독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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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노신좌익의 중국 현대사 강의”(상)/(하) 목차

머리말과 후기의 초역이 끝났다. 번역해 놓으니 참으로 감동적인 내용이다. 2년전 수업 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A4로 25쪽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첫 주 상해에 적응하면서 한 것 치고는 나름 선방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 주 부터는 좀 더 속도를 내야할 것이다.

 

아래에 이번 번역되는 책의 목차를 번역해 놓는다. 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지금까지 이런 중국역사서는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독자성을 갖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상/하로 나뉘어 나올 예정인데, 1200쪽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 예상된다.

 

***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1949-2009)

: 또 하나의 역사서사

[가제: “노신좌익의 중국 현대사 강의”(상)/(하)]

 

* (상권)

머리말

1. 나와 모택동 및 모택동 시대의 관계

2. 모택동 사상과 문화의 몇 가지 기본 특징

3. 당대 중국의 모택동

4. 세계에 대한 모택동의 영향

 

제1강 건국초기(1949-1955)

1. 역사 교체 시기, 나와 나의 가정

2. 지식인의 선택: 심종문(沈從文)을 중심으로

3. 통치노선과 모델에 있어서 모택동의 선택

 

제2강 반우파운동 전후(1956-1958년초) (상)

1. 소련20차 당대회 이후 모택동의 반응: 중국의 발전노선 탐색

2. 모택동의 내재적 모순

3. 국내외, 당내외의 반향과 모택동의 대책

4. 지식인과 민주당파의 반응, 그리고 정치정세의 급변

 

제3강 반우파운동 전후(1956-1958년초) (하)

1. 청년 학생의 반응: 중국 학원(學園)에서의 사회주의민주운동

2. “모든 문제는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고준(顧准)의 사고

3. 반우파운동 중의 모택동, 나 그리고 지식인

4. 반우파운동 이후 모택동의 이론적 수정

5. 반우파운동 이후 건립한 “57체제”

 

제4강 대약진 시대(1958) (상)

1. “너희들은 성인이 되고 싶지 않으냐?”

2. 대약진: 모택동 통치의 큰 그림

3. 전인민의 철 만들기와 참새잡기: 대약진의 두 가지 장면

4. 대약진 시기의 나

 

제5강 대약진 시대(1958) (하)

1. 인민공사운동: 모택동의 공상사회주의 실험

2. “전민참여(全民參與)”에 대한 분석

 

제6강 대기근 시대(1959-1961) (상)

1. “천국”에서 “지옥”으로

2. 대약진은 어떻게 대기근이 되었는가

3. 교정기제는 존재하는가

 

제7강 대기근 시대(1959-1961) (하)

1. 대약진, 대기근에 대한 민간의 관찰과 사고

고준(顧准), “사회주의 선사시기” 비판

《성화(星火)》, “국가사회주의” 비판

장중효(張中曉) , 모택동 시대의 정신 비판

2. 어떻게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3. 대기근 시기에 형성된 나의 모택동관(毛澤東觀)과 노신관(魯迅觀)

 

제8강 문화대혁명으로 가는 길(1962-1965) (상)

1. 중국 농민의 목소리

2. 하층과 중간층 간부의 반응

3. 상층 지도자의 답변과 선택

4. 모택동의 결정: 계급투쟁의 전차(戰車)를 다시 가동하라

 

제9강 문화대혁명으로 가는 길(1962-1965) (하)

1. 대지에서부터 폭풍우가 일다

국내 전장(戰場): 기층과 중간층, 그리고 상층의 계급투쟁 연습

국제 전장(戰場): 중미관계와 중소대논전

2. 중국 학원(學園)의 지하 신사조

3. 사회 기층의 상황: 문혁 전 나 개인의 처지와 예감

 

(하권)

제10강 문화대혁명시대(1966-1976) (상)

발단: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계속혁명”- 문화대혁명을 위한 모택동의 밑그림

1. 고위간부 자제들이 주체가 된 홍위병 조반운동과 사조

2. 57체제 피억압자들이 주체가 된 조반파의 조반운동과 사조

3. “상해코뮌”의 요절에서 군대개입과 전국적 동란까지

4. 조반파의 분화

청년모택동주의자와 문혁의 국제적 영향

17년파

문혁 신귀족

소요파와 문혁 일상생활

5. 피 바람: “오일육”에 대한 색출, 1968년 여름 대탄압, 계급대오의 청산

6. 새로운 각성: 모택동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제11강 문화대혁명시대(1966-1976) (상)

1. 문혁 후기 민간사고와 두 가지 배경

2. 문혁 후기 민간사고의 특징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사상운동

직면한 모순과 곤경

사상자원과 서로 다른 길

3. 문혁 후기 민간사조의 주요 성취

중국 현행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정치경제학 비판

사회주의 민주와 법제, 그리고 사상계몽 호소와 사고

사회생산력의 발전과 농촌체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호소와 사고

마무리: 모택동의 “유언”

 

제12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상) (1977-1989)

1. “모택동 이후” 중국 발전 노선의 선택

상층의 논쟁: 등소평의 결정

사회민주운동(1978-1980): 개혁과 발전에 대한 또 다른 선택과 요구

2. 체제내의 경제개혁과 사상계몽운동

농촌체제개혁과 중국 농촌 발전연구조

민간학술문화운동

나와 안순(安順)의 친구들의 선택

3. 80년대 말의 정치체제개혁과 천안문 민주운동

 

제13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중) (1989-1999)

1. “모택동 찾기” 열풍

2. 나의 “모택동 연구”

3. 1998년 전후의 북경대학 개교100주년 기념

4. “64체제”: 90년대 중국사회구조와 체제의 변동

5. 번개 불: 1998년 “북경의 봄”

 

제14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하) (1999-2009)

1. 등소평의 개혁개방의 긍정적/부정적 효과

2. 권리보호운동과 네티즌 통제, 그리고 비정부조직: 삼대(三大) 민간운동의 흥기

3. 지식인의 서로 다른 길

4. 중국 공산당의 분화: 당내 모택동파와 민주파의 출현

5. 조정과 견지: 집정자의 답변과 선택

 

참고문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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