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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과 후기의 초역이 끝났다. 번역해 놓으니 참으로 감동적인 내용이다. 2년전 수업 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A4로 25쪽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첫 주 상해에 적응하면서 한 것 치고는 나름 선방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 주 부터는 좀 더 속도를 내야할 것이다.
아래에 이번 번역되는 책의 목차를 번역해 놓는다. 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지금까지 이런 중국역사서는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독자성을 갖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상/하로 나뉘어 나올 예정인데, 1200쪽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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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1949-2009)
: 또 하나의 역사서사
[가제: “노신좌익의 중국 현대사 강의”(상)/(하)]
* (상권)
머리말
1. 나와 모택동 및 모택동 시대의 관계
2. 모택동 사상과 문화의 몇 가지 기본 특징
3. 당대 중국의 모택동
4. 세계에 대한 모택동의 영향
제1강 건국초기(1949-1955)
1. 역사 교체 시기, 나와 나의 가정
2. 지식인의 선택: 심종문(沈從文)을 중심으로
3. 통치노선과 모델에 있어서 모택동의 선택
제2강 반우파운동 전후(1956-1958년초) (상)
1. 소련20차 당대회 이후 모택동의 반응: 중국의 발전노선 탐색
2. 모택동의 내재적 모순
3. 국내외, 당내외의 반향과 모택동의 대책
4. 지식인과 민주당파의 반응, 그리고 정치정세의 급변
제3강 반우파운동 전후(1956-1958년초) (하)
1. 청년 학생의 반응: 중국 학원(學園)에서의 사회주의민주운동
2. “모든 문제는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고준(顧准)의 사고
3. 반우파운동 중의 모택동, 나 그리고 지식인
4. 반우파운동 이후 모택동의 이론적 수정
5. 반우파운동 이후 건립한 “57체제”
제4강 대약진 시대(1958) (상)
1. “너희들은 성인이 되고 싶지 않으냐?”
2. 대약진: 모택동 통치의 큰 그림
3. 전인민의 철 만들기와 참새잡기: 대약진의 두 가지 장면
4. 대약진 시기의 나
제5강 대약진 시대(1958) (하)
1. 인민공사운동: 모택동의 공상사회주의 실험
2. “전민참여(全民參與)”에 대한 분석
제6강 대기근 시대(1959-1961) (상)
1. “천국”에서 “지옥”으로
2. 대약진은 어떻게 대기근이 되었는가
3. 교정기제는 존재하는가
제7강 대기근 시대(1959-1961) (하)
1. 대약진, 대기근에 대한 민간의 관찰과 사고
고준(顧准), “사회주의 선사시기” 비판
《성화(星火)》, “국가사회주의” 비판
장중효(張中曉) , 모택동 시대의 정신 비판
2. 어떻게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3. 대기근 시기에 형성된 나의 모택동관(毛澤東觀)과 노신관(魯迅觀)
제8강 문화대혁명으로 가는 길(1962-1965) (상)
1. 중국 농민의 목소리
2. 하층과 중간층 간부의 반응
3. 상층 지도자의 답변과 선택
4. 모택동의 결정: 계급투쟁의 전차(戰車)를 다시 가동하라
제9강 문화대혁명으로 가는 길(1962-1965) (하)
1. 대지에서부터 폭풍우가 일다
국내 전장(戰場): 기층과 중간층, 그리고 상층의 계급투쟁 연습
국제 전장(戰場): 중미관계와 중소대논전
2. 중국 학원(學園)의 지하 신사조
3. 사회 기층의 상황: 문혁 전 나 개인의 처지와 예감
(하권)
제10강 문화대혁명시대(1966-1976) (상)
발단: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계속혁명”- 문화대혁명을 위한 모택동의 밑그림
1. 고위간부 자제들이 주체가 된 홍위병 조반운동과 사조
2. 57체제 피억압자들이 주체가 된 조반파의 조반운동과 사조
3. “상해코뮌”의 요절에서 군대개입과 전국적 동란까지
4. 조반파의 분화
청년모택동주의자와 문혁의 국제적 영향
17년파
문혁 신귀족
소요파와 문혁 일상생활
5. 피 바람: “오일육”에 대한 색출, 1968년 여름 대탄압, 계급대오의 청산
6. 새로운 각성: 모택동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제11강 문화대혁명시대(1966-1976) (상)
1. 문혁 후기 민간사고와 두 가지 배경
2. 문혁 후기 민간사고의 특징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사상운동
직면한 모순과 곤경
사상자원과 서로 다른 길
3. 문혁 후기 민간사조의 주요 성취
중국 현행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정치경제학 비판
사회주의 민주와 법제, 그리고 사상계몽 호소와 사고
사회생산력의 발전과 농촌체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호소와 사고
마무리: 모택동의 “유언”
제12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상) (1977-1989)
1. “모택동 이후” 중국 발전 노선의 선택
상층의 논쟁: 등소평의 결정
사회민주운동(1978-1980): 개혁과 발전에 대한 또 다른 선택과 요구
2. 체제내의 경제개혁과 사상계몽운동
농촌체제개혁과 중국 농촌 발전연구조
민간학술문화운동
나와 안순(安順)의 친구들의 선택
3. 80년대 말의 정치체제개혁과 천안문 민주운동
제13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중) (1989-1999)
1. “모택동 찾기” 열풍
2. 나의 “모택동 연구”
3. 1998년 전후의 북경대학 개교100주년 기념
4. “64체제”: 90년대 중국사회구조와 체제의 변동
5. 번개 불: 1998년 “북경의 봄”
제14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하) (1999-2009)
1. 등소평의 개혁개방의 긍정적/부정적 효과
2. 권리보호운동과 네티즌 통제, 그리고 비정부조직: 삼대(三大) 민간운동의 흥기
3. 지식인의 서로 다른 길
4. 중국 공산당의 분화: 당내 모택동파와 민주파의 출현
5. 조정과 견지: 집정자의 답변과 선택
참고문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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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업을 하기로 결정한 데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중요한, 하지만 아직 불안한 결심이 있는데, 바로 '중국 연구'에 대한 판단과 관련된다. 나는 본래 '중국 연구'와 '한국 연구'가 상호계기가 되어 일정한 효과를 내는 과정을 따라가려고 했다. 이는 방법으로서의 '중국'이자 '한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형식적으로 상호주체성을 따르지만, 내용적으로 그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개입해야 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이론적 사유의 공간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미 그런 방식으로 이론적 사유를 진행하기에는 내 주변의 상황은 훨씬 덜 국민적인 것이다. 상해에 와서 살아보니, 막연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다가 한국으로 못 돌아가지 않나 싶기도 하고...ㅋ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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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론의 발전적 계승 작업은 사회운동과의 관계를 빼 놓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우리의 사회운동을 객관화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판단하여, 이론과 운동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탐구하는데 매우 무기력했던 것 같다. 특히, 늘 참조점을 유럽, 남미 또는 사회주의권으로 삼으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늘 뒤쳐진 것으로 여겨지고, 이는 이론적으로 늘 수입국의 처지에 머물도록 강제한 측면도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뒤쳐지고 앞선 것이 아니다. 고유한 개별적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노력과 능력일 뿐이다. 민중의 수많은 의식적 희생과 실천이 투여된 사회운동의 역사 자체는 이미 이론적 보물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사실 조금만 시야를 돌려 아시아에 주목하면, 사실상 21세기 새로운 혁명, 또는 혁명까지는 아니라도 좌파정부가 들어설 수 있는 곳은 거의 한국의 유일하다.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은 90년대 이후의 이론적 전환과는 그다지 무관해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이론적 전환으로 인해 이 가능성은 점차 쇠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다. 어쩌면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사회운동은 80년대에 축적한 양분을 소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