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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화의 방법

藝術人生님의 [80년대의 역사화] 에 관련된 글.

 

둘째날 토론은 상대적으로 더욱 흥미로왔다. 전체상을 그리기 위한 방편으로서 우선 가능한 부분을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90년대 후반 학번인 나에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논의들이었다. 덕분에 또다시 '불청객'으로 몇 마디 고언을 드렸는데, 다행히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계신 분들이 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선 80년대 지식/사상/실천 운동의 당사자들이 90년대 이후 담론의 진화의 주역이 되었고, 다시 그 주역들이 80년대를 재역사화한다는 측면에서 일정하게 곤경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이는 80년대의 결과물로서의 90년대의 지식, 담론, 개념들 및 그것의 진화로서의 현재적 지식 상황이 80년대를 역사화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느냐는 문제로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의 한계는 80년대의 당사자로서 80년대와 겹쳐 있으면서도 당사자들과 변별되는 '과거'의 것을 전제하고, 나아가 90년대적인 어떤 것과 다시 스스로를 변별함으로써 주어지는 상대적 정체성에 의한 시좌의 축소이자 대상의 환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를 '역사적 중첩으로서의 80년대'라는 분석틀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는데, 그것은 87년을 하나의 기원으로서 갖는 '민주화담론'의 역사적 형성, 80년대를 경과하면서 형성된 '분단체제'의 실질적 공고화의 표지로서의 남북한 유엔동시가입(1991), 그리고 80년대 말에 변곡점을 형성한 민족해방과 사회주의적 노선의 좌절 및 변형으로서 동구사회주의의 붕괴와 중국사회주의의 전환(이른바 6.4체제)라는 삼중의 역사적 구조를 주체적으로 해명하는 시좌의 도입과 분석 방법의 개발을 의미한다.

 

아마도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는 이와 같은 역사적 복합으로서의 시좌와 결합될 때 의미를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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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역사화

 

8월16일. 천안공원묘지 백조4열88.

내년엔 한번 찾아뵈어야겠다. 그 전에라도 한번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

 

박현채는 현재 우리 담론에서는 여전히 80년대에 뿌리 박혀 있다. 그것이 '계급중심론' 또는 '노동자중심론'이었나? 그것이 '민족해방론'이었나? 씁쓸하다. 우리 담론에 구성되어 있는 80년대는 사실 '단절'을 전제한 80년대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80년대의 '역사화'는 거의 불가능한데, 그 이유인즉, '역사화'라는 것이 사실은 '단절'의 심화에 기댄 결과물적 인식틀로 그 '단절'을 재확인하는 작업이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 동국대에 다녀온 소회는 대략 이런 것이다.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역사의 단절이라는 성찰적 문제의식이 부재한 '80년대'의 역사화는 결국 그 단절을 심화를 넘어 망각하는 지경에까지 나아간다. 애도라는 수사를 동원해도 결국 그것은 '망각'일 뿐이다. 

 

역사화는 지금 자신의 언어로 과거의 언어를 재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언어 자체가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먼저 고백하는 것이 옳다. 이때 필요한 것은 '언어의 전치'라 할만한 '언어 파괴' 장치이다. 사실 '동아시아'라는 상호참조의 틀은 그 본래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역사 안에서 과거의 언어가 지금 우리에게 말하게 하는 장치이다. 

 

왕묵림 선생의 <안티고네>가 바로 그런 시도였다. 게다가 그것은 연극이었다. 몸이 있었기에 그 파괴는 해체로만 그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어떤 몸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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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文一致와 중한번역

藝術人生님의 [읽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에 관련된 글.

 

言文一致의 기원은 明治維新이다. 그리고 그 운동은 결과적으로 일본 보다 조선에서 더욱 급진적으로 실천된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문명의 끝자락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그 요는 言과 文을 분리하는 것이 첫째요, 言에 文을 일치시키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생겨났는가?

 

言과 文을 분리함은 조선 후기 이래로 역사적 현실 인식 하에 윤리적 지식 관계를 바탕으로 민주적 문명 사회로 지향해 나갔던 지식-대중 관계의 실현 가능성을 파탄시켰다. 文을 言에 일치시킴은 끊임 없는 탈역사화 실천이자, 동시에 대중 우매화(포퓰리즘)의 시도이고, 종국적으로 지식과 사상 부재의 시대를 앞당긴다. 실제로 한자를 기만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현행 우리의 언어문자체계는 주체적 사상/지식의 부재와 불가능성, 그리고 대중의 전체적인 우매화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言과 文은 역사적 현실 안에서 본래 정세적 분리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변증법적 통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文은 역사성의 축적이기 때문에, 역사적 현실 인식의 필수불가결한 바탕일 수 밖에 없고, 동시에 그것은 言의 매개를 통해서만 현실적 주체의 언어로 전화될 수 있다.

 

따라서 言과 文의 변증법적 통일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긴급하다. 이는 言과 文 사이의 번역적 관계의 복원일 것이다. 이는 일반적 의미의 번역과 비교할 때, '교육적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과거에 난해한 사서오경에 주해를 달아가며 공부하는 것과 비슷한 차원의 번역이다. 지금의 교육에 이러한 '번역'이 상실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중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는 교육의 영역에서 일상적 원리로 복원되어야 할 '번역 실천'이 아닐까.

 

그런데 사실 文은 역사적이고 국제적 관계 속에서 얻어진 자기인식이자 세계인식이다. 우리 민족 내부의 '교육적 번역'의 상실, 즉 지식/사상의 불가능성은 文 자체의 역사적 단절을 초래해 왔고, 나아가서는 이를 제도화하고 있다. 제도화는 사실상 文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폭력성과 비윤리성을 배태하고 있는지는 이미 지난 20세기의 역사에서 보아왔다. 여기에서 현대화된 번역체제가 그 핵심인데, 아마도 中韓 번역 영역이 역사적으로 관건이되는 戰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심화는 轉機를 제공하는데, 아마도 향후 일정 기간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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