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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에서 민주를 배우다> 초역을 마치고...

그저께 조정로 선생님의 《民主課》의 초역을 마쳤다. 10월말까지가 마감이었으니 그리 많이 초과하지는 않은 셈이다. 그래서도 안 되었던 것이 이걸 마치고 박사논문 작업을 본격화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작업을 좀 진척시키고 왔어야 했는데, 갑작스럽게 다른 일을 좀 하게 되어서 결국 작업의 90%를 8월 귀국 이후에 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작업들과 동시에 진행되면서 다소 힘에 부치기도 했는데, 다행히 오래 끌지 않고 마무리를 지었다.

 

흥미로운 것은 작년 여름 처음 읽었을 때 포착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이번 번역을 하면서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는 당연히 그 사이 내 문제의식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아마도 내가 좀더 본격적으로 '윤리' 문제를 고민했던 것이 지난 해 가을 즈음이었던 것 같고('안티고네'의 인연으로), 시간이 흘러 그 문제의식이 이 소설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조정로 선생님도 '죽은 자'를 이야기한다. '민주'는 살아 있는/살아 남은 자들만의 '민주'일 수 없다. 그래서는 '윤리'를 담보하지 못하고, 폭력적 관계를 재생산하게 된다. '죽은 자'가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통해 '역사' 안에 설 수 있는 관점을 확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농촌'과 '지식인'의 민간성으로부터 '죽음'을 역사화한다.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 '문화대혁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당'을 외부화하는 전략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당'을 '민족' 내부에 외치시키기 위한 원리로서의 '민주'를 제기함을 통해서 '당'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른 흥미로운 쟁점들이 잘 형상화되어 있어서 자못 독자들의 반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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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표...

지난 주말엔 춘천에서 열린 학회에 구경을 갔다. 나로서는 국내의 학회에 처음 가본 셈인데, 나름 흥미로왔다. 다소 독특한 것은 6~70대 스승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는 어쩌면 좀 아쉬운 점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길을 잃었을 때, 좌표가 되어줄 만한 큰 스승이 없다는... 그런 맥락에서 내가 문제화하는 80년대의 '단절'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억측일수도 있지만...

 

이번 주말엔 인천에서 직접 발표를 하게 되었다. '진영진 문학의 탈식민 실천'이라는 제목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난 6월 2차 자격고사의 제목이다. 발표 내용도 거의 답안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발표할 때는 내용을 다소 추릴수 밖에 없을 듯 싶다. 방금 구두 발표용으로 내용을 3쪽으로 정리/요약했다.

 

논문이라 하기엔 매우 부족한 글이지만, 논문을 쓰기 전에 조언을 받는게 더 좋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다행히 이번 학회는 사회/문화 세션이 상대적으로 주변에 배정되어 있는 것 같아, 다소 부담이 덜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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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에 대한 짦은 側記

홍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홍콩과 대만이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로 '중국'으로부터 분리되었고, 냉전체제의 형성으로 주체적 탈식민의 가능성을 제약받으면서, 상호간에 일정한 연계를 강하게 형성했던 부분에서 주어지는 일정한 간접적 인식이다. 일종의 '신식민적 민주화' 동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냉전적 체제의 구성요소의 아시아적 연계에 남한의 '민주화'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그리고 이른바 '포스트 냉전' 시기 각국 '민주파'의 난맥상에 대해서는 논의이 별도로 필요할 것 같다.

 

홍콩과 대만 및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국'은 역사적 연원이자, 현실적 요인이기도 하다. 원론적으로 얘기해서, '냉전'을 체제적 차원에서 사유한다면, 홍콩과 대만의 탈식민은 '중국'이라는 역사성을 '회복'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매우 어렵고 지난한 과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아오는 일련의 실천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담론적 수준에서 가능한 것이 물론 아니다. 이른바 立人, 즉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역사적 왜곡과 그 원인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짊어질 현실적 주체 형성의 가능성까지 염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이를 둘러싼 현실적 역량의 대결의 표현 가운데 하나가 이번 시위의 복잡성일 것 같다.

 

특히 식민으로 인한 왜곡, 그리고 냉전의 제약이라는 차원에서, 내지의 '중국'은 문제의 원인 인식과 해결에 있어서 외재적일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 일정하게 인식론 상의 '분리주의'적 사고를 극복할 필요성이 주어진다. 이는 실천 상에서 나타나는 홍콩/대만의 분리주의라는 표층적 차원만이 문제가 아니며, 궁극적으로 대만과 홍콩에 대한 중국 내지의 인식(주로 공산당)과 대만 및 홍콩의 분리주의적 역사인식이 모두 1949년을 기점으로 전前 현대와 자신의 역사를 분리시키는 역사인식을 전제로 했다는 문제이다. 따라서 단순한 '통일지상'도 '분리주의'도,  적절한 노선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해진다.

 

'신중국'의 성립과 이어지는 우여곡절은 대약진이나 문혁에서 드러난 바 있는 것 같은 그 내재적 문제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중국에 내재한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신중국'의 역사적 단절을 문제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홍콩'과 '대만', 나아가 '마카오'는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식민지' 해방의 궁극적 경로 및 그 핵심 과제로서 주체화의 문제와 관련된다. 

 

'신중국'이 홍콩과 대만을 여전힌 외재적 '식민지'로 파악하지 않고, '신중국'의 탈역사성을 재역사화하는 참조적 고리로 끌어안을 때, 그리고 홍콩과 대만이 '신중국'의 역사적 성립과정을 자신이 참여한,  홍콩과 대만 민중의 역사적 요구를 끌어 안았던 과정으로서, 외재적 '반공주의'가 아닌, 내재적 '동정'적 시각으로 재인식할 때, 이와 같이 쌍방향에서 역사와 현실이 마주칠 때, '중국'은 다시 역사적으로 성찰의 지점을 확보하고, 대중의 현실적 요구를 받아 안으며, 내부적으로 혁신되고, 세계에 대해서 더욱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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