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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후유증

오전에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지금까지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다.

어차피 오늘은 길게 일하지 못하니

기껏해야 3~4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상태를 핑계 삼아 일하는 거기도 하지만...

 

어제 밤새운 게 물거품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든 힘을 내야 할 텐데.

가서 쉬지도, 여기 있지도 못하는 이 상태란.

아! 정말 밤새우는 건 힘든 일이고,

밤새운 다음 날 일하는 것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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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2 15:23 2010/12/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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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데는 낮보다 밤이 나은가?

요새 나의 문제일 텐데

낮에는 좀 들떠서 글 진도가 생각보다 안 나가는 데 반해

밤에는, 정교하게 뭔가를 정리하는 건 아니지만, 큰 고비를 넘기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이를 악물고 이 고비를 넘기면

내일 낮에 거친 부분을 가다 듬어

이번 주까지는 글 하나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큰 글 하나가 남아 있지만

어쨌든 하나와 둘은 천지 차이다.

 

시간에 관계없이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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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2 02:28 2010/12/22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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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가지 일

만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하루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대로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쉽지 않다.

 

밤샐 요량으로 학교에 왔는데

그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새지는 못할 테고, 한 4시 정도까지 하지 싶은데

7시간 정도다. 중간에 쉬고 어쩌고 하면 6시간.

 

이래서 역시 모든 일은 평소에 해 두어야 하는데

지나면 잊고 지나면 잊고 하다가 매번 같은 신세다.

올해 말까지는 거의 꼼짝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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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1 20:45 2010/12/2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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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이틀

학교에 있었고, 지금도 학교에 있다.

보일러비 굳어서 일단 다행이다. ㅋ

 

홀로 남은 밤,

책상 앞 스탠드만 켜고

음악 소리도 한껏 올리고서

밤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빨리 글을 써야 하는데,

시간도 벌써 2시 반이 넘었는데,

앞으로 기껏해야 3시간도 못 버틸 텐데,

이러고 있다.

 

이틀이나 밤샌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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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02:25 2010/12/16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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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의 요체?

시민권 논의가 일부를 차지하는 레포트를 쓰다 보니

시민권의 요체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the right to speak'(말할 권리 또는 발언권)과

'the right to be heard'(들릴 권리 또는 의사를 존중받을 권리)

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자 없는 후자는 다들 용어모순이라 여기겠지만(아니면 독심술?)

후자 없는 전자는 얼핏 생각하면 말이 될 것도 같다.

하지만 '너는 떠들어라 나는 한귀로 흘릴 테니'라는 태도가

발언권 나아가 시민권을 얼마나 조롱하는 것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본연의 의미에서 말할 권리(the right to speak)란

'들을 의무'(the duty to hear)를 강제하는 한에서만 실효성을 갖는다

고 일단 정리해 보려 한다.

더 생각은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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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05:34 2010/12/15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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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다 ㅠㅠ

레포트 쓰느라 밤을 새다니.

학부 시절엔 한 번도 없었던 일인데, 이 나이에 웬일이람.

어쨌든 이번에 레포트 쓰면서 새삼 느낀 것인데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싶다.

스캔 뜬 책을 비롯, 적지 않은 자료를 인터넷에서 구했는데

이것들이 없었다면 거의 진척이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도서관 없는 생활을 했고

인터넷 없는 생활도 적지 않게 하다가

이제 둘 다 되는 환경에서 공부를 하자니

확실히 다르다. 물론 어느 시점에선가는

이 둘로 환원되지 않는 나만의 사고를 제시해야겠지만

그렇게 파고들 지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조사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더 나중에는, 이렇게 접근가능한 자료 말고

아직 정리되지 않았거나 전산화되지 않은 자료를 얻기 위해

서고나 현장으로 가야 하겠지만, 그 역시 나중 일이다.

 

어쨌거나 인간은 혼자 사고하지 않는다.

물질화된 지식의 망 어딘가에 접속해

그 일부로 사고한다고 보는 게 현실에 훨씬 가깝다.

그리고 '창조적' 사고란, 대개의 경우 허구다.

사고는 아마 대부분의 시간 동안 노가다와 다르지 않다.

약간의 장비와 기술, 그리고 충분한 시간과 인내만 있다면

누구든 일정 수준까지 사고할 수 있다.

육체노동자 중에서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른 달인이 있는 것처럼

지식노동자 중에서도 이른바 '천재'가 있겠지만

굳이 일정 수준 너머에 가닿지 않더라도

세상에 충분히 값진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점점 더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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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04:48 2010/12/15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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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태평 천하

"윤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 오릅니다.
<……그런 쳐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 서장 하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오―사 육시를 할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한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 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끊지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오,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가고 오……, 자― 부아라, 거리거기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 으응? ……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하게 살 세상, 이걸 태평 천하라구 하는 것이여, 태평 천하! …… 그런데 이런 태평 천하에 태어난 부잣집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땅땅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參涉)을 헌담 말이여, 으응?>"

- 채만식, <태평 천하> 중

 

전체예산 중 0.3%를 무상급식에 지원하라고

대의 기관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의결했더니만

시장이란 자가 '망국적 포퓰리즘'이란 말을 내다 뱉을뿐더러

여론의 뭇매를 맞아 정치 생명이 끝나기는커녕

도리어 그걸로 대선을 돌파하겠다는 발상이 이루어지는 나라.

여기가 자본가의 태평 천하가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 태평 천하가 있겠는가?

 

자본가의 태평 천하니만큼 이 곳에 헤아릴 수 없는 악한이 있지만

곰곰이 생각한 후 현 시점에서는 오세훈이 최고 악한 중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순히 태평 천하에 안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자당의 동료의원들마저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그런 반동적인 기획을 가장 의식적이고 능동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그 죄질은 가히 이 시대의 윤직원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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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3 16:39 2010/12/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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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법

권리를 말한다면, 언젠가는, 법과 마주치는 것을 회피할 수 없다.

권리의 성격을 '봉기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사법적 틀을 초과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더라도

마주침을 지연시키는 데 그칠 뿐, 마주침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시민권'을 말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홀스턴을 읽으면서, 그를 통해 브라질 빈민운동을 만나면서,

결국 법 앞에 서게 된 느낌이다.

법이라는 말이 여전히 껄끄럽다면,

'정당성이 부여된 강제력' 또는 '강제력을 동반한 정당성'이라고 해도 좋다.

도덕이나 본성적 이타심 따위 관념론으로 뒷걸음치지 않으려면

결국 저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

 

권리를 욕구/필요(need)와 구별시켜 주는 것은

결국 실정적 강제력이다(물론 이것만 있는 건 아닐 게다).

더욱이 그것이 '자연권'이 아니라 '시민권'으로 불릴 수 있으려면.

이에 따르면 권리란,

'권리 요구의 수신자에게 의무를 발생시키고 강제하는 실효적인 힘'

(뭐 엄밀한 정의를 시도하려는 것은 아니고 생각도 부족해 일단 이 정도로만)

따위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실효성, 심지어 '실정성'이 없다면 권리는 욕구/필요나 자연권

과 아무런 차별성도 갖지 못할 것이며

또 강자에 대한 약자의 탄원(petition)과도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실효성 때문에, 법, 제도, 조직, 공적 관계, 혹은 원한다면, 연합

등이 끌려들어올 것이며, 바로 여기에서 관념론과 단절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곳은 맑스주의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일체의 '이론적 아나키즘'이 혐오했던 장소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결국 돌파해야 하는 곳은 여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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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1 22:54 2010/12/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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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레포트 준비차 홀스턴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의 글을 읽고 있는데

인류학이 시의성을 갖는 이유를 또 하나 발견했다.

알다시피 인류학은, 제국주의 식으로 말하자면 '야만인',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이방인'을 연구하는 데 특화한 학문이었다.

 

레비스트로스를 전후한 구조주의 사조는

이방인 연구를 지속하면서도

한때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 인종주의의 무기였던 인류학을

서양 문명 자체를 반성하고 해체하는 것으로 역전시킨다.

(물론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큰 추세에서는 이 점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제국주의와 탈식민화, 심지어 세계화까지 경과하여

이제 '신대륙' 따위는 현실로나 상상으로나 실존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세계화는 당연히 인류학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인류학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지금 맥락에서 부각시키고 싶은 것만 말하자면,

이제 이방인이 바로 우리 곁에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 인종주의가 부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특히 구조주의를 경유한, 인류학의 전공 분야가 아니던가.

 

발리바르가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을 말하고

'인간학적 차이'(anthropological difference)을 중요한 쟁점으로 얘기할 때

아무래도 따라가기 어려웠었는데,

이제 그 이유 중 하나가 20세기 인류학, 특히 구조주의 인류학 전통에 대한

나의 총체적 무지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anthropology'를 번역하는 문제 역시

지극히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인류학'이라고 할 때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지배적 표상을 감안할 때

'anthropology'를 '인류학'으로 번역하는 건 좀 곤란한 일이다.

특히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칸트, 그리고 딜타이와 카시러 같은

신칸트주의 철학적 인간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처럼

그가 'anthropology'를 사고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계승하려는 핵심 중 하나가

레비스트로스 이후 구조주의 인류학이라는 점에서

이 전통을 거의 배제하는 '인간학'이라는 번역어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

단순히 번역어를 택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가 말하는 'anthropology'의 계보를 어떻게 만들지가 문제일 텐데

당분간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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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22:40 2010/12/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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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대단한 사람이 많다

얼마 전 듣던 발리바르 강연에서

파트리스 마니그리에(Patrice Maniglier)라는 사람 이름이 나왔다.

아주 훌륭한 논문을 썼다고 칭찬하길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찾아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사람 이력서를 발견했다.

일부 경력을 발췌하자면 이렇다.

(더 자세한 경력이 궁금하신 분은,  www.essex.ac.uk/philosophy/people/academic/Maniglier_CV.pdf)
 

1990-1991  Institut d’Etudes Politiques (IEP) de Paris (« Sciences Po ») : admitted in 2nd year
1991-1993 Classes Préparatoires : Lycée Louis Le Grand (Paris)
1993  Admitted to the Ecole Normale Supérieure (ENS) de la rue d’Ulm (rank : 9th)
1993-1996 Student at the ENS / Licence, Maîtrise, Agrégation de Philosophie.
1996-1997  Teaching Assistant at Stanford University (California, USA) 
1997-1998 Fourth and final year at the ENS / DEA in Philosophy at Paris X Nanterre (superviser: E. Balibar ; title : « De la position des problèmes » [Problem raising] ; distinction : Très Bien [highest distinction]).
1998-2002 PhD in Philosophy at Paris X Nanterre University. Dissertation title: « L’être du signe. Linguistique et philosophie dans le projet sémiologique de Ferdinand de Saussure » [The Being of Sign: Linguistics and Philosophy in the semiological project of Ferdinand de Saussure] supervised by Etienne Balibar. Jury : Pr. Sylvain Auroux, Pr. Alain Badiou, Pr. Ali Benmakhlouf, Pr. Simon Bouquet and Pr. Yves Duroux. Received  the highest distinction (« très honorable et les félicitations du jury à l’unanimité »).
2003 Preselected by the French National University Council (CNU) to apply for positions in Philosophy Departments.

 

73년 생인 이 사람은, 대학에 입학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박사 학위를 땄을 뿐더러, 발리바르가 지도한 석박사 논문 모두에서

'Très Bien'(우리로 하자면 A+ 정도 될 것이다)을 받았다.

박사 논문의 경우 알랭 바디우나 이브 뒤루(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튀세르 자신, 그리고 발리바르를 비롯한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가 알튀세르의 제자 중 가장 탁월한 사람이었다는 게 공식적 평가다)

등 쟁쟁한 심사위원들에게

만장일치로 최고 등급(« très honorable avec félicitations ». 말 그대로 하자면, '찬사를 동반한 최우수'라는 뜻인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는 프랑스 박사학위 최고 등급을 나타내는 관용어다)을 받았다. 화룡점정으로 2003년에는,

프랑스 국립대학 위원회의 사전 선발로 철학과 지원 자격을 획득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어느 대학이든 임용 지원만 하면 자동 선발이라는 것 같다.

이런 대우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는데, 관행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특급 대우가 틀림없을 것 같다.

 

나랑 워낙 급이 다른 사람이라, 부럽다거나 질투가 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냥 세상에는 정말 천재가 있구나 감탄하는 정도?

사실은 기쁜 마음이 몹시 큰데, 알튀세르의 의발을 이을 사람이 나온 것 같아서다.

게다가 나이가 아직 마흔도 안 되었으니, 앞날이 얼마나 창창한가?

이런 사람 글을 앞으로 계속 읽을 수 있다는 게, 진심으로 기쁘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 친구도 됐다! ㅋ 페이스북 정말 신기하다.)

위 이력서를 보자마자, 책으로 출간된 그의 불어 박사 논문 제본을 지르고

그의 책 대부분을 도서관에 신청했다. 이것도 들어오는 대로 제본할 생각이다.

 

그의 전공 분야가 구조주의인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뭔가 마음이 든든하다.

뭐 이것도 일종의 우상이라면 우상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평가를 받은 사람이라면 뭔가 있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구조주의 공부를 하고 싶은 참이었고

그 비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에 관해서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막막하던 차였는데

뭐랄까 정말 복권 맞은 기분이다.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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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12/08 19:46 2010/12/0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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