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쌍용차 정문 앞에서 혼자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를 불렀던 게 6년 전인가. 희망텐트촌을 한다며 사람들을 불러모으던 때였고 나는 1월 1일에 가서 하루를 묵었다.
오늘은 12월 31일. 쌍용차 정문 앞에는 복직해 출근하는 71명의 노동자들이 서있었다. 모두 행복의 나라로 가는 설렘에 들떠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0년이 다돼가는 때 복직한다는 건 어떤 걸까. 파업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은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복직하는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아빠가 추울 때 조금 덜 추운 곳에서 더울 때 조금 덜 더운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해고 후 생계를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를 위해 소망하는 10년어치의 '조금 덜'... 이제 조금 덜 고통스러워도 된다...
이번에 복직하지 않는 김득중 지부장이 못내 미안해하는 조합원들에게 전하던 말 중 귀에 들어왔던 것은, "내 손끝이 라인을 타던 일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 조금 늦게 들어가도 바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복직에 걸리는 시간은 세속의 시계를 따르지 않고 노동자의 손의 시계를 따르는 것이구나. 아무리 길어도 손이 기억하는 한 돌아가야만 한다. 돌아가야만 하므로 그것은 짧을수록 좋다.
한 번 손에 익어버린 일을 못하게 될 때 손의 시계는 누가 읽어줄까. 공장의 동료와 기계는 읽어줄 수 없으므로, 공장 밖 이웃들이 읽어줘야 한다. 읽어주는 만큼 싸움도 가능하다. 윤충열 수석부지부장이 여전히 싸우고 있는 고공과 거리의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와 언론의 관심을 마치 자신의 호소인 듯 절박하게 요청한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김정욱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이 일상을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10년의 시간 동안 해고노동자들은 무너진 삶에서 다시 일상을 재건해왔지만 하루나 한달의 일과가 자리잡히는 것으로 '일상'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유보된 일상을 대체하는 것으로 남을 수밖에. 그러니 일상의 회복은 또다른 투쟁일 것이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예전만큼 연대도 못하고 사회에 관심도 줄어들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일상을 회복하는 투쟁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투쟁이 아닐런지. 이제 더는 파업과 해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노동자들이 새롭게 만들어낼 공장의 일상 그리고 노동자의 삶.
앞으로 이어진 시간이 기다려진다. 오늘 기자회견의 현수막에는 "곁을 지켜준 당신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기자회견을 마치며 노동자들은 그 다짐을 세 번 외쳤다. 그러나 왠지 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았다. 긴 시간 동안 인권운동의 현장에서 곁을 지켜준 당신들, 일상이 될 수 없는 일상을 세우는 고된 시간에도 타인에게 곁을 내어준 당신들.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어쩌면 오늘은 승리의 시작일 뿐이니.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을 한참 지켜보았다. 6년 전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그곳으로 나도 같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먼저 복직했던 노동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아줘서 든든했다.
기자회견 도중 김득중 지부장으로부터 운동화를 선물 받고 울어버린 김정우 전 지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미류 동지 노래 하나 불러봐~" 이제 노래는 필요하지 않아보였다. "공장 들어가면 욕하지 말고 사세요~" 일상을 회복하는 투쟁의 시작이다.
* 올해 대한문분향소 투쟁 소식을 공유하던 텔레그램방에 김정욱은 이런 글을 남겼다. "공장으로 복직하는 날. 추운 날 함께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지난날보다 더 많이 행복해지겠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코끝이 시리다. 투쟁이라는 구호보다 더 간절한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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