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자르 토마스, 이지영 옮김,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자음과모음
'필로테라피 시리즈'임을 내건 책. 마 메종에서의 슬픔이 계기가 되어 집어들긴 했지만 떨떠름했다. 철학은 처세술이 아니니까.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처세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철학이 무슨 소용일까.
102. 우리는 "어떻게 덜 의존적인 존재가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 의존하는 존재여야 하느나?"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117. 동기 부여를 얻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가 자신을 우유부단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짐짓 그러는 척이 아니라 실제로 너무가 결정을 내리고 싶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이제 우리가 가진 의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해보면 결정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는 것은 결정의 부재가 아니라 과정의 부재라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차라리 결정을 원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 결정을 내리지 않더라도 많은 경우 관찰하고 정보를 얻으면서 가장 좋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157. 우리는 오직 더 큰 욕망에 의해서만 욕망을 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이상이 그 자체로 욕망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에 따른 우리 행위가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이성은 사실상 우리 행동을 바꾸는 데 다만 무력할 뿐이다.
173. 정신적인 삶에 대한 앎과 정서적인 삶에 대한 앎의 결과는 정확하게 같은 것이다. 슬픔, 고통, 의기소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 우리를 방해하거나 마비시키는 것과 마주한 결과 도달하게 된 상태다. (... 소중한 이를 잃었을 때 슬픔은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그 사람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95.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라는 말은 거의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경험 자체로 매일 무수하고도 명백한 증거에 따라 입증된다. (<에티카>, 4부, 명제35, 주석)
201. 당신이 논쟁 속에서 혼란스러워질 때 자신에게 하듯이 당신의 논쟁 상대에게도 이런 방식을 다시 적용해보라. 두 가지 상황이 각기 함축하고 있는 참된 면을 찾도록 노력하라.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이나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여기지 말라. 그 두 사람이 동일한 질문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던졌다고, 그들은 아직 특별한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보라. 아마도 그렇게 하면 그 두 상황에서 단 하나의 참된 진리를 한층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11. 당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외부 조건 때문이든 당신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든 간에 당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할 때 유사한 욕망을 실현시킨 이를 헐뜯으면서 욕망 그 자체를 폄훼하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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