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봄여름가을겨울 30주년 콘서트.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된 전태관에 대한 애도의 말을 아끼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30주년을 기리는 무대에 그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처럼 느껴져, 먹먹한 감동이 있었다. 어쨌거나 30년.

30년 동안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들으며,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30년 동안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새삼 떠올리게 됐다.

인권운동을 30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변이 없다면 하고 있겠지? 나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까? 지쳐서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계속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딱히 미래를 건 다짐 같은 건 하지 않으니, 30년이란 너무 외계어 같은 말.

어쩌면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에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켰거나 내키지 않았거나 누군가 그만두길 또는 진로를 바꾸길 결정한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응원했지, '누군가 계속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30년은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다보니 30년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30년을 한다면 그건 30년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나라서 우연히 가능해지는 게 아니라, 누구나 비슷한 조건을 누리는 것일 수 있는 30년.

주위에는 우연이 더 많아 보이는데, 달라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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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 16:52 2019/03/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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