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상당한 정도로 수정을 했다. HIV감염인 기숙사 입소 논란에 대한 근소한 입장 차이의 반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원문 수정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비교를 위해 남겨둔다.)

 

불안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HIV감염인 기숙사 입소 논란을 보며 (1)


3월 3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하나가 한 대학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에이즈 보유자가 병의 유무를 알리지 않고 생활관에 입사한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쓴 이는 관련 내용을 앱 '에브리타임'에서 보고 옮겼다. 장난일 수도 있지만 "짚고 넘어가는 게 안전"하므로 피검사라도 해보자는 제안을 덧붙여. 

페이스북 게시물은 댓글이 수천 개 달리며 공유되어 퍼져나갔다. 댓글들과 그 사이사이로 혐오가 터져나왔고 색출이 선동되었다. 만약 기숙사에 입소한 감염인이 확인되기라도 하면 완전히 매장당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하루가 채 안 되어, '에브리타임' 최초 게시자가 장난으로 글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태는 이제 '해프닝'이 되어버렸고 대학 측은 장난 글을 올린 학생을 징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장난 글이었고, 사태는 이제 끝이 난 걸까? 

무슨 큰일이 났던 것일까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학생은 너무 두려워서 피검사라도 해보자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기숙사에 사는 모든 학생들을 구해야겠다는 공익적 결단으로 글을 올렸을 수도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니까. 그런데 과연 무슨 큰일이 나는 것일까. (여기서 잠깐. "에이즈 보유자"는 참으로 어색한 말인데, '에이즈(AIDS)'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영어 약자를 소리나는 대로 읽은 것이다. 아마 그는 에이즈의 원인으로 알려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보유한 사람-이 글에서는 HIV감염인이라고 쓴다-을 지칭하려고 했을 것이다.)

HIV는 일상의 공간을 함께 쓰는 공동거주생활에서 전염 가능성이 없다.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하더라도, 음식을 같이 먹고 재채기 하다가 침이 튀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혹시라도 감염되면 어떡해요? 걸리면 죽잖아요!" 그렇지 않다. 치료제의 개발 이후 HIV 감염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고, 치료제를 복용하여 바이러스 수치가 낮아지면 타인에게 전파하지도 않는다. 감염인이 기숙사에 같이 살더라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에이즈를 죽음과 연결시키며 공포를 자초한다. 모르면 두렵다. 그러나 알면 불안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사태의 발단은 장난 글이 아니다. HIV와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무지를 방치하는 사회가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 그래서 사태는 끝나지도 않았다. 

세상에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 중 에이즈에 대해서는 꼭 알아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모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에이즈가 지구를 멸망시킬 것처럼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이 온오프라인에 걸쳐 너무 왕성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짜뉴스와 거짓정보에 휩쓸려 자신이 에이즈를 '안다'고 믿는다. '동성애자가 걸리는 병', '걸리면 죽는 병', '어딘가 몰래 숨어서 옮기는 병'... 문제는 에이즈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잘못 아는'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이들이 혼란과 불안을 부추기지 않도록 제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안내해야 한다. 에이즈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어 HIV감염인들이 혐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부당한 차별이 정당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적어도 공공기관이라면 이런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공공기관의 대응은 어땠을까. 

다각도로 확인

교통대는 일이 커지자 "모든 관련 사항에 대해 다각도로 확인"하고 있음을 밝혔다. '다각도'에는 질병관리본부 문의도 있었는데 "에이즈 환자 본인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병을 색출하는 행위는 불법"임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통대는 충주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범죄란 말인가. 

거짓말이라서 허위사실유포죄?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던 때이다. 기숙사에 HIV감염인이 입사했다고 소문을 내었으니 명예훼손죄?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에 HIV감염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 아닌가. 만약 충주경찰서가 '에브리타임' 게시자를 잡아낸 것이라면 심각한 인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 

페이스북에서 난리가 난 다음날, 최초 게시자가 학교를 찾아가 장난글이었음을 밝혔다고 한다. 교통대는 징계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했다. 장난이 장난으로 끝나지 않았으니 벌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장난이 장난으로 끝나지 않게 만든 책임을 그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에이즈'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게시자와 감염사실 확인에만 허둥댄 교통대에 더 큰 책임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확인해서는 안 될 것을 확인하려고 했고 확인시켰다는 점은 이번 사태에서 가장 명백한 잘못이다. 

"SNS에 게시한 본인은 에이즈 환자가 아니며 생활관 입사생도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생활관 입사생 및 학부모님들께서는 안심하고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불안은 잠시 유예되었을 뿐, 해소되지 못했다. 교통대의 대응은 오히려 '감염인이 혹시라도 있지 않은지' 확인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음을 주장한 셈이다. 불안이 가라앉더라도 혐오는 가라앉지 않고 주위를 배회한다. 다시 또 어떤 공격대상을 만나면 '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자신의 말에 자신이 속는 사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HIV감염인이 함께 생활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다른 사람의 병력 정보를 알려고 해서는 안 되며,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확산하는 글들은 올리지 마십시오.>

대학도, 경찰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문의를 받은 질병관리본부가 이런 안내와 조언을 주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큰 문제다. 공공기관들은 사람들을 안심시킬 기회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색출에 동조했다. "아님을 확인"시킴으로써 HIV감염인들을 확인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감염인의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해프닝'이었을 뿐인 일로 누군가는 인권침해와 차별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제 다시 물어보자. 누가 잘못했는가. 불안은 죄가 아니다. 불안을 방치하거나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 죄일 뿐. 오늘도 유투브에는 에이즈혐오를 선동하는 동영상이 떠돌고 어딘가에서는 수십 명이 모여 혐오를 전파하는 설교나 강의를 듣고 있다. 이 사태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에이즈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을 제재하고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기 위한 다양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HIV감염인의 인권이 다시금 강조되어야 한다. 누가? 이런 일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다. 불안의 가장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 

 

* 오마이뉴스 편집본 http://omn.kr/1hr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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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15:25 2019/03/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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