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륜의 문제. 집을 압수수색하는 데 놀란 부인을 걱정하며 '차분하게 해달라'고 '건강상태 배려'를 부탁한 것. 야당이 주장하는 '수사 개입'보다 조국이 말하는 인륜의 차원이었다는 게 사실에는 가까워보인다. 그런데 그 인륜, 아무나 못 챙긴다.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들이밀며 누군가의 집으로 쳐들어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렵고 불안하다. 그런데 그때 검찰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검찰은커녕 자문을 구할 변호사 연락처 하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은? 놀라서 울다가 기절하거나 당황해서 검찰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자신의 권리는 지키지도 못한다. 민약 조국의 말대로라면 인륜도 특권인 셈이다. 그러니 그는 다르게 말했어야 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누구나 두려움 없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
만약 인권의 문제로부터 검찰개혁을 고민했다면 그는 알았을 것이다. 부인이 놀라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대응요령을 알려주며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임을 말이다. 검찰개혁을 위해 힘을 모으는 사람들도 초점을 돌려야 한다. 조국을 무너뜨리려고 압수수색까지 했다는 점에 분노하기보다, 압수수색 절차 자체가 피의자를 제압하는 절차가 되어버렸다는 점에 분노해야 한다. 그게 검찰개혁이다.
조국을 겨냥한 무리한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 등의 문제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알려준다고들 한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점잖은' 수사인가? 칼을 휘두르는 건 공수처에 맡기고 검찰은 칼을 겨누기만 하라? 조국은 휘두르는 칼날 앞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의 호위를 받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칼을 겨누기만 해도 벌벌 떨다 쓰러진다.
만약 우리 모두를 위한 검찰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검찰개혁을 위한 노력은 조국과 빨리 헤어질수록 좋다. 첫째는 그래야 정말 필요한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둘째는 '조국' 말고는 기댈 게 없는 것이 검찰개혁이 부딪친 한계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검찰개혁을 말할 때 떠올리는 것은 '정치검찰'의 문제다. 권력의 눈치만 보면서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했던 검찰. 세월호참사 책임자들을, 성폭력 가해자들을, 노동자 탄압한 자본가들을 수사하고 기소하기는커녕 면죄부나 쥐어줬던 검찰.
그러나 '정치(하는)검찰'의 문제는 검찰개혁만으로 풀 수 없다. 검찰수사가 끝나버리면 노동자의 권리도 끝나버리고, 성폭력 사건은 종결되어버리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더 따져묻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다. 우리가 더 많은 정치의 장을 만들 때 정치검찰의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검찰을 이용하는 세력과 정치적으로 검찰을 규탄하는 세력 간의 정쟁만 무한반복될 것이다.
지금의 정부여당이 멈춰선 자리가 이곳으로 보인다. '조국사태'로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 면면이 드러나고 있지만 쟁점을 오히려 '조국에 대한 검찰 수사'로 다시 축소시키고 있다. 현재의 국면은 '조국 대 검찰'이 아니라 '검찰 대 사회', '검찰 대 정치'로 전환되어야 한다. 조국과의 결별이 주말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과제라면,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를 만들 힘을 모으는 것은 인권운동의 과제일 듯하다. 모두, 쉽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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