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정치

...우리나라를 일제와 공산주의자로부터 지켜내시고...

 

일주일에 한두번은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그런 일.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매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무릎 위로 내려앉은 종이만 열심히 읽어내린다.



빼곡한 사연들은 매번 다르지만 진실이든 거짓이든 안타까운 마음이 이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조금 어려보이는 사람이나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이 종이를 돌리며 '도움'을 요구할 때는 마음이 내내 불편하다. 그런데 오늘 지하철에서 받은 종이는 조금 색다른 내용이었다.

 

노인들에게 급식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것. 이 단체는, IMF로 노숙인 급식이 활발할 때 노인들이 오래 서있지 못해 급식에서 소외되는 모습을 보며 노인급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숙인 중 노인을 말하는 것인지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닌다는 얘기인지 알 수는 없고 분명한 것은 그 노인들은 "우리나라를 일제와 공산주의자로부터 지켜내"신 분들이라는 것!

 

히. 그래서 돈을 안/못 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라를 일제와 공산주의자로부터 지켜내"셨다는 노인들이 싫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일제와 공산주의자로부터 지켜내"신 노인들을 '경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단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주장하거나 서울시청 앞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혈데모를 하시는 그 분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는 종이 한 장에도 정치가 있더라구.

마침 삼일절이군.

 

* "우리나라의 지배세력을 일본 제국주의자로부터 한국 시장주의자들로 바꿔내시고" 정도면 무난하려나. 그냥 솔직하자는 거지.

 

** 그나저나 지하철에서 종이 돌리는 분들, 여전히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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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1 21:36 2006/03/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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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억 한 조각

    2006/03/06 15:04

    미류님의 [생활 속의 정치] 에 관련된 글 중학교 때였다. 남도에 사는 오빠 친구가 서울에 올라왔다. 주말의 외출에 나는 따라가야했다. 오빠의 친구가 수배중이었던 것같다. 말하자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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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엠 2006/03/01 23: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며칠 전에 할머니의 종이에서 그 문구를 발견하고 그냥 슬그머니 내려놓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종이 돌리는 분들...정말 난감하죠? 그런데 몇년 전에 장애인 관련 공부를 시켜주시는 분이 색다른 시선에서 주면 안된다고.. ^^ 나중에 포스팅할께요. 날씨 변덕 심한데 건강 조심하셔요

  2. 슈아 2006/03/02 23: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 문구가 요즘 유행인가 보네요. 저도 얼마전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그 대목에서 그만 마음이 편안하게 종이를 내려놨어요. 항상 종이 돌리는 분들 만나면 난감했는데..

  3. 미류 2006/03/03 13: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알엠, 무지 궁금해지네요. 색다른 시선~ ^^

    슈아, 제가 지하철보다 버스를 많이 타서 그런가봐요. 그날 처음 봤는데... 요즘 그 단체가 무지 바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