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후마니타스, 2007

 

대체로 만족스러운 책이다. 주거권과 관련된 여러 가지, 말 그대로 여러 가지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공부할 방법은 모르겠어서 눈에 띄는 책들을 띄엄띄엄 읽고 있다. 기대가 높았던 <슬럼, 지구를 뒤덮다> 보다는 훨씬 도움이 되었다. 주제가 한국의 아파트에 대한 것이기 때문인 탓도 있겠으나 자료조사와 면접조사를 바탕으로 한 탄탄하고 차분한 분석이 마음에 든다.

 

7장과 8장의 내용은 아쉬움이 큰 장이다. 아파트는 정말 '현대적'이고 '서구적'이냐는 질문을 던진 후 정말 그렇지는 않다고 결론내리는 것이 7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인식-현대적이고 서구적이라는-이 유지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느낌으로 서술된 장이다. 분석의 내용에 동의되기는 하지만 나라면(? ^^;) 단독주택을 살기 편하도록 바꾸는 것이 왜 어려운지, 결국 아파트로 개발하는 방식으로밖에 풀리지 않는지를 살펴봤을 것 같다.

8장에서 다룬 '감시 받는 주택'이라는 접근도 기본적으로는 동의되지만 아직 한 발짝 바깥에 서있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 이 책은 '지리적 실체의 가시적 반영체'로 정의되는 '경관'의 분석에 초점을 두고 있다. (19)

 

# 서울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고 변화하고 있으며 현재에 멈춰 설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확실히 서울은 지리학에 저항하는 도시이다. (59)

 

# 매매를 기본 원칙으로 한 주택정책이 공식화된 것은 1957년이었다. 이 원칙은 주택의 소유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기본 골자로 했다. ..."한국의 주택정책은 오랫동안 부유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행되어 왔다. 이러한 방향은 '주택 여과 과정'의 철학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하위 계층은 부유층이 더 값비싼 최신 주택으로 옮겨 가면서 남기고 간 주택을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해 옮겨 간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주택 여과 과정'의 원리는, 사실 모든 지역의 집값이 똑같은 도시 공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주택정책은 소형 아파트를 희생시켜 대형 아파트를 건설함으로써, 하위 계층을 주변 지역으로 내몰고 도심을 상층 계층이 차지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져왔을 뿐이다. (99)

 

# 50대 전 씨는 1990년 초부터 마포구의 한 재개발단지에서 경비 일을 보고 있다. 재개발 전에는 달동네에 집이 한 채 있었고 동네의 작은 회사에서 벽돌공으로 일을 했었다. 1980년 도시재개발조합이 결성됐을 때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다른 소유주 조합원들처럼 재개발단지가 완공되면 38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 아파트가 완공된 1993년, 한 젋은 부부에게 아파트를 임대했다. 그들이 지불한 전세금 7,500만 원으로 그동안 빌린 돈을 갚고 다시 저축을 할 수 있었다. 아파트단지의 경비로 채용된 것은 친구를 통해서였다.... 아파트의 소유주이기는 하지만 전 씨는 이를 세주고 자신은 단독주택에 전세로 살고 있다. 단독주택을 특별히 선호하기 때문도 아니지만 "달동네에서도 살았는데 옛날에 비하면 훨씬 편하죠"라고 답한다. ...전 씨는 '이 동네와 인연을 맺고 있는' 특별한 경우에 속했다. '운이 좋았다'며 그는 감사하고 있다. (134)

 

# 한국 가정의 높은 저축률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비공식 금융시장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개인이 은행으로부터 부동산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은행에서 부동산 및 기타 대출을 받으려면 개인 재산 담보, 급여 담보 및 타인의 재정보증 등이 필요했다.  (145)

 

#  아파트단지를 인구증가와 주거 공간의 조밀화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간주하는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67)

 

# 조사과정 중 5인 가구 비율이 아파트 평수가 큰 압구정이나 반포보다 작은 평수의 잠실에서 강세를 보인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현상인 주택 크기와 가구원 수 간의 역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213)

 

# 아파트단지 내에서 통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다른 한편 그들이 감시하는 사람들의 하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 중류층이나 도시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 아파트 주민들은 하인을 부리는 권리를 포함해 상층 사회계층의 권리를 요구한다. (234)

 

# 1998년까지 분양제도에 따른 가격 통제로 지불능력이 있는 계층에게 부의 축적을 가져다준 아파트는 한국의 중간계급을 형성시킨 진정한 공장이었다. 결국 아파트단지는 농촌공동체로부터 도시로의 이주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 정체성의 기준들이 무너지는 가운데에도 이들 신흥 중간계급에게 사회적 인정이라는 상징을 제공했다. (237)

 

#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이 직접 아파트단지의 유지, 개보수나 재건축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 부담은 대부분 중간계급에 속하는 단지 주민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경제위기 이후 이 계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 ... 건물의 관리와 노후 문제는 아파트단지의 관리비 문제로 이어졌고, ... 주민들이 관리비 인하를 요구하면서 관리소 직원, 특히, 경비원의 감원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246)

 

# 대단지 아파트의 출현과 변화 과정은 해당 지역의 사회적 맥락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 정책으로 표현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시킨다. 한국은 어떤 도시 형태와 사회구조를 발전시키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어떤 주택정책과 주거 공간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는가? ... (대단지아파트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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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3 16:48 2007/09/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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