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대체 누가 웃음이라는 단순한 위력을 통하여 그의 얼굴을 마비시키고 있는 이 얼음을 녹여줄 것인가? (p.110)
# 마치 사물 하나하나가 본래의 관습적인-그리고 소모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기를 그치고 그의 본질로 되돌아와서 모든 속성들을 마음껏 개화시키며, 그들 자체의 완성 이외에 다른 어떠한 이유도 찾지 아니하며, 순진하게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마치 신이 어떤 갑작스러운 사랑의 충동을 받아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축복하기로 한 것처럼, 엄청난 부드러움이 하늘로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p.114)
# 사회가 미리 마련해 놓은 잠자리 속으로 고분고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은 사방으로 넘쳐나고 사방으로 흐르면서 더듬더듬 어떤 길을,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대상을 향해 송두리째 흘러갈 수 있는 어떤 길을 찾고 있다. (p.145)
# 그는 처음으로 자기가 느끼는 예민한 구역질 등 그 모든 백인 특유의 신경 반응이 과연 최종적이며 고귀한 문명의 보증일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새로운 삶에 접어들기 위하여 언젠가는 팽개쳐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죽은 찌꺼기일지를 자문해 보았다. (p.213)
# 오직 수면만이 밤의 기나긴 유형을 견디게 해준다. 아마도 잠의 존재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p.268)
# 해여, 나를 중력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낭비와 부주의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지만 내 젊음의 충동을 꺾고 삶의 기쁨을 꺼버리는 중력의 너무 빽빽한 기운을 내 피 속에서 씻어내다오. (...) 나에게 아이러니를 깨우쳐다오. 가벼움을 가르쳐다오. 계산도, 감사도, 두려움도 없이 이 대낮의 직접적인 선물을 웃으며 받을 줄 아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다오. (...) 웃음으로 활짝 피고, 송두리째 웃음을 위하여 빚어진 방드르디의 얼굴을 나에게 다오. (p.271)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
처음 손에 쥐었을 때는 참 읽히지 않더니만 몇 년 만에 다시 들었더니 참 재밌게 읽힌다. 인간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진해진 건가.
28년 만에 스페란차 섬에 배가 들어오고 방드르디가 몰래 그 배를 타고 섬을 떠나버렸을 때, 죽음의 느낌 같은 것이 스쳤다. 28년 넘게 기다렸던 배를 만나는 순간 엄습하는 깨달음 - 자신이 기다리던 것이 먼 바다로부터의 구원이 아니었음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 은 어떤 죽음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배를 따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자연스럽게 결정한 순간, 오직 삶은 현재라는 것, 과거도 미래도 없는 항상적인 현재라는 느낌과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섬에서의 현재란 더이상 없겠다는 느낌이...
음... 생각해보고 싶은 게 많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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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연습 2007/11/19 13: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저 이 소설 좋아합니다. 서투르게나마 레비나스를 읽을 때(서툴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함께 읽다가 완전 엎어졌던 소설이어요. 이 포스트를 보니 투르니에의 글을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미류 2007/11/19 20: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헤, 그랬군요. 엎어졌던? ㅋㅋ 저도 언젠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네요.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것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