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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보면 비겁한, 정확히 말하면 정신 놓은

동성애를 처벌하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을 했으면

동성애가 처벌받을 만한, 또는 처벌받아야 할 것이라는 입증이라도 하시든지,

헌법재판소는 그걸 자신있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애매하게 말을 돌리다가

합헌이라고 결정해버렸다.

 

헌재에서 검토한 것은,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권이었다.

 

그걸 논리적인 전개로 풀어보면 이런 거다.

국가 안보 중요해 -> 군 기강이 중요해 -> 잉? 계간? 추행? 어머나, 그런 문란하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게다가 군대는 남성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인데 어떡해? 아, 난 몰라~~~ -> "계간 기타 추행"은 금지하고 처벌해야 돼!

 

국가 안보 중요하다 치자. 참 지긋지긋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평화가 중요하다는 정도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군 기강 중요하다 치자. 군사주의의 문제를 굳이 여기에서 말하지는 말고 군대가 현실적으로 기강을 잡아야 한다고 이해하고 넘어가자. 그런데 그 다음부터 헌법재판소는 어쩔 줄 몰라한다.

 

"계간 기타 추행"이 강제력 유무나, 시간 장소 등에 아무런 규정이 없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대한 헌재의 답은 이거다. 에이, 다 알면서~~~! 누구나 다 그게 무엇인지 안다면서 헌재는 "계간 기타 추행"을 이렇게 설명한다. "남성 간의 항문성교"와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만족 행위". 헌재는 편견의 명확성을 보여줌으로써 명확성의 원칙을 확인한다. 편견도 명확하기만 하면 진리가 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일반인의 혐오'를 정당화하고 자신의 '성적 도덕관념'을 헌법의 척도로 끌어올리고, 합의에 의하더라도 남성 간의 성교는 처벌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간다. 그 혐오가 타당하다거나 그 도덕관념이 유일하게 가능한 도덕관념이라는 점은 전혀 입증하지 않고서 말이다.

 

더 어이없는 건 평등권 침해가 아니라는 헌재의 주장. "절대 다수의 혈기왕성한 젊은 남성 의무복무자들"이 있으니 동성 간의 성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러니까 동성 간 성행위만 처벌하는 건 차별이 아니래. 게다가 이런 얘기하면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애 성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꺼내며 마치 이 조항이 성폭력으로부터 군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인 걸로 둔갑시킨다. 성폭력 처벌하는 조항은 이미 군형법 개정안에도 다 들어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걸 보면 남성과 남성 사이에 성폭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헌재가 오히려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니니? 그러니 아무래도 군대 내 동성애 얘기만 나오면 파르르 떠시는 분들은, 아들이 성폭력 당하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아들이 스스로 동성과 성 관계를 갖는 걸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 아니니?

 

어쨌든 결과적으로 '동성애 처벌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왜 동성애가 처벌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없다. 당연하지,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그걸 자기 입으로 어떻게 얘기하니? 그렇게 불안하면 동성애자는 군대 오지 말라고 하든지, 아니면 꼭 집어서 남들 보는 앞에서 남성들끼리 섹스하지 말라고 하든지. 헌재는 동성 간 성 '행위'와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도 구분하지 못한다. 물론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에서 동성 간 성행위라는 건 매우 중요한 거지만, 동성 간 성행위는 용납할 수 없으니 동성애는 안된다는 주장이나, 동성애는 문란하니까 동성 간 성행위는 비정상적이라는 식의 말들이 어찌됐든 '아, 몰라몰라몰라~~~' 라는 말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게 무책임한 방식으로 동성애자를 잠재적 가해자에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낙인찍어버린 공간에서 국가의 부름을 따랐을 뿐인 동성애자들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거니?

 

헌재는 "계간 기타 추행"이라는 표현에 깊이 배어 있는 편견과 동성애혐오를 지적했어야 한다. 아니면 그 안에 숨은 고정관념들을 낱낱이 실토하고 정면으로 승부를 걸든지. 남들이 다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으니까, 헌법도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서, 차별과 혐오를 승인하는 게 헌재의 역할이니?

 

그동안 열심히 활동했던 이들의 어두운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술 한 잔 나누며 다시 기운들 내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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