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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협상단 안습[1]

어딘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몇일전 부탁 받고 쓴 글..

넘 길어서 몇 개로 나눌 요량

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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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를 반대하는 수개~의 이유

 

 

지난 3월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패널로 참석한 이준기 씨를 지명하며 “한국영화가 스크린쿼터 없이 점유율 40~50%를 넘길 자신이 그렇게 없느냐”고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게 어딨니’라는 대통령의 자신감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도 그렇게 쉽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보지만 현실은 그와 정 반대다.


한미FTA 2차 협상을 앞두고 한미FTA와 관련한 기획방송은 KBS 스페셜, PD수첩 등 단  두 프로그램에 뿐이었다. 방영 이후 시청 소감 게시판에는 ‘도대체 뭘 해야 하냐’는 통탄의 덧글이 쇄도했다. 국민들은 방송을 보고나서 ‘FTA’를 체감했고 공포감을 성토했다.

 




한국 협상단 안습.. 정부의 동시다발적 FTA에 대한 우려를


현재 한국 정부는 미국, 일본, 아세안 등 20개국 이상과 ‘동시다발로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협상 능력’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개시 선언 이후 한미FTA 협상단 구성을 묻는 질문에 김종훈 수석대표는 사법연수생을 교육시켜 투입하겠다 말해 언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외부 영입과 정부 부처 파견 등을 통해 어렵게 구성한 한국 협상단. 17개 분과와 2개의 작업반으로 구성된 실질 협상팀은 29명. 이들 중 상당수가 서울대 출신이고, 미국에서 최종 학력을 마친 사람만도 18명이다. 한미FTA 협상의 쌍두마차인 한덕수 전 부총리와 김현종 통상교섭 본부장도 익히 알려진 미국에서 최종학력을 마친 미국통 들이다. 개방주의자, 친미 코드로 구성된 협상단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의 출신성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급조된 협상팀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에는 ‘통상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한미FAT 협상팀의 야전 사령관인 김종훈 수석대표는 2000년 마늘 협상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이후 이면합의로 마늘 파동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그리고 그 외 별다른 협상 경험도 전무하다.


이런 전례도 있다. 2005년 9월 대법원이 "한국 농산물을 학교급식에서 사용하도록 한 조례규정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WTO 협정을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에 있다는 대법원의 해석은 사실상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문제는 이 판결이 나온 배경에는 1979년 정부조달협정 체결국 25개 국으로 끼어들어간 한국 정부가 농산물과 관련한 포괄적 예외 규정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란 점이다. 당시 미국은 농산물과 관련한 포괄적 예외규정을 인정받았고, 유럽 국가들은 급식조례 등에 관한 예외를 인정받았다. 실력이 없다면 끼어들지 말거나, 컨닝 이라도 제대로 했어야 했지만 한국 협상단은 그렇지 못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2003년 칸쿤 WTO 각료회의 당시 개도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이 싱가포르 이슈 영역의 의제 선정과 관련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한국 대표단만이 4가지 이슈를 모두 통과시키자고 우겨 선후진국 양쪽으로부터 힐난 당한 적이 있다.


작년 쌀 협상도 마찬가지다. 김현종 본부장이 진행한 ‘쌀 협상’에서 미국의 쌀 쿼터제를 이면합의 한 실수로, 이를 안 인도가 협상단을 압박해 인도산 쌀을 추가로 구매해야 했다.


한국 정부의 통상 협상 경험은 단기 스파르타 교육을 받는다 해서 따라 잡을 수 있는 실력이 아니다. 100년의 통상 협상의 전력과 내부 조율의 경험이 있는 미국과 역사와 배경이 다르다. 협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의 의문은 당연하다.


또한 미국은 수시로 한국을 대상으로 통상 압박을 해 온 전례가 있다. 단적인 예로 1985년 미국 통상법 슈퍼 301조를 내세워 한국 정부를 압박했고 단 10개월 만에 한미지재권양해각서를 체결하는 ‘항복문서’를 받아낸 전례가 있다.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 미국은 통상의 달인, 풋내기 협상단인 한국은 역사적으로 ‘미국 앞에서만 서면 작아지는’ 경험을 수차례 해 왔다. 친미 협상단과 이런 배경 속에서 진행되는 한미FTA에서 뭔가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애초에 접어두길 권한다. 비참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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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호주 FTA 당시 약가 협상이 쟁점이었다. 호주에는 한국의 건강보험과 같이 누구나 쉽게 의약품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보장하면서도 본인의 부담을  줄인 의약품급여제도(Pharmaceutical Benefit Scheme, PBS) 라는 제도가 있었다. 물론 미-호주 FTA 당시 이 제도를 협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미 협상단이 우겼고 결국 관철됐다. 결국 1년만에 체감할 만큼 약값이 올랐다고 하는데..

 

한국 협상단이 안습인 이유는 눈물나에 안됐기도 하고 그들을 바라보려니 눈물을 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미-호주 FTA 당시 호주 협상단 중에 몇몇은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로 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의약품 분야 협상자로 나왔으니 관련 전문가 일 테고 전세계 곳곳에 있는 자신들의 회사를 통해 꿈을 펼쳐보지 않겠냐는 ...공무원의 녹으로 수년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을 고액 연봉으로 제시하면서.. 아마 한국 협상단도 그런 제안을 받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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