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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2/06
    딴짓만 한다..
    랄라^^V
  2. 2004/12/06
    책]현대가족이야기 -조주은
    랄라^^V
  3. 2004/12/06
    2001년 싱가폴
    랄라^^V

딴짓만 한다..

집에 와서 기사를 쓰려고 노트북도 쟁여 왔건만 ..

계속 딴짓만 하고 있다. 옛날 생각하며 사진도 정리하고, 정리 못했던 것을 하나 둘 씩 올려 놓고..

이모가 보일러를 켜 놓고 나간 덕분에 집이 찜질방이 되어 있다.

오늘 .. 발딛 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이 바닥에 나의 허리를 완죤히 지저 버려야 겠다..^^:

 

임용고사 끝난 녀석들을 어제 좀 늦게 만났다.

고시인지 고사인지 다른 학번들은 다들 척척하니 잘도 붙더만 울 동기들은 참 쉽게 풀리지 않는다..

바라보기 안타깝고, 그냥 지나치기에도 참 쉽지 않은 녀석들이다..

 

전교조 가서 꼭 활동하겠다는 포부들을 밝히지만, 난 교사가 가지는 사회적 계층성으로 인한 한계가 있으니 지역활동이나 공장현장에서 부터 같이 시작하자고 말했다. 이제 이 말도 소용 없고 서로의 갈길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미 서로의 그런 길을 인정하고 알아서들 간다. 단지 때론 필요할 때 그리고 과거의 정으로 끊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것을 초월해 그냥 인간적 관계로 유지되어 간다. 이미 교사를 하겠다는 것은 교육 운동을 하겠다는 한 맥이지만, 난 전교조 활동이나 교사 운동을 말하는 내 선배나 동기들이 적당한 자기 밥줄과 사회적으로 안정적으로 자기 지위를 잡고 취미활동같은 운동을 하겠다는 것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헌신적으로 전교조를 세워온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교육운동을 비하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범대를 나온 나의 판단이 그렇다는 거다.

 

민주노총 총파업을 보내고, 철도의 밤을 보내고 그리고 널럴한 월요일을 보내면서 이것 저것 생각이 많아진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을 했다. 블로그에 내글 적듯, 꼬마게시판에 주저리 늘어놓듯 기사를 쓰면 안되는 다는 것을 뼈져리게 배웠고, 단어 선택도 신중하게 해야 하고 특히 설렁설렁 넘기는 단점을 넘어 내가 쓴 글에 대해 책임지고 재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소 챙피하고 아프지만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투본 회의 참관 투쟁의 경우는 내가 들고 싶은 손을 정확히 들었으나 뒷심 부족으로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고 심지어 민주노총의 투본 결과를 담아 후속 정리를 못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였고, 이미 내가 그것을 썻어야 하는데라고 느낀것은 이미 12월이 넘어 서였다.

 

철도 파업에 배치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파업 가부와 상관없이 실상황으로 보도 한다. 그리고 반드시 마무리 기사를 쓴다'였다. 변수들이 많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은 판단들이 난무하고, 여러 평가들이 이어지고, 가진 정보가 틀려 지거나 내가 가진 정보를 확신할 수 조차 없어졌었다. 파업에 대한 시기성은 추운 새벽을 넘겨서 철도청의 최종안을 받으면서 '잠정안 수용'으로 완전히 기울어 졌다. 평가다 성과다 말이 없이 마지막 복귀 지침에 그 흔한 박수 조차 없었다. 현장에 서 있는 나는 확대쟁대위의 투표 결과와 부곡 현장 분위기 속에 갈팡질팡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인가 무엇이 현장의 판단이고 분위기 여야 하는가에 대해 나는 남겨진 조합 간부들, 그들에 대한 조직적 자신감 없음으로 결정 지었다. 그만큼 준비가 덜되 있기도 했고.

 

마지막 결국 밤을 세고 집에 오는 길에 마무리 정리하고 자야, 사람들이 기사를 보겠구나 싶어 욕심부려 정리한 게 화근이 됐다. 지적도 받았고, 정리도 했다. 그렇지만 그 정리된 상황을 모르고 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기사를 봤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이 아찔해 졌다. 아. 이런 거구나. 미디참이라는 곳이, 인터넷 매체라는 것이 이런 곳이구나를 등골 서늘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덧글보며 설마했던 문항을 다시 읽은 글에서 황당해 하고, 아무도 지적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다소간에 원망도 나오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짱구를 마구 굴리다가 선택을 했다. 고치고, 덧글달아 설명하고, 글을 좀더 수정 보자고. 편집장의 존재가 용욱이 형의, 용구라의 존재가 정말 절실해 지는 순간이었지만 결국 혼자 마무리 지어 버렸다. 그게 제대로 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도 내일 회의때 해야 하겠지.

 

과한 욕심은 실수를 부르고, 공간에 대한 책임은 나의 신중함에서 나온다. 덜렁 거리지 않고 꼼꼼하게, 허둥지둥 하지 말고 신중하게 12월의 내 모토는 "차분해 지기"다. 역할 구분상의 실수 이기도 했으나 나의 실수가 컸던 만큼 차분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실천하는 내가 되야 겠다. 2005년도 다가오고 이제 한살 더 먹어서 20대 중반도 훌쩍 넘어 버리게 됐으니 살아온 시간 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차근차근.. 신중신중.. 진중진중..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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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현대가족이야기 -조주은

신기하다. 이 책의 저자가 미디어 참세상 칼럼니스트인지도 몰랐고, 현대가족이야기의 저자 인줄도 몰랐다.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변을 통하며 운동권들은 한번씩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 이 책인줄도 몰랐고, 진보넷 와서 성교육 해 주던 동지가 이 책의 저자인줄도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어처구니 없는 정보력이란.. 각각 또다른 조주은 이라는 여성학자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다 한명이였던 거다. 신기하다.


현대가족이야기는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아버지, 남편을 둔 가족이야기라는 한 축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가족이야기 두 가지 축으로 이해를 했다. 가족 중에서도 여성, 어머니를 중심으로 보되 실제적 실태조사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분석돼있다.

 

한마디로 재밌다. 조주은 동지의 성격 만큼이나 솔직하고 재밌고, 가리는게 없다.  

.

 



여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생산 도구로써의 가족도 보고, 그 가족단위를 중심으로 배치된 여성의 사회적 역할도 분석하고, 체제, 지역사회 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별 분업의 내적으로 체제화 하고, 학습화 하고, 내면화 시켜 동일성들을 만들어 낸다.

 

가족이란 집의 공간을 그리고 인간들의 관계를 안식처의 기둥으로 만들어 버리는 생산적 시스템이 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나 역시도 그 시스템의 한 동조자인거 같다는 거다. 지금 단지 내게 내가 주체적으로 꾸릴 가정이 없을 뿐이지, 열심히 재정적 책임을 지고 있는 아버지의 존재와 단 한번의 외박 경험도 없는 가정지킴이 엄마. 기둥같은 두 사람의 시스템을 그대로 악용하며 지금의 내가 기생하는게 아닌가 하는가 해서 왕창 찔렸다. 그리고 지금 얹혀 사는 이모네 집에서도 나 엮시 그런 존재 인거 같다. 가사일에 대한 기초적 분담 조차 나눠 하지 않는 내 모습은 너무나 당연히 미안한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집에 부모님이 없는 집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는 내가 상상이 안된다. 오빠들이 없는 나도 상상이 안된다. 가정이 가지는 체제 유지적 기능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안적 존재는 잘 모르겠다. 가정의 형태던 인간의 공동체적 형태던 체온을 느끼고, 온정을 느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 그런게 없으면 일끝나고 가서 놀곳도, 쉴곳도 정말 적막하고 쓸쓸해서 매일 술을 마시게 될 것 같은데 ^^; 제 5원소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혼자 캡슐같은 집에서 사는 거 정말 불쌍해 보이잖아...  

 

책은 재밌다. 음.. 솔직히 예로 들어진 여성들의 조건이나 상황들을 확장 적용하거나 일반화 하기 어렵지만 공감하기는 쉬웠다. 충분히 그럴수 있지 끄덕여지기도 했는데 그 동네에서 어떻게 견디며 책을 쓰고, 대학원 공부를 했을까 유별난 저자가 정말 독하고 대단해 보였다.

 

"가족을 신성한 사적 공간의 왕좌에서 끌어내려, 인간을 기계의 일부로 합체하게 만드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이윤 추구를 위해 기꺼이 '가족'을 이용하는 거대 기업의 경영 정책, 공해와 교육을 키우려고 해던 것도 사실이다. 사고의 위험이 가득한 지역사회, 그리고 노동조합의 협상 전략과 지역 공동체의 평준화 된 삶 옆에 나란히 놓고자 했다. 또한 실제로는 전쟁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평화'와 친밀함'의 이미지로만 덧칠되어 있는 '가족'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고자 했다. "

 

그냥 내가 적은 책 내용

 

p.41
우리는 자신의 노동자 남편이 건강한 활동가로 성장하게 끔 조금다른 차원의 내조를 하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스스로 여성으로서 독립된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키우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계의 문제에 민감해지고 노동자 남편을 둘러싼 사회 현실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 그 모임의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엄마, 아내,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탐수해야 했고, 나와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하고 싶었다.

 

p.66
현대자동차의 모델 그들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 사이의 철저한 성별분업이 재생산되고,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가정중심성 domesticity'이 가족을 규정하는 힘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전업주부라는 존재는 그 전제이자 결과이다. 여성이 있을 곳을 가정에만 붙박아 두고 가정을 바깥 세상과 대비시키 신성화하는 가정중심성 이데올로기는 , 남녀간의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방해하고 사회에서 여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p.99
결혼하지 않고 혼자사는 여성들은 흔히 '주인없는 여자' '뭔가 문제가 있는 여자' '일부일처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로 받아들여지고, 그에 따라 보이지 않는(혹은 드러나게) 차별을 받기도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제도와 맞물려 체계화되어 있는 준강제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p.149
자본의 착취에 대항한 노동운동을 하는 남성들 역시, 여성이 가정에서 만들어가는 스위트홈 이데올로기를 내면화 하여 가정에서 또 다른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p.177
밥은 행복한 가정과 직결되는 의미를 갖는다. 밥을 차려 주는 것은 단순히 내조를 넘어 가족을 구성하는 행위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p. 201
주인공 여성들은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욕구와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사이에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 이들은 어머니 역할 수행에 따른 육체적, 심리적 피로가 가중되는 초기 양육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어머니' 정체성에서 편안함과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p. 315
페미니스트들과 일부 학자들은 생계부양자(남성)과 가사전담자(여성)로 구성된 핵가족이 보편적인 가족 형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구성물일 뿐이고, 여성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긴장을 보이지 않게 하고 낭만화시켜 남녀간의 권력 관계를 은폐한다면 비판해 왔다.

 

제언
노동자가족에서 가족의 가정중심성을 어떻게 약화시키고 가정과 사회 모두에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인가?: 첫째 무엇보다 우선 가부장적 특권을 유지시키는 '장시간 노동' 그리고 그것을 재생산 하는 매커니즘인 교대레 근무가 폐지되어야 한다. /시급제를 없애나가야 한다.

 

p.324
가족 임금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서 노동주체를 상정해야만 남성들을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적 노동이 가시화되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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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싱가폴

5학년이 되던 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친구 잘둔 덕분에 친구의 친척집에 머물면서 아이들 돌봐주는 조건으로 보름정도 싱가폴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다녀왔다.

 

당시 들인 돈은 우리 나라 돈으로 100만원정도. 내돈 30, 부모님돈 70  

그리 싸게 간것도 비싸게 간것도 아니다.

비행기 왕복이 50만원 좀 넘었던 기억이 나고..



싱가폴은 우리나라 보다 1시간정도 늦고 싱가폴 달러는 우리나라랑 비교하면  SDG 1S$=700원 정도 된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물가가 상당하다. 싱가폴이라는 이름의 유례는 예날 싱가폴에서 묘하게 생긴 동물을 발견했는데 그 동물을 사자로 오인해 singa pura(사자의 도시)라고 부르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1819년 영국 스탬포드 래플스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견제하기 위해 노호르 주의 술탄으로 부터 싱가폴을 사들여 이 곳에 자유무역항을 건설했다. 말레이 반도와 인근 여러 나라를 관할하는 영국의 무역거점으로 성정하게 됐다. 이후 1921년 영국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군사, 경제적으로 영국의 동아시아 식민지 지배의 핵심이었다. 2차 대전 중에 일본이 싱가폴에 쳐들어와 싱가폴 사람들을 학살하는 대학살극을 벌어서 그런지 상당부분 나쁜 감정들이 있다고 하고 1959년 자치권을 획득했고, 말레이시아로 부터도 완전히 독립한 상황이고. 도시 규모는 서울보다 좀 큰 편인데 경제적 규모나 세계적인 지위를 볼때 비교가 안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알려 진 것 처럼, 싱가폴에 갈때 껌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가지고 가다 들키면 벌금을 내야 하고 당연히 압수 당하고. 길거리가 깨끗한거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안전장치들도 잘 되 있어서 지하철의 스크린 도어나 도로 표지 판등이 상당히 잘되어 있다. 물론 사람들이 질서도 잘 지키고, 버리는 일도 없고, 차들도 모범적이고.. 인공도시 답게 조경도 멋지던데, 친척분의 말로는 간판의 높이과 크기 숫자를 비롯해 건물 높이와 모델등 왼만한 것은 다 국가가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리콴유나 싱가폴 사회 통제적 분위기와 성형등을 보름 동안 뭐 판단할 것 조차도 없었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발판을 딛고 있는 사회의 역동성(센토사 섬으로 가는 케이블 안에서 본 항구의 번잡한 움직임, 넘치는 관광객, 지하철 등 곳곳에서 드러나는 활기)과 그들이 보이는 자부심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넘어온 사람들과의 경제적 불균형의 아이러니들이 마구 잡이로 섞여 있었다.


 아마 이 사진에서 날 찾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센토사 섬에 있는 사자상 근처에서 찍은 거다.

 

2001년 여행에서는 싱가폴과 말레이시아를 갔다. 말레이시아의 여행은 정말 집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특히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콸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에도 가보고, 절도 다니고, 팬이 도는 싸구려 여관에서도 자보고..

 

2000년과 2001년의 겨울은 참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나름대로 현장이란 곳에 기웃기웃하다가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학교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처절한 현실도 느꼈고, 정말 오아시스 같은 여행을 친구랑 갔다 왔다. 남은 사진도 몇장 없고, 준비된 동선도 없이 무작정 떠났다가 와서 솔직히 어디어디를 갔다 왔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내 도피여행의 시작이고, 첫 외국어를 하는 세상에서 단 둘만이 한국어를 하는 놀라운 현실을 체감한 기회이기도 했다.

 

친구와 나의 영어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험이 있었는데..

싱가폴에 있는 유명한 도서관에 가려고 왠 사람에게 길을 물어 봤다.

"우리에게 길좀 알려 달라" 그랬더니 그 외국인이 한참을 영어로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 주고 난리가 났다(우리가 만난 싱가폴 사람들은 정말 다 친절했다) 그러더니 맨 끝에 "Are you follow me?" 라고 물었는데 우린 팔로우만 들은거다. "아니 이 사람이 우리한테 어쩔려고 따라오라는 거야. 야 안돼!" 갑자기 땡큐 라고 대답해 버리고 확 돌아서 버렸다. 어찌나 그 외국인이 황당했을까..

 

이런 경험도 있었다. 센토사에 가려면 케이블 타고 가면 케이블 타고 와야 한다. 그사실을 사전에 몰랐던 우리는 매표소에서 갈때는 케이블을 타고 가고 싶고 올때는 배를 타고 오고 싶다는 말을 한참을 하고 있었는데 안내원과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왕복하지 않겠다는 말로 "go but No Return"이라고 말을 했는데 안내원이 상당히 당황해 하더니, 나중에 우리의 의도를 알아들었는지 한국말로 "왕복해야 해요"라고 대답을 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하.. 웃으면서 땡큐를 연발했었다.  

 

 같이 여행했던 내 친구가 다시 싱가폴에 간다. 다시 그 친척집에 간다. 아직 국가 공인 선생님이 되지 못한 내 친구는 요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상당기간 싱가폴에 묶여 있게 될 것이라는 겁을 주며 '너네가 그리울 거야'라는 말을 연발한다.

 

오뚱이가면.. 정말 심심할 텐데.. 약방의 감초 같은 오뚱이 가면 우리끼리 모여도 참 서먹서먹 할 텐데.. 오뚱이 아이들 수영장에서 다이빙 한다고 난리 치면서 머리 박는 사고가 없기를, 영어 때문에 압박받지 않기를.. 건강하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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