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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을 안고 사는 울 엄마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지만

참 좋다.

 

우리 엄마는 때론 나쁘다.

욕도 잘 하고

화도 잘 내고

어렸을 때는 나를 많이도 때렸다.

 

나는 엄마를 참 안 닮았다.

엄마는 화를 잘 낸다.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우리 엄마는

잘 울고 잘 웃는다.

 

한마디로

엄마는 뜨거움을 가진 사람이다.

 

브릿지 프로그램 때 주민조직(Community Organizing) 수업을 들으면서

지도자에 대해 배울 때

난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부당함에 대해 비판하고 화낼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이목에 신경씀 없이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안다.

그리고 추진력이 있고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다.

 

버스에서 침 뱉는 사람이 있으면 항의하고

형식적인 농협 조합장과의 모임에 가서는 지난 조합장들의 부당함에 대해 얘기하며 혁신적인 조합장이 되어줄 것을 얘기하고

마을에 수도 놓는 일을 정부에서 해 주지 않았을 때 직접 담당 회사와 만나 담판을 짓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 수도를 놓았다.

 

적극적인 엄마 때문에 때론 아빠가 피곤해하시기도 하시지만^^;

 

우리 집은 장미 농사를 짓는다.

2개의 농장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 부모님이 직접 관리하시고

다른 하나는 필리핀 부부가 관리한다.

 

필리핀 부부에게는 다운증후군이 걸린 어린 아들과 학교갈 나이가 된 어린 딸이 있다.

다운증후군이 걸린 아들은 병원에 자주 가야하는데

차도 없고, 어느 병원에 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직접 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치료를 했었다.

 

그 필리핀 아줌마, 아저씨는 우리 부모님께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릴 존중해 줘서 고맙다고.

그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이 그저 너무 고마웠다.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대우를 한 것이지만

그런 당연함을 잃지 않은 부모님이 존경스러웠었다.

 

얼마 전 엄마랑 통화를 했다.

필리핀 부부의 딸 이름이 장미인데

장미 학교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장미는 학교 다닐 나이가 지났어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었다.

배우고 싶어하는데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장미를 보면서

그저,,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죄인가.. 라며 속상해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교육을 못 받아 가난을 대물림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다.

 

그 때 우리 엄마는

빨간펜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시기도 하셨었는데

 

얼마 전 통화에서는

이제 장미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학교를 알아봐주셨고

마침 학부모 모임이 있는 날이라

엄마가 대신 가서 엄마 스타일대로 하고 싶은 말 죄 하고 오셨다 한다.

 

아....

우리 엄마가 너무 예뻤다.

 

마음 속 뜨거움을 가진 우리 엄마

 

장미는 이제 학교에 다닌다.

공부를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적극적인 성격의 장미는

뭐든 잘 해낼 것이다.

장미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 지

정말 기대된다.

 

단순히 돕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면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까지 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언제나 성실하고 주인된 마음으로

농장을 봐주시는 필리핀 아줌마, 아저씨가 고마워서,

똘똘한 장미가 예뻐서,

엄마, 아빠가 마음 하나를 줄 때마다

그 이상으로 고마워하며 마음으로 보답해주는 그 가족들 때문에

엄마, 아빠도 행복해서

하시는 일이실 것이다.

 

따뜻함을 서로 나누는 두 가족.

 

짐바브웨에 와서

흑인을 비하하는 한국인들을 더러 본다.

그런 모습은 그들의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흑인들의 나라인 짐바브웨에 살면서

철저히 스스로 격리되어 살기도 한다.

 

우린 다 같은 인간이라는 당연한 명제.

이 당연함을 다시 찾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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