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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739777

<글·윤무영 | 그림·김용민>
선생님 : 여러분, 일제고사 성적이 나왔어요. 면박이 학생, 나와서 성적표 받아가세요.
면박 : 제 성적은요, 잘 나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냥 불러줘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 : 그럼, 부를게요. 면박이 학생, 도덕은 빵점.
면박 : 성적만 좋으면 됐지, 도덕 점수가 뭐가 중요해요?
선생님 : 수학 20점
면박 : 그건 옆집에 사는 미국이 때문에 그래요.
선생님 : 자연은!
면박 : 그건 내가 잘 하는 과목인데. 저는 녹색을 좋아해요.
선생님 : 자연은 빵점. 그리고 사회는 20점.
면박 : 제가요, 그래도 다른 애보다는 성적이 좋잖아요. 저기 저쪽에 앉은 애. 어! 오늘 결석했네.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 날씨가 좋으면 꼭 결석을 해요.
선생님 : 너가 만날 비교하던 그 학생은 전학갔어요. 이제 그 학생하고 비교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그 학생이 전학갈 때 성적표를 떼어보니 면박이 학생보다 훨씬 나았어요.
면박 : 어, 그러면 이제 비교할 대상이 없네.
선생님 : 저기 구석에 있는 학생 있잖아요. 공삼이. 수학 성적이 빵점이라 면박이 학생보다는 약간 뒤떨어지잖아요. 그래도 성적은 안 올라도 매번 출석하는 정성은 알아줄 만해요. 어디든지 안 끼는 데가 없어요.
ㅋㅋㅋㅋ
시국 선언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시국선언문.
탄압받는 인간성과 감성들의 저항, 그 전방에 선 문학에 감사하며.... 펌.
제가 말한 건 요거였어요~ 젊은 작가들의 선언문! ^-^
시국선언문의 최고봉이라고 감히 아뢰옵니다. 녜.

이것은 사람의 말 - 작가 188인 ‘6.9 작가선언’
(* 강조는 그라쪼 ^-^)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모든 눈물은 똑같이 진하고 모든 피는 똑같이 붉고 모든 목숨은 똑같이 존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절대 다수 국민의 눈물과 피와 목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다. 본래 문학은 한계를 알지 못한다. 상대적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를 꿈꾼다. 어떤 사회 체제 안에서도 그 가두리를 답답해하면서 탈주와 월경을 꿈꾸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 본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차라리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으로 1987년 6월을 떠올린다.
박종철의 죽음이 앞에 있었고 이한열의 죽음이 뒤에 있었다. 그 죽음들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힘겹게 그것을 가꿔왔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할 권리가 없다.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대한민국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정부인 작가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도, 집행부도, 정강도 없다.
우리는 특정한 이념에 기대어 발언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이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운 ‘중도실용주의’라는 가짜 이념은 집권 1년도 못 돼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도처에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의 얼굴을 본다.
용산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와중에 여섯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도 이명박 정부는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여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지만 저들이 행한 일은 위선적인 사과와 광범위한 탄압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 장악을 기도했고 도심 광장과 사이버 광장에 차벽을 치고 철조망을 세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는 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천박한 관료주의로 문화예술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사상 최악의 표적수사와 비열한 여론몰이는 그를 벼랑에서 투신하게 하였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매장되었다.
이 모든 일에 적극 가담한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들로 고발한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는 군림하면서 영혼을 팔고 정의를 내던진 정치검찰들, 증오와 저주의 저널리즘으로 민주화의 역사를 모독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조롱하는 수구언론에 우리는 분노한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혹해진다. 저들을 여전히 검찰과 언론이라고 불러야 하나. 곰팡이가 온 집을 뒤덮었다면 그것은 곰팡이가 슨 집이 아니라 집처럼 보이는 곰팡이일 뿐이다. 저 권력의 몸종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와 보편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달려온 이명박 정권 1년은 이토록 참담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서 우리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들은 수치를 모르고 슬픔을 모른다. 수치와 슬픔을 아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됨이라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문학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
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이것은 과장인가? 그러나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종이와 펜이 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저항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을 갈아엎고 있는 눈먼 불도저를 향해, 머리도 영혼도 심장도 없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의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수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한줄선언’ 참가자 명단
강경희 강성은 강 진 고나리 고명철 고봉준 고인환 고찬규 곽은영 구효서 권 온 권혁웅 권현형 권희철 김경인 김경주 김경후 김 근 김나영 김남극 김남혁 김대성 김명기 김미월 김미정 김민정 김사과 김사람 김사이 김 산 김선재 김성중 김소연 김 안 김양선 김애란 김 언 김연수 김요일 김윤환 김이강 김이은 김이정 김자흔 김재영 김정남 김정란(소설가) 김지녀 김지선 남상순 맹문재 명지현 문동만 문혜진 박대현 박민규(시인) 박 상 박상수 박성원 박수연 박슬기 박시하 박연준 박정석 박창범 박형서 복도훈 박형숙 박형준 박혜상 방현희 배영옥 백가흠 백지은 서성란 서안나 서영식 서영인 서효인 서희원 성기완 손세실리아 손홍규 송기영 송승환 송종원 신용목 신해욱 신형철 신혜진 심보선 안상학 양윤의 양진오 여태천 오창은 우대식 원종국 원종찬 유용주 유정이 유형진 유홍준 윤성희 윤예영 윤이형 윤지영 이경재 이기성 이기호 이덕규 이도연 이동욱 이만교 이문재 이민하 이선우 이성미 이성혁 이순원 이시영 이신조 이 안 이영광 이영주 이용임 이용헌 이은림 이장욱 이진희 이 찬(평론가) 이현승 이현우(로쟈) 이혜경 이혜미 임수현 임영봉 임지연 장무령 전도현 전성욱 전성태 전형철 정여울 정영효 정우영 정은경 정주아 정한아(시인) 정혜경 정홍수 조강석 조동범 조성면 조연정 조연호 조용숙 조원규 조 윤 조 정 조해진 조형래 조효원 주영중 진은영 차미령 채 은 천운영 천수호 최성각 최진영 최창근 하성란 하재연 한세정 한용국 한지혜 함기석 함돈균 해이수 허병식 허윤진 허 정 홍기돈 홍준희 황광수 황규관 황호덕 총188
http://blog.jinbo.net/imho/?pid=1442
소개하기로 한 여성주의 의료생협에 대한 기사입니다.
언니네 채널넷(www.unninet.co.kr) 2009년 1월 특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 中
EM님의 [2009/05/24] 에 관련된 글.
블로그의 글로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바로 그 글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EM님도 노의 죽음으로 힘들어가고 계시는구나...
맘이 많이 아프다.
그의 죽음으로 내 삶 안의 사람들이 깊은 슬픔에 빠져,
내 삶의 슬픔도 너무 많이 커졌다.
무엇이 이 좋은 사람들을 이토록 슬프게 하는걸까?
나는 왜 그의 죽음으로는 건너건너 아는 사람의 자살 소식 만큼밖에 슬퍼지지 않고
그의 죽음이 만들어낸 수많은 슬픔들 때문에만 슬퍼지는걸까?
나는 뭐가 다른가?
그는 나에게 다른사람들한테와 어떻게 다른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의 죽음은 다른 수많은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혼잣말로 마지막에 중얼거리게 되는 말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의 자살은 그녀의 자살과 무엇이 다른가?
혹은 같은가.
magister님의 [노 전대통령의 자살] 에 관련된 글.
그의 죽음이 불러오는 찜찜함과 우려와 고민들이
이렇게도 정리될 수 있다.
손 끝에서 노는 감정과 두서없는 생각이 누군가의 말로 이렇게 잘 정리될 때,
나는 엄청 큰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촛불에서 멀어져야 할 날이 다가옵니다.
제 마음이 어떨지 아실까요...
말 안해도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거... 이거야 말로 연인들마저 싸우게 만드는 이유 1순위라죠... ^^
작년 한해동안 촛불 열심히 들었습니다.
뭘 이만큼 열심히 해본적이 없었다 싶을만큼, 막 뛰어들고 내던져가면서요.
저는 많은 걸 바랬습니다.
처음엔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했지만,
저 개인의 마음에 품었던 목표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지요.
우리가 언제 한번 이루어보지 못했던, 사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피 보지 않고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혈 혁명. 아니, 어쩌면 혁명이라는 말 조차 낡은 것으로 치부될, 인류의 진보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꿈꿨습니다.
(장르로 치면 거의 판타지죠... ㅋ)
그래서 6월 10일날, 인파에 낑겨가지고 뒷사람이 든 촛불에 머리카락 타면서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꿈을 꾸는 대가로 제가 본 것, 겪은 것들은 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상처'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즉각 떠오르는 이 생각들이 만들어지기 까지,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저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2008년을 너무나 소중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요.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사람들.
행동함으로써 저에게 배울 것을 만들어주시는 분들.
꾹꾹 참고 있던 눈물도 그 앞에서는 맘껏 터뜨릴 수 있게
온 마음을 다 열고 안아주시는 분들.
어디서 뭘 하며 사시다가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할 뿐인... 그런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디서 뭘 하고 있든, 이분들과의 대화와 경험이 제 행동과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거라는 직감이 듭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 어느때보다도 나약해져 있습니다.
촛불 든 이유가 무엇이냐, 고 누가 묻는다면 제가 대답할
일차적인 목적들은 아직까지 모두 좌절되었거든요.
천사들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지만,
천사들을 만나기 위해 촛불 든건... 사실 아니었으니까요.
이제 잠시 촛불을 내려놓아야함을 받아들이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 현실 위에서, 이 나약한 인간이, 돈과 출세의 가치관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역사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외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점점, 직접행동의 광장에 나와서 우리가 겪는 수모는 모질어집니다.
매일, '촛불 들면서 가장 치욕적이었던 날'의 날짜가 경신됩니다.
'이제 나도 많이 독해졌구나. 이정도로는 눈물도 나지 않으니 말이야' 하고 생각한 다음날이면
또 다른 믿을 수 없는 일이 나를 압도해, 그간 쌓아온 '독한 이성'을 허물어버립니다.
앞으로 더 심해질텐데. 님들은 계속 이 괴로움을 겪어야 할텐데
나는 거기서 한발 물러나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요 며칠간은 생각없이 뛰어들기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까는 시민을 납치해가는 버스 앞을 막고섰는데, 아랑곳 않고 코앞까지 다가오는 버스 앞유리의 운전석을 보며
그래 그대로 지나가라 하는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버스 진로 방해한다고 경찰이 떠다밀어 넘어져서는,
위로 겹쳐넘어지는 사람들의 무게에 잠시 압사의 공포를 느꼈다가,
그도 나쁘지 않지, 란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아마 오늘처럼
내일 밤에도 저는 멀쩡히 살아있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쯤 부터 '마음의 촛불은 항상 타고 있을거다!'란 말을 스스로 경멸하며
제 인생의 한 줄기를 따라가기 시작할겁니다.
병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한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얼마나 멀어지게 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나의 인생에 급 반전을 불러올지...
지금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용산학살 전날 밤
용산 현장 길 건너편에 깐돌아비님하고 서있다가
건물 꼭대기의 깨진 창문가에 나와서 담배 피우시던 철거민 예닐곱분한테
팔로 큰 하트모양을 만들어 응원을 했던 것이,
고작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
또다시 그 자리에 선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과연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지,
'우린 승리해야 한다' 라고 말할 순 있어도,
'우린 승리할 것이다!' 라고 큰소리 쳐도 되는건지,
그 말이 나를 아프게 하고
남을 아프게 하지 않을지
한없이 조심스러워지고
아파지는 날입니다.
거의 모든 순간이 기억나는 이 특별한 한 해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고보니 저에게 필요한건 그보다는 그냥 넋두리였나보네요.
이런 영양가 없는 푸념을 해놓고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해지는 걸 보니까요... ㅎㅎㅎ
(아, 이얘기는 꼭 해야지.
저 이래놓고 다음날 또 나와도 면박주지 마세요~! ^^)
HAVANA
Year of Agriculture (1965)
Fidel:
I remember many things in this hour—how I met you in the house of María Antonia, and how you proposed that I come with you, and all the strain of the preparations.
One day they passed by to ask who would be advised in case of the death, and the real possibility of it struck all of us. Later we knew that it was true, that in a revolution one triumphs or dies (if it be a true one). Many comrades were left along the road to victory.
Today everything has a less dramatic tone, for we are more mature, but the event is repeating itself. I feel that I have fulfilled the part of my duty that bound me to the Cuban Revolution on its territory, and I take my farewell of you, my comrades and your people who are now my people.
I formally renounce my posts in the leadership of the Party, my post as Minister, my rank as Major, my status as a Cuban citizen. Nothing legal binds me to Cuba, only ties of another kind that cannot be broken, as can official appointments. Looking back over my past life, I believe that I have worked with sufficient faithfulness and dedication in order to consolidate the revolutionary triumph. My only deficiency of any import!!!ance is not to have trusted you more from those first moments in the Sierra Maestra and in not having understood soon enough your qualities of leader and revolutionary.
I have lived through magnificent days and at your side I felt the pride of belonging to our people in the luminous and sad days of the Caribbean Crisis. Rarely has any statesman shone more brilliantly than you did in those days. I feel pride, too, in having followed you without hesitation, identifying myself with your way of thinking and seeing and of judging dangers and motives.
Other regions of the world claim the support of my modest efforts. I can do what is forbidden to you because of your responsibility to Cuba, and the time has come for us to separate.
Let it be known that I do it with a mixture of joy and sorrow: I am leaving here the purest of my hopes as a builder and the most loved among my beloved creatures, and I leave a people who accepted me as a son; this rends a part of my spirit. On new battlefields I will carry with me the faith that you inculcated in me, the revolutionary spirit of my people, the feeling of having fulfilled the most sacred of duties: to fight against imperialism wherever it may be; this comforts and heals any wound to a great extent.
I say once more that I free Cuba of any responsibility save that which stems from its example: that if the final hour comes upon me under other skies, my last thought will be for this people and especially for you, that I am thankful to you for your teachings and your example, and that I will try to be faithful up to the final consequences of my acts; that I have at all times been identified with the foreign policy of our Revolution, and I continue to be so; that wherever I may end up I will feel the responsibility of being a Cuban revolutionary, and I will act as one; that I leave nothing material to my children and my wife, and this does not grieve me: I am glad that it be so; that I ask nothing for them, since the State will give them sufficient to live and will educate them.
I would have many things to say to you and to our people, but I feel that they are unnecessary; words cannot express what I would want them to, and it isn’t worthwhile wasting more sheets of paper with my scribbling.
To victory forever. Patria o Muerte!
I embrace you with all my revolutionary ferv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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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의 죽음과 같은 일들, 또는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여러 일들... 심지어 사건/사고들... 이 모든 것들의 기본적인 의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한 국면에 이르면, 그런 반성이 무엇으로 귀결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텐데... 결국 정치란 그런 흐름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여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