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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정책개선을 위한 집회에 참석함.

실로 오랜만에 집회판에 참석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무려 다섯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울 국회의사당 앞 집회는 허무했다. 마침 두판이 벌어졌다. 한판은 빈민자활정책 개선을 위한 자활후견기관협회의 투쟁정리집회였고, 한판은 총파업 2일차를 맞고 있는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집회였다. 정말오랜만에 '류금신' 동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별로 좋아라 하지는 않지만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집회판에서의 문화공연은 언제나 그렇지만 투쟁을 좀더 활기차게 하는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집회의 보조역할일 뿐.. 솔직히 내가 참석했던 빈민정책 개선투쟁의 정리집회는 그냥 문화공연 관람을 위한 집회일 뿐이었다.

 

무려 다섯시간을 다시 달려 돌아오면서.. 무엇을 위한 투쟁과 무엇을 위한 집회에 내가 다녀왔는지 참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냥 류금신 동지의 힘찬 목소리를 듣고 힘내고 돌아와서 좋았다. 그저 그랬다.

 

그 여의도 거리에는 전선도 없었고. 그저 노래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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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 International歌 를 떠올리고 부름.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학생회관에서 같이 뒹굴던 동기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참교육 동아리를 하던 한 녀석은 전교조 교사가 되었고, 학보사에 일하던 한 녀석은 ngo 신문의 기자가 되었고, 회계학과 학생회장을 하던 한 녀석은 샐러리맨이 되었다. 그들과 추억을 마시고, 술을 마셨다. 못마시는 술이지만 '술 마시고 싶을 때 한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거라.'던 민중가요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치열했던 스무살을 떠올리며 열심히 마셨다.

문득 인터내셔널가의 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노래패로 활동했던 세영이 엄마의 도움을 받아 떠오르지 않는 인터내셔널가를 끝내 완성했다.  그땐 우리가 힘차게 이 노래를 부를땐 지금처럼 이렇게 취하지 않았었다. 비장했고, 치열했고,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한참 세월이 흘러 '인터내셔널'을 해리슨포드가 주연한 '에어포스원'이라는 헐리웃 영화에서 만났을때, 한참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자본의 첨단무기 헐리웃에서 이 노래를 만나게 되다니.. ㅜㅜ;

 

우리를 무장케했던 그노래 '인터내셔널'을 이젠 추억을 마시는 자리에 안주거리로 부르게 될지 몰랐다. 사실 우리는 그 술자리에서 인터내셔널 말고도 '혁명의 투혼으로..' ' 국가보안법 철폐가' '민중권력 쟁취가' ' 연대투쟁가' '총액 임금 철폐가' '꽃다지123' '전화카드 한장' ' 짤린손가락' '노동의 새벽' 등 주옥 같은 노래들을 안주거리로 삼았다. 게다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조직의 노래 '한총련 진군가'도 불러댔다.

 

시원했다.

가슴에 억누르고 살아왔던,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하면서 '노래방엔 왜 민중가요가 없는거야.'라고 투덜거리던 그때부터 쌓아왔던 욕구를 확 풀어버린 느낌이었다.

선배들은 민중가요는 집회판에서나 부르는 거지 술판에서 함부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한참 지나고 나서 그건 참 말도 안되는 쓰잘데기 없는 원칙이라는 걸 알았다.

 

비록 안주거리가 되어버린 민중가요지만 언젠가는 투쟁의 현장으로 들고 돌아갈 것이다. 함께 술 마셨던 우리 학생회관 옛 동지들은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삶에서 매일 매일 전선을 형성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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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여..(詩)

  동지여..

                                         - 김남주

 

  뜨거운 아랫도리 억센 주먹의 이 팔팔한 나이에
  동지여,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슬 묶여 쇠사슬 벽 속에 갇혀

  목청껏 노래하고
  힘껏 일하고
  내달리며 전진하고 기다려 역습하고
  피투성이로 싸워야 할 이 창창한 나이에
  쓰러지고 일어나면서 승리하고 패배하면서
  빵과 자유와 피의 맛을 보아야 할
  이 나이에 이 팔팔한 나이에 이 창창한 나이에

  서른다섯의 이 환장할 나이에
  긴 침묵으로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동지여.

 

 

 

아직도 내안에 살고 있는 전사 김남주님..

 

서른셋 팔팔한 나이에, 이 환장할 나이에

사슬 묶이지도 쇠사슬 벽속에 갇히지 않고도 긴 침묵으로 산다는 것은 더 괴로운 일입니다.

 

선언만 난무하는 시대에

부디 입으로만 혁명과 투쟁을 이야기하는 선언주의자가 되지 않기를..

매일같이 하루가 그냥 흘러가지 않고 치열한 전선이 형성되도록 희망하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떠들지나 말기를 자조하면서

긴 침묵으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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