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유시민. 나의 상관이 되다.

말 많았던 유시민의 입각.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보건복지부 예산으로 밥먹고 사는 나의 상관이 되었다.

 



예상했던대로 정치권에서 지랄을 떨고 난리 부르스다.

 

그가 노타이 차림으로 국회에 등원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인가보다.

 

유시민.. 그가 펴낸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지 않은 운동권이 어디 있었던가?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며 두번이나 감옥을 넘나들었던 운동권의 대선배.. 그가 100분토론 진행자로 tv에 등장했을 어눌한 경상도 사투리로 얼마나 날카로운 언어들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줘 감탄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브르조아 정치판에 기어들어갈 때 느꼈던 실망이 채 식기도 전에 이젠 노무현의 품에 안겨 오른팔이 되고자 한댄다. 

 

뭐 어떤가? 변절한 운동권 선배를 상관으로 모시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제발 딴나라 난리 부르스 적당히 떨어라. 흉하다.

누가 장관이 되면 어떠냐? 최소한 배고파 본 사람이 보건복지를 담당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기야 유시민도 배고픈 인생은 아니었지...

 

장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럼 기를 쓰고 장관할텐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년 1월 2일 밤의 반성

나쁜 아빠였다.

세영이한테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아무리 떼쓰고 칭얼거려도 그런 식으로 모른채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나쁜 남편이었다.

아이한테 화난 것을 아내한테 그렇게 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정말 못난 짓을 했다.

정말 화내야할 대상은 바로 '나'였다.

아이가 엄마 없인 절대 잠들지 않는 것은 결국 '나'의 문제였다.

그런데도 난 아들에게, 아내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자식들에게 다정스럽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당신 보다 한참 더 키가 커 버리고, 당신이 떠나고 나서야 알았던 아버지의 사랑을..

당신 처럼 가슴 속에 담아두지만 않고 아들녀석에게 만큼은 어려서 부터 다정한 아빠를 느끼게 해 주겠다고..

그렇게 결심했었는데.. 결국 난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 아버지와 나 -

 

                                                - 신해철 -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 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나르는 새처럼 살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 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 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총방문자수 1000..

무심히 블로그를 열었는데 총방문자 수가 1000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 이렇게 작은 허접한 글과 잡념들에 관심을 가져 주고 있단 말인가?

진보넷 블로거의 특성을 모른채 살림을 차렸는데.. 여긴 쓰는 글들이 죄다 공개되더군.. 허걱

 

가끔은 혼자 쓰잘대기 없이 떠들고.. 의미없는 글들을 배설해 놓고 싶다가도 방문 숫자를 보면 부담되기도 한다.

 

그래도 여긴 내가 무한히 자유로운 공간이고.. 별 눈치없이 할말 할 수 있는 공간이다.

 

1000을 넘어서면서 글이 좀 의미있고 책임감 있고 읽을 만한 꺼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지만.. 꼭 의미있고 싶진 않다.

 

나에게만 이름이 되고 흔적이되고 채찍이되는 글이면 족하다..

 

 

1,000의 흔적들에게 감사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