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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TV연예프로 X맨에 등장하다.

사회주의 사상의 아버지 칼 맑스(Karl Marx)가 TV 연예프로 엑스맨에 등장했다.

EXR 이나 E'ngene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던 스포츠 의류업계에  Karl Max 라는 오묘한 이름의 브랜드가 생겼나 보다. 연예인들의 협찬의상으로 X맨에 등장했다.  처음에 깜짝 놀랬다. 맑스의 이름이 상표가 된줄 알고... 가만히 쳐다보니 알파벳 철자가 하나 빠져있더군..^^

 

체게바라의 이미지가 담배광고에 등장하자 유족들이 격분해서 소송을 걸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런 헷갈리는 상표가 등장해서 자본주의의 꽃인 상업적 TV연예프로그램 출연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지하에 계신 맑스의 기분이 어떨까?

 

운동도 상품이되고 이념도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팔아먹는 세상이 되어야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의 끝이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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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맹세

밥먹다가 우연히 TV를 봤는데 유시민 인사 청문회가 중계되고 있다. 누군가가 유시민이 예전에 했던 발언중에서 꼬투리를 잡아 씹어대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아마도 유시민이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왜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것을 왜하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나 보다. 그것이 꼬투리가 되어서 열심히 씹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 나라의 장관이 되려는 사람이 국민의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느냐..'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 어쩌구 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 과연 내가 그걸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해방을 위해 먼저 산화해 가신 선배 열사들 앞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맹세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민중의례'의 맹세는 이렇다. 나는 이 맹세를 몇십년간 강요받아왔던 국기에 대한 맹세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부르던 사천만 민중의 애국가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유시민의 말처럼 야구경기보러 갔다가 운동장에서 울리는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들으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도대체 몇이나 될까?

 

유시민은 신성한 국민의례를 남용하지말자는 뜻이 오해된것 같다고 해명했다.

진심이었을까?

 

어쩌면 나처럼 자랑스런 이 대한민국에... 조국과 민족에... 충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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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증후군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즐겁지 않다. 흔히 주부들이 명절을 앞두고 몸살이 나는 것처럼..

명절이 다가오면 왠지 우울해진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별 애정이 없는 가족들과 모여서 가부장제의 폐악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 철이들고 부터는 체질에 영 맞지 않아진게 제일 큰 이유인것 같다. 우리 집안의 며느리들(아내를 포함해서..)은 모두 지랄같은 가부장제의 희생양들이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적당히 젖어서 방관한 우리 사촌형제들과 나는 모두 가해자이며, 공범이다. 어느순간 내가 형수님들과 아내에게 명절에 행하고 있는 짓들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부터는 북적거리면서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고 하는 일들이 다 싫어졌다.

 

분담을 해야 한다. 모여서 쓸데없이 뒹굴고 기껏 고스톱이나 치고 이런 짓말고..

같이 먹고, 즐기기 위함인데 노동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백년이 가깝게 남자가 부엌드나드는 꼴을 고추떨어진다고 쌍스럽게 생각해온 우리 집안의 어른들은 이런 논리에 이빨도 안들어가니.. 적당히 눈치껏 죽어지내다 오는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나이가 삼촌뻘인 큰 형님 부터 시작해서 형제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이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형제들만 모이는 모임에서는 형수님들이 절대 음식 준비하지 않도록 무조건 외식하는 풍토이다. 그러고보면 어른들이 빨리 가셔야 이 불공평하면서 살인적인 명절의 가사노동이 끝날지 모르겠다.

 

나는 전투적인 패미니스트도 아니고, philogyny(여성 숭배주의)도 아니다.

그냥 모든 사람이 땀흘린 만큼 행복한 평등사회가 합리적이다는 생각이다.

 

명절의 가사노동이 행복하지 않은 이 땅의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노동을 분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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