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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주신 소중한 것.

 


 

중학교 졸업할 때 쯤 영어선생님이 셍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란 책과 함께 써 준 메모이다. 나는 다른 과목은 만점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그냥 한 편이지만 영어과목은 거의 바닥을 기었다. 당시 초임 교사였던 영어선생님은 아마 그 원인이 자신한테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주 상담을 하자고 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지나가고 인생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인 까까머리 중학생과 이제 막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란 직업을 시작했던 초임 선생님은 그렇게 정말 많은 대화를 했고 서로 친구처럼 지냈다.

 

고백하건데 난 선생님이 주신 메세지 세개를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바라셨던 것 처럼 내가 보는 세상 속에는 아름답고, 선한 것들만 있지 않았다. 결코 삶이 여유롭고 든든하지만은 않았고 치열하기만 했다. 그렇게 꿈꾸는 세상은  현실과 많이 달랐다.

 

나에게 '껍데기는 가라'는 詩를 가르쳐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게해준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선생님의 성함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해 둔다.

 

하미숙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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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원을 가다.


 

녹야원.. 조계종 재단인 나의 모교는 학교 잔디광장을 그렇게 불렀다.

밤새 막걸리를 마시며 뒹굴었던 곳이고, 공강시간이면 늘 누워서 책을 읽던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곳이 나에게 소중한 것은 학교의 거의 모든 집회가 열렸던 곳이며..

뜨거웠던 열정과 치열한 고민을 쏟아부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92년 대선 당시 백기완 선생님께서 쉰 목소리 높여가며 연설하셨던 곳, 정태춘 동지가 육두문자 섞어가며 세상을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던 곳. 캠퍼스 학생회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학생총회를 성사시켜 내었던 곳, 수많은 노래패들이 직접 무대를 세워 공연을 만들어내었던 곳, 혈서와 꽃병으로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수많은 열사들의 추모식이 열렸던 곳이다.

 

이 곳은 단순히 학교 잔디광장이기 보다 나에게는 투쟁의 장이었고, 학우대중을 조직하는 선동의 장이었고, 민중문화가 살아뛰는 축제의 장이었다. 이곳에 쏟아부은 땀방울이 얼마이고 남몰래 흘렸던 눈물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곳에..

나는 오늘 아들녀석 데리고 축구하러 왔다.

 

이제는 집회를 열어도 앉을 만한 공간도 잘 없도록 정자까지 만들어졌다.

투쟁이 사라진 캠퍼스에서 이곳에 모일만한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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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사진을 문득 발견함.

 


 

친척 집에 놀러갔다가 나의 어렸을 적 사진이라며 꺼내 주신 것을 받았다. 정말 좋은 선물이었다. 기억으로는 아마 초등 3학년쯤(그땐 국민학교였지..)

 난생 처음으로 서울에 갔었고, 저 사진은 경복궁 근처 인 것으로 생각난다. 남쪽에서만 살던 나는 그 당시에 눈이 쌓이는 걸 처음 봤고.. 무진장 뛰어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땐 솜을 누벼 만든 잠바가 유행이었나 보다. 두살 위 지만 키가 나보다 작은 형과 나는 모두 방수도 안되고 물 묻으면 스며드는 솜 잠바를 입고 있다. 형은 그나마 벙어리 장갑도 한 짝 잃어버리고 맨 손이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그땐 운동화도 가죽이 아니고 천이라서 발이 꽁꽁 얼었었다.

 

생각해보면.. 겁나는 게 하나도 없고, 모든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유년시절이었다.

살다보면... 가끔 아주 어릴적으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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