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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살생부가 되는 현실

국가 예산을 집행한다는 것은 참 짜증스러운 일이다. 작년에 갑자기 추경예산이 편성되면서 불리기 시작했던 조직의 규모를 올해 예산이 제자리로 복귀되면서 인원을 대폭 잘라내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스텝들이 고민 끝에 몇가지 원칙을 정하고 개별 인터뷰를 통해 평점을 매겨서 잘라낼 인원을 골라내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정말 고역이다. 어떻게 한사람 당 20분 남짓의 인터뷰로 그 사람의 생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자리를 잘라낼 수 있단 말인가?

120여명과 인터뷰를 하고 그중 20여명은 탈락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우리 조직이 아니면 어디가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처지이다. 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진단 말인가? 빈민운동 영역에서조차 실업을 양산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아주 여러번의 회의를 통해 스텝들이 6가지 원칙을 정했다.

1. 나이 -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니 우리가 어쩔 수 없다.

2. 건강상태 - 일할 수 없는 정도의 건강상태를 지닌 분은 몇 없다.

3. 소득수준 -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하고 벌지 못하면 막막하다.

4. 사업기여도 - 스텝들의 잘못으로 기여도가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5. 성실성 및 근무태도 - 이걸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정말 힘들다.

6. 담당팀장의 평가 - 제일 맘에 안드는 항목이다. 나부터 제대로 하고 남을 평가하자.

 

눈치를 보니 다른 스텝들도 힘겨워하고 있다. 자기 식구를 잘라내는 것이 회의에서 정한 원칙으로 집행하기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우리마저 이들을 잘라낸다면 근로능력도 없고 기술력도 없으면서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굶어야 되는 저 사람들을 도대체 누가 감싸안을 것인가?

 

이건 아마 "복지"와 "생산"에서 줄타기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활후견기관의 고민일 것이다.

아~~ 사람을 너무 슬프고도 힘빠지게 하는 너무나도 가벼운 복지제도와 지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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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갑자기 이틀만에 우리가 만든 청국장 가루가 26통이 팔렸다.

 



가마솥에 콩을 삶아 깨끗한 볏짚을 깔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2~3일 정도 띄우면 끈적끈적한 진이 나오기 시작하고 발효되어 청국장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햇볕에 잘 말려 가루를 내어 팔고 있다. 아침 공복에 요구르트나 우유에 한 스푼씩 타서 먹으면 변비에 효과가 있고 다이어트에도 좋고 암도 예방해 준다고 한다. 정식으로 식품 제조 허가가 나오면 이름도 지어서 라벨을 붙여 본격적으로 홍보할 생각이고, 그동안은 제품의 질을 높이고 생산력을 향상하는 데 주력했다. 지인을 통해 조금씩 주문받아 팔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갑자기 대량으로 팔리기 시작한다. 이틀만에 26통이면 우리가 이걸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했던 몇달 전의 한달 매출과 맞먹는다.

 

내가 게으른 탓에 아직까지 허가를 내지 못했고, 본격적인 홍보를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꽤 좋은 성과다. 우리팀의 주력 상품을 된장으로 생각하고 부수적으로 두부와 함께 생산을 시작한 아이템인데 반응이 좋아 뿌듯하다. 더구나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의 재구매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더욱 발전 가능성이 보인다. 

 

그런데.. 작은 성과와 가능성에 내가 이렇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팀원들은 알고 있을까?

 

굳이 힘들 줄 알면서도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콩을 삶아내고 아랫목 온도를 세심하게 신경써서 깨끗한 짚과 이불을 덮어 발효시키고 건조기계에 넣지 않고 하우스 안에서 태양의 힘으로만 건조시켜야 한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나에 비해 '전통방식'만이 최고는 아니라고 좀 쉬운길로 가자고 했던 우리 팀원들에게 결국 전기 건조기와 분쇄기를 양보했다. 그런데 팀원들은 분쇄기는 쓰지만 결국 말리는 것은 전기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고맙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것과 전기로 구워낸 것은 아무래도 효능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신뢰를 보여준 팀원들이 너무 고맙다.

 

어쩌면 계속해서 이렇게 청국장 가루가 반응이 좋으면 우리의 주력상품이 된장에서 청국장 가루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다음달 부터 우리는 다시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콩을 삶아 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더디지만 발효기 대신에 아랫목에서 청국장을 띄우고 햇볕에 청국장을 말리는 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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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딜레마

우리가 하는 일의 목표 중 하나는 자활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자활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2인 이상의 수급자 또는 저소득층이 상호 협력하여, 조합 또는 공동 사업자의 형태로 탈빈곤을 위한 자활사업을 운영하는 업체를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그렇듯이 이놈의 동업이나 조합은 늘 말이 많다. 공동체적 삶에 대한 마인드가 준비되지 않은 분들이 함께 생산하고 함께 나누고 협동하는 자활공동체를 꾸려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우리 조직에서 5년간 힘겹게 기술과 경험을 쌓아 출범시킨 자활공동체는 모두 세개이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공중 분해되었고, 두개는 구성원들간의 갈등으로 위태위태하다.

 

딜레마다.

 

 



완벽하지 않지만 작은 사회주의의 실험이라고 생각했던 공동체가 자본의 논리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 지켜보고 있는 과정이다. 각자의 생계유지와 이윤 창출을 위해 모이신 분들에게 생산, 나눔, 협동의 논리를 자본의 경쟁논리와 어떻게 접목시켜서 현장에서 실현되도록 도와드려야 할까? 스스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못했으면서 스텝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나눔의 삶을 강요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뭐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혼란스럽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동체의 형태로 자본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과, 기술과 보호된 시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정정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울타리를 걷어내고  치열한 자본의 경쟁시장에서 고스란히 그들만 남겨두어야 한다.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는 경쟁성이 떨어지는 '자활공동체'라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잘하고 있는 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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