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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자 학번들과의 회식

어쩌다가 이런 술자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원래는 세영이 엄마가 속해있던 노래패 선,후배들의 망면회였는데..

울산까지 달려갔더니 전설처럼 이름만 들었던 87학번 의대 선배와 이젠 친구처럼 느껴지는 쌍팔학번 선배 두사람만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괜히 왔구나하는 후회가 밀려들면서 한구석에서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는데.. 울산 근방에 사는 87부터 94까지 선배, 후배들이 점점 모여들더니 예약한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자리가 넘쳐버렸다.



노래패 망년회라는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고.. 혼란과 해체의 80년대 말과 90년대초를 학생운동에 복무했던 빨갱이들의 술자리가 되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또 끝나버린 잔치판에 대해서 얘기하고, 정말 전설이 되어버린 투쟁과, 빈곤하기 짝이 없어진 사상에 대해 얘기했다. 술자리가 길어지고... 1학년 때는 정말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87, 88 선배들의 어깨가 왜 그렇게 초라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병원의 과장으로, 학원의 원장으로, 중소기업의 직장인으로 변신해서는 생각처럼 진전되지 않았던 사회 변혁에 대해 얘기하고, 생활이 되지 못한 운동에 대해 슬퍼하고 또 그런다.

 

94학번에서 대가 끊어져버린 우리 캠퍼스 좌파 운동의 역사는 그렇게 전설이 되어서 술자리에나 가면 들을 수 있는 안주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구속되고 수배되었던 많은 선배들은 지금 또 각자의 영역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움츠리고 있을 것이다. 

 

지하에서 학생운동의 조직과 학습의 기풍을 다지기 시작했다던, 전설처럼 그 이름만 듣고 살았던 선배의 취중 연설은 공허했다. 서른셋 나의 일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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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豆)을 생각함.

 콩을 가지고 일을 하기 시작한지 10개월이 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콩식품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팀을 꾸려 사람들을 동참시켰다. 그동안 두부도 만들고, 청국장도 만들고, 청국장을 말려서 분말가루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요즘은 장(醬) 담그는 일을 준비하며 메주를 쑤고 있다. 모두 콩으로 하는 일들이다. 빼빼하게 작업에는 동참하지 않고 늘 성과만을 강요해오던 내가 그놈의 콩 때문에 요즘 팀원들에게 할말을 잃어버렸다.

 

 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의 결과물들 두부, 청국장, 메주의 평가만을 겁없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도시에서 자라고 생활했던 나에게 콩이란 농작물은 생소한 것이었고,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밭에서 자라나는 콩을 제대로 볼 기회를 가질 정도였다. 그런 나를 믿고, 내가 세운 사업계획을 믿고 기꺼이 장 담그는 사업을 해보자고 동참해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이것, 저것 장과 메주에 대한 책들을 참 많이도 읽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그것들의 원료가 되는 콩에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수확한 콩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작업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입하게된 콩이 말썽을 일으켰다. 작업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충분히 불리고 넉넉하게 삶았는데도 콩이 무르지 않고 찰기가 없단다. 낭패다. 어떻게해야할지 막막하다.  책을 뒤지고 이곳저곳 자문을 구해봐도 방법을 모르겠다. 콩이 문제인 것 같은데.. 아무리 쳐다보고 뒤적여봐도 콩의 문제를 모르겠다. 결국 콩의 생산자와 함께 삶는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그 콩 농사를 지었던 사람은 자기 콩에 대해서는 무조건 자신있단다.. 그런데 나는 우리 작업에 대해서 무조건 자신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우리가 하는 방법이 맞는지에 대한 검증을 하지 못했기도 하지만 아직 콩을 씻어서 불리고 삶는 것이 나의 생활이나 삶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콩은 일년내내 땅의 기운을 빨아 깍지속에 열매를 맺고 영양분을 똘똘뭉쳐 알갱이로 만들어낸다. 다시 그 땅의 기운을 녹여서 식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콩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내내 지켜보고 이해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깊은 맛을 우려내는 장(醬)을 담그는 장인들은 그렇게 땅이 만들어서 뱉어내는 콩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영양분을 발효시켜 빠짐없이 녹여내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장을 담가서 파는 게 돈이 될 것이라는 전망만 가지고 겁없이 일을 시작하게 되다니.. 후회막심이다.

 

 이렇게 자연의 섭리를 섣불리 상품화 시키려는 발칙한 시도에 대해서 콩은 뭔가를 가르쳐주려는 것이 아닐까하는 만화적인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콩을 불리고 삶는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할 것이다. 콩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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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수 없는 전망의 가벼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보람으로 일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었다. 학교 졸업하고 먹고사느라 운동에서 한참 멀어져 있다가, 노조활동으로 회사를 짤리면서 그나마 제대로된 운동판에 복귀해야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일조한다는 신념이 적은 보수로도 지금까지 버텨온 힘이었다. 유행가의 제목처럼 벌써 1년이 지나고.. 정말 숨가쁘게 달려오다가 문득 뒤로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남겨진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서류더미와 귀찮게 느껴지는 잡무들.. 함께 사회를 바꿔보자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1년을 마무리하고 다음해를 준비하고 있는 요즘, 도대체 무얼위해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꾸만 나늘 괴롭힌다.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빈민운동'인지 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도 없고, 치열함도 없다. 그저 기계적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서류와 행정업무들.. 그리고 참을수 없는 전망의 가벼움만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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