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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겁다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많이 망설였는데 하기로 결정했다.

장편작업도 아니고, 한 두달(아마도 두달이 좀 넘게 걸리지 싶지만) 바짝 하면 되는 일인데

맘에 걸리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크게 걸리는 건 역시 아이문제다.

아이에게 나중에까지 미안해지는 건 아닐까 싶은데,

현재의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 저것 걸리는 상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니 마음에 조바심이 가득해진다.

담주 월요일이나 늦어도 화요일 오전까지는 일차 구성안이 대략적으로 나와줘야 하는데

아직 문서자료도 다 찾아내지 못했다.

문서자료 찾고, 다 읽어보고 정리하고 해야 하는데

오늘도 내일도 오후에는 나가야 하고

(오늘은 동생한테 프린터를 얻으러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고,

내일은 시댁에서 저녁을 먹으러 오라신다.)

모레인 일요일에는 아누아르 동지 환송회가 있어서 남편이 거기 가봐야 한다.

그러면 연서를 내가 온전히 봐야 하니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랜드는 곧 침탈당할 것 같다고, 연대 오라고 문자 메시지가 날아오고 있고...

 

그 와중에 남편이 이랜드엘 다녀올까 하고 말을 꺼낸다.

아마도 그 시간에는 아이가 계속 자니까 자기는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꺼낸 말이었을꺼다.

근데 그 얘길 듣고 나는 짜증이 확 올라왔고 남편에게 그걸 고스란히 쏟아냈다.

 

'구성안 잡아야 하는데,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당신이 거길 다녀오면 아침에 일찍 온다고 해도 자야 할 것 아니냐,

그럼 내가 아이를 계속 봐야 하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뭐 이런 얘기를 짜증을 잔뜩 섞어가며 해댔다.

 

머쓱해하던 남편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그렇지 않아도 무거웠던 마음이 훨씬 더 많이 무거워졌다.

사실 나도 가고 싶었단 말이다.

지금 이랜드 투쟁은 한통계약직 동지들 투쟁을 생각나게 하는, 마음이 짠한 투쟁이다.

킴스클럽 강남점은 결혼 전에 내가 살았던 동네에 있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다녔던 곳이다.

뭐 그거랑 상관있는 건 아니지만 어쨋든 가보고 싶은 마음,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가득한 상황이지만

도저히 갈 수 없는 일이라 포기하고 있었던 거다.

 

일도 일이지만, 아이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아졌다는 게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분이 안좋았던 시점에서 남편이 혼자 갈까 하는 얘기를 하니까 화가 났던 것 같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었달까.

난 아이 때문에 당연하게 포기하고 있는 일을 남편은 나만큼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얼마전에도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다.

그때도 며칠을 연달아서 남편이 집회를 나가는데 내가 화를 낸 적이 있다.

 

"나두 집회 가고 싶고, 갈 수 있거든? 왜 자기만 가야 되는데?"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여전히 폭력적으로 화를 냈었다.

화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내용에서는 그렇게 부당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단순히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만이 아니라

나는 고스란히 포기하는 걸 남편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느낀거였던 거 같다.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한사람만으로 아이는 돌볼 수 있으니까 한 사람은 나가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게 나은 게 아닐까?

그리고 나보다는 남편이 나가는게 좀 더 효율적이니까 그러라고 할 껄 그랬나 싶다.

(여기서 효율적이라는 건 내가 나가려면 유축도 해야 하고, 아이에게 짜논 젖을 먹여야 하고, 운전도 못하니 까 이동도 불편하고 뭐 그런거다)

그리고 남편도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침탈을 앞두고 있는 투쟁을 그냥 두고보기가 마음이 안좋았을꺼다.

거기다가 화를 낸 내가 놀부심보(?)였던 걸까?

 

내가 사랑했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신지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우리 준이 잘 키우고 싶어. 근데 그걸로 내 인생을 다 보내고 싶지는 않아"

 

지금 나는 이것 저것이 뒤섞여서 아주 복잡한 마음이다.

시작한 일 때문에 부담도 되고,

아이에게도 아주 미안하고(지금 아이는 부모 손길이 제일 많이 필요한 때인데 내 모든 시간을 온전하게 아이에게 주지 못해서인데,  일을 안해도 그건 불가능 한 일이지 싶다)

육아에 관해서 남편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되기도 하고(글쎄, 남편도 이 얘길 들으면 억울해 할꺼다)

아무튼 그렇다.

 

갓난애가 딸린 여자가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불편해지고

그걸 불편해하는 내 자신이 또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것...

 

아, 일해야 한다고 남편에게 짜증을 내 놓고 뭐하는 짓이냐.

 

근데 포스팅을 하다가 생각이 났는데 오늘이 남편 생일이다.

(까먹고 있었던 건 절대 아니다. 어제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저녁에 미역국에 넣을 고기를 사러 간다는 걸 깜빡했을 뿐이다.)

 

아까 짜증을 내면서 얘기 한 건 정말 잘못한 짓이다.

혹시 미역국에 대신 넣을 거리가 없을지 냉동실을 뒤져봐야겠다.

 

혹시 이밤에 예정대로 침탈이 있다면, 이랜드 동지들도 연대하러 간 동지들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아침을 맞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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