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자식들 때문에 돌아가셨어. 전쟁이 우리 집안을 망쳐버렸지. 이라크 사람들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아."
할머니는 지금도 '사람이 무섭다'. 전쟁 속에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인가. 이런 할머니가 이라크 전쟁 소식을 들었을 때 이라크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가겠구나 싶었다. 할머니에게 전쟁은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 끌려간 순간부터 인간이 아닌 것. 전쟁은 할머니에게 구체적인 공포', 그 자체다.
"그런데 이런 전쟁을 하러 우리 손주들을 보낸다잖아. 그것도 돈 때문에. 이걸 못 막으면 내가 무슨 염치로 일본 정부한테 계속 사과하라고 말할 수 있겠어. 일본이 우리한테 했던 일을 이번엔 우리가 이라크 사람들한테 하려고 하는데. 그러니 이건 꼭 막아야해."
(미디어 참세상 7월 29일 기사중에서 발췌, 기자 평화유랑단 김보리)
원문 :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0757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자신의 위치를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잃어버리는것.
자신의 시간을, 공간을 ,생을 자신의 손에서 강탈당하는것. 그것이 전쟁이다.
“ 이라크 파병, 우리를 밟고 가라. ”
-. 동선 : 부산(24일 출발) → 경산, 대구(25일) → 고령, 합천(26일) → 광주(27일) → 익산(28일) → 대전, 천안(29일) → 평택, 매향리(30일) → 서울 (31일 ~ 2일)
-. 기간: 7월 24일 ~ 8월 2일
▶31일 서울 <전쟁피해자와 함께하는 평화의 날>
10시 보라매공원 기자회견 ->대림역 ->12시 열린우리당 ->2시 국회 ->공덕 ->4시신촌->6시 광화문
담당자 :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최근호(018-385-0178)
국적포기필요없는나라만들기모임 변상철(016-9288-9464)
▶8월 1일 - 2일 서울
청와대 앞 48시간 릴레이 1인 시위
담당자 : 국적포기필요없는나라만들기모임 변상철(016-9288-9464)
-. 서울에서의 집회: 7월 31일 ~ 8월 2일
-. 행사 끝: 8월 3일, 파병군 수송기 이륙지
-. 중심 참가자: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피해자
-. 행사진행방식: 릴레이식으로 전쟁피해상징 거점도시마다 도보행진 후 촛불집회에 합류 →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본부 주최 촛불집회에서 <전쟁피해자와 함께 하는 이라크파병반대 전국도보행진>의 취지와 이라크 파병반대 전쟁피해자 발언, 전쟁피해실태 사진전과 홍보물 전시
-. 하루 도보구간 길이: 약 20km~40km(피해자들은 건강상태에 따라 차량과 휠체어를 이용할 수도 있음)
박근혜 패러디 사건을 한겨레 그림판에서 박근혜 패러디 사건을 표현한것을 보고 내가 서있었던 지점은 그림속의 보수 였다. 박근혜 패러디가 반여성적이라고 생각한 순간, 한나라 당과 동일한 입장으로 단순하게 묶여 버렸던거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체 넘어가야했다.
"피곤하게 산다" 눈총을 받을까 두려워 발화하려는 노력은 자체 검열 되었다. 또다시.
오늘 다시 한겨레에 정희진씨 칼럼을 보고, 기뻤고,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반성한다.
7/16일자 한겨레 그림판 장봉군
몇년 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의 ‘미녀’응원단에 열광하는 남한 남성들을 보면서 난 정신 분열 상태였다. 반북 이데올로기가 극복되기를 열망하지만, 그 방법이 남성 주체의 시선과 욕망을 위한 여성의 몸이라니…. 그런 식으로라면, ‘못생긴’ 북한 사람이 오면 반북 정서는 더 악화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는 억압 이념 중 하나는 외모주의일 것이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영화처럼, 간첩이나 페미니스트도 ‘예쁘면’ 용서가 되는 사회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자면서 ‘진보’적이기는 매우 어렵다. 아마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지방’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존의 진보 개념이 이들의 고통을 사소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비정치화, 비가시화 해왔기 때문이다.
며칠 전 ‘청와대 패러디’ 사건에서도 난 몹시 괴로웠다. 행정 수도 이전에 찬성하면서도, 그 패러디에 반대하는 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외로웠다. 이 사건에 관한 나의 어떠한 의견도 여성주의적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다. 사건을 비판하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요, 침묵하면 현 정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전 제주도 도지사의 성추행 사건도, 성별 권력의 문제는 사라지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싸움이 되었던 것처럼, 남성의 여성폭력은 피해 여성이 속한 남성 공동체에 대한 공격으로 의미화된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가 남성과 남성의 갈등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의미 있는 정치적 전선은 좌/우, 진보/보수 등 남성들 간의 투쟁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나의 정치적 입장은 그러한 전선 외부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남성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원, 활용된다.
사실, 그 패러디는 패러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패러디는 기존 언어의 존재를 전제하는데, 그 언어를 남녀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패러디 효과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 사건은 남성에게는 패러디지만, 여성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남성들은 여성들이 이 사건에 왜 그토록 분노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성애자 남성에게 섹슈얼리티는 사적인 것이지만, 여성이나 동성애자에게 성은 너무나 정치적인 것이다. 남성도 여성도 성적인 존재지만, 여성에게 성적인 이미지가 부과되면 남성의 경우와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이 되면, 가장 낮은 계급의 남성이라도 모든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남성 섹슈얼리티가 여성에게 그토록 위협적인 권력인 이유다. 이 패러디의 정치학은 20여명을 살해했다는 연쇄 살인 사건과 연속선상에 있다. 이 사건의 용의자도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살해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회 문제가 한 가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믿을 때, 단 하나의 정치적 올바름만을 주장하게 된다. 원래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란 말 자체가,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권 시절, 올바르게 살기 힘들기 때문에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약간 비웃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다. 근대의 본질이 ‘실제에 대한 열정’이라면, 결국 현실은 이미 ‘포스트모던’하게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현실은 언어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복잡한 이유들로 매 순간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유일한 올바름이 아니라 다원적인 올바름이 요구된다. 남성과 다른 올바름의 판단 기준을 가진 여성의 입장과 이해가 정치적인 것으로 인정될 때, 실천은 풍요로워지고 진보는 폭넓어진다. 이번 패러디 사건처럼, 남성은 피해여성이 소속한 집단에 따라 혹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따라 투쟁 여부를 결정하지만, 여성은 피해 여성이 ‘강금실’이든 ‘박근혜’이든, ‘성매매 피해’ 여성이든 ‘일반’ 여성이든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여성학 강사
물어보는 이가 많아서. 포스트 하나를 할애 하기로..^^;;
-ㅗ- 부모성 같이 쓰기에 동참할까 생각했는데.
부모 둘이 성이 같아서. 김김**되는 것이었다.
아싸리 내가 지은 이름이 낫겠다 싶어.
지었다.
達乾이라고.
달건... 건달을 거꾸로 한건데, 하늘에 닿다(이치에 닿다)라는 뜻으로 한자를 지어봤다.
거창해서 말은 안했고, 속으로만..
역시 낯부끄러워서 영어로 쓰고 다녔는데.
이렇게.
dalgun.
그런데 인간들이 달군이라 읽어서
나는 달군이 되기로 했다. 부르기 쉬워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람들이 불러주는 방식대로 하는 것도 좋겠다 싶기도 했고, 나도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되기로 했다.
그래서 달군은 내가 만든 이름이기도 하고, 남들이 만든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그래서 이름이 달라졌으니 뜻도 바꾸기로 했다.
아 맛이 참 '달군' ^^
이제 짐작하겠지만. 그래서 달, 아마도 달콤할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이름을 지었다.
신산한 인생사^^;;에 달치근한 일쯤 몇개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
쓰디쓴 세상 달콤하게 바꿔보자는 뜻에서.
개인적으로 단맛보다는 쓴맛이 좋지만.
쓴맛을 좋아하는 이유는 쓴맛뒤에 슬그머니 올라오는 침이 달기 때문이니까.
이래저래 달콤해져 보겠다는 의지.
---------------------------------------------------------------------------
알고 보니,
실제로 건달의 한자는 乾達 이더라. 신기하게.
(어원)건달(乾達) : 돈은 없으면서 아무 일도 않고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불교 용어인 건달바(乾達婆)에서 온 말이다. 건달바는 수미산(須彌山) 남쪽의 금강굴(金剛窟)에서 살며 제석천(帝釋天)의 음악을 맡아 본다는 신으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香)만 먹고 허공을 날아 다닌다고 한다. 이 건달바는 인도에서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악사(樂士)나 배우를 가리키기도 하며,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나서 한동안은 같은 뜻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노래나 배우(광대)노릇을 하는 사람을 천시했던 우리 나라의 풍습에 의해 건달바라는 말이 그저 할 일이 없이 먹고 노는 사람을 가리키는 건달이라는 말로 바뀌어서 통용된 것이다.
출처 : [도서]우리말 유래 사전
이래 저래 거창한 설명이 되었군.
쑥쓰럽게.
특별하다는 것은 ,
다른 것을 차별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아니면 나는 다른 것들을 차별대우 함으로써만 특별한 어떤 것을 만드는 방법 밖에는 모르는 걸까?
바보같지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더불어 요시나가후미의 '사랑해야만할 딸들' 중 한편이 생각났다.
어떤 여자애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가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한단다" 라고 말한 것의 영향으로 결국 특별히 누구 한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니 모두 사랑해 버리는.
그래서 썰렁하게도 수녀가 된. 그 이야기.
(그리고 또 썰렁하게도 내기억에 그 할배는 젊어서 공산주의자였던..요시나가 후미 만화중 제일 썰렁한 설정이었다. 흥미진진할 수도 있었는데 말야.)
그럴법하지만, 또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이야기가 말이다.
모두 사랑하는건 어떤 누구만 특별히 대할수는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서 결국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걸까?
하여튼 바보같고 썰렁한 생각이 들어 버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