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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걸기

이명박을 고양시장으로!

 

"이명박을 고양시장으로?

대통령 되어서는 사고만 치는 사람이 기초자치단체장 된다고 사고 안 치겠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해라!"

 

라고 해도 할 말 없다. 그런데 진짜 이명박이 당장 대통령 그만 두고 고양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끔씩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우선 대통령 그만두면 미국산 쇠고기나 대운하 등 몇 가지 문제는 해결의 여지가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지금과 비교해서는 당분간은 상황이 나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대통령 그만두고 말 일이지 고양시장은 왠 뻘소리일까만 사정은 이렇다.

 

요즘 고양시가 하는 짓 보면 이명박보다 나은 게 없다. 상가 상인들 장사 안 된다고 수십억 들여서 노점상을 싹 쓸어버렸는데, 그 돈을 노점상들 소득 파악하는 데에 쓰면 여럿 좋은 것 아닌가 싶다. 어차피 돈 별로 못 버는 저소득 노점상들이야 면세 대상일 뿐만 아니라 상가 상인들 수입을 얼마나 줄이겠냐. 돈 꽤 버는 탈세 온상 노점상들은 조져서 세금 물어야 할 대상이니 소득 파악하면 좋잖아. 이 기회에 상가 상인들도 함께 조져서 탈세 못하게 할 수 있잖아. 얼마나 좋아. 이런 좋은 일을 상가 상인들 로비 때문에 안 하고 애꿎은 노점상들만 밟아버리는 아주 무식한 짓을 고양시가 했다. 여기까지는 이명박과 다를 게 없겠구나.

 

이왕 별 재수 없는 것들이 기초단체장 할 거면 차라리 이명박이 나을 것 같은 점은 바로 '버스' 문제다.

 

고양시에 등록된 노선 버스를 타 보았는가? 이런 길거리 개똥만도 못한 대중교통은 아마 구미시에나 있을 것 같다. 구미시 버스로 말할 것 같으면, 시내를 시속 100Km로 주행하며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승하차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아예 태우지도 않고 승객이 많은 구간은 돈 많이 내야 하는 좌석버스 노선만 있고 온갖 기록 조작에 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노선변경도 사장 맘대로 한다. 끝내 주지 않는가?

 

이 악명 높은 구미시 버스만큼은 아니지만 고양시 버스들도 장난 아니다. 난폭 운전에 승객 생까고 안 태우기는 기본이고 불친절도 하늘을 찌른다. 중앙차로가 만들어지면서 버스길이 구불구불해졌는데 이 길을 마구 달리면 몸이 오른쪽으로 쏠렸다 왼쪽으로 쏠린다. 서 있는 사람들은 팔뚝 굵어진다. 썅!

 

서울에서 고양시 곳곳에 들어오는 버스들이 늦게까지 있으니 고양시 대중교통 상황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사 와서 살아보니 고양시 안에서 버스 타고 다니기란 정말 괴롭다. 뱅글뱅글 돌거나 비싼 광역버스 타야 하고 등등 노선이 비합리적이다.

 

이명박이 고양시장 되면 버스 하나는 처리하지 않을까 싶다. 어디 땅 파고 싶은 데 찾기는 하겠지만 지금 고양시도 여기 저기 땅 파고 있으니 크게 다를 것도 없겠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서울시 버스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노선도 정리되었지만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버스기사들의 운전 행태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아직도 가끔은 운전 이상하게 하는 버스기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는 이명박이 서울시장할 때 서울시내버스업체들을 갈군 결과라는 얘기가 있다. 버스업체를 돈으로 지원하면서 운전기사 급여나 복지에 약간의 향상을 요구했고 이에 항의하는 업체들을 혼내기 위해서 양대노총 출신을 시에서 고용해 감독토록 했단다.

 

난폭 운전과 승차 거부 등 버스운행에 문제가 있다면 운전기사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업이 서비스 정신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노선 합리화와 인간적 서비스를 위해서는 나름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하고, 과거 행적으로 보아 이명박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 글은 '이명박 유용론'이 아니라 '고양시 버스 개똥론'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세상에나 이런 일이 벌어졌다.

 

 

말걸기가 25분만에 반찬 다섯 가지를 마련해서 저녁밥을 먹었다.

 

 

겔뱅 말걸기는 지난 2년 간 주부랍시고 빈둥거리기 일쑤라 수련이 부족해 언제나 비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해왔다. 파란꼬리는 대충대충 설렁설렁 해도 후딱후딱 뭔가 하는데 말걸기는 그게 안되더랬다.

 

그런데...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가스 렌지 세 개를 동시에 돌리는 정말 이례적인 개인기를 보였던 것이다.

 

 

월요일 하루 종일 밖에서 공부하면 화요일엔 늦잠을 잔다. 요즘 아토피가 심해서 한의원에 다니는데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간다. 일어나서 어영부여 밥차려 먹고 집안 정리하고 빨래를 삶으니 벌써 병원 갈 시간. 별로 한 것도 없이 시간은 잘 간다. 이게 말걸기식 저효율 가사노동.

 

병원 진료가 끝나니 저녁 시간. 배가 고파지는데 유혹이 한 가득이다. 병원 동네서부터 차 타고 집에 오는 내내 '뭐든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지나는 곳마다 '방앗간'이었다. 하지만 돈 쓰는 것도 아깝고 한의원에서 가리라는 음식도 많아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얼른 집에 가서 밥 해먹는 수밖에.

 

집에 오니 하다만 빨래와 설거지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도 닦아야 하겠고. 배고프니 밥부터 먹을까 했지만 밥을 먹으면 분명 퍼져서 TV나 보다가 '내일 하지 뭐' 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설거지, 빨래, 청소, 밥을 했는데 이것도 순 말걸기식 비효율의 절정이었다. 해는 지고 어두워졌다.

 

디지게 배가 고팠다. 대충 먹어 치울까 하다가,

 

"하루에 설거지, 빨래, 청소를 다 했는데 대충 먹을 수는 없어! 이것 때문에 하고 싶은 몇 가지는 하지도 못했단 말야. 말걸기는 잘 먹을 권리가 있어! "

 

하며 당장 해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만들어댔다. 다섯 가지에 25분 걸렸다. 그 다섯 가지가 뭐냐면... 밝힐 수 없다. 남들은 다 그 정도나 그보다 더 많이 할 텐데 쪽팔리게시리... 어쨌든 주부 3년차만에 벌어진 놀라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갑자기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오늘 당장 하고 싶을 일.

 

하지만 오늘 이 모두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뭐 할까 고민만 하다가 오늘을 보낼 가능성이 커졌다.

 

잠들면서 '에휴~ 말걸기가 그렇지, 뭐' 하는 건 아닐지...

 

 

잡힐 듯 말 듯

 

지난 토요일 파란꼬리와 호수공원엘 다녀왔다.

 

서울 시내 로댕갤러리에서 김아타 개인전을 보고 나왔는데 날이 너무 좋아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아쉬웠다. 광우병에 열을 내시는 분들 모이는 청계광장이나 가 볼까 하다가 그 시간까지 기다리기도 막막한 데다가 피곤해서 그냥 일산 와서 놀았다.

 

호수공원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을 지켜보다가 사진을 찰칵.

 

 

 

 

 

 

 

 

잡힐 듯 말 듯.

파란꼬리의 손 그림자가 일품이다.

 

 

예술 맞다

 

호치랑님의 [김홍석 마초예술가의 국제갤러리 & 창녀 찾기 퍼포먼스] 에 관련된 글.

 

 

말걸기가 세상에 말을 걸지 않은 지가 참으로 오래도 되었나 보다. 이렇게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호치랑님의 위 글에 "사람을 그 자리에서 완전히 소외시킨, 왕따시킨 행위를 예술이라는 말로 과연 표현해야 될까"라는 문구가 있다. 이러한 생각은 글의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호치랑님이 쓴 이 문구의 가장 주요한 뜻은 "예술 한답시고 그 따위 짓 하지 말라"로 이해했다. 이 뜻은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말걸기가 위 글에 대한 다른 견해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위 문구가 김홍석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에서 행한 오프닝 퍼포먼스가 '예술'이 아니라는 뜻도 가진 듯하여, 이 때문에 예술, 도덕, 아름다움, 그리고 '아트 월드(Art World-전문가 집단, 카르텔)'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사람들은 대체로 예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름답지 못한 것은 예술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또한 예술은 통념을 거스르기도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악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 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름답지 않거나 악의적이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덕과 아름다움의 관계는 복잡하다. 사람들은 이 둘이 항상 함께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아름답지만 도덕적이지 못하거나 도덕적이지만 아름답지 못한 사물, 상황, 행위를 당연히 구별하지만 이 둘이 제대로 결합이 되면 '예술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경향.

 

역사적으로 인류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지녀왔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위한 예술의 역사는 짧다. 예술은 언제나 목적이 있었는데 아름다움이 궁극의 목적인 적은 예술의 역사에 비하면 짧다. 아름다움이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이해는 근대 서양의 산물이었고 이 관념이 (최소한) 한국 대중이 예술을 이해하는 근간인 것은 분명하다. 이 관념은 아름답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는 것도 포함한다.

 

그러나 현대 예술의 목적은, 특히 아트 월드의 목적은 '남이 못하는 것 하기'에 가깝다. 이른바 작가의 창조성은 이것으로 발휘된다. 작가들은 "저걸 어떻게 했지?", "저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하는 감탄을 노린다. 심지어는 남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하지 않는 너무 평범한 것을 수행한다. 이것이 아트 월드의 예술이자 이 시대의 예술이다. 인정하든 안 하든 말이다.

 

아트 월드는 작가, 비평가, 기획자, 컬렉터들의 세계이다. 이들이 사실상 무엇이 '예술 작품'인지를 결정한다. 대중들은 아름다움과 도덕적 허용에 관심을 두는 사이에 아트 월드는 (이것들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지만) 다른 데에 관심을 쏟는다(그 중 하나는 돈이겠지만 여기서는 제껴두자). 즉, '남들 못하는 것 하기.'

 

그러다 보니 극악한 도전정신이 발휘되어 도덕, 인권도 가차없이 파괴하는 심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한편, 시대와 사회마다 인간에 대한 예의의 기준을 갖고 있고 이 중에는 부당한 기준도 있다. 예술은 이에 도전해서 그 부당한 기준을 철폐하는 데에 일조하기도 한다. 결국 역사적으로 볼 때나 현대의 상황에서 볼 때 예술 작품이 지닌 가치관은 도덕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술 작품, 예술 행위를 평가할 때 도덕, 특히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핵심 기준으로 삼으면 혼란에 빠진다. 이게 예술인지 아닌지 구별부터 해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말걸기는 김홍석의 포퍼먼스가 예술 행위라고 받아들인다. 김홍석은 아트 월드의 일원인 미대교수이다. 얼마나 영향력 있는 구성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정도 이력이면 만만치 않은 사람일 것이다. 김홍석이 아트 월드의 일원이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의 이번 퍼포먼스가 예술 행위일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아트 월드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김홍석의 이번 퍼포먼스는 대단히 비도덕적이다. 사람들의 상식은 이렇다. 나쁜 짓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그 똑같은 짓을 하면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의 신(神)이 창궐하는 시대에 사람들이 '창녀'를 찾아서 낙인 찍는 행위를 비판하기 위해 '창녀 낙인 찍기'를 돈으로 유혹하는 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김홍석이 이걸 몰랐을까? 이것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는 통념과 상식을 파괴하기 위해서 '예술적 행위',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되는 관람자의 비도적적 행위와 이를 부추긴 자신이 비도덕적 행위, 그 두겹의 모순을 보이는 꽤 수준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홍석은 당연히 비난을 예상했을 것이고(그 크기나 범위는 예상치 못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자신이 행한 예술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김홍석이 끝까지 이 비도덕적인 행위가 예술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 보다 그 행위가 이 시대에는 예술일 수밖에 없는 객관적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김홍석은 대학교수이고 자신의 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는 유명 갤러리에서 행한 퍼포먼스라는 데에 있다. 만약 대학교수도 아닌 김홍석이 돈을 왕창 후원 받아서 룸살롱이 즐비한 유흥가에 가서 이 퍼포먼스를 했다면 예술이 되었을까? 김홍석이 비도덕적인 예술을 갤러리에서 보였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에게 '안전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말걸기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예술 작품이란 게 도덕적이거나 도덕적인 아름다음을 지녔을 것이란 관념을 버리면 예술의 세계가 더 잘 보이게 된다. 그래서 비도덕적인, 반인권적인 예술 작품이나 예술 행위를 한 작가를 더 집요하게 도덕적으로 심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예술 같지도 않은 엉터리 예술 하지 말라"고 얘기하면 작가는 "예술인데"라고 당당하게 도덕적 비난을 피해가려 것이다. 예술도 비도덕적일 수 있고 따라서 그 예술을 행한 작가가 마땅히 져야 할 응분의 대가를 지도록 하려면 예술에 대한 통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

 

"네가 한 게 예술 맞아. 근데 예술도 책임을 져야 하거든."

 

말걸기는 이게 아트 월드의 오만함을 흔들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쓰기 어렵네

 

이 블로그에는 두 개의 글이 숨어 있다.

쓰다만 글들.

 

 

하나는 디지털 사진의 노출과 계조에 대한 글이다.

쉽게 설명하는 글로 쓰고 싶은데 어렵게 써진다.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며칠째 쓰고 있다.

 

또 하나는 김홍석의 '창녀 찾기 퍼포먼스'와 관련한 글이다.

이 사건에 대한 글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응징 액션에 대한 글도 아니다.

그냥 예술을 바라보는 보통의 태도에 대한 글인데,

글의 전개가 잘 풀리지 않는다.

 

 

요즘 수다를 떨지 않아서 그런지 하고 싶은 말이 정리가 안 된다.

 

 

 

북한산 자락에 올라 비 내리는 서울 풍경을 담았다.

 

 

 

 

 

 

 

 

역광으로 빛나는 비에 젖은 지붕들이 인상적이다.

그것이 눈에 들어와 찍게 된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의 낮은 해상력은 당연히 비 때문일 것이다.

또한 원근감이 깊은 것도 비 때문일 것이다.

 

이 사진들이 흑백인 이유는 오로지 색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흑백이 된 이상 다양한 회색 톤들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 사진들을 촬영한 원본 RAW 파일은 이렇게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다.

그건 당연하다.

사진의 의도는 촬영 당시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그래서 흑백 프린트를 해 볼 수 없다는 것 아쉬운 일이다.

 

 

혼자 놀기

 

자정을 넘겼으니 벌써 어제의 일이 되었다.

 

옆으로 누워서 9시 뉴스를 보면서 깜빡깜빡 잠을 자고 있었다.

파란꼬리가 운동을 다녀와서 말걸기가 잠에 취에 있는 걸 보더니 TV와 거실의 불을 껐다.

 

잠시 후 파란꼬리는 씻고 공부방에 들어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살짝 잠이 깬 말걸기가 눈을 떴더니 아래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묘한 분위기였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본 실내 풍경은 암흑 속에서 아련한 빛을 보는 느낌이었다.

잠을 털고 일어나 혼자 놀기를 시작했다.

 

색이 있는 조명도 만들고 소품도 가져다가 화면 안에 집어 넣었다.

결국엔 아래 사진이 만들어졌는데, 이건 잠에 취해 본 실내 풍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일부러 보색도 만들고 했는데 약간 정신 나간 사람 머릿속 같다.

앞과 뒤가 이질적이다.

혼자 놀기는 이렇게 끝냈다.

 

 

어렵다

 

사진은 어둡고 밝은 톤과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지털 사진은 256 단계의 톤으로 만들어야 한다.

 

감광물질이 담을 수 있는 톤의 범위를 넘어선 인간의 시각 때문에

아래와 같이 콘트라스트가 강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어두운 나무와 인물의 겉옷의 질감을 놓칠 수는 없다.

저 멀리 그늘진 숲도 뭉겔 수 없다.

또한 햇살이 나오는 구름을 허옇게 둘 수도 없다.

모두를 만족하는 '사실적인 사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아래 사진으로도 충분히 사실적인가?

콘트라스트가 강한 것 같은데도 뭔가 떠 있는 느낌도 든다.

어쩌면 너무나 과도하게 콘트라스트가 강한 사진에 익숙해서일 수도 있다.

 

 

 

 

이랜드비정규노동자와 함께하는 4.17 블로그행동의날

 

지난 달에 reds가 전화를 걸어왔다.

부탁할 일이 있단다.

오늘(4월 17일) 이랜드비정규직과 함께하는 '온라인 행동'을 하기로 했는데 도와달란다.

5~6년 전이라면 모를까 다 까먹고 감도 잃어서 달군님께 부탁해보라고 했다.

진보넷 전화번호 알려주면서... ㅎㅎ

제대로 넘긴 것 같다.

 

이랜드비정규노동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