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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8
    첫 출사(6)
    말걸기
  2. 2008/02/15
    사진 찍으러 갑시다(6)
    말걸기
  3. 2008/02/14
    조카 자랑(11)
    말걸기
  4. 2008/02/11
    숭례문 홀라당(4)
    말걸기
  5. 2008/02/06
    사진동호회 띄워 볼깝쇼?(8)
    말걸기
  6. 2008/02/04
    지난날들(20)
    말걸기
  7. 2008/02/03
    덩야핑님 따라하기(5)
    말걸기
  8. 2008/02/03
    역사적인 날(6)
    말걸기
  9. 2008/02/01
    사진동호회 해볼까?(20)
    말걸기
  10. 2008/02/01
    무한 궤도(3)
    말걸기

이런 썅

 

주옥 같은 글을 하나 썼는데,

태그 넣다가 키보드를 잘못 눌렀는지 다 사라졌다.

다시 쓰다가 못 쓰겠어서 '이런 썅'하고 말았다.

흥!

 

말걸기의 정치적 입장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서부터 풀어내는... ㅠㅠ.

 

어차피 관련된 일이 또 생길 꺼니까 그때 쓰든가...

 

 

-----------------------

 

 

■ 당분간 광고

 

사진동호회 공동체 개설 http://blog.jinbo.net/diary/?pid=345

 

 

사진동호회 공동체 개설

 

사진동호회 공동체를 개설했지요.

http://go.jinbo.net/sajin

 

사진에 관심 있으신 분들 가입해주세요.

가입 신청을 하시면 말걸기가 회원 가입 처리할게요.

 

 

이름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가명으로 '찰칵찰칵'이라고 적어넣었는데 회원들이 이름을 정하도록 하지요.

동호회 이름 뿐만이 아니라 이런 저런 생각나는 의견을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진보넷 공동체는 정말 폼나게 만들기가 어려워요.

시간을 약간 두고서는 이래저래 알아보고 꾸며봐야겠네요.

사진동호회에 적절한 기능을 제공받을 수 없다면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3월 출사 전에 둥지를 확정하면 좋겠네요.

 

 

아래는 리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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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걸기가 제안하는 사진동호회 운영 방식

 

 

1. 정기출사

 

○ 매월 네째주 주말.

(둘째,네째주 토요일 휴무가 많다. 올해 달력을 보니 둘째주 주말에는 연휴가 낀 달이 있다. 연휴는 피하는 게 예의일 듯해서...)

○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제안하도록 한다. 시간, 장소, 그날의 콘셉트.

 

2. 구경다니기

 

○ 사진 등 전시 방문.

○ 월 1회. 정기출사 없는 주말이면 좋은 듯.

○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제안하도록 한다.

 

3. 벙개

 

○ 벙개는 아무나 친다. 아무 때 아무 장소.

○ 출사 벙개, 구경다니기 벙개, 술 벙개, 먹자 벙개, 이 벙개 저 벙개 마구 쳐도 된다.

○ 벙개 흥행 여부에 너무 마음을 쓰진 말자.

 

4. 인터넷 둥지

 

○ 커뮤니티, 카페 등과 같은 곳 중에 개설하도록 한다.

(돈 있고 능력 되면 자체 홈페이지를 개설하면 좋겠으나...)

○ 이곳에서 기본적으로 일정과 운영을 논의하도록 한다.

○ 사진 작품을 서로에게 공유한다.

○ 신변잡기를 풀어놓는 것도 좋다.

○ 최대한 개방적인 인터넷 둥지가 되도록 한다.

 

5. 작품 공유하기

 

○ 정기출사, 벙개 사진, 이 외에도 각자 찍은 사진을 인터넷 둥지에 올려서 돌려본다.

○ 사진은 항상 두 컷 이상을 하나의 콘셉트로 묶어서 올리도록 한다.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각도로 관찰한 결과일 수도 있고, 하나의 시선으로 여러 대상을 관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런 걸 많이 하면 나중에 개인전 열 수 있다.)

○ 사진을 올릴 때는 자기의 의도를 설명해 준다.

○ 사진에 덧글달기 : 칭찬 한 마디 + 다른 감성 표현하기. '나 같으면 이렇게 찍어 보겠다' 내지는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느낀 감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솔직히 이러네 저러네 소리 들으면 왜 그런 소리하는지 알아도 진짜 자존심 상한다. 그래도 서로 표현해 보자.)

 

6. 운영 방식의 변경

 

○ 회원 다수가 원하면 뭐든 바꿀 수 있다.

 

첫 출사

 

조지콩님의 [가을하늘.이라고.착각.]말걸기[사진 찍으러 갑시다] 에 관련된 글.

 

 

17일(일)에 종묘와 창경궁에서 사진을 찍었지요.

스머프, 조지콩, haya, 파란꼬리님과 함께 어슬렁 어슬렁 다녔습죠.

반가왔습니다.

 

종묘는 '묘' 분위기가 살짝 돌아서 밋밋한 느낌도 있었지만

창경궁은 안내대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궁이더군요.

조선에서는 이렇게 훌륭한 집에서 가장 성격 나쁜 사람들이 살았겠거니 생각하니 집이 아깝더군요.

 

아직은 서로에게 익숙치 못해서 사진 얘기는 별로 못했어요.

자주 보면 어색한 느낌은 조금씩 사그라들겠지요.

 

날이 추워서 구석 구석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일찍 저녁을 먹었습니다.

조지콩님이 대학로를 잘 알고 계셔서

저녁도 먹고 후식으로는 필리핀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필리핀 음식과 맥주를 맛 보았지요.

 

일단 진보넷에 공동체 하나 개설하기로 했는데 이름도 안 지었군요.

뭐 대충 시작해서 나중에 정리하지요.

 

 

왼쪽부터 파란꼬리, haya, 모르는 꼬마, 조지콩. 스머프는 사진기 근처.

그러고 보니 출사 기념사진을 남기기 않았군요. 일명 '떼사진.'

 

 

말걸기는 아주 뻔한 구상이 있어서 몇 가지 실험을 했답니다.

아래 사진들은 움직이는 것들을 '다중노출'로 찍었지요.

 

@ 창경궁

 

@ 종묘-창경궁 연결 다리

 

 

사진 찍으러 갑시다

 

말걸기[사진동호회 띄워 볼깝쇼?] 에 관련된 글.

 

 

사진 찍으러 갑시다.

2월 17일(일) 오후 1시 종묘 매표소 앞입니다.

이날은 무척 추울 거라는군요(추우면 사진찍기 힘든데... ㅠㅠ).

그래도 정한 날에 가야지 어쩌겠습니까.

 

관심을 보여주신 삼순, 스머프, ScanPlease, re, ijimekko, 조지콩, haya, 하루, 에밀리오, 나침반, B급 좌파, 땅의 사람, 슈아님! 사진 찍으러 가요. 사정이 있으셔서 이날 참석치 못하신다면 계속 관심을...

 

덧글로 표현을 하지는 않았어도 사진 함께 찍는 데 솔깃하셨을 많은 분들의 참여를 독려합니다.

 

 

■ 모이는 시간과 장소

 

○ 2008년 2월 17일(일) 13:00.

종묘. 매표소 앞.

※ 말걸기는 아마도 빨간 배낭에 삼각대 메고 있을 것 같아요.

※ 말걸기폰 영일육-구팔사영-영육일일

 

 

■ 이날 해볼까 싶은 일들

 

○ 즐겁게 사진찍기.

○ 계속 함께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얘기하기.

○ 냠냠.

 

 

조카 자랑

 

지난 해 10월, 형이 딸을 낳았다. 사실은 형수가 낳았다.

형의 딸이라지만 조카라는 이유로 말걸기가 좋아할 턱이 없다.

그런데 1월에 파란꼬리랑 반나절 조금 넘게 이 녀석을 봐 준 적이 있었다.

꼬박 하루도 아닌 시간을 함께 지낸 것에 불과한데 이 녀석이 좋아진 것이다.

이 녀석은 눈을 마주치면 웃는다.

얼마나 예쁘게 웃는지 쓰러지겠다.

성격도 참 좋다.

이런 아기를 두고 '천사아기'라고 하는 걸 알겠다.

 

설 연휴에 100일을 맞이했는데 해 줄 건 없고 사진 몇 장 찍었다.

형과 형수한테는 얘기도 안 하고 얼굴 공개한다.

자랑하는 거니까 용서해 주겠지.

 

 

 

 

 


 

 

숭례문 홀라당

 

숭례문이 홀라당 다 타버렸다.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불에 휩싸여 재로 변한 숭례문만 쳐다 봤다.

이 사건을 보고 생각 난 것들.

 

 

1. Live 중계, 참 끝내준다.

 

하얀 연기, 붉은 불꽃, 무너지는 지붕. 911 때 CNN이 송출한 Live 중계가 떠올랐다. 두 번째 무역센터 빌딩에 비행기가 출동하던 그 장면. 두 채의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 안타까움, 공포, 분노 등의 감정이 일지만 가장 강한 감정은 호기심이다. 어떻게 될까? Live는 이런 거다. 벗어날 수 없는 몰입.

 

 

2. 대한민국 관료들은 참으로 무능하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게 없는 무능이다. 예전에도 목조 문화재들이 타버렸으면 이제는 화재가 나지 않도록 하고, 만약 불이 나면 잽싸게 끄는 방법을 고안했어야 했다. 이건 두 가지가 결합된 결과이다. 권한을 가진자들은 '공익'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나 '생색'에 꽂혀 있다. 실무자들은 권한을 가진자를 설득할 용기가 없으므로 하던 거만 한다. 그래서 관료사회는 총체적으로 무능하다.

 

 

3. 대한민국 언론은 책임감은 눈꼽만큼도 없는 극황색언론이다.

 

목조 문화재가 여러 번 불에 탔던 과거를 언급하며 언론에서 말하기를 "그때 뿐이다"라고 주절댔다. 지들이 그때만 지껄여 놓고선 그런다. 화재의 원인, 붕괴의 원인을 잽싸게 '구성'하는 그들의 능력은 탁월하다. 황색능력이 어찌 그리 선명한지. 이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야 또 기사로 울거먹을 수 있다. 수 년 안에 문화재 화재 사건을 가지고 또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는 똑 같은 패턴으로 기사 쓸 거다. 감시 좀 해라.

 

 

4. 다들 세금 걷자는 얘기는 안 하면서 예산 타령하고 자빠졌다.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기들이 있다. 중구청이 주말 야간에는 경비 인력을 두지 않았다는 둥, 서울시가 화재보험 대충 들었다는 둥. 문화재청이 어쩌구. 소방당국이 돈도 없는데 목조 문화재 화재 맞춤 서비스를 하겠냐. 돈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러면 그 돈 하늘에서 떨어지냐? 세금 걷어야 할 것 아니야. '공익'을 위해서 티도 안나게 돈 들기 마련이다. 세금 얘기 나오면 부담이 어쩌고 하는 것들이 사건만 터지면 예산이 어째느니 한다. 세금 좀 더 내지?

 

 

5. 21세기 목조 건물 자랑하려고 복원하냐?

 

숭례문 복원하는 데 200억 든단다. 이제 와 200억을 복원하는 데 쓰지 말고 그 돈으로 문화재나 제대로 관리했으면. 지금 잿더미가 된 숭례문이 무너지거나 비와 바람에 씻겨 나가지 않도록만 하고 그 모양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겠다. 이거 다시 복원하면 예전 거랑 새 거랑 구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나. 너무 닮아서 잿더미로 변한 이 사건, 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한 이 사회의 수준을 잊어버리지 않겠나. 무엇보다 나무 잘라야 하지 않나.

 

 

사진동호회 띄워 볼깝쇼?

 

말걸기[사진동호회 해볼까?] 에 관련된 글.

 

 

사진동호회에 관심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솨~. 꾸우~버어~억.

관심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서 되는 대로 추진해 보기로 합니다.

덧글로 온갖 참견을 다 해 주시길 바랍니다.

 

 

 

■ 동호회 추진 과정

 

 

1.  일단 한 번 모여서

 

○ 집단적으루다 몰려댕기며 사진 찍어본다.

○ 냠냠 하면서 진짜 동호회 해 볼 건지 서로 확인해 본다.

○ 어떤 동호회가 되길 바라는 지 최소한의 상을 만들어 본다.

○ 이름을 지어본다.

○ 기본 계획(정기출사 등)도 마련해 보고 인터넷 둥지도 모색해 본다.

(영 아닌 것 같으면 하루 논 걸로 하고 헤어지곤 잊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

 

2. 위에서 하기로 합의한 게 있으면 진짜 한다.

 

 

■ 일단 한 번 모이는 날

 

 

1. 모이는 시간과 장소

 

○ 2008년 2월 17일(일) 13:00.

(이날 이 시각 말고 다른 일시가 좋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모이는 건 모이는 사람들 맘대로다.)

종묘. 매표소 앞.

(여기 말고 다른 곳이 좋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모이는 건 모이는 사람들 맘대로다.)

○ 서로를 알아보기 : 대충 어슬렁거리는 사람한테 말 걸어 본다.

(말걸기는 모르는 사람한테 절대 말 걸지 않아서 '말걸기'다. ㅋㅋ.)

○ 서로 인사하기.

 

2. 집단적으루다 사진찍기

 

○ 13:30 ~ 대충 사진 찍기 싫어질 때까지

○ 종묘에서 시작해서 창경궁까지 돌아댕긴다.

(입장료는 각각 1,000원. 맞나?)

○ 자기가 찍고 싶은 거 알아서 찍는다. 찍기 싫으면 경치 구경을 하거나 다른 사람 찍는 거 구경하는 등 하고 싶은 거 한다.

○ 단, 참석자 1인 1회에 한하여 '절대제안'을 내릴 수 있다. '절대제안'은 '이거 찍어 보자' 내지는 '이거 이렇게 찍어 보자'는 제안이다. 제안자는 자기가 원하는 연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참석자 모두는 이 제안에 따라보자.

(사실 이건 '명령'이나 마찬가지다. 흐~. 이렇게 사진을 찍고 나중에 각자 찍은 사진들 함께 보면 참 재미 있을 거다.)

 

3. 냠냠 하며 수다 떨기

 

○ 대충 사진 찍기 싫어지면 대학로로 가서 냠냠 할 데 찾는다.

(이 동네 아는 사람이 미리 맛집 찾아주면 땡큐 베리×10,000 머치이다.)

○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각자의 바람과 지향을 확인해 보자.

○ 이 정도라면 함께 할 수 있겠다 싶게 동호회 상을 만들어 보자.

○ 정기 출사는 언제 하고 어떻게 준비할 지 얘기해 보자.

○ 인터넷 둥지는 어떻게 할 지 얘기해 보자.

○ 각자 하고 싶은 얘기 하자.

 

 

■ 말걸기가 제안하는 사진동호회 '룰'

 

 

1. 사진 테크닉이 아닌 사진 감성을 교류하자.

 

○ 이제까지의 자신의 촬영 패턴을 벗어나 서로가 서로에게 제안하는 촬영 스타일에 관심을 갖자.

○ 재기발랄하고 실험적인 콘셉트 있는 사진 찍기를 서로에게 제안하자.

○ 이런저런 교류는 궁극적으로 각자 자신만의 완성도 있는 사진 스타일을 위한 것이다.

(일명 '쨍' 사진에 현혹되지 말자.)

○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테크닉을 익히는 것에 너무 게으르면 안 된다. 하지만 이것에 빠지면 안 된다.

 

2.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하자.

 

○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것까지만 하자.

○ 불편하거나 속박을 느끼면 언제든 표현하자.

○ 동호회 회원 모두가 같은 생각과 감성을 지닐 수는 없으므로 서로에게 너무 많을 걸 기대하지는 말자.

○ 과중한 책임감, 과도한 의리는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만 그래도 하기로 합의한 게 있으면 하는 방향으로 하는 게 편하고 자유롭기도 하다.

 

3. 장비 차별하면 왕따시킨다.

 

○ 모든 사진 장비에는 한계가 있지만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장점을 찾자.

○ 장비에 대해 이해를 높이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기 것 너무 자랑하지 말고 남에 것에 너무 눈독 들이지 말자.

(대부분의 사진동호회에는 지름신이 상주한다. 진짜 이러지 말자. 슬퍼진다.)

 

 

■ 말걸기가 제안하는 사진동호회 운영 방식

 

 

1. 정기출사

 

○ 매월 네째주 주말.

(둘째,네째주 토요일 휴무가 많다. 올해 달력을 보니 둘째주 주말에는 연휴가 낀 달이 있다. 연휴는 피하는 게 예의일 듯해서...)

○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제안하도록 한다. 시간, 장소, 그날의 콘셉트.

 

2. 구경다니기

 

○ 사진 등 전시 방문.

○ 월 1회. 정기출사 없는 주말이면 좋은 듯.

○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제안하도록 한다.

 

3. 벙개

 

○ 벙개는 아무나 친다. 아무 때 아무 장소.

○ 출사 벙개, 구경다니기 벙개, 술 벙개, 먹자 벙개, 이 벙개 저 벙개 마구 쳐도 된다.

○ 벙개 흥행 여부에 너무 마음을 쓰진 말자.

 

4. 인터넷 둥지

 

○ 커뮤니티, 카페 등과 같은 곳 중에 개설하도록 한다.

(돈 있고 능력 되면 자체 홈페이지를 개설하면 좋겠으나...)

○ 이곳에서 기본적으로 일정과 운영을 논의하도록 한다.

○ 사진 작품을 서로에게 공유한다.

○ 신변잡기를 풀어놓는 것도 좋다.

○ 최대한 개방적인 인터넷 둥지가 되도록 한다.

 

5. 작품 공유하기

 

○ 정기출사, 벙개 사진, 이 외에도 각자 찍은 사진을 인터넷 둥지에 올려서 돌려본다.

○ 사진은 항상 두 컷 이상을 하나의 콘셉트로 묶어서 올리도록 한다.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각도로 관찰한 결과일 수도 있고, 하나의 시선으로 여러 대상을 관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런 걸 많이 하면 나중에 개인전 열 수 있다.)

○ 사진을 올릴 때는 자기의 의도를 설명해 준다.

○ 사진에 덧글달기 : 칭찬 한 마디 + 다른 감성 표현하기. '나 같으면 이렇게 찍어 보겠다' 내지는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느낀 감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솔직히 이러네 저러네 소리 들으면 왜 그런 소리하는지 알아도 진짜 자존심 상한다. 그래도 서로 표현해 보자.)

 

6. 운영 방식의 변경

 

○ 회원 다수가 원하면 뭐든 바꿀 수 있다.

 

 

지난날들

 

말걸기[역사적인 날]에 관련된 글.

 

 

기분이 별로다. 10년 쯤 공들인 정당이 쪼개졌다. 이런 일은 피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될 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언짢다. 사람의 감정이란...

 

 

1.

 

96년 가을에 군대 제대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보니 기존 정파들과는 다른 학생운동을 하고자 했던 소수의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잡지도 내고 이러저러한 활동도 했었다.

 

이들은 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 92년 대선 때는 경찰들 때문에 선거운동하기 힘들었지 교내에서의 선거운동 분위기는 좋았다. 반면 97년 대선에서 우파는 김대중 지지해야 한다고 하고 좌파는 후보전술도 없으면서 권영길은 민중후보가 아니라고 우겨서 힘들었다.

 

하루 죙일 힘들게 대형 플랭카드를 여러 개 만들어서 학교를 도배했더니 한 순간 바람에 다 찢겼던 일도 있었다. 신촌로터리에서 선거운동 하려고 상가를 돌아다니며 앰프에 사용할 전기를 끌어오려했더니 상가 주인들은 '우리는 이회창 지지한다. 못 준다' 해서 무안 당하며 신촌 한 바퀴 돈 적도 있었다. 결국 길가의 작은 구두닦이 아저씨가 전기를 빌려주셨다.

 

이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교내 좌우 정파들의 다굴에도 꿋꿋하게 권영길 선거 운동했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 주사파-국민파 아니면서 권영길 지지한 사람들은 좌파들한테 욕먹는 걸 무지 싫어했는데 97년에 양쪽에서 다굴당하면서 선거운동 해 봤는지 모르겠다.

 

97년 대선에서 가장 쇼킹한 사건은 '일어나라, 코리아!' 사건이었다. 선거 운동 기간 중 어느 날 집을 나오는데 동네마다 '일어나라, 코리아!'가 걸려 있었다. 숨 넘어가 뒈지는 줄 알았다. 권영길 선거운동을 함께했던 그들은 학교에 모여 이 말도 안되는 구호에 항의를 하기로 했다. 결국 하룬가 이틀만에 투쟁적인 구호로 바뀌었다. 전국에서 난리쳤으니까. '일어나라, 코리아!' 사건은 간첩 최기영이 깊이 관련된 사건이었다.

 

 

2.

 

98년에 말걸기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그 해를 거치면서, 학교에서 함께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했던 이들은 국민승리 21을 통해 진보정당 지역 조직 건설을 주도했다. 말걸기는 이들과 함께 국승 21 회원이 되었고 진보정당 창당 발기인이 되었다. 이들이 민주노동당 서대문/마포/은평 지부 건설을 주도했다.

 

1999년 여름 63빌딩에서 열린 창당발기인대회는 역동적이었는데 그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걸기는 '사회노동당'이라는 당명을 지지했는데 결국 결선에 오르지 못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기립 투표를 했었는데 당명 제정을 위해 네 번 씩인가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창당 과정에 함께 한 말걸기는 그후 지역조직에서 그 많은 당직 중 대의원이나 회계감사 따위의 당직을 수행했다. 나름의 인생 계획을 포기하고 2000년 6월 지자체 재보궐 선거를 지역에서 치른 후에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웃기는 조직이었다. 사실 운동권 조직이라는 게 그런 조직이었다. 책임과 권한은 분명하지 않았고 개인의 정치력과 끈에 따라 그가 추진하는 사업의 위상이 달라졌다. 내부의 꼬라지가 이런 것이었다면, 2002년 지방선거 전까지는 민주노동당 명함 가지고 밖에 나가면 천대받기 일쑤였다.

 

 

3.

 

그래도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은 참으로 재미 있는 선거였다.

 

말걸기는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 선거사무실로 파견되었다.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 선거와 심재옥 의원을 당선시킨 광역비례의원 선거를 도왔다. 개봉동에서 보문동까지 출퇴근하는 건 참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때 되면 나오는 맛나는 밥을 먹으며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해내는 건 보람찼다. 당시 사무총장이자 서울시지부장이었던 노회찬은 서울시 선거를 별로 챙기지 않아서 서거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진 일이 몇 번 있었지만 말이다.

 

이 당시 가장 기억나는 건 두 가지이다. 홍보담당자를 도와 공보물 운송 상황실 역할을 했었던 일이다. 인쇄소에서 출발한 공보물이 각 지역조직에 제대로 전달되어 선관위에 제시간에 제출이 되었는지 일일이 확인했었다.

 

또 하나는 선거차량이 돌아다니면 틀어대는 선거 방송 녹음이었다. 인맥으로 목소리 좋은 사람을 하나 섭외했는데 목감기가 걸려버린 것이었다. 파란꼬리가 긴급 출동해서 선거 방송 녹음을 했다. 파란꼬리는 그 후 몇 차례 공직선거에서 비전문 성우로서 민주노동당에서 사용한 차량용 선거 방송 녹음을 했다.

 

2002년 전반기에 노회찬은 말걸기가 일하던 부서에서 내버려지도록 방관했는데 이재영이 줏어갔다. 그래서 지방선거 후부터 정책위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해 대선 준비는 힘들었다. 여름부터 각자 맡은 분야의 정책/공약을 만들어내야 했다. 당과 친한 단체와 인맥을 바탕으로 정책/공약은 '조직'되었다. 해당 전문가들이 기초 자료를 제공해 주었고 초안을 작성해 준 경우도 많았다. 물론, 당의 핵심 공약들은 당 정책위 멤버들이 직접 관리해서 만들어냈다.

 

이런 작업도 힘들었지만 가을부터 날라오는 질문지는 책상에 쌓였다. 온갖 이익단체들의 질문을 가장한 뻔뻔스런 요구들이 가증스러웠다. 그때 종교계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힘든 일은 TV 토론회 준비였다. 방송국이 하루 이틀 전에 콘티를 확정해서 주기 때문에 이걸 바탕으로 질문-답변 자료를 만들고, 심지어는 후보 교육까지 하려면 세빠진다. 그러다가 11월 말 쯤 되니 국가가 주관하는 TV 토론회 준비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TV 토론회 이틀전부터를 제외하고는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할 때까지 자다가 오락하다 밥 먹다 수다 떨다 하며 놀았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팀플레이로, 스타크래프트는 혼자서 대놓고 했는데 당사를 들락거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책위는 이 엄중한 시기에 논다'고 손가락질 해댔다. 그것들은 여름부터 밤 세워가며 일한 적 없는데 선거운동 기간에만 바쁜 것들이었다. 일도 안한 것들이 꼭 그런식으로 남 욕한다.

 

 

4.

 

2002년 대선 개표하는 날 득표가 많지 않아 기분이 좀 상했다. 그러다가 표 계산을 다시해 보니 노무현도 이회창도 과반을 넘지 못했고 각각 득표수에다 권영길 표를 더하니 50%가 넘었다. 그때 '캐스팅 보트'를 쥐었구나'라며 소수파에게는 이런 '포지셔닝'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날 개표 방송을 하는 TV 앞에서 많은 당 지도부들이 노무현 당선에 박수치면 환호하는 걸 보았다. 심상정도 밝게 웃으며 박수를 쳤는데 왜들 그러는지 의아했다.

 

 

5.

 

어쨌거나 2002년 지방선거 정당특표가 8.13%를 달성하면서 한국 사회가 놀랐다. 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밖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들의 태도는 2004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공손해졌다. 심지어 2003년에 말걸기는 문화연대(사실 문화연대의 힘이 컸다)와 함께 문광부가 발의하고자 했던 법안도 기초부터 고쳐버렸다.

 

이런 변화는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희망만큼이나 불안이 엄습해왔다. 민주노동당의 외적 성장은 놀라왔고 그래서 당 밖의 주사파와 민주노총 제 정파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커가는 정당을 두고 정치집단들이 눈독들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민주노동당은 다양한 이해를 가진 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낼 수 있는 기본적인 룰을 갖추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어떤 정파들도 권력의 상대적 우위를 추구했지 감시, 투명성, 민주적 절차는 부차적으로 다루었다.

 

2004년 의회진출을 이루던 날 10명의 국회의원들이 사고칠 것 생각하면서 아득해 했다. 이들은 성과이자 재난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 그런 불안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들은 터졌다.

 

2004년 국회의원 당선으로 돈이 생긴 민주노동당은 많은 정책 전문 인력을 선발했다. 이는 2003년부터 정책위에서 준비한 기획의 결과였다. 정책위의 각 구성원은 확대된 당 기구로 분산되었다. 그래서 말걸기가 45명이나 되는 정책연구원들 따깔이 역할을 그 해 여름까지 했다. 진짜 자기 똥도 못 닦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문제는 새 지도부가 똥 닦을 휴지도 안 주었다는 점이다. 치사하게스리. 어쨌거나, 이 인간들 중에는 낙하산과 잘못 집어온 쓰레기도 있었지만, 대체로 자기 분야에서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인재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말걸기 따위처럼 당내 국회권력에 대항하기도 했다. 정책위의 적지 않은 구성원들이 당 소속의 국회의원들과 맞짱 뜨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이걸 두고 좌우 제 정파 모두 '정책위라는 정파'의 자기 권력 확대를 위한 행동들로 낙인 찍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정파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을 보위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민주노동당이 망한 진짜 이유 중에 하나이다. '종북주의'는 원인이 아니라 이 따위 것들의 결과일 뿐이다.

 

 

6.

 

2006년 초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에서 말걸기는 김정진 후보 선거 운동을 했다. 후보까지 3.5명 전국 선거를 치렀다. 그나마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선거를 했다.  재밌기는 했는데 좀 힘들었다. 8%의 득표로 낙방했다. 서울에서 김기수 전 최고를 이겼다는 것 하나는 기뻤다.

 

이 선거를 마지막으로 당직을 버렸다. 정책위 의장으로 이용대 당선이 확실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말걸기는 숙청당하기 전에 사직했다. 이용대는 정책연구원이 아닌 정책위 멤버를 모두 숙청했다.

 

두 번째 주사파-국민파 동맹 지도부는 하는 짓이 벌써부터 이상해서 퇴직금을 받아내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사직한 9명을 꼬셔서 퇴직금을 받아내기로 했다. 그러던 중 고발까지 가야할 지도 모른다는 말에 두 명이 빠졌다. 말걸기가 8명치 퇴직금을 받아내는 일을 주도했다. 수 개월 만에 전부 받아냈는데 고발장 접수 시한 1분 전에 통장에 입금되었다.

 

나중에 말걸기와 함께 퇴직금을 받은 이재기가 의정지원단장으로 발령을 받자 주사파들이 돈 없는 당에서 퇴직금까지 받아낸 놈이 당직을 수행해서는 안된다고 지랄을 했다. 그때 주모자가 말걸기라고 해주지 않아 기분 나빴다.

 

 

7.

 

2006년 당직이 없던 말걸기는 가을에 지역위원회 좌파테이블에서 이런 저런 일을 했다. 사실 '논의'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2007년 지역위원회 선거에서 좌파블럭 공동선본 선거본부장 역할을 해서 지역위원장, 부위원장 등을 당선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당시 지역위원회 구도는 참 우스웠는데 좌파는 지역위원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협상의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일산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던 말걸기와 파란꼬리에게 그 선거는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한 지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정치활동이 되었다.

 

 

8.

 

2007년 봄에는 잠시 레디앙에서 민주노동당 출입기자로 있었다. 주로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심상정을 취재했었다. 심상정 선본이 말걸기에게 어처구니 없는 짓을 여러 번 해서 심상정에 대한 감정이 더 안 좋아졌다. 제일 짜증나는 건 말걸기가 정책위 출신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노회찬을 지지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상대하는 점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선 후보로 권영길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당원인 출입기자더러 심상정은 지지하지 말라는 심상정 선본의 메시지로 알고 안티-심상정이 되었다.

 

2007년 여름 일산으로 이사한 말걸기는 한 번도 고양시위원회 행사에 나간 적이 없었다. 새로운 정치적 관계를 만드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9.

 

2007년 대선 전부터 분당 얘기가 돌았다. 분당의 이유가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실제로 진행이 되면 적절한 수준에서 힘을 실어주기로 맘을 먹었다.

 

그러나 막상 대선 후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대두되자 실로 짜증이 났다. 그러던 중 권영길은 지역구 재선을 위해서 대선 후보가 되었다는 걸 스스로 고백했고 심상정이 지명한 비대위원들을 보고서는 적당한 때 탈당하기로 맘을 먹었다.

 

어느 날 이재영이 전화해서 집단 탈당하자고 했고 1월 21일부로 함께 탈당을 했다. 집단탈당하자고 꼬셨던 인간들 모두 말걸기에게 탈당 후 뭐 어떻게 하자는 얘기를 한 마디도 안 했다. 뭐냐, 이거. 신당 하자는 거야 그냥 해산하자는 거야 뭐야. 혼자 궁금해 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조현연에게 전화했더니 그제사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대충 분위기 파악했다.

 

 

10.

 

민주노동당은 말걸기에게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아주 값진 선물도 주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민주노동당 지역 활동과 중앙당직 수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말걸기는 이 만남에서 '신뢰'를 경험했다. 정치적인 신뢰이자 인간적 신뢰였다. 또한 이들과의 만남에서 입장차를 조정하는 방법과 협력을 경험했다. 실로 값진 날들이었다.

 

블로그에서 만날 수 있는 della, 다섯병, 행인, 간장공장, Tori, Neo 등 정보운동가들, 그리고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에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당내의 훌륭한 정치활동가들도 많다. 이들은 활동의 무게에 따라 가까와지거나 멀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쉽게 신뢰가 침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11.

 

2008년 2월 3일, 민주노동당은 말걸기가 청춘을 바친 것 치고는 초라한 결말을 맞이했다.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말걸기와 진보정당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동지 파란꼬리도 2월 4일로 민주노동당과 완전히 인연을 끊기로 했다. 파란꼬리는 말걸기의 청춘을 진정 슬퍼해 주었다. 감사한다.

 

 

12.

 

지난날을 돌아보니 말걸기는 여전히 진보정치활동을 하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조만간 신당파 쪽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그들의 요구와 말걸기의 지향이 일치하는 지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물론 말걸기는 올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신당쪽 일을 해도 조금만 하게 될 것이다. 아예 하지도 말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이 신당도 10년 내에 내홍을 겪을 테니까. 스탈린주의자들과 신좌파 사이에서.

 

 

덩야핑님 따라하기

 

뎡야핑님의 [덧글 박스 크기 조정 & 그림 넣기]에 관련된 글.

 

 

말걸기도 덩야핑님의 가르침을 받아 덧글폼에 사진 한 장 올려보았습니다. 헤헤.

덩야핑님께 감사.

그리고, 선진적으루다 따라하신 당고님께도 감사.


 

2006년 여름 동경 북쪽의 닛코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한국에는 없는 화산지형이라는군요.

아래는 원래 사진입니다. 클릭해서 크게 보세요.

 

 

 

역사적인 날

 

2008년 2월 3일은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샴 쌍동이 분리 수술'을 하기로 확정할 테니까.

 

 

 

지난 주초에 주사파-국민파 동맹은 당대회에 참석하는 자파 대의원들에게 지침을 하달했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조직에 대한 해체촉구 결의"를 안건으로 제출하는 등의 액션을 보였고 이와 함께 민주노총, 전농 등도 공개적으로 비대위의 혁신안을 비난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반전되었는데 금요일에 심상정 비대위가 최종 안건을 공지한 후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것은 심상정/노회찬-주사파/국민파 간의 모종의 협상이 타결된 증거라는 얘기가 '나름의 근거'를 갖고 돌고 있었다. 그래서 2월 3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비대위 혁신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D-1일인 2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니 주사파들(다함께 포함)이 당대회 안건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사실상 비대위 혁신안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 반전의 반전을 보여준 지난 1주일이었다.

 

1999년 여름 63빌딩. 민주노동당이란 당명이 제정된 창당발기인대회보다 더 다이니막한 순간이 2월 3일 당대회에서 벌어질 것이다.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말걸기는,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최기영, 이정훈은 징계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는 주사파의 주사파다운 행위에 대한 단죄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있어 의미가 있다는 행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은 그 자체로 '사기'에 가깝기도 하다.

 

27일 공개본이건 2월 1일 최종본이건 간에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에 대한 말걸기의 비난의 핵심은 이것이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진보진영의 본래적 특성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안건지의 차이에 주목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안타깝다. 이들은 두 본 사이에서 미세한 차이가 난 이유가 심상정과 주사파의 '협잡' 때문이라고 보고 그래서 무척이나 실망하는 듯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심상정과 노회찬이 민주노동당이 깨지는 게 싫다면, 혹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주사파랑 긴장 속 협력을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정치란 원래 그런거야'라고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다.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도 없이 어떻게 공존을 하는가? 혁신안이 누더기가 되건 말건 양쪽이 어느 정도 주고 받는 수준으로 당대회에서 통과되어야 양쪽은 공존할 수 있다.

 

심상정과 노회찬은 다음 총선까지는 민주노동당 이름 파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들은 이미 '기성 정치인'이기 때문에 사실 진보정당과의 관계도 정치적으로 계산하면 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이해 관계는 더 이상 '이념'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재 둘 사이의 차이는 있다. 심상정은 '비대위 혁신안 부결은 곧 비대위 불신임'이라고 발언함으로써 당이 깨질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반면 노회찬은 열심히 주사파와 공존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이 쪼개져도 당분간은 주사파와 동거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비대위가 운동권들의 진짜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이유는 혁신안으로 포지션 잡는 게 중요했지 진짜 혁신이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심과 노의 이해관계는 민주노동당 내 혁신파들과 다르다(그래서 심빠들과 노빠들을 혁신파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정파로 따지자면, 민주노동당 탄생의 가장 큰 공로자들,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가장 유연했던 이들, 민주노동당에서 주사파와 가장 비타협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이들인 옛 진정추 일파들이 혁신파의 큰 기둥이라는 건 아이러니로 보인다. 자기들이 만든 당이 주사파에게 넘어가는 꼴을 견딜 수 없기도 할 터이고, 당을 만들고 성장시킨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도 가장 잘 알고 있어 민주노동당 혁신에 주목한다면 이해가 가긴 한다.

 

이들은 아직 민주노동당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좌파라면, 같은 당을 하건 다른 당을 하건 주사파와는 '진보진영'을 두고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 혁신파들은, 민주노동당에서 노력했어야 하는 걸 하지 않았는데 밖에 나갔다고 잘 하겠냐고 신당파를 비판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들의 비판은 옳다.

 

다만, 샴 쌍동이마냥 몸이 붙어서는 서로에게 주먹질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외면하고 있다. 혹은 주사파는 한국 현실에서 진보진영에게는 '관리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들과의 대등한 공존의 룰을 찾고 있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한편 신당파들이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을 메인 타이틀로 삼아버려서 그들도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 만큼이나 '사기'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민주노동당에서 주사파-국민파 때문에 막혀버린 일들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상 '종북주의'에 목메고 있다는 건, 처음 당대회 안건이 공지되었을 때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가 최종 안건이 공개되자 격렬하게 비난하는 오바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비전'을 이야기한다. 지금 진보정당의 비전 제시는 민주노동당의 오류를 낱낱이 파헤침으로써만 가능하다. 왜냐면 21세기 진보정당의 현신은 사실 상 민주노동당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정당의 잘잘못에서 비전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패권주의는 주사파가 만든 게 아니고 운동권 자신이 만든 것이다. 운동권은 줄곧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을 추구했다. 운동권 내 권력 감시 요구는 권력을 차지한 좌파도 깔아뭉갰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민주노동당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국회의원 10명 만든 것이다. 그들은 당내에서 감시 받지 않았다. 2004년 의회 진출 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이들이 민주노동당이 받는 기대 대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은 이들을 통제할 의사가 없었다. 왜? 각 정파의 대가리거나 끄나풀인 이들 하나가 다치면 정파 간 공생 구조가 파탄 나니까.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적지 않은 전진의 일원들, 특히 당직에 복무한 적 있는 이들 중에는 주사파에게 아주 열심히 협력했던 이들이 있다. 이런 협력은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주사파들은 통일에 대한 입장에 예민하니까 이들의 통일론을 알아서 당론인 것처럼 만들어주는 행위들이다. 당론이 바뀌려면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건 무시해 버린다.

 

신당파의 다수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건 아니지만 신당파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반성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샴 쌍동이 분리 수술이므로 그들에게 힘을 싣고자 할 뿐이다.

 

 

 

2월 3일은 민주노동당이 둘로 쪼개지는 결정이 내려지는 날이 될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종북주의' 갈등으로 빚어진 것이라 안타깝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념적 지향이 다르면 다른 정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실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물론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약간 수정되어 통과되고 이에 대해 '심사숙고'를 한 심상정이 그래도 'GO'를 외치면서 민주노동당의 혁신의 길이 가 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건 신당파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신당파는 심상정 비대위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냄으로서 더욱 자기 입지를 약화시키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있다. 심상정/노회찬과 혁신파를 분리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액션도 취하지 못하는 무능을 처음부터 발휘함으로써 멀지 않은 미래의 동지들과 틀어질 짓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상정 비대위가 'GO'해도 총선 후 당권 선거만 지나면 혁신이고 뭐고 다 끝나게 돼 있다. 이때를 지나 탈당하는 사람들은 더 큰 배신감과 좌절감으로 민주노동당을 떠날 텐데 이들과 함께 해야 할 신당이 집이나 제대로 짓고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