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한방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들어서 죽은 것처럼 보였던 식물이

싱싱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별 카드는 하루님이 다시 비상할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 정말 다시 비상할 수 있기를~

 

수요일 아침에 병원전화번호를 얻어서 문 여는 시간을 알아낸 후

밤새 아팠던 엄마와 또 밤새 아팠던 은별이를 태우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는데....

외길 맞은 편에서 오는 차를 피하다가 옆 도랑에 빠졌다.
 

단어와 문장으로만 보면 별 일 아닌 것같아 보이는데

암튼....아직까지 그 순간을 잘 기억할 수가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차는 우지끈 내려앉았고

앞 유리가 깨져있었는데...

그 금간 유리 사이에 은별의 머리카락 몇 올이 박혀있었다.

은별이가 유리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그날 이후 얼마나 자책을 했는지.

평소에 꼬박꼬박 매던 안전벨트도,

평소에 꼬박꼬박 갖고 다녔던 카시트도,.

항상 앞자리에 아이는 안 태우는 경각심도

그 날은 어느 것 하나 없었다.

 

동네 아저씨들이 밧줄을 연결해서 차를 도랑에서 빼주셨다.

그런데 차를 빼고 나니 엄마랑 은별이가 없었다.

일행 중 한 아저씨가 병원으로 데려가셨다는데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를 알 수 없는데 그 아저씨는 핸드폰도 없다고 한다.

그룹홈 선생님들이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서 범퍼가 내려앉은 차를 운전해주셨다.

병원에 가보니 아무도 없다. 은별이 이름을 대니 진찰실에 있다고 했다.

진찰실에 들어가보니 엄마가 진료중이었고 은별이는 팔짝팔짝 뛰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지금 뭐 찍는다고 해봤자 나오는 거 없으니 그냥 가서 12시간 살펴보라고 하셨다.

 

제주도로 수련회를 갔던 남편은 전화를 받자 마자 떠났는지 곧 집에 돌아왔고

나는 은별이 옆에 누워서 은별이가 어떤지 보고 또 보았다.

은별에게 "많이 놀랬어?" 하니 많이 놀랬다고 했다.

머리 부딪칠 때 많이 아팠어? 하니

헬로 키티가 나타나서 운동화를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

(이건 이상증상일까, 걱정하고 있는데)

"엄마, 나 운동화 사주라~~"

하더니 지금까지 헬로키티 운동화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정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평소와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엄마는 내가 제일 걱정이라고 하신다.

그 차안에서 유일하게 안전벨트를 맨 사람이 나였는데

엄마는 "쟤가 지금 얼이 빠져있는 것같지 않아?"해서

괜찮아, 그러지마. 하곤 했는데...

오늘 아침에야 의료보험카드랑 <스토리텔링> 책이 약국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별이 예방접종 때문에 아기수첩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기억을 더듬더듬 해보면서 한 곳 한 곳 확인해보니 약국에 있었다.

엄마 말 처럼 지금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듯.

남편은 못마땅한 듯 보이는데 말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

 

어제 대학원 가는 길에 전철역까지 태워다주면서도

별 말은 없다가....그냥  "괜챃아?" 물어봐서 응, 괜찮아 대답은 했는데

아무튼 전반적으로 저기압이다.

엄마는 이제 절대 내 차는 안 타겠다고 하신다.

내가 '버스 타고 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했더니

"니가 운전하는 차 타면서 가슴 콩닥콩닥 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더 낫다"고 하신다

단호하시다.

 사고가 났던 수요일에 새언니가 안부전화를 했길래

사고 얘기를 했더니

"아니, 운전 잘하고 다닌다고 대견해서 전화했는데 웬 일이예요?" 하고 놀라셨다.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믿음들이 한 방에 무너졌다.

 

남편은

어제도, 오늘도 차를 타면 항상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한다.

"맞은 편에 차가 오는데 어떻게 할 줄 모르겠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

"시야가 확보가 안되어있을 때에는 천천히 가야해"

"급경사에서는 꼭 속도를 줄여"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 번의 사고로 이제 모든 게 다 걱정스러운 듯.

차곡차곡 쌓아올린 신뢰와 믿음은 이렇게 한 방에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한방에, 그러니까 갑자기

"엄마, 함박눈(한방눈)은 '한방에 많이 내려서 함박눈(한방눈)이야?'"라고 물었던

하은이가 생각나네.

어제 하은이가 성적표 나왔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나 다 성취했대"라고 하는데...

70점대가 많았다.

잘했네~ 하면서 웃어주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하은아 나눗셈이 어려워?" 하니

하은이가 발끈하며

"나 나눗셈 잘해, 세개밖에 안 틀렸어!"했다.

그래 그렇지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럼 되는 거야. ㅋㅋ

공부를 봐줘야하는 건가... 

 

시들어서 죽은 것처럼 보였던 식물이 싱싱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듯이

텅빈 마음에도 다시 생기가 돌아올 것이고

나는 다시 비상할 것이다.

운전도 다시 잘 하게 될 것이고.

차는 오늘 돌아온다고 한다.

리경이라면 또 이러겠지. "아, 가여운 차~"

주변에 4차원들이 많아....

 

오늘은 영진위 제작지원 마감일인데

나는 손도 대지 못했고 사무실 동료들만 밤을 샜을 것이다.

이런 건 좋지 않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은 어떤 의욕도....내 안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냥 몇일 푹 잤으면...하는 바람만.

 

어제 수업이 끝난 후 온수역까지 걸어가면서

새로 시작할까, 말까 망설였던 일을 그냥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 10여년동안  고립에 대한 공포, 도태에 대한 두려움을 등짐처럼 지고 살아왔다. .

그래서 맡겨지는 일들을 거절못하고 지내왔다.
새로운 일이 맡겨질 때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쓰임이 있는 사실에 기뻐하며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했던 것같다.

일을 맡고 나면 잠을 줄였다.

수업준비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집중을 요하는 일을 할 때마다

'이 일을 맡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같아'  후회하면서도

또 성취를 하고 나면 기뻐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불가능해보이던 일이 가능해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점점 더 많은 일들을 당연한 듯 떠맡았다.

가끔씩 사람들이 내게 글을 맡기며

"너는 빨리 쓰잖아..." 하면 말문이 막히곤 했다.

아,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구나. 내가 그 글을 쓰려고 잠을 얼마나 줄였는지를....모르는구나.

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쥐어짜면서 일을 이어왔다.

 

그런데...수요일 사고 이후 은별 옆에 누워있자니

팽팽하던 고무줄이 탁 끊어진, 그런 절망, 또는그런 편안함이 나를 감쌌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엄마가 우울증이 오면 몇날 몇일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때.....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가끔, 아니 자주, 몇날 몇일 아무 것도 안한 채 그냥 누워만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뻐꾸기님이 가끔 내게

"하루, 그러다 쓰러진다. 등산을 하든지 춤을 배우든지 자기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면 어때?"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갖고 있는 것같은데. 나를 위해 영화도 만들고 나를 위해 아이들과도 놀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낸 적이....한 순간도 없었다.

지난 주부터 몇 번의 경고는 있었던 같다.

사고가 날 뻔하고, 다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하지만 다시 또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견뎠고

그리고 ....

하지만 이번 주에는 아무래도 일이 너무 많았던 것같다.

2시쯤  은별의 병간호를 하다가

4시쯤 은별이 잠든 후에, 다시 잠을 잘수가 없었다.

다시 잠이 들어서 못 일어나면 하은, 한별의 도시락을 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앉아서 부탁받은 영상물의 구성을 고민하다가

수요일 수업 준비를 하다가 도시락을 쌌고

하은과 한별이를 데려다주고 다시 와서

수업준비 때문에 스탈린과 홉킨스의 회담장면을 찾다가

병원 문 열 시간이 되어서

은별이와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다가 사고가 났다.

 

이제 그 순간이 기억난다.

이 쯤되면 차가 멈춰야하는데, 분명 나는 브레이크클 밟고 있는데 차가 움직였다.

순간, 내가 지금 착각해서 액섹을 밟았나, 의아해하며 발을 옮겼고 그리고 꽝.

비가 온 다음날이라 길 끝의 흙이 약해져있었을 거라고 선생님들이 말해주었다.

어쨌거나 운전 미숙이었다.

첫날은 내내 은별이 걱정을 했고 둘째날은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 가니 대학원 언니들이 걱정을 해주며 또 야단도 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어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서

다시 집으로 전화를 해보고, 은별은 어떤지 또 확인하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자 한별의 예발접종 마감이 이번 주라는 게 떠올랐고

그러다 아기수첩과 의료보험가드와 수업교재들이 몽땅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한 거다.

정말 이건 좋지 않다.

5월 상영 때문에 건강가정지원센터에 단체자격증을 팩스로 보내야하고

배급지원신청 때문에 바뀐 주소가 적혀있는 신분증 사본을 보내야한다.

어린이날 휴일 때문에 이번엔 꼭 지켜달라는 글의 마감이 월요일이다.

아직 영화도 보지 못했는데.

4월 9일부터 예약해두었던 <엄마를 부탁해>를 드디어 빌릴 수있게 되어서

한예종에도 갈 계획이었고

내일은 상엽의 결혼이고

또 오늘은 대학원 엠티다.

...............

 

어쨌거나....

나는 다시 비상할 거다.

별카드가 알려주잖아.

지금은 주문이 필요할 때.

 

그런데...

지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