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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 중

1.

상영이 뜸해서인지 리뷰가 별로 안 올라오네.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제주여성영화제 분이 영화를 본 후 한마디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참 좋았는데..."라고만.

아, 네....

그래서 리뷰도 잘 안올라오나..

뭐 농부가 항상 풍년만 맞을 순 없으니.

오늘 검색해서 찾아낸 감상

류미례 감독의 '육아무용담' !

호호.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군요~ 감사.

 

2.

토요일 저녁에 하니샘이 오셨다.

남편은 내게 "하느님은 항상 우리에게 천사만 보내신다"라고 자주 말해주곤 한다.

이번 사고가 났을 때에도 한숨을 쉬고 며칠 말수가 줄긴 했지만

"운전 시작하면 한 번쯤 사고가 있으니까 액땜이라고 생각해.

그 사고가 이만하다니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사건도 항상 그분의 뜻에 따른 거라는 걸 믿어야 하는 것이다.

 

토요일, 굵은 빗줄기를 뚫고 서울에서 하니샘과 공부방교사들이 왔다.

전날 엠티팀들이 두고간 밥과 술이 환호 속에서 해결되었다.

밖에선 천둥 번개가 쳐도 집 안에 들어앉아 저수지를 보며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며

아이들, 새로운 교사, 우리가 아끼는 한 교사의 실연, 소개팅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등등

화제를 바꿔가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풍경과 함께 마음도 젖어갔다.

촉촉하게.

 

하은, 한별이 학교에 가야해서 상엽의 결혼식엔 가지 못했다.

오후에 푸른영상의 선배들이 모두 모였다는 소식에 살짝 아쉬웠으나

지금은 먼 데에서 누군가들을 만나 안부를 묻기에는 표정관리가 안될 정도로 에너지가 딸린 상태.

그래서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들로만 그리움을 달랬다.

상엽, 행복해야해. ^^

한별과 은별의 기침 때문에, 그리고 하니샘과 있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바람을 따라

교회를 가지 않았다.

일요일 오전을 집에서 보내본 게 얼마만인지. 결혼하고 처음인 것같은데.

비는 그치고 공기는 깨끗했다.

집앞에 큰 화훼단지가 생길 거라는 얘기를 듣고 하니샘이 부추를 옮겨심자고 하셨다.

수도 옆에 작은 밭을 만들고 거기에 부추들을 옮겨 심었다.

땅을 일구면서 파낸 돌들로 경계를 만들고 \

고랑을 파서 밑거름을 뿌리고 부추를 심고 윗거름을 뿌리고 그리고 물을 주었다.

물은 은별이가 줬다.

 

뒷산의 진달래를 따고 저수지 둑길에 난 쑥을 잘랐다.(캐지않고 가위로 싹둑싹둑 잘랐다)

순한 순돌이가 묵묵히 따라다니다가 내가 앉으면 옆에 앉고 내가 걸으면 함께 걷는 걸 보며

아이들은 정말, 참, 많이 부러워했다. 

어린 나였다면 부러워했을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음. 

순돌에게 더 잘해줘야지  :)

보리밥을 먹고(애들이 너무 행복해해서 나는 두배로 행복해졌다)

집앞 고등학교에 가서 봄꽃 구경을 하고 강화읍까지 배웅을 했다.

하느님은 정말로, 항상, 내게 천사만 보내주신다.

그 천사를 맞기 위해 교회를 빠졌답니다. ^^

 

 

마음 밑바닥에 퇴적층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그 천사들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천사라고 부르며 애써 잊으려 용서하려 노력하는 그들에 대한 기억을.

금요일 밤, 대학원 동기 언니랑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언니가 나중에, 천천히, 더 얘기를 해보자고 하며 안아주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것이었다.

다른 언니가 지하철과 버스에서 치한을 어떻게 물리쳤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도 옆에앉은 언니한테 지하철에서 내가 겪었던 사건 몇 개를 가볍게 꺼냈을 뿐이다.  

시작은 그랬는데...

다른 언니가 갑자기 왜 나한테는 그런 일이 그렇게 많이 일어났는지를 궁금해하고

그래서 김형경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다가 좀더 깊은 기억들이 불쑥 솟았다.

규칙처럼 반복되던 사건들.

집요한 구애, 받아들임, 헌신, 싫증, 새로운 연인, 그리고 이별. 

비슷한 상담사례를 얘기해주며 한 언니가 그랬다.

"남자들한테 너무 잘해주면 안돼"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 환상을 가졌던 게 나의 실수라면

그 댓가들은 항상 너무 혹독했던 것같다.

아이라는 존재는 그래서 내게 축복이다.

내가 너를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해서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게 '모성'이라는 게 차고 넘쳐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이 그래서이다.

아이들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사랑해도 싫증을 내지 않으니까.

이 존재들을 만나기 전까지 나의 사랑은 항상 배반당하며 피투성이가 되어 버려지곤 했었다.

 

전경린이 어떤 엄마의 입을 빌어 말한다.

"이 지상에 따로따로 떨어져 착륙하는 것. 사랑은 그런 거야.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때 함께 있든 헤어져있든

무사한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결국 끝이 나.

삶은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 사는 거거든"

 

그 엄마의 딸이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평생 계속될 것만 같이 단단히 뭉쳐서

희끗한 형체의 유령처럼 등 뒤를 따라다닌 감정의 응어리도

때가 되면 결국 재처럼 부서져 흩어지겠지.

단 둘만의 달나라를 보았던 동질성 조차

겨우 이 년 혹은 삼 년 정도면 무화되고 타인이 되는 것이다.

진짜 상실의 아픔은 그것이다.

평생 계속되는 감정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의 열정보다 인간의 도리로 사는 건 안락하다.

나는 지금 안락하다.

그러다가도 가끔 기억은 준비되지 않은 내게 과거의 시간을 불쑥 불러내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불쑥 눈물을 흘린다.

언젠가 나는 노량진에서 사무실 식구들과 술을 마시다,  버스를 잘못 타서 중간에 내렸다.

그 정류장 맞은 편의 골목은, 내가 항상 외면하던 곳이었다.

오래 전 나는 그 골목에 살았던 누군가를 사랑했었고 그 사랑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습관처럼 이별을 맞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죽을 듯이 괴로웠지만

정말 2년 혹은 3년 정도가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아마 앞으로도  긴 시간이 지난 후, 술기운에 젖어

버스 정류장 불빛 아래서 찬 바람을 맞으며 그 정류장의 건너편 골목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 때 그랬던 것처럼 뱃 속 깊은 곳 어딘가가 짜르르 아프거나

불쑥 눈물이 흘러넘칠지도.

열정의 습관은 그런 식으로 흔적을 남기니까.

 

기억하기를 거부하며 살다가

불쑥 솟아나는 기억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건

괜찮은 건가, 괜찮지 않은 건가?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그리고...기억은 선택되어지는 거라고 믿고 싶은데....

 

오늘 문득...

몸이 너무 피곤해지면 눈가나 입언저리가 부어왔던,

10대 이후에 습관처럼 따라다니는 내 병처럼

(그 때 의사는 그건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몸이 피곤해서 저항력이 떨어지면 바이러스가 뭉쳐서 그런  거니

푹 쉬는 것으로 저항력을 키우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해주었다.)

 

마음이 너무 지친 상태라서 바이러스같은 기억들이 나를 공격하는 거라고

그리고 내일이면 괜찮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무엇보다 하니샘이, 나의 어떤 사연도 모르는 하니샘이

함께 땀흘리며 "내 친구는요 고립감이 너무 심해서 꽃을 가꾸기 시작했어요"라며

내 상태를 아는 듯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주고 가셨고

순돌이와 부추들과

내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잖아.

그러니....그냥 바이러스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런 거지.

그렇지 않아?

나는 다시 차오를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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