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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을 높여 또 다른 그의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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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을 둘러싼 내 또래, 실은 좀더 지긋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의 공감과 회상에 맞닥뜨릴 때마다 한편으론 끄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한 서사들은 이미 '어른'이 된 이들의 '아련한 기억'의 형태를 띠곤 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도 시큰둥해지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90년대의 경험은 음울함과 분노와 신경증에 휩싸인 것이었다. 한국의 90년대가 일정한 시차를 지닌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전지구적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90년대는 아련한 기억으로 떠올릴만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고통이었다. 물론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실존적 고뇌에 보다 가까운 것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개론' 수업을 듣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었지만, 그때에도 90년대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해 준 또 하나의 사건이 2002년 4월, 레인 스테일리의 죽음이었다. 애꿎게도 그의 사망추정일은 94년 4월 커트의 사망추정일과 꼭 같은 4월 5일이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났지만, 레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번 나의 90년대는 또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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