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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9/17
    빠뜨린 <인어공주>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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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9/12
    심수봉 콘서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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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9/10
    하루에 영화 두 편, 오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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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9/08
    요번 주 수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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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9/07
    이후,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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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9/05
    '오늘 수업'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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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9/01
    오늘 수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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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8/25
    연애하는 금순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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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8/17
    우리의 사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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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8/16
    네 개의 서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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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뜨린 <인어공주> 이야기

젊은 연순의 생활.

연순은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 쯤의 여자.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가족이라면, 부모의 모습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고, 도시로 유학간 동생이 유일한 듯. 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비와 동생 학비를 버느라 생빠지게 고생하고 생활고에 지친 모습이 아니다.

돈을 버느라 여기저기 눈치 보는 곳도 없고, 일 하고 싶을 때 일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빠져 사랑에 열중하고, 파전을 한 번 부치면 동네에 죄다 돌리고, 나그네도 몇날며칠 재워주고 먹여주고.

 

그녀의 경제력은,

1. 넉넉한 집 한 채가 있다.

신을 신고 들어가야하는 어두컴컴한 부엌(과 신을 신고 들어가야하는 어두컴컴한 화장실)이 흠이랄 수 밖에 없긴 하겠지만, 마루 양 쪽에 방 두 칸, 넓직한 앞마당이 있는 넉넉한 집.

2.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먹고, 물질을 하여 돈을 마련한다.

(물질하는 그녀)


(오, 쭉 뻗은 다리 봐라.)

 

집은, 아마도 그녀 부모의 부모의 부모부터 그냥 죽 살던 집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집 옆의 빈 땅에 나이가 되어 독립을 준비하며 몇 년을 걸쳐 흙을 올려 지은 집. 평당 얼마짜리가 아니라 그냥 아침에 밥 해 먹고 낮을 보내고 밤되면 몸 누이는.

 

뭔가 원초적 자연스러운 모습, 전문가랍시고 째진 오징어 눈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오징어 발로 그래프를 그려대고 성장률이 어쩌고 실업률이 어쩌고를 터진 입으로 질질 먹물을 흘려대며 꾸역꾸역 뱉어낼 필요, 대체 뭐 있겠는가(오징어한테는 미안하지만, 최근 읽었던 <포항>이란 단편에서 따온 은유임).

세계화란 똥물 이론이 어찌 나오겠는가.

 

학교 다닌 적 없고, 나이도 파랗게 젊은, 한 여자가 싱싱한 그 생명력 그대로, 거칠 것 없이 사는 그 모습이 환타지.

거기에 잠시 취했었다.

(물론 지금 쓰는 글의 내용에 맞기에 사진을 올리고 있긴 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전도연이 정말 예뻐. 자꾸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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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콘서트


 

한 때 노래방에 가게 되면 '미워요'를 불렀었다.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 내가 노래방에서 마이크 붙잡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좋아하는, 좋아했던 노래들이다. 심수봉의 '미워요'도 정말 좋아했었다. '그 때 그 사람'도 가만 부르고 있자면 가슴이 울렁한다. 명곡인 것 같다. 국민가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그녀의 곡이고, 생각해보면 심수봉은 훌륭한 뮤지션인 것 같다.

 

'음악에 관한 한' 나의 스승인 나의 남편은, 그가 음악(과 영화)에 관하여 여러가지 점 영향 받았던 한 사람(이미 고인이 되신 그 분의 명복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빕니다.)이 좋아했던 뮤지션 중 하나가 심수봉이었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었다. 사실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심수봉은 정말 훌륭한 뮤지션인 것이다. 

 

심수봉 콘서트 티켓이 생겼다. 오만원 씩이나 하는 표 두 장이.

민우회 후원콘서트라서 내 돈 주고 사야할 것인 것을.. (언젠가 십만원 짜리 두 장 사는 날이 오겠지.) 하여간에 이게 왠 떡인가.

어린이는 7세부터 관람이 가능하다고 표에 써있었지만, 딱히 맡길 데도 없고, 평소 라이브 콘서트 비디오를 보며 콘서트 관람자세를 익혀온 터라 규민이도 데리고 일찍 집을 나섰다.

 

이번 민우회후원콘서트는 심수봉 단독 콘서트가 아니라, 심수봉/김범수 콘서트였다. 김범수가 누구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이 사람 싼 맛에 불렀나보다. 심수봉 먼저 하면 심수봉만 보고 갈까봐 김범수가 먼저 나올 것 같은데, 그럼 심수봉 때까지 어떻게 참냐, 했는데, 왠걸 심수봉이 먼저 나왔다. 앗, 다행.

 

아, 이런 조명, 이런 라이브, 5년 전 쯤에 '차게&아스카'공연를 공짜표로 본 거 이후 처음이다. (과부 딸라빚을 내어서라도 부에나 비스타 쏘셜 클럽 공연을 봐야 했었다.) '차게&아스카'라니??? 어리둥절한 이름이시겠지만, 나도 어리둥절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가수인데도 공짜표 맛에 갔었다. 일본의 조용필급 가수라더니, 정말 수백명의 일본사람들이 올림픽공원까지 이 공연을 보러 왔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가수라 그냥 대충 앞대가리만 보다가 나올 심산이었는데, 왠걸 끝까지 손뼉치며 잘 봤다. 차게와 아스카 두 사람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열심히 노래하는 데 감동하였다. 같이 봤던 남편은 그 후로 이 두 사람 노래를 엠피쓰리 다운 받아 듣고다니기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다 감동하기 마련이라는 교훈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있다. (남편은 그로부터 몇년 전 에릭 클랩튼 공연을 거금주고 보러갔었는데, 좀 성의 없이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실망했었던 경험이 있어, 이 날 차게&아스카의 교훈은 더욱 빛이 난다.)

 

역시 '그 때 그 사람' 첫곡. 아, 가슴을 울린다.

이런 노래를 갓 스무살 처녀가 만들다니.  

그리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 노래에 대해 좀 외설스런 이야기도 있던데, 그런 뜻은 아니에요. 실제로 제 친척분 중에 누가 외항선원이었어요. 그 분 배타러 가실때 부부를 제가 인천항까지 태워드린 적이 있는데, 인천항에서 남편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에 신도림까지 그 부인이 우시더라구요. 그걸 보고 만든 노래에요." 창작자는 이래서 부럽다. 그 순간, 그 감흥, 손으로 만들어 남기다.

"그러니 외설스러운 뜻은 아닌데, 아무튼 좋습니다." 외설스러운 것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좋다니, 역시 진정한 창작자는 자기 손을 떠난 창작품 앞에서 겸손하다.

 

이어지는 노래와 이어지는 이야기.

'남자의 나라'라는 노래에 관한. 남편이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가사. (가사를 읊음)

 

남자의 여자로 길들여진 척박한 이 땅

오늘밤도 마음 몇번이나 이별잔을 든다

선녀가 왜 떠났는지 나무꾼은 아직도 모르나...

하루가 천년같이 어이~어이~ 어이~

저 선비 왜 공부했나 사투리 나라 패싸움말고

자손들에겐 인색과 분노도 대물림 마오

---(중략)--

허기진 고독만 미끼처럼 칭칭 감아

이곳은 여자가 노예처럼 묶여지고 부려지는

남자들의 나라다

 

우뢰와 같은 박수.

민우회 후훤콘서트라서 일부러 한 이야기이겠지만, 실상 털어버리고 싶은 응어리였을 것이다. '사랑밖엔 난 몰라'자서전도 냈으니까(그러고보니 내가 심수봉에 관해 많이 아네) 이미 털어버려진 사연들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하면 박수치고 응원해줄 듯한 사람들 앞이라 일부러 맘먹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었을 그 심정이 정말 위로받았기를...

첫째 남편에게 너무 무섭게 맞았던 이야기, 둘째 남편의 언어폭력과 의처증, 세번째 남편은 자기에게는 무척 자상하나 아이들을 때려서 헤어질 결심을 했던 이야기..

 

정녕 훌륭한 예술가는 신의 질투를 사, 삶이 고달플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신의 질투를 받아 삶이 고달플지언정 나의 예술혼을 불태울 예술적 천재성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혼과 천재성을 팔고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눈물과 피는 흐르지는 않는 삶을 택할 것인가(삼십대 후반에 이런 고민).

 

맘먹고 아픈 과거사를 털어놓아서일까,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종종 눈가를 닦았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한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자기가 가장 좋아한다는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다. 이 노래 왠 신파야, 했었는데, 갑자기 좋아졌다. 가사가 정말 평화지향적이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그리고 앵콜송은 '무궁화'.

심수봉씨, 앞으로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노래 감사합니다.

 

김범수로 바뀌기 전 사이 시간에 '민우회 18년 ' 비디오가 나왔다.

민우회는, 아주 짧은 시간의 경험이었음에도 애증이 겹쳐있는 이름이다.

그곳에서의 실망은 다른 곳에서의 실망보다도 열배 백배 얼얼했었다.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내젓고 몸을 확 틀었지.

그러나 '민우회 18년' 비디오를 보고있자니, 지지고볶으면서 저렇게 해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김범수 차례, 무대 양 옆 거대화면에 무슨 사극 드라마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최수종이 오방 오바하며 투구를 쓰더니 여전 오바하는 눈빛, 상대는 누군지도 잘 모르겠지만 계속되는 칼싸움,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아련한 눈빛의 아씨, 아씨의 한숨, 밤길, 최수종과 아씨와의 포옹, 아씨의 고전무용, 이번엔 아는 드라마인 것 같다, 본 적은 없지만, 인기가 많았다는 '다모', 배우들의 표정은 최수종의 오바 저리가라다. 노래는, 어디선가 들었었던 것 같은, 500만번째 똑같은 스타일과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표정 똑같은 가사 똑같은 멜로디..

과도한 얼굴표정의 배우들과, 과도한 액션들, 500만번째 듣는 저 판에 박힌 목소리와 가사와 멜로디의 노래, 이것들이 합쳐져 몽롱한 기분을 만들더니 배멀미를 하듯 어느 순간 토할 것 같았다.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제발 그런 식의 극과 노래는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공해다.

잘 달리던 말들을 수없이 넘어뜨리던데 저런 극을 위해 희생되어야하는 말들에게 너무나 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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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영화 두 편, 오오

이런 날이 오는구나, 가끔은.

 

그 두 편의 영화는,


        

       

 

전도연이 나와서 무조건 보고싶었던 <인어공주>와 아녜스 자우이 감독이 찍어서 무조건 보고 싶었던 <룩앳미>.

 

아, 전도연 너무 이뻐.


 

전도연, 나는 <접속>부터 그녀의 휀이었다.

<접속>은 후진 듯 하면서도 때때로 생각나는, 그래서 아주 가끔 (이 년에 한 번) 다시 보면 그 당시(1990년대 후반) 냄새가 조금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거기서 전도연, 그다지 눈에 뜨이는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두고두고 기억했었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떠올리는 슬픈 캐릭터였기 때문인지, 그녀의 외모가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마침 전도연의 휀인 남자와 내가 데이트를 시작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다음 영화, <약속>은 보지 못했고, 지금도 볼 생각은 없지만, 예고편에서 보았던 전도연의 표정 하나가 여전 기억남. 진료실에서 처음 박신양을 보고 첫눈에 훅 반해버렸지만 자기 감정을 애써 감추려던 그 표정. 그 표정, 참 그럴 듯 했지.

그리고 그 다음 영화, <내 마음의 풍금> 이거 진짜 전도연 영화다. 전도연이 있어서 산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은 뭐 특이할 것 없으면서도 보는 짬짬이 눈물도 짜고, 헤벌쭉 웃고 했던 것이 순전히 전도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인어공주>가 딱 제2의 <내 마음의 풍금>.) 촌스러움을 가장했지만 실상 이래도 이쁘지 않느냐?를 의도한 전도연의 저 분장과 의상, 정말 저래도 이쁜 전도연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으흐흐, 나는 계속 웃음.

<피도 눈물도 없이>, <스캔들>을 아직 보지 못 했는데, 아무래도 전도연 때문에 보아야할 것 같음. <해피엔드>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무리 전도연이래도 살릴 수 없는 꽝 영화. 하지만 <해피엔드>에서 딱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내(전도연)의 불륜을 알고 이를 갈고 있는 남편(최민식) 앞에서, 아직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전도연의 저녁밥 먹는 장면. 남편이 끓여논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한숟갈씩 입에 퍼넣는 그녀. 다리 한 짝은 식탁의자에 걸치고, "콩나물국, 시워~ㄴ하다."라며, 여전 실업자 남편을 꼬나보면서.

이 장면, 나는 감히 한국영화 명장면 베스트 5 안에 꼽겠음.

(괜히 또 하나 꼽는 명장면을 얘기하자면, <오아시스>에서 설경구가 공주(문소리)를 어머니 무슨 생일잔치에 데리고 가서는 밥 먹으며, 먹은 밥의 반은 다시 튀어나오며, 무슨 이야기를 킬킬대며 지껄이던 장면 있잖습니까. 그거. 지금도 자다가 가끔 꿈에 나옴.)

 

<인어공주>는 전도연의 영화다. 그녀가 1인2역을 하면서 극중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연기, 그녀가 내뿜는 매력, 그것 없으면 영화 없었다.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삼 가슴 절절한 것도 없고, 몇십년을 울궈먹은 그 타령이다. 목욕탕 때밀이를 하며, 욕도 잘 하고, 바닥에 침을 탁탁 뱉는 억척 아줌마인 엄마. 빚보증에, 월급 한 번 큰소리치며 마누라 갖다 준 적 없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아빠. 그런 부모가 끔찍한 현실인 딸. 고두심의 연기도 식상하다. 판에 찍어놓은 대로 나열하는 듯한 연기. 밋밋한 캐릭터와 단선적인 스토리.

박해일의 목소리와 선과 악이 겹친 그 얼굴, 그리고 전도연, 이 것이 없었다면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 했을 듯.

 

그리고 연이어 <룩앳미.

<타인의 취향>에 이어 정말 재미있었음.

권력자와 그 주변의 인간들. 그러나 권력자가 정말 그런 식이라면 사랑스럽지 않은가.

나는 사실 그 아버지, 독재자 캐릭터 좋았다. 그의 독설 스타일도 좋았다. 나는 권력도 없고, 원체 소심한 인간이라 그런 말들을 하지 못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직설적이고 싶다. (물론 짜증덩어리는 되지 말고.)

 

까페에서 어떤 소설가와 밥을 먹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시키는 장면

그 권력자인 유명소설가 아버지 : 오, 책도 읽으시나보네.

다가와 말 시켰던 지나가던 사람 : 말이 좀 심하시군요.

권력자인 유명소설가 아버지  :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아요.

 

캬, 올 하반기에 본 영화 중 명대사 베스트 5에 꼽음.

 

그리고, 그런 부녀 관계는 한국에서라면 제법 성공한 관계 아닌가.

 

영화를 다 보고, 같이 본 사람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나온 말,

"난 세바스티앙(딸의 새 남자친구)과 카린(권력자인 유명소설가 아버지의 부인)이 눈 맞는 줄 알았어."

이게 프랑스 문화와 한국 문화의 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보다.

난 정말정말 둘이 눈 맞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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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주 수업

요번 주 월화수는 지난 주 감회를 올렸던 '오늘 수업'과 다른 현장이었습니다.

 

***

여긴 아주 아주 작은 학교였던 지난 주 '오늘 수업'의 학교 보다는 쫌 크다.

이 학교에서는 무슨무슨 교육철학을 보고따라할 교과서로 잡고 있어서 (주먹구구 마구잡이 기분내키는대로 소지가 다분히 있는 방식의) 내 맘대로 수업은 안된다. 생전 처음으로 알게된 그 무슨무슨 교육철학을 덕분에 초스피드로 배우고 있는 중인데, 역시 몇백년 묵은 철학은 몇백년을 살아남은 이유가 있기 마련인지, 이 철학을 배우는 재미가 제법 괜찮다.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인생이 이러하지 않겠는가,(그래서 교육은 이러면 좋지않겠는가)를 만나며 곳곳에서 무릎을 탁 친다. 그리하여 다행히, 내가 속한 조직과 아직은 어떠한 트러블도 맞지않은 채 한 달 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국민학생을 붙잡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무지하게 싫어하였다.

(사실 국민학생이든 누구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다 싫다. 외국어 배우는 일은 좋다. 매력적이다. 그런데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정말 다르다. 당연한 소리지만. 매력적인 일을 하고나서는 고작 이렇게 짜증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가끔 환멸을 느끼곤 했지만, 실상 덕분에 거미줄 칠 뻔한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도 하였으니 할 말 없다. 그리고 이것 아니라면 그 매력적인 일을 어디 써먹을 데도 없다. 내가 그렇게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이 통하고 사기가 통하는 건 이 짓 밖에. 아, 이 심심한 현실. 불어처럼 도태되고 말 것이다. 나의 생활에서 불어는 사어(死語). 이렇게 아까울 데가... 어쨌든 나는 환멸을 느끼는 이 일을 조만간 그만두리라, 조만간 그만두리라, 결심하면서 이날까지 오고 말았다. '진중하게' 일을 맞는 기회에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 결국... 암튼)

처음에 이 학교에 지원한 것도 영어선생 자리가 아닌, 담임선생 자리였다.

여차저차해서 난 그냥 영어선생질 할 수 밖에.

그런데 초스피드로 학습해오던 그 교육철학이, 오, 심오하게도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에서 또한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며 느꼈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확, 호기심이 불 붙는 걸 느꼈다.

실제로 이렇게 매력적일 주 있을지 직접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갑자기 이 일에 열심하게 되었다.

영어선생 노릇하면서 어깨넘어 담임선생 자리를 넘보려던 생각이 휙 바뀌고.

나는 수십가지의 교육자료들을 사고, 복사하고, 제본하고, 찾아내어, 모든 다른 책들을 보류하고 읽기 시작했고, 읽은 걸 다시 보고 고민하고 생각했다. (참 열심이네. 이런 선생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tolerance of ambiguity, 모호함에 대한 인내

머리가 굵어지면서 오히려 언어감각은 무뎌진다.

언어는 곧바로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고, 따라서 뜻을 모르는 단어와 알 수 없는 문법의 외국어는 피곤하다. 그러나 모국어를 익히기 전에 언어는 그냥 소리였다. 뜻을 모르는 단어와 알 수 없는 문법들. 그것을 그냥 받아들임. 관대하게. 긴장하거나 불안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으며. 그러면서 언어를 습득한다. 나로서는 (당연히) 기억하기도 전에 잃어버린 능력이다. 나는 언어 앞에서 뻣뻣하다. 긴장한다. 단어의 뜻을 생각하고 문법을 여기저기 끼워맞춘다. 외국어가 아니라 사실 모국어 앞에서도 뻣뻣하다.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해보다 오해가 많다는 경험 때문에도 그렇고,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잘 듣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도 그렇고, 나이를 먹어가며 나의 언어감각은 기름을 쳐도 유연해지지않는 고철고물이 되어간다. 물처럼 유연했을 나의 언어감각, 볼 수는 없는 것이지만, 어쩐지 아름다웠을 것 같다.

 

콤플렉스처럼 규민 앞에서는 절대로 영어 운운 하지 않겠다는 촌스런 방침도 걷었다. 내가 규민에게 처음으로 들려준 영어는 짧은 동시. 노래로도 부르면서 규민이 학교에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흥얼흥얼, 몇번 했더니 규민은, 거짓말처럼 그 동시를 스르륵 외웠다.

 

아, 정말 맞다, 언어는 아름다운 것, 심오한 것, 본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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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 이후

나, 예전에, 한반에 육칠십명 들어있던 교실 한자리에 앉아있을때, 말도 안되게 산만한 아이를 보면 싫었었다. 나까지 정신없게 만들고, 선생님 말씀하시다가 딴길로 새게 만드는(누구누구 조용히 해라, 누구누구 딴 짓 하지 말아라,란 잔소리 하게하는) 아이들 싫었었다.

난 모범생이었다. 수업시간에 정말 수업내용을 들으며 공부를 했고, 그땐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것들이 없던 시절이라(아, 정말이지 그때 학교를 다녔던 건 천만다행) 그 정도만 해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었다. 성적에 관한 한, 그러니까 '학습수행' 면과  '학습성과' 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나의 학창시절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학교를 되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매번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의미였던가, 싶지만, 하여간에) '학습수행'이 덜 방해받길 바랄 것 같다. 지금도, 내가 다시 학교로 학생으로서 돌아간다면.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존중해주고 싶다. 너는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이 상황이 널 방해한다면, 다른 교실을 마련해줄께. 한 번 하고싶은 껏 열심히 해봐라,라고 그 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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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업' 이후


통합교육에서, 장애아로 인해 비장애아의 학습이 방해되고 학습성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학습이란 단면만 놓고 보면 틀린 소리는 아닐 것이다.

언뜻 나는 이것을 제일 먼저 생각했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데 아이 부모는 무슨 생각일까, 싶었다.

 

뛰어난 학습 성과, 엘리트 지향 의식은 이토록 지배적이다.

12년간 국민교육을 받고, 4년간 고등교육을 받고, 10년간 사회생활을 한 나를 지배하는 엘리트 지향 의식.

 

그래, 니가 걱정하는 게 공부 못 할까,라면, 공부 잘 해서 무얼 하는데?

 

공부 잘 하는 것으로 무얼 의도하고자 하는 건데?

 

(할 말을 못 찾음)

 

물론 지적욕구의 실현이 방해받지 않았으면 바란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지적욕구의 실현은 자아의 충족이다.

착착 진행되는 교과 진도에 맞추어 시험문제 풀기로 뇌와 손을 정비하고 몇명 중에 몇명 당락 선의 이 쪽 안에 들어가도록 노련하게 익혀가는 기술이 아닌 것이다.

그 기술이 사람을 얼마나 잡는다고 한탄해왔던가.

당락 선 저 쪽으로 나가 떨어진 몇명 중의 몇명 뿐아니라 당락 선 이 쪽에 들어간 몇명 중의 몇명 또한 모두 다 잡아 먹고야마는, 그래서 시스템 신봉자나 시스템 낙오자나 만들 뿐이어서 결국에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뿐인 짓거리라고 얼마나 한탄해 마지않았던가 말이다.

 

그런데 막상 '학습수행과 학습성과'를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리다니.

 

장애아 통합교육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나의 이유는 이렇다.

그 효용이 어떻고 인도적 이유가 어떻고 간에, 사람은 없고 시스템인 사회가 싫어서다.

모든 것 앞에 존재하는 '이것은 이러해야한다'.

모든 것의 원리, 방식, '이것은 이러해야한다'.

착착 진행되는 모든 시스템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싶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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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업

한 명은 수업 도중, 나가버렸다.

처음 시작부터 그 불안한 눈동자가 내 마음까지 불안하게 흔들어, 같이 박수도 치며 내내 손을 잡고 있었는데, 손을 놓자마자 휙 나가 버렸다.

남아있는 애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가는 애를 잡지않았다. 잡으러 나가면 다시 들어오라 설득하는 것도 시간이 들 것 같고, 그러다보면 수업 시간 다 빼먹을 것 같다는 걱정.  

그러다 문득, 쟤가 저러다 길을 잃지,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만큼 어린애 같았다. 집 밖으로 혼자 나가면 길을 잃어버리고 말.

앗 잠깐, 소리를 지르다시피하며 벌컥 문을 열고 뛰쳐나갔더니, 어랍쇼, 얌전히 방 밖에 있다.

다른 선생님과 바둑알 놀이를 하고 있었다.

다시 문을 닫고 남은 아이 세 명을 쳐다보았다.

한숨부터 나왔다.

우리, 이제 뭘 할까.

두 명은 묻는 말에 몸을 까닥까닥하며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야, 그거 아니잖아, 이거잖아, 니가 틀려, 내가 맞어, 고 나이 또래 남자아이.

한 명은 일어나 칠판으로 가더니 분필을 들고 노래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분필~

그렇구나, 그래서 이 교실에 원래 분필이 없었던거구나.

나는 분필을 다시 달라고 하고 원래대로 방 밖에 내놓았다.

노래를 하던 아이는 칠판에서 떨어지지 않더니, 칠판에 붙어있던 편지 하나를 잡아 찢었다.

나머지 아이들 둘이 실망의 괴성을 지른다, 야아~.

 

밥을 먹으며 앞에 앉은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원래 그 말씀은 없으셨는데, 혹시, (수업 중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던) 아이가 자폐아 아닌가요?

-아, 아니에요. 소심이 극도에 달아 그런거에요.

-소심이....?

 

아이들에 대한 사전정보로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그 아이는 중이염을 심하게 앓았던 것이 문제의 전부였다. 중이염을 앓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발견하지 못했고, 그래서 고막이 손상되어버렸다. 듣기를 잘 못 하게 된 것이 언어발달에 지장을 주었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약간 발달이 지체되었다. 그러나 그 '전체적으로 약간'은 사회생활형성에는 막대한 듯 하다.

아이는 현재 4학년이고 덩치는 중학교1학년 급인데, 1학년 아이도 놀리고, 1학년 아이가 놀리고 때려도 아무 말 못하고 울기만 한단다.

분필을 좋아한다는 아이는 ADHD(과잉행동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했었다.

과잉행동장애에 대해 테레비에서 몇번 무어라 나왔던 걸 귓등으로 들었던 적이 있을 뿐인 나는 그것이 공부를 하다가 3분만에 딴 짓을 하는 정도의 증상이라고 너무 쉽게 상상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현재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말이 느리고, 사용하는 단어도 5세 정도의 수준인 것 같다.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은, 부끄럽게도, 아....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머지 아이 둘, '정상'인 아이 둘이 학습하는 학교라고 하기에 이곳은 너무.... 뭐랄까, 번잡하다, 시끄럽다, 방해요소가 많다, 그래서 부적합하겠구나,였다. 그 아이 부모들은 대안교육에 대한 얼마나 큰 철학과 신념이 있기에...

 

나는, 정말 나는 많이 노력해오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장애아와 비장애아 통합교육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었고, 장애는 그냥 다른 것일 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믿고 있었고, 장애인의 성문제를 고민한다고 하고 있었고, 또 또 뭐 있나...

그렇지만 나는, 또 알고 있었다.

나의 노력은 어디까지나 장애가 남 얘기라는 안심(전제) 안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

 

중이염을 앓았던 아이와 과잉행동장애 아이는 현재 굉장히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했다.

처음에 이 학교에 왔을땐,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며, 누구든 가까이오는 사람은 팔을 잡아 물었고, 소리를 질렀고...

내가 낯선 얼굴이라 그들의 눈동자가 불안했었나.

그래도 적어도 눈을 마주쳐주었었다.

그래, 눈을 마주친다는 것,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다른 이와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사람, 그 깊은 우울과 절망이 얼마나 시커먼 심연인지 알고 있다.

 

-철이(가명, 정상아이 중 하나)는 여기 오기 전에 원어민 영어과외도 받았던 아이에요.

-그러면 아이 학습에 대한 욕심이 많은 부모시겠네요?

-왜 아니겠어요. 그 과외 끊어야 저희 학교 입학이 가능하거든요. 그게 저희 입학조건이에요.

  그래서 부모설득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면서도 그 부모님들은 입학을 시키셨네요.

-철이가 문제가 있었어요. 어쩔 때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서있거나, 계속 욕을 해대고....., 저희 교사들 철이한테 많이 맞았어요.

-지금은 그런 모습은 없는 것 같은데요?

-지금은 전혀 안 그래요. 

 홧병이었나봐요. 과도한 스트레스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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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는 금순이

(블로그 분위기 좀 바꿔봤음)

 

오늘 금순이가, 자기를 외면하고 먼저 엘레베이터를 타고 가버리려는 남자에게 "사랑해요"하고 외쳤다.

애 딸린 과부, 미용사 금순이가 총각, 의사를 만나 사랑하려면 얼마나 많은 우연의 장치들이 얽히고 섥히는 설정이라야 가능할까, 싶었더니만 의외로 정공법이라 놀랐다.

 

<굳세어라, 금순아>를 보고있으면 벼라별 애엄마들이 나온다.

애 낳자마자 남편이 죽자 애 놔두고 팔자 고친 여자

남편 없이 애를 낳고 애를 위해 억척같이 살아 이제는 떵떵거리고 살지만 미혼모였다는 것이 최대 콤플렉스인 여자

재혼한 이혼녀(전에 낳은 아들이 하나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금순이,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죽었으나 임신한 아이를 그대로 낳고 시댁에 들어가 시집살림까지 하며 사는.

 

이 각종 애엄마들은 사회적 지위가 어찌되었든 간에(서울에서 제일 큰 미용실 원장이든, 잘 나가는 사업가이든) 애가 딸렸다는 것 때문에 모진 사회적 압박과 시련에 시달린다.

특히 금순이의 동서되는, 재혼한 이혼녀, 이 여자는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과 그 때 낳은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부모가 몰랐었다는 이유 하나로 극한의 파렴치한으로 몰려있다.

그걸 시부모에게 밝히지 못했던 이유를 말 안 해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회에 살면서, 인지상정에 측은지심이지, 동정과 위로는 못 할 망정(애 낳은 엄마가 애와 떨어져 살아야하는 아픔, 이혼을 겪은 아픔, 그것을 드러내놓지 못하는 아픔)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는 너무하다. 저런 식이 먹히는 이 사회의 가족권력구도가 섬뜩하다.

 

보고있자면 섬뜩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금순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듯한 기미만 보여도 으르렁대는 금순이 시형(시동생은 아니고 남편의 형이면 시형인가?).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면에는 늘상 적대감이 넘쳐난다. 그래서 툭하면 상대를 노려보고 고함을 지른다. 저게 한국인의 정서인가보다.

 

아무튼 애 딸린 여자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는 곳곳에 애 딸린 여자가 포진하여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임신 중이다. (내일 예고편에 이십대 딸을 둔 양희경이 임신진단테스트에서 포지티브 결과에 기절하는 장면이 포함돼있었음) 출산율이 오이씨디 국가들 중 최저라는 국가의 걱정에 반하는 드라마인 건지, 동조하는 드라마인 건지..

 

애 딸린 여자들의 팔자고침을 두고 두 눈에 쌍심지를 켜는 와중에도 금순이의 사랑은 굳세게 지켜가니, 흠, 그건 왤까.

그녀는 굳세게 살았으므로?

온갖 역경에도 반듯하게 꿋꿋하게 살았으므로?

스물한두살 짜리(이 단어에서 나의 선입견이 들어있다고 해도 할 수 없다.)들이 덜컥 임신을 쉽게 사회음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반듯하게 사회양성적인 방법(결혼, 출산)을 택하였으므로?

그러고도 남편이 죽었으나, 넌 나가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시부모도 만류하며 애도 포기 않고 낳아 키우고 시집에서 살림하고 돈 벌고..여전히 반듯하게 사회양성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살았으므로?

 

그래도 (사회음성적인) 불륜을 옹호하면서 (결국) 사회양성적인 빌미를 비빌 언덕으로 깔아놓는 소설,영화들 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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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상대의 눈 안에 내가 비치는 것을 발견한다.

 

"어, 엄마 눈 속에 내가 있는데!"

"응, 규민이 눈 속에도 엄마가 있어."

(아, 연애할때 조차도 이런 대사는 구사해본 적 없었다.)

 

이런 사랑이 정말 있다.

보면 볼수록 샘솟는 사랑.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5분도 5초 같고, 50분도 5시간도 닷새도 다섯달도 하염없이, 하염없이, 손으로 턱을 괴고 그 얼굴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랑.

연애의 유효기간은 2년이라는데, 유효기간 1년을 넘기면서 오히려 새로운 절정기를 새삼 맞고있는 사랑.

절정기의 고개를 넘어 구름을 타고, 또 구름을 타고 높아높아만 가는 사랑.

 

아침에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발견한 그녀, 생긋 웃는다.

숨이 막힐 듯이 아름다워, 너.

그녀도 나에게 건네는 말,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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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서명

아주 오랜만에 본 셜록 홈즈.

 

그녀와 놀러갔던 친구네 집. 우리는 한 다발의 셜록 홈즈 씨리즈가 책장에 꼽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와~ 탄성을 질렀다. 곧바로 한 권씩 뽑아 읽기 시작, 읽기 시작한다고 할 때부터 약 한두어시간 가량 단 한마디 말도 서로 안 하고 책장만 넘기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내어 고백하자면, 난 그 때 내가 뽑은 셜록 홈즈의 책의 단 한 줄도, 줄은커녕 단 한 글자도 읽지 못 했다.

책상의자를 방 한가운데 쪽으로 돌려놓고 앉아있던 나의 발치에 앉아, 그 날 그 집에 같이 갔던 그녀가 나에게 기대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손등에 규칙적으로 닿던 숨, 팔뚝을 스치던 단발머리, 이런 것들 때문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팔을 비키지 않았다. 한시간 이상을 아무 말도 않은 채.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린 참으로 애절한 사랑을 하였다.

그런 감정을 어떻게 보이고 다루는지 몰라, 서로를 슬프게 하기만 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 다른 아이와 귀속말을 하며 장난을 쳤고, 그녀는 내 앞에서 다른 반 아이를 데리고 와 서로 가장 친한 친구 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그로부터 십년이 좀 모자른 시간이 흘러 어느날, 아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던 그녀는 예수쟁이가 되어가지고 언제 만나 술먹자는 내 말에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던졌다.

 

오랜만에 본 셜록 홈즈 얘기를 하려는데 어쩌다가 한 줄도 읽지 않은 셜록 홈즈 책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불어과외를 하러 갔던 집에 셜록홈즈의 완역 씨리즈가 있었다. 또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당장 한 권을 뽑고, 이제부터 올 때마다 하나씩 빌려갈께,했는데, 처음에 뽑았던 그 한권이 첫권이자 마지막권이 되어버렸다.

<네 개의 서명> 숨겨놓은 보물을 둘러싼 살인, 복수, 추격.

 

인도에서 디립다 고생하던 남자가 숨겨놓은 보물을 갈취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제안자 셋과 이 남자는 종교적 맹세를 통해 서로에게 굳은 믿음과 신뢰를 갖고 이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하는 사람은 영국장교들.

보물을 갈취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네명이 감옥에 가게되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들이 간수인 영국장교들과 거래를 타협한다. 보물의 얼마만큼을 떼어주는 대신 네명 모두의 탈출. 그러나 보물지도를 가지고 사실 확인을 나갔던 영국장교 하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보물을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이 때부터 응징과 복수의 칼을 세운 남자, 간신히 감옥을 탈출하여 영국으로 와 보물을 되찾으려하는데...

 

당연히 셜록 홈즈의 추리로 남자의 복수극은 실패한다.

결국 배신한 영국장교 하나만 잘먹고 (잘 살지는 못함, 언제 배신의 칼을 맞을까 두려워하며 살았지) 그 아들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는 인도에서 디립다 고생했던 남자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너무나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셜록 홈즈, 이럴땐 아무리 정의가 어쩌느니 해도 결국 영국놈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남자도 보물을 갈취하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바 있다.

그 보물도 애초에 그런 식으로 빼앗은 것이다. 그걸 뺏겼다고 누구에게 복수할 처지가 그 놈도 아닌 것이다.

결국 무언가 찜찜한 일을 하면 그것은 나중에 몇배 몇십배 더 찜찜하게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역으로, 내키지 않아도 찜찜한 일이 되지 않도록 애쓰면 당장은 헛고생처럼 보일지라도 나중에 몇배 몇십배 보람찬 일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인 것이다.(라는 생각을 국민학생처럼 혼자서 가만히 하고있었음)

 

마지막 장면

왓슨 박사: 나는 사랑을 얻고,  존스 경사는 범인을 잡았는데, 홈즈, 자네는 사건을 다 해결하고도 얻은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어쩌나..

셜록 홈즈: 나에겐 이것 밖에 없지, 코카인,하며 그 쪽으로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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