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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15
    '평정심'잃은 세데뇨?(4)
    나르맹
  2. 2009/10/13
    The Sharpness Action - July 1979.
    나르맹
  3. 2009/10/13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나르맹
  4. 2009/10/09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나르맹
  5. 2009/10/07
    오바마와 트위터, 노벨평화상(1)
    나르맹
  6. 2009/10/07
    [펌]신종플루와 데톨의 비밀(2)
    나르맹
  7. 2009/10/06
    Hopenhagen(1)
    나르맹
  8. 2009/10/04
    <평화는 나의 여행>
    나르맹
  9. 2009/10/01
    Actions against DSEi arms fair
    나르맹
  10. 2009/09/30
    <너 군대 왜 가니?> 토론회 후기(6)
    나르맹

'평정심'잃은 세데뇨?

경기 전 정근우(27) 는 상대 선발 세데뇨에 대한 질문에 "번트 수비 등 세밀한 기술 면에서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여느 도미니카 선수들처럼 자신의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은 약한 것 같았다. 많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하고 귀찮게 하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는 짧은 순간 동안 사실이 되었다.


물론 그 많은 실점을 세데뇨 혼자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기전서 선취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여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세데뇨는 첫 타자 박재홍을 상대하며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회심의 1구가 볼 판정을 받은 뒤 흔들리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제구력을 잃은 높은 실투로 인해 선제 결승포를 허용했다.

 

늘 보는 야구기사이지만 이런 기사를 보고 나면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만든다. 도미니카 출신이라 자기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이 약하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뭔가 냄새가 나는 문장이다. 예컨대 흑인들은 몸이 유연하다거나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이런 식의 언설들이 사실은 대부분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막혀있기에 체육이나 음악쪽으로밖에 진출을 못하는 유색인종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남성들이 성폭력의 상황에서는 넘치는 충동을 순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면죄부를 받는다. 술이 취해서 '비정상'인 상태에서 저지른 성폭력 역시 '정상 참작'을 받는다. 무엇이 감정적이고 이성적인 것인가에 대한 잣대는 늘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렇기에 '보는' 남성들은 다른 집단에 타자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필요할 땐  자기집단 내부에 타자집단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아무런 논리적 하자 없이 수행한다.

 

화이트 칼라들에겐 블루 칼라들이 덜 지적이고 좀 더 감정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야구선수를 비롯한 운동선수 집단 역시 뭔가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 운동선수 집단 안에서 다시 타자가 되어 '괴력'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외국인 선수(보통은 '용병'이라고 불리는)들. 이 집단 안에서도 다시 비백인들은 또 다른 딱지들 예컨대 감정변화가 심하다는 식의 이미지가 투영된다.

 

구체적인 인용을 하려니 그 선수에겐 참 미안하지만, 배영수 투수는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표정에서 감정이 쉽게 읽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얼중얼 욕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적도 많다. 그런데 배영수 선수에 대해서는 "여느 한국인 선수들처럼 자기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이 약하다"라고 회자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에 인터뷰에 화자로 인용된 정근우나 그런 기사를 쓴 기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안 그래도 경기가 안 풀려서 속상했을 세데뇨가 근거없는 인종적 편견이 더해진 평가를 받고 있는 모습에 안타깝고 씁쓸하고 화도 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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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rpness Action - July 1979.

http://rahu.dk/martynlowe/?p=190

 

마틴 아저씨의 경험이 절절히 묻어나는,, 소싯적 데모를 나갔다가 비폭력트레이닝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경험을 올려주었다.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음 좋겠지만, 번역....은 차마 엄두를 못 내겠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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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미군이 '용산 주둔지'(Yongsan Garrison)라 부르는 용산 미군기지는 1980년대까지는 그 총 면적이 105만 평에 이르렀으며, 지금은 대략 80만평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부시장이었던 강홍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대공원의 3배, 어린이대공원의 6배,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도 넓고,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비슷하고, 런던의 하이드파크보다는 두 배나 넓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홍성태,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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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 새삼 서울에 녹지가 얼마나 부족하며 도심개발이 얼마나 '개념'없이 이루어졌는지 예컨대 무수한 전봇대와 이리저리 널린 전깃줄, 보행로를 떡하니 가로막는 지하철 출입구, 환기구, 보행자를 배제하는 육교와 지하도들 등등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거리가 좀 더 '이쁘고'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기에 좋게 조성이 되면 좋을텐데. 필자는 일제 이후 그 유산을 물려받은 박정희식 근대화가 서울을 역사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문제를 삼고 있다.

 

낙산에서 종묘를 거쳐 남산으로 이어지던 녹지길이 세운상가에 의해 잘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종묘 안으론 한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책에 쓰인 글이 발표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이라는데 2009년인 지금 어느 새 또 책의 내용과는 다르게 변화가 이루어진 곳도 많은 걸 보면 이놈의 건설자본들은 언제쯤 지금과 같은 개발을 멈추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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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그런 말은 없지만 저 같은 경우는 '양심적인 원호 거부자'라고 합니다. 가능한 한 원호를 안 쓰고 서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학교나 관청에 가서 공식 서류를 만들 때는 원호를 쓰게 돼 있어요. 제가 서기로 쓰면 컴퓨터 입력을 못 합니다. 학교 같은 경우 사무 직원들이 그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합니다. "서 선생 때문에 우리가 쓸데없는 것도 다 고치고 입력해야 하나?" 이런 얘기를 합니다. 누군가가 폭력적으로 곤봉 가지고 원호를 쓰라고 위협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가 어쩔 수 없이 원호를 쓰게 됩니다. 불과 몇 년 동안 그렇게 자연스럽게 됐어요. (중략)

여기서는 주민등록 번호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컴퓨터 같은 아주 현대적인 기술과, 천황제라는 전근대적인 군주제 지배가 결부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주제적인 사고방식으로 첨단 기술을 사용하면 아주 효율적으로 인민을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략) 이렇게 컴퓨터로 해 버리고 나면 아무도 저항할 수 없게 됩니다. 주민등록 번호가 비합리적이라고 해서 저항하면, 이 번호 없이는 휴대전화도 못 사고, 티켓 예매도 못 하니까 너무 불편하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거고요. 오히려 주민 번호를 갖고 있는 것을 정당한 시민 취급을 받는 자격처럼 착각합니다.

(중략)

김상봉 교수와 만나 대담을 다 끝낸 뒤에도 김상봉 교수가 그러더군요. "이제 서로 속을 많이 알게 됐고 서 교수님이 저보다 연배가 위이니 '형님'이라 부르고 싶다."고요. 그 제안에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타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냉정하다, 또는 서운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회는 타자와 타자가 만나는 것이죠. 부모나 부부도 타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저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쌍하다고 말합디다. 너무나 디아스포라적으로 어렵게 섭섭하게 외로운 세상을 살아온 신세였기 때문에 가족의 따뜻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대합니다.

(중략)

아이들도 태어난 순간 타자이긴 하지만 적어도 사춘기가 지나면서 그야말로 타자가 되어 가는, 존중해야 하는 타자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때까지 있어 온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너무 서양적인 개인주의나, 포스트모던적인 보편주의를 주장한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데 그건 아닙니다. 이 사회가 가족주의적인 사고방식, 문화 때문에 지금 있는 억압 상황을 바로 보지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입니다.

(259-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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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일본에서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과 얘기를 하다가도 재일조선인 이슈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느냐 너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듣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 처지가 그 정도가 되겠냐마는 사람들로 듣는 반응의 양상들이 왠지 낯설지만은 않다.

 

국민, 국가, 예술에 대한 디아스포라의 시각들이 한번 읽으면서는 아 그렇구나 지나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와 곱씹어보게 만든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나 루쉰을 인용하며 '희망'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대목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希望. 稀望. little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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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트위터, 노벨평화상

미국 피츠버그 G20 반대 시위 현장에서 트위터로 경찰 이동/진압 경로를 알려줬다는 혐의로 체포된 케이스에 관한 기사가 떴다.  이 기사의 필자는 이번 체포를 비난하면서, 얼마 전에 이란 대선 때 정권 반대 시위자들이 '서방'의 주목을 받으며 트위터 역시 확 떴을 때에 오바마가 당시 인터넷 검열 등을 통해 시위대를 방해하는 이란 정부를 비난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 때 오바마가 내세운 근거가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가치이며 자신은 그 가치를 지키려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런 오바마의 미국에서 정작 경찰의 움직임을 트위터로 전송하던 사람을 '對테러수사대'까지 동원하여 체포를 한 것에 대해 짧으면서도 비교적 명쾌하게 비판하고 있는 기사인것 같다. 

 

오바마가 자기 대선 기간엔 트위터로 열심히 홍보를 했던 것을 떠올리면, 노무현이 대통령 되고 이라크 파병, FTA 추진했던 모습 그리고 이명박이 실명제를 놓고 구글과 싸우면서 한편에선 트위터를 하니마니 한국에도 닌텐도가 나와야 한다느니 하는 모습이 겹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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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 어제는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날아왔다.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되기 며칠 전인 이번주 월요일 백악관 앞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점령 중단 시위가 크게 있었나보다. 아래 영상에 나오듯이 이날 시위대 60명 정도가 바로 연행이 됐다고 한다. 내가 뭐 언제부터 노벨평화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자기 집 앞마당에서 반전 시위 참여자를 진압하는 자가 '평화'상 이런 걸 받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운 환멸과 냉소가 찾아드는. Waging Nonviolence라고 종종 들어가보는 사이트에도 이번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관련한 이 하나 떴다. 오바마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요지의 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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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신종플루와 데톨의 비밀

 

안 그래도 휴교가 끝난 첫 등교일 학교 모든 곳에 마스크와 손세정제 향균 스프레이 등등이 '보급/살포/투척'되었는데, 방금 우연히 위 웹자보를 보고 나선 한방 먹은 듯한 놀라움과 신선함이 동시에 찾아든다. 최근의 내 일상 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발견인 듯.ㅋㅋ 암튼 이런 웹자보가 매우 매우 반갑다. 학교에 액상 핸드워시가 설치된 다음에 나도 몇 번 사용해보곤 했는데 이 웹자보를 보고 나니 최근 내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게 다 그 세제 탓인것만 같은 기분이 마구 든다.-_- 앞으론 절대 쓰지 말아야지..
 

1+1 대량구매로 몇 박스씩 교무실에 쌓여있는 향균 세제와 스프레이들..다른 선생들은 모르겠고 원어민 교사들한텐 밥 먹으며 살짝 얘기해봐야겠다...

 

위생에 대한 전 사회적인 강조가 이렇게 컸던 적이 있나 싶다. 100년 전 조선이 그랬으려나.. 근데 감옥(혹은 군대)에서 누가 돼지독감 걸린 것으로 판명(검사 자체가 이루어지기는 할까?)되면 그럼 수감자(사병)들은 다 풀려나는 건가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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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hagen

다른 곳도 아닌 논술제시문에서 더 자주 들어본 것 같은 교토의정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합의했다는데 미국만 거부했다는 이미지로 남아있는. 아마도 그 교토의정서의 후속판이 곧 나올 모양인 듯 하다. 세부적인 맥락에 대해서는 더 공부를 해봐야겠지만 그냥 지나가는 곁눈질로 보건대 올 12월에 코펜하겐에서 전세계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 (UN 소관으로) 기후변화 협약에 관한 큰 회의가 있다고 한다. 그 회의에 앞서 지금 방콕에서 사전 회의를 하고 있는데 그에 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기사들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이미 발달할 만큼 발전한 나라들(소위 '선진국')이라서 그런지 환경 문제가 그쪽 동네의 주요 이슈가 되는 것 같다. 경제 10위에 올라섰다는 국가인 한국에선 아직도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인권을 두고 싸우고 있는데,,쩝. 한국에선 최근 몇 년 웰빙 바람이 불면서 '유기농'이 떴지만, 걔네 국가들에선 '채식'도 일종의 웰빙 차원으로 올라섰기에 그렇게 베지테리안 푸드도 잘 갖추어진 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광우병 촛불시위가 먹는 것과 직결되어 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더 일어선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 것처럼 우리보다 좀 더 세련된 자본주의 국가에선 '채식'이 그 자체 내포한 다양한 문제의식들과는 별개로 일종의 먹는 문제의 하나로 격상되었기에 다만 또 다른 세련된 삶의 방식의 하나로서  대우를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환경 이슈가 주요 의제가 되는 곳에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를 덜 타는 문제에 관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선진국'들이 과거에 얼마나 식민지 수탈을 했고 환경을 파괴했는지와 별개로 아직 한국은 이래저래 환경 문제에 대한 그들과 같은 자각 수준을 갖기엔 갈 길이 먼 듯 하다.

 

다른 신문이나 기사는 안 봐서 전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디언에서는 이 코펜하겐 회의에 매우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같다. 이번에 코펜하겐에서 체결될 기후협약에 관한 용어 설명 웹페이지도 따로 있다. 한편 여기 'Hopenhagen'은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 맞춰 생긴 것 같은 서명운동 사이트. 작명센스가 참 멋지다. 다음은 이 사이트(단체)의 목표라고 한다.

To connect every person, every city, and every nation to Copenhagen. To give everyone hope, and a platform from which to act. To create a grassroots movement that’s powerful enough to influence change.

 

일상에서 문제의식을 자주 갖게 되지만 기후변화나 온난화 등등의 이슈가 한국에선 아예 잘 다루어지지조차 않다보니 덩달아 내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 하다. 국가간 협약이라고 했을 때 이미 내 삶과 멀어진 듯한, 마치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기도 하지만 왠지 최소한의 관심은 가져주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열리고 있다는 방콕 회의나 앞으로 있을 코펜하겐 회의에도 분명 한국 측 대표가 참석을 할텐데, 여기서 얼마나 기사화가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올 12월이라고 하니 언제 또 마주칠 일이 생기겠지. 

 

다음은 기후변화 협약과 같은 환경 이슈들이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티피컬한 질문들이라고.

 

• How much are rich countries willing to cut their greenhouse gas emissions, and by when?

• Will large developing nations such as China make an effort to put at least a dent in their soaring levels of pollution?

• How much money must flow from the developed world to developing countries to grease the wheels and secure their approval? How much to compensate for the impact of past emissions, and how much to help prevent future emissions?

 

 

 

덧.

이 포스팅과 직접 관련되는 것 같진 않지만 재밌는 기사를 또 발견해서 여기 링크를 걸어둔다. 런던의 수돗물에 관한.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일본 여행 갔을 때도 그랬고 적어도 내 경험에선 유럽에서 수돗물을 바로 컵에 받아 마시는게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근데 사람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0.5리터 생수병 그리고 그걸 생산하는 '생수' 회사와 수돗물 제공 업체(영국은 물도 민영화다)간에 논쟁이 런던시 정책을 둘러싸고 붙은 거다. 그 와중에 조그만 생수병이 플라스틱 생산을 조장함으로 환경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확 눈길을 끈다.

서울의 아리수...를 시작한 이명박은 어떤 면에선 선구적인 환경론자인 것일까?ㅋㅋ 그래도 아리수는 여전히 내키질 않는다.. 차라리 그냥 먹으면 먹었을 텐데 공무원들 불신하는 이 '못된' 심보 때문에..먹었으면 보리차를 끓여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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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나의 여행>

"이라크에 첨 와본 건 열아홉 살 때예요. 걸프전이 터지고 나서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받고 있던 이라크 아이들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어요. 그땐 그냥 한 번 와보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행이 이렇게 길어졌네요. 벌써 십 년째예요.

지난 해 시월에 들어 왔어요. 이번엔 아마 제법 오래있게 될 것 같아요. 이탈리아에서 20여 개 단체가 힘을 모아 '바그다드로 가는 다리(Bridge to Baghdad)'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는데 그 단체의 이름으로 파견된 거거든요.

제가 지금 맡은 일은 가난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우물을 파주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면 식수가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전쟁을 대비하는 거지요.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긴급구호를 하고, 그러고 나면 병원을 만들거예요.

위험이요?위험하죠. 하지만 군인들도 위험하잖아요. 전쟁을 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상하게 평화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위험한 일을 왜 하냐고 해요. 참 이상하죠? 전쟁을 위해 죽는 것 보다는 평화를 위해 살다가 평화를 위해 죽는 게 더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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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s against DSEi arms fair

격년으로 런던에서 열린다는 무기박람회에 반대하여 이번 9월에 펼쳐진 행동을 정리한 이 떴다. 전쟁없는세상 지난 번 소식지 기획기사이기도 했고, 다른 곳도 아닌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라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읽다보면 하비엘의 말투가 떠올라서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올 초부터 WRI Triennial에 대한 글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데 이번에 읽은 은 읽으면서 와 잘썼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살펴보니 하워드가 쓴 글이었다. 난 으레 하비엘이 쓴 글인 줄 알고 또 하비엘에게 감동받으면서 읽었는데. 하워드란 걸 확인하고 나니 약간 맥이 빠지기도 하고, 여전히 반갑기도 하고 그렇다.

 

여유시간이 생기니 웹서핑하며 차분히 글 읽을 시간도 생기고 좋다. 용산에 이번엔 꼭 한번 가야지 생각이 들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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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군대 왜 가니?> 토론회 후기

돼지독감(신종플루)으로 순식간에 선생과 학생 모두 큰 공포에 휩쌓여버린 학교를 마치고 <너 군대 왜 가니?>토론회로 발을 뗐다. 연휴 전에 생긴 공짜 휴가기간 동안에 원래 헤치워야 했던 일들을 하루에 몰아서 끝내느라 하루종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했다. 그래도 끝내버리니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부장선생님은 재택근무할 것을 좀 챙겨서 가라고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시는데 나도 뭐 겉으로는 웃으며 '네네 그래야죠' 답하며 안심을 시킨다.푸핫

 

토론회 장소를 찾느라 연대 안으로 들어간 뒤에 좀 헤멨다. 밤바람을 맞으며 캠퍼스를 걷는 기분이 꽤나 괜찮았다.

 

패널들의 발제, 이후 질의응답을 지켜보며 든 가장 큰 느낌은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몇 년전(예컨대 2003년,04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나의 질문들.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은 왜 이렇게 잘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럼 내가 기대했던 내용, 내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뭐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가지를 친다.

 

뭐랄까 병역거부 논의에 있어 일종의 FAQ들. 국방의 의무가 곧 군복무는 아니다,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의는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다 등등. 이젠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을 방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게 병역거부운동 10년의 성과라면 성과랄까. 대체복무의 의의, 실현가능성 등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변화일지 모르겠다.

 

요 며칠 또 <평화는 나의여행>을 읽다보니 전쟁의 참상에 대한 자각이 다시금 일어오지만, 그리고 이런 평화적 감수성이 병역거부 담론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특히나 이제 곧 수감을 앞두고 있는 CO들의 입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위와 같은 FAQ 이상의 이야기들이었다.

 

아직도 한국 맥락에선 병역거부자가 되는 순간 놓여지게 되는 논의의 세팅들이 있는 것 같다. 기성품처럼 존재하는 이 프레임은 예컨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논의, 국방력을 둘러싼 논쟁, 국제관계/전쟁에 관한 이야기 등을 포함한다. 이 프레임에 놓이는 순간 병역거부자는 자기 자신의 몸, 삶의 지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든다. 예를 들어 수감을 앞두고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은 공론화되지 않는 것이다. 틀에 박힌 병역거부 FAQ들이 여전히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담론으로 남아있는 것도 기존의 논의 프레임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때문이겠지. 동시에 한편으론 이 FAQ들이 여전히 병역거부 운동 그룹이외에선 다루어지지 않고 있거나 혹은 그나마 병역거부자 지위를 획득해야 발언권을 인정받기 때문에 정작 다른 방식 다른 내용의 말하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이 죽고 노무현을 재평가하는 사회적 붐이 일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사람들은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들을 재조명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노무현의 인간적 측면에 오히려 더 주목을 했다. 노무현이 받는 것과 같은 그런 조명을 병역거부자들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병역거부자들은 자기 소견서를 제외하고는 자기 자신의 '인간적' 측면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어도 표현할수 있는 언어가 없기도 하고, 뭇 사람들은 그에 관심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병역거부와 관련한 많은 얘기들이 나오다가도 결국 법정에선 개인의 양심의 자유보다 우월한 국방의 의무로 논의가 정리되어버린다. 

 

<폭력의 예감>으로 썼던 에 적기도 했지만, 그래서 병역거부와 관련한 요즘 내 고민은 저항의 새로운 언어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프레임에 대한 갈망이랄까. 그런 점에서, 꽤나 도발적이었던 '너 왜 군대가니?'라는 질문이 새로운 저항의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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