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29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1/21
    순천 도서관탐방
    나르맹
  2. 2010/01/18
    발바닥 내 발바닥(10)
    나르맹
  3. 2010/01/13
    이봐, 힘을 아껴봐
    나르맹
  4. 2010/01/11
    영어점수(2)
    나르맹
  5. 2010/01/10
    2010/01/10
    나르맹
  6. 2010/01/10
    핀란드 : 감옥으로 가는 첫번째 여성 완전 거부자
    나르맹
  7. 2010/01/05
    Judith Butler’s carefully crafted f**k you
    나르맹
  8. 2010/01/04
    눈 오는 날 딴 생각(8)
    나르맹
  9. 2010/01/03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나르맹
  10. 2010/01/01
    2010/01/01
    나르맹

순천 도서관탐방

 

 

 

 

 

 

평화도서관모임에서 순천 도서관 탐방을 다녀왔는데 정작 도서관 사진이 없다,,-_-;

폰카로 찍긴했는데 컴퓨터로 연결을 못하겠다;;

현주가 보내준 순천만 갈대밭 사진,,

봄날처럼 따뜻했었다. 얼른 봄이 왔으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발바닥 내 발바닥

"저는 대안을 말하지 않아요. 아니 못합니다. 왜냐면... 천성산을 뚫는다는 말에 이미 너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대안이라는 건 결국 천성산 대신 다른 데를 뚫거나 다른 곳을 지나가라는 소리잖아요. 제가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상처를 다른 누군가한테 안길 수가 없어요."

스님이 계속 말씀하신다.

"천성산은 정말 아름다워요. 고속철도 분들도 막상 오셔가지곤 '이 산을 뚫어야 하나' 하고 영 못 내켜 하세요. 그런데, 간혹 도로나 철도의 경제적 가치를 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것과 산과 늪의 가치를 비교하시는데요, 저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천성산이나 천성산 속의 늪만이 귀한 게 아니고, 산이든 늪이든 들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우리 주위에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다 귀해요. 그런데, 어떤 한 존재의 가치는, 단 한사람이라도 이게 정말 귀하구나, 하고 그 숨은 가치를 알아본다면, 그 한사람이 알아본 가치를 어느 누구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또 그 어떤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그런 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어떤 사소한 존재라 해도 우리가 그 숨은 가치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해요. 그러니 사소한 존재라고 할 게 아니라, 그 숨은 가치가 드러날 때까지, 아니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죠. 저는 고속철도가 천성산을 뚫지 말고 우회하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천성산이 살겠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어느 누군가에게 너무도 귀할수 있는 어떤 숨은 가치를 훼손시키라는 말이잖아요."

-김곰치, <발바닥 내 발바닥>, "생명의 대안은 없다" 中, 53-53쪽.

 

 

* 주로 녹색평론에 그간 실린 글들의 모음집인데, 문장이 길단 생각이 들면서도 읽는데에 이상하게 읽는 호흡이 끊기진 않는다. 문장을 길게 쓰면서도 쉬 읽히도록 만드는 것도 하나의 능력인 것 같다. 난 그래도 짧은 문장을 써버릇하며 연습을 해야할 것 같다.

한동안 기억에서 잊혀져가던 새만금과 천성산 얘기를 다시 읽게 되니 좀 부끄럽기도 하고 내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반추해보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  KTX는 정말 타지 말아야겠단 생각.

 

*바이오리듬이란 것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상태가 차분하지 못하고 뭔가 불안하며 부웅 떠있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약속이 많아질 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거나 교류가 뜸하던 사람들의 연락이 공교롭게 몰릴 때,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리를 좀 했을 때 그런 느낌들이 찾아든다. 좀 쉬려면 주말까지 버텨야 할텐데, 내일 연습모임에 참석해서 기운도 받고 차분함을 찾게 되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봐, 힘을 아껴봐

대학병원 밖을 나와 소아재활원과 루스채플을 거쳐 청송대나 우중의 노천극장을 지나기도 한다. 폭양 뒤에, 마치 전쟁과 같은 빗속을 지나 맑게 개인 저녁 하늘의 신선함, 혹은 무거운 청어(靑魚)의 은빛과 검정빛의 칼날 같은 비늘, 그것을 연상시키는 구름들과, 그 구름 위에서 빛나는 일몰의 아름다움을 너는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요즈음은 온통 불명확한 것 투성이다. 나의 생, 혹은 문학, 진로, 학업, 관계, 사랑, 미래, 시간, 공간......모두가 알 수 없는 실체들로서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 불명확한 것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어떠한 극복들을 내가 마주서야 할 때 나는 비틀거리는 층계 어디쯤에서 불현듯 위기감을 느낀다. 어떤 확실한 것, 즉 사소한 '확실함'이 하나라도 나에게 다가온다면 나는 요즈음의 전 생애를 그것에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 때문에 우울해 하곤 하였다. 편지 잘 받았다.

(....)

위대한 정신들이란 순수한 관념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신성에 있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가장 위험한 경험들로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것이 예감이므로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고 멀리서 보고 차라리 '기다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는 아마 7월 20일경 갈 것 같다. 내려가면 연락하마. 아직도 나는 작은 충격들만으로 충분히 그곳의 추억들을 호출할 수 있다.

1984.2.7

<기형도 산문집>, '편지 13' 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어점수

작년부터 잊을만하면 날아오는 입영영장을 그때그때 연기하는게 귀찮아서 올해 있는 각종 국가고시들을 좀 찾아본적이 있다. 내 주변에 한 다리만 건너면 안 보는 사람이 없는 행시 사시 외시 접수 날짜도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임고도 있는데 난 졸업을 못 했으므로 패스. 사시 역시 법 관련 수업을 일정 정도 들어야 한다고 하므로 패스.

 

병무행정을 추측해보건데 조만간 또 영장이 날아올 것 같아서, 아직 실제로 영장이 날아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5급 행시를 접수하려던 참이었다. 시험분야도 많던데 아무거나 골라서 신청을 하려는데 웬걸 영어점수를 입력하는 란이 있는 것이다. 그냥 옵션이겠거니 하고 작성완료 버튼을 눌렀더니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시험시행공고문을 두번쯤 읽어보니, 행시 5급과 외시는 일정 점수 이상임을 증명하는 영어 성적표가 필요하다고 적혀있었다. 2008.1.1. 이후 시행된 시험 점수만이 유효하다고 한다. 근데 난 몇 년 이후 시행된 시험이든 애당초 그런 시험을 본 적이 한번도 없는데, 참 허무했다. 영어 점수도 없는 내가, 간만에 철저한 준비성으로 꿈에도 없던 행시 접수를 하려고 했더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아직 영장이 나온 것도 아닌데 나는 괜히 또 잠깐 불안해져서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내 정보를 쳐넣고 영장이 나왔는지 확인을 했다. 참 걱정도 팔자다. 국가가 이런 식으로 나를 통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짜증이 난다.

 

7,9급 시험 접수는 한 달 뒤 2월에-. 이 지긋지긋한 스트레스를 얼른 하루라도 빨리 헤치워버리고 싶다. 엉엉

 

 

덧,

종종 가보는 박노자 쌤 블로그에서 최근 포스팅 중에 무척 공감이 가는 글을 발견했다. 제목이 "믿지 마라, 겁내지 마라, 구걸하지 마라" 이다. 이계삼 선생님 글에는 '슬픔'에 대한 언급이 유독 많았는데, 이번엔 '외로움'이다.

 

진실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권력자들이 하는 말은 아마도 거짓말이라고 전제하면서 살면, 일면으로는 편합니다. 온갖 "월드컵 열풍"이니 "노풍"이니 "신종플루 패닉"이니 집단 광기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면으로는 이게 좀 외로운 생활태도이기도 합니다. 한데, 내면의 외로움이야말로 진실에 제일 근접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10

* 다시 한 주의 시작. 월요병이 찾아올락 말락 한다.

밑에 오랜만에 번역하나 해봤는데 핀란드 시모 생각이 난다. 지난 5월에 봤을 때 사진 좀 같이 많이 찍어놓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 용산 장례식에 갔다.

옛날 머리 피도 안 말랐던 시절에는 집회만 있으면 과 선후배동기들 연락돌려서 같이 나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나 싶다. 지금은 (아마도 귀찮음 때문에) 그냥 혼자 나가거나 아님 친구 한명 연락해보거나..  서울역에서 용산까지 짧지 않은 길을 걷다보니 같이 수다 떨수 있을만한 사람들 생각이 났다.  

1년만의 장례식이라니, 유가족 분들 말대로 이제 눈물이 마를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슬프고 분하다.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나가기 시작했는데, 지난 모임 때 신년계획을 세워보면서 내가 자각 못하던 내 안의 욕구들을 발견해서 뿌듯했더랬다. 다양한 욕구들의 구체적인 계획 중에 하나가 일본어 공부였는데, 마침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울 기회까지 생기고 나니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일본으로 뜨는 상상이 한 10cm 쯤 더 현실로 다가온 듯 하다.

배움, 성장, 즐거움, 자기표현, 도전, 자기효능감 / 연결, 소통, 기여

내 욕구들을 적고 나니 '자기애'가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소통의 욕구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애니어그램을 해보면 나도 여타 많은 병역거부자들처럼 7번이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침한테 타로점을 봤다. 연애운에 집중해서 봤는데, 아침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주지만 나에겐 "지금 친밀함을 원하지만 게으르면서 한편으론 타인의 도움을 원하고 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나만의 해석이 기억에 박혀버렸다.ㅋㅋ 물의 신?수정?이었나,, 그 카드도 나왔었는데 안타깝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계에서 'commitment'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성향이 갈수록 심해지는 건 아닌가 샆은 자각이 자꾸 든다. 책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비겁함, 이런 자신에 대한 합리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늘 나만의 도피처부터 만들고 관계를 시작하려니 한편으론 쿨한 척 다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뭔가 그 이상을 원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 같다. 자기보호의 욕구와 소통/친밀함/사랑의 욕구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찾고 싶다. 찾을 수 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핀란드 : 감옥으로 가는 첫번째 여성 완전 거부자

Finland: First female total objecto to go to prison?

 

핀란드 : 감옥으로 가는 첫번째 여성 완전 거부자?

2009126, 핀란드 독립기념일(핀란드에서 군사주의가 심하게 베어있는 날임)에 핀란드의 한 여성 병역거부자가 완전 거부를 선언하였다. 다음은 그녀의 소견서 중 일부이다 : “저는 폭력을 생산하는 조직에 어떠한 식으로도 협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폭력을 양산해내는 공간에서는 우리의 행복과 정의로운 미래가 절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군사주의적인 활동들은 오직 증오와 쓰라림만을 키울 뿐입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자원들을 사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핀란드에서 여성들은 징병 소집의 대상이 아니지만 군에 자원 입대를 할 수는 있다. 자원입대한 여성들은 복무 초반 45일 동안에는 언제든 자유롭게 군복무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군 당국 역시 복무 중단 의사를 밝힌 여군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적응 기간(trial period)”가 끝나면 징집 남성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이는 곧 여성의 군복무가 더 이상 자원병 차원이 아니라 이제 징집병 차원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핀란드 자국 내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법률 또한 자원 입대한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핀란드 군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2009년 자원 입대한 여성들의 숫자는 총 522명이다. 이 수치는 그동안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지금까지 “적응 기간”이 끝난 후에 병역거부를 신청한 여성들이 아주 조금 있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나머지 군복무를 대체복무로 갈음하여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번 병역거부는 대체복무까지 거부하는 첫번째 핀란드 여성 병역거부자의 케이스이다.

익명으로 남길 원하는 이 여성 병역거부자는 200811월 의학적 사유로 인해 군복무가 중단되기 전까지 11개월간 복무를 수행해왔다. 그녀에게 더 남은 군복무기간은 단지 1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군복무기간 중 그리고 부상으로 인해 군복무가 유예된 기간 동안에 군대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고, 결국 그녀는 병역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그녀가 이처럼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그녀가 군복무중 다친 부상부위를 치료받는 과정에서 군당국으로부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영향의 한 몫을 차지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군에서 받은 치료과정 자체가 기본적인 인권조차 존중하지 않는 군대의 본질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완전거부를 선언하기 이전에 병역거부 지위를 신청한 바 있고 병역거부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녀는 대체복무 역시 수행할 의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대체복무 역시 군을 지탱하는 하나의 부속물이기 때문이었다. 핀란드에서 대체복무를 규정하는 법에 따르면, 그녀는 대체복무를 거부한 명목으로 2주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핀란드 북부 카이누 지역, 수비대가 주둔하는 곳)은 고용의 20% 이상이 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완전거부가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한다.

Sources: Conscientious objection declaration (Finnish), 6 December 2009, Helsinki Times: Woman conscientious objector faces prison in Finland, 9 December 2009, Correspondence with AKL Finland.

Published in CO-Update, January 2010, No. 53

Finland: first female total objector to go to prison?

On 6 December 2009, Finnish Independence Day (a very militarist event in the country), a woman conscientious objector declared her total objection in Finland. She declared: "I don't want to support a machinery of violence by any means, because it is not creating a happy and just future for us. Militaristic activities only sow and feed hatred and bitterness. We should use all our resources for building and maintaining a sustainable future."

Finland does not have conscription for women, but does allow women to volunteer for military service. During the first 45 days of service the female volunteers have a right to discontinue their service without any consequences and correspondingly the military has a right to send them home. However, after this "trial period" the laws regulating conscription for men also apply to women, which means the service ceases to be voluntary. Finland's law on conscientious objection consequently also applies to women who volunteer for military service.

According to the army´s statistics, 522 women applied to voluntary military service in 2009. The number has been quite stable. There have been only a few cases of women applying for conscientious objection after the trial period, who then performed the rest of their service as substitute service, but the present case is the first case of total objection of a woman conscientious objector.

The new woman conscientious objector, who wishes to remain anonymous, had performed 11 months of military service before it was interrupted in November 2008 because of medical reasons. She then had only one month left of her service. During her military service and the deferment her opinions on the military changed, and she decided to declare her conscientious objection.

Her decision to object was also influenced by the fact that the military's medical treatment did not offer her appropriate surgical treatment when she got a physical injury during the service. She sees this as an example of how the military does not respect basic human rights.

Before her refusal she applied for conscientious objection, and was accepted, but she did not want to perform substitute service either, because she sees it as an appendage of the military. According to the Alternative Service Act she will be sentenced to prison for two weeks.

As she is living in a garrison town in the Kainuu region (Northern Finland), where 20% of the employment is by the military, she prefers to remain anonymous, although she welcomes publicity for her case.

Sources: Conscientious objection declaration (Finnish), 6 December 2009, Helsinki Times: Woman conscientious objector faces prison in Finland, 9 December 2009, Correspondence with AKL Finland.

Published in CO-Update, January 2010, No. 5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Judith Butler’s carefully crafted f**k you

http://wagingnonviolence.org/2009/12/judith-butlers-carefully-crafted-fk-you/

 

http://wagingnonviolence.org/2010/03/judith-butlers-nonviolence-a-reprise/

 

주디스 버틀러 인터뷰

 

Frames of War: When Is Life Grievable? (2009)

 

해석이 잘 안 되는 것이 단지 어휘가 부족해서만은 아나겠지. 더 잘 읽어서 느끼고 싶은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눈 오는 날 딴 생각

눈이 너무나 많이 온 이 아침, 난 지각도 하지 않고 아침 8시에 출근을 했다. 이런 날에도 너무나 열심히 일하는 대중교통 종사자 분들 덕분이긴 하지만, 이럴 때조차 지각을 못하는 내가 좀 싫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밖에 눈이 이미 다 내려서 쌓여있는줄만 알았다. 그래서 우산 없이 나왔다가 전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쏟아지는 눈발에 마치 폭우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역에 내리니 이제 막 동이 트려는데 눈은 더 빗발처럼 내리고 있었다. 눈을 피해 가려고 조금 돌긴 하지만 시장길을 택해 걸어갔다. 아직 문을 연 가게가 보이지 않는데 그 사이로 야채를 배달하는 트럭에서 물건을 꺼내어 가게로 옮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렇게 눈이 많이 와서 교통이 마비되는 날에도 유통상들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경외심과 섬뜻함이 동시에 들었다.

 

학교로 가려면 이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가 과연 다닐까 하는 의문과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왠걸 나를 태우고 갈 5번 버스가 곧바로 도착하는 것이다. 아스팔트 색깔이 아예 흰색으로 도배된 그 길을 운전기사 아저씨는 너무나 잘 헤치고 나아갔다.

학교에 도착해서 교무실에 와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눈 속에 역시나 아무도 오지 못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다들 식당에서 모여 시무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7시 반 시작인데 교장이 늦게 도착을 해서 8시에 시작을 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교사가 참석한 듯 했다. 내 부장쌤은 심지어 따따블 택시를 불러타고 왔단다. 아침 7시 20분에 교무실에서 메신저로 전체 교사 메세지를 돌린 것을 보고 속으로 경악을 했다.

 

자연재해와도 같은 이 악조건 속에서 각자 따따블 택시를 타든 아침에 두시간 먼저 집에서 나오든 해서 시무식에 참석을 한 것이다. 그렇게 출근을 '사수'한 뒤에는, 눈 때문에 늦거나 못 온 사람들에 대해서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여유까지 보이는 이 사람들에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교사들이 시무식을 했던 식당에 되어있던 치장과 테이블세팅, 음식들. 그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식당노동자들의 모습. 내가 그분들을 고용한 것도 아니고, 난 시무식 참석대상도 아니지만, 이 아침에 눈길을 뚫고 출근해서 음식준비를 했을 모습이 떠올라서 서글퍼졌다.

 

자꾸 작년 겨울 런던에서 이렇게 눈이 많이 왔을 때 버스노동자들은 아예 차고에서 눈싸움을 하며 운전을 안 하고 있고 지하철도 제대로 안 다니면서 모든 노동자들이 이틀씩 휴가를 가졌던 기억이 오늘 아침에 내가 받은 인상들과 겹쳐진다.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를 알아버린 것만 같다. '불굴의 한국인'들은 어떤 조건에 처하더라도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일상을 지킬 수 있는 저력이 있는 것이다. 거기엔 어떠한 예외성도 인간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까라면 까는' 이 표현이 오늘 몸소 이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눈이 계속 오는데 집엔 어떻게 돌아가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선가(禪家)의 공안(公案) 같은,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토끼 한마리가 사냥꾼을 피해 숨을 곳을 찾습니다. 나그네는 토끼를 숨겨줍니다. 좀 이어 사냥꾼이 나그네에게 토끼가 간 곳을 묻습니다. 나그네가 지금 있는 곳은 갈림길입니다. 이때 나그네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임의의 방향을 가리키면서 사냥꾼을 그곳으로 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해를 입지 않고 토끼도 지킬 수 있으므로 그것은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냥꾼에게도 토끼를 쫓는, 혹은 쫓을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 자리는 서로의 숙명이 부딪친 자리입니다. 결국, 나그네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폭력의 근원-사냥꾼의 사냥을 중지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설득일 수도, 물리적인 실천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그네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사는, 이 나그네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계삼,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51-52쪽

 

어떤 사안이 있을 때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미리 읽어보지 않아도 신뢰가 가는 필자들이 있다. 이계삼 선생님의 다음 글이 무엇이 나올지 자뭇 궁금하다. 녹색평론도 우리교육도 다 정기구독이 끝나버렸는데 이 참에 다시 신청할까보다.

 

교육에 대한 화두를 놓치지 않으면서 천성산, 평택, FTA, 삼성, 비정규직, 가난한 삶에 관한 고민들을 풀어놓은 글들이 질리기보단 오히려 다시 읽어도 곱씹어볼 수 있는 글들이었다. 대학교에 돌아가면 꾸역꾸역 글 쓸 일들이 생길텐데 그럴 때마다 자주 인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최근 어느새부턴가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다. 오엔 겐자부로 <만엔원년 이후의 풋볼>을 최근에 읽었는데 것두 한 일주일 넘게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 주변에 잡히는 책을 읽곤 했는데 이제 새해겠다 다시 뭔가 관심있는 주제를 하나 잡고 진득허니 읽고 싶기도 하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요즘 고민 자체가 별로 없다. 몸도 찌뿌둥하니 생각도 덩달아 무뎌졌나보다. 연말에 술자리 있을 때마다 암울한 넋두리만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때.

 

* 관람후기를 적고 싶은데 막상 또 쓰려니 딱히 신선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간 벼르고 벼르던 <엘라의 계곡>은 어떨지 궁금&기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01

아침 해는 보지 못했다. 일어나보니 열두시가 넘어 있었고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잤다. 지금도 속이 메슥거린다.

 

다들 나이 서른을 기점으로 얘기들을 하는데 난 생각해보니 올해가 벌써 나이 서른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란 자각이 번쩍 들었다. 어느 구치소로 갈까 하는 찌질한 고민들은 좀 그만하고 출소해서 내 서른을 힘차게 맞이할 수 있게 생산적인 고민들을 하며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지긋지긋한 대학 공부를 마치기 위해 그 추운 날 힘들게 학교를 찾아갔는데 행정실 직원과 주민등록번호를 두고 또 실랑이가 벌어졌다. 재입학 신청서를 쓰는 양식에 왜 굳이 주민등록번호 기재란이 있는지 모르겠다. 학번만으로 본인식별이 되지 않느냐고 나는 말했고, 돌아온 대답은 그렇다면 이 신청 서류를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행정실 직원에 마침 거기를 지나던 학과 조교까지 달라 붙어서 한 십분간 주민등록번호를 두고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내 주장을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얘기 할 때마다 내 안에서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맥박 소리와 달아오르는 그 어떤 뜨거운 느낌이 있다.

 

"이런 거로 따질거면 본부 학사과로 가서 따지세요"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본인 식별을 하죠"

"학생이 주민등록번호를 안 쓰면 나중에 상부에서 뭐라고 해서 저희가 피곤해진다구요"

"본인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저희 입장도 좀 이해를 해주셔야죠"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면 그에 합당한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행정직원들은 직접적인 답변을 하는 게 아니라 자꾸 다른 답변들을 했다.  나는 이런 일로 성 내고 싶지도 않고 내 안의 평온함이 흔들리는 것도 싫은데 행정직원들은 나 때문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먼저 흥분한 사람이 지는 건데, 이 직원들이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그럼 저희는 이 서류 지금 받을 수 없고 어디 딴데 가서 알아보고 오세요"라고 할 때마다 너무 난감했다. 맘 같아선 딴데 가서 알아보라는 그 말부터 더 따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말 이 사람들이 서류를 안 받아줄 것 같아서 계속 눈치를 봐가면서 얘기를 해야했다.

 

공무원 개인들과 싸우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론 동시에 또 그 공무원 개인들의 책임을 물어야만 하는 일종의 딜레마란 생각이 들었다. 서경식 선생님이 어느 글에서 원호를 쓰는 문제로 일본 대학 행정 직원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공무원들은 어느 순간 "시스템이 원래 이래서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거나 "저도 상부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라 제 소관이 아닌 일입니다"라는 식의 말을 한다. 이런 공무원들을 볼 때마다 난 늘 나치에 부역했던 공무원들이 자기들은 명령에만 충실히 따랐을 뿐 개인적인 책임은 없다고 변명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그들한테 공격적이었던 것인가 하는 후회도 없진 않다. 좀 더 능글맞게 얘기했어야 하려나. 비폭력대화 배운 걸 응용해서 그들을 인간적을 좀 공감해주면서 대화를 할 걸 나도 좀 흥분을 많이 하긴 했구나 이런 식의 후회들. 공무원들과 싸우고 나면 엄마가 나에게 늘 하는 말이 떠오른다. 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뭐 그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냐고. 세상 사람들은 자기 상식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특이하다'는 낙인을 정말 너무 쉽게 붙이는 것 같다.

 

재입학 서류를 받아줄 수 있네 마네 논쟁을 하는 동안 직원 한 명이 전산에 내 학번을 입력한 듯 했고 모니터론 내 정보가 쭈욱 떴나보다. 그 순간 그 직원이 그냥 알았다고, 주민번호 안 써도 되니깐 그냥 내고 가라고 얘기를 했다. 내 학번을 쳐서 내 주민번호를 확인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엄청난 수치심이 올라왔다. 내가 돌아간 후에 그들은 모니터에 뜬 내 정보들-주민번호부터 사진, 주소, 가족정보, 학점 등등-을 보면서 뒷담화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들. 이럴 때마다 지금과 다른 과거의 내가 저질렀던, 국가와 제도에 너무나 순응적이고 협조적이던 내가 했던 일들이 너무 후회스럽고 또 내가 싫어진다. 열 손가락 지문날인을 하던 날부터 내 인생은 이미 국가란 매트릭스 안에 완전히 포섭됐구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국가와 행정제도에 이미 넘겨져버린 내 정보들을 없앨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다 지워버리고만 싶다.

 

뉴스에선 신년이라면서 올해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해맞이 장소에서는 사람들이 플래시몹을 하면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장면을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에 육박한다고 한다. 자꾸만 <매트릭스>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우리는 정말 거대한 매트릭스 안에서 자신이 '자율적인 주체'라고 착각을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우울한 생각이 찾아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